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형경씨 책들에 푹 빠져 사는 요즘이다. '사람풍경'에서 비롯된 사람 심리에 대한 이해는 '사람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더욱 절실한 아픔이자 기억으로 다가 왔다. 나 또한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 왔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마지 못해 사는 삶 같은 거 말이다. 꿈도 명확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명확했지만, 내 맘 같지 않던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도무지 생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런 무력감에 빠져 있던 그 때 김형경씨의 책들을 통해 사람 심리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나의 심리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그런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을 들게 되었을 땐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러 군데서 이미 저자가 말했다시피, 극단적인 사랑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사람심리를 파악하는 과정들이 그려져 있어서 이 책을 다 읽고난 후엔 사랑의 실체를 너무 명확히 알아버려서 사랑을 하지 못하면 어떨까 하는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알지 못할 불안일 뿐임을 아는 까닭에 읽게 되었고, 다 읽고난 지금 나의 그런 불안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산장에 찾아간 남녀와 그 안에 있던 세 구의 시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 구 시체들이 왜 다 죽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추리 소설을 보는 듯 재미있었으며,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이란 환상을 파헤치는 과정 또한 움찔움찔 감정의 미묘한 파고를 일으켰다.

  환상은 사람을 일으키게 만들며,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사람이 비현실적이 된다. 그렇기에 환상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대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환상을 가지고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환상, 저 너머엔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다는 환상,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게 되면 영원히 행복할거라는 환상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 환상은 확실히 사람을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며 현재보다 더 나은 세상을 동경하며 돌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이 막상 이루어지고 나서도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막상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좋아하던 사람과 사귀게 되어도 곧 그 사랑이 애증으로 변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세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어찌나 날 시기하고 질투하며 음훼하는 사람들이 많던가.

  그렇다면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서 살아야 할까? 이 책에선 그런 환상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나와있다. 또한 여러 상황들을 설정해 놓고 그것들을 이야기 해줌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환상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시켜 준다.

  김형경씨의 책들은 언제보아도 느끼는 것들이 다르다. 난 이 책을 지금은 환상이란 측면에서 보고 이해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보게 된다면 다른 느낌이 있을 것이다. 김형경씨의 기존 책들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 또한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고, 진일보한 그녀의 심리학적 견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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