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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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 이 책을 읽어보게 될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 한문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옛 문체를 탐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 책은 나에겐 에베레스트 산처럼 그 존재를 알면서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 나였음에도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참 단순 명료했다. 바로 고미숙 선생님이 쓰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그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나서 이 책을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고미숙 선생님의 그 책은 열하일기를 부분 부분 맛볼 수 있는 기본서 격이었다. 그런 기본서를 통해 열하일기의 대강을 대하고 나니, 결코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걸 읽기 전까지만 해도 리와 기를 논하는 형이상학의 경서적인 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음이 나를 자극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무턱대고 도전한 열하일기는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보면 지루한 내용이었다. 중편까지 여행과정을 서술해 놓은 곳까지는 정신 집중하며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뒤로 들은 내용들과 관찰한 내용들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라는 단순한 진리만 생각하며 마지 못해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단지 읽었다는 뿌듯함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역사스페셜에서 해준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 프로에서는 박지원이 갔던 그 연행길을 지금의 시점에서 밟아가며 그 당시의 박지원이 했던 생각들과 그 길의 험난함 등을 이야기 해주는 프로였다. 막상 눈 앞에 펼쳐진 중국의 대륙이나, 일야구도하기로 유명한 강을 실제 보며 동감하게 되니 내가 열하일기를 헛 읽은 게 맞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역사스페셜은 나의 무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대작이었다고 할 것이다.

  다시 읽게 된 열하일기는 처음에 마지 못해 읽었던 열하일기와는 달랐다. 그 안에 따뜻한 인간으로서의 연암과 사실들을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연암,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연암의 모습을 여지 없이 느낄 수 있다. 역시 뭐든 알고 보는 것과 마지 못해 보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 안에 얻게 되는 것도 다를 뿐더러 그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되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를 읽으려는 분들에게 먼저 고미숙 선생님의 책을 보고, 역사스페셜을 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열하일기에 대한 기본상식을 쌓고나서 이 글을 본다면, 이 글이 왜 명작인지, 박지원이 왜 대문호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러한 기록의 열정이고 그런 명편을 남기기 위해 우리 역사에 대하여 많이 알아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침범, 일본해 상정 등의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박지원이 고구려의 영역을 되새기며 느꼈던 비분을 이제서야 동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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