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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 박완서 묵상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부터 써댈 글이 서평에 속할 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나 주관적인 자기 고백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성서 이야기를 들어왔고 도판이 화려한 여러 종류의 성서 혹은 성서 관련 책들을 보면서 자라왔다. 성당에 정식으로 다니게 되었을 때도 내가 와야할 곳을 이제야 찾아왔다는 느낌이 다소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학교에서와 같이 성당에서도 나는 모범생이었다. 적어도 이십대 중반까지는...
그러다가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의문을 교묘히 피하고, 나름 합리화해가거나, 아주 가끔 은 마주 대하기를 십년정도 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나의 마음은 극과 극의 미움과 애정이 교차하기도 하고 지금과 같은 어떠한 감정조차도 없는 다소 무관심의 상태에 이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평단을 모집하는 페이퍼를 보면서 서슴치 않고 신청한 것도, 그리고 책이 도착하기까지 가슴 설레며 기다린 것도 아마 이러한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조금은 분명한 쪽으로 마음을 굳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보다 더 정확하게는 좋은 쪽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란 제목에 크게 좌우되었던 것이다.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라 말할 수 있는 작가의 묵상과 체험이 나에게도 그대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대하면서 읽기 시작했건만 처음부터 글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분명 눈으로는 보고 있고 머리로는 읽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연신 팽팽 튕겨 나가는 것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두었다 읽어야지 하면서 다음날 다시 조금 읽다가 하기를 반복하다보니 빨리 서평을 올려야지 하는 조바심은 조바심대로 압박을 가해오면서 답답해질 뿐이었다.
어쨌든 책을 다 읽고 난 이 시점에서 서평을 조금이라도 써보겠단 마음을 먹은 건, 좀 무리스럽더라도 신앙인으로서의 작가 보다는 생활인으로서의 작가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서 읽으려 한 노력의 댓가(?)라고 할 수 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의 연약함, 자연의 신비를 마주할 때의 경외감, 소소한 일상에서의 마음의 흐름은 일정 수준에서 많이 공감이 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솔하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성찰의 문장들이 나로 하여금 내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하라고 격려를 해주는 것 같았다.
다소 미약한 서평을 끝내는 글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 할 수 있는 아래의 단락이다.
"그러나 저는 끝내 아무런 신비체험도 못한 채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수까지 하고도 세례를 안 받는다는 건 어쩐지 창피한 것도 같고 유난을 떠는 것도 같아서였습니다....(중략)...더위보다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같이 세례를 받는 교우들은 거의 다 감격에 겨워 눈물이 그렁하지 않으면 흐느껴 울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부르심을 받았는데 저만 소외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기쁨에 차 눈물을 흘리는 동안 저는 다만 날씨가 좀 덥다는 육체적 고통에만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었다는 건 부끄럽고도 한심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왜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을까? 오랫동안 원망도 하고 의심도 해본 끝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은 뜨거운 사람만 부르시는 게 아니라 차가운 사람도 부르신다는 것을, 똑똑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사람만 부르시는 게 아니라 미욱하고 아둔한 사람도 부르신다는 것을, 다만 부르시는 방법이 다른 뿐이라는 것을...(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