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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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노사이드> 의 감흥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다카노 가즈아키' 라는 작가의 호기심과 애착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출간된 그의 작품들을 대면하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임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있을법한 뻔한 스토리를 상상치 못할 내러티브로 치환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매력이 남다른 느낌을 주었는데요.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K N의 비극> 역시 왜 다카노 가즈아키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주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간 <K N의 비극>는 '빙의'라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해리성 정신분열'이라는 과학적 분야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종교와 신의 관점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무신론과 유신론 그리고 불가지론등에 대한 갑을박론을 하는데요 여기서는 왠지 불가지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재를 기반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민간함 사안을 다루면서 어느쪽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초적인 근거만을 제시함으로써 작품을 읽는 내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믿음 혹은 가치관에 대해서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합니다. 여기에 남녀간의 사랑, 결혼, 그리고 임신과 낙태라는 메인 주제가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사회적으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할 이슈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K N의 비극> 은 작품의 서두인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은 왠지 이번 작품이 비극적이고 호러물이지 않을까라는 암시를 받게 되지만 막상 본격적인 내러티브로 들어가면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서 심령학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역을 다루는 뉘양스에 다소 의아해할 수 도 있는 작품입니다. 빙의와 정신병 즉 과학과 심령이라는 쌍두마차가 내러티브 전반을 이끌어가면서 때로는 이성적으로 단호하게 판단하다가도 때로는 비이성적인 믿음으로 굳혀져가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여기에 다카노 가즈아키는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양측의 주장을 상당히 리얼하게 서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애의 묘사(아 정말 이부분은 왠지 낯뜨겁게 하기도 하면서 상당히 리얼하게 묘사하여 묘한 흥분감을 불어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출산의 과정, 소파수술등의 서사에서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숨을 가쁘게 하면서 그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어 현실과 픽션사이에서 방황케 하기도 합니다. 서사되는 스토리 자체가 한마디로 충격적이면서(뭐라고 해야할까요 보여주기 싫은 추태를 공식 석상위로 부상시켜 철저하게 난도질함으로써 수치감마저 들게 한다고 할까요. 예전에 드라마로 한때 붐을 일으켰던 임신중절관련 내용이 언뜻 떠오르고 영화로 보았던 빙의관련 내용도 선뜻 데자뷰되면서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쥐어짜고 있습니다.) 상당히 리얼하게 서사되고 있어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머리털이 머리털이 쭈빗쭈빗하고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면서 뭐 냉정한 이성은 뻔한 스토리라고 하지만 머리속은 온통 등장인물들이 막따뜨린 상황과 같은 긴장감을 독자들로 하여금 자아내게 합니다. 이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사실감있는 서사로 인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연출된 공간속으로 빨려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픽션과 현실 사이에서 그 판단기준을 허물어 버리는 기재로 작용한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그 남자' 즉 가나미에 빙의한 구미를 임신케 한 그 남자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이더라구요. 독자들은(물론 다카노 가즈아키는 계속 그 남자를 강조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수 많은 소설을 쓰게 합니다. 앞서가는 독자는 혹시 그 남자가 슈헤이는 아닐까라는 상상, 혹여 의사인 이소가이는 아닐까라는 상상등) 그 남자의 정체가 이 빙의를 해결할 수 있는 키라고 생각하죠. 뭐 작가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몰고가고 있기도 하구요. 저는 여기서 다카노 가즈아키가 세상에 말하고 전하고자 하는 사유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남자' 라는 지칭이 같은 의미를 좀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는것 같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을 임신케 할 수 있는 남자라는 단수형과 인류전체를 통틀어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역사를 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남성전체 이렇게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아마도 작가는 후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들이라면 정말 한번쯤은 고민해봐야할 소재인것 같다는 생각 강하게 전달되구요. 여기에 과학적 근거에 의해 정신질환으로 믿는 의사 이소가이 이에 반해 사령이 깃들었다고 믿는 작가 슈헤이 이 둘의 심리묘사와 나름의 논리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오컬티즘적인 서사들이 많이 있어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심령주의적인 서사보다 어느 정도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체계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서사에 묻어져 있어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당히 헷갈리게 하죠. 독자들이 누구나에게나 한번즘을 있을 불가사의한 경험들이 작품을 통해서 슬금슬금 표면위로 올라오게 되고, 이러한 아련한 기억들이 갑자기 뚜렷하게 떠오르면서 내러티브의 설정들과 동일시되어 버리는 효과로 인해 더욱더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다카노 가즈아키의 치밀한 전략으로 보여지지만 하여튼 이런 알토란 같은 맛이 돋보이면서 작품속으로 빠져들게하는 마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노사이드> 에 비해서 그 스케일은 상당히 작아보이는 독립영화같은 작품입니다. 워낙 <제노사이드> 의 스케일이 블럭버스터를 방불케할 정도의 방대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얼핏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지만 내면적으로 들여다 보게 되면 이번 작품은 상당히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탄탄하고 철저한 오컬트적인 지식들로 무장하고 있어 깊이면에서 상당한 내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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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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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한 기억속에는 없지만 어렴풋이 망망대해속을 가르는 돛단배와 배 고물쪽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 그리고 세월의 세파를 달관한 표정의 노인.... 뭐 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보았고 나중에야 그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를 영화한 거란 사실을 알게되었을 정도로 헤밍웨이의 작품을 대면해 보지 못했지만 뇌리속에는 강한 像을 심어놓은것 같네요.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정신(프론티어 스프리트) 을 대변하는 작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F.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 하는 작가로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죠. 물론 세계적으로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의 작품들이 곳곳에서 읽혀지고 연극, 영화로 리메이커되듯이 세계문학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작가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야 헤밍웨이의 원작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릇 스포트라이트를 꾸준히 받는 작품을 접할때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이 작가나 작품의 뒤에 걷어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후광의 빛을 좀처럼 걷어내지 못하고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 그래서 순수하게 작품의 사유를 느끼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기존의 유명 리뷰어들이나 작품의 해설등 엄청나게 쏟아낸 평을 무시할 수 는 없으니까요) 을 빼면 나름 작품의 바다속을 목적지 없이 항해하는 책읽기도 또 다른 감흥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몇자 끄적거려 봅니다.

 

 

   <노인과 바다> 뭐 워낙 알려진 작품이지만 대부분의 독자들(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뇌리속에 남아있는 <노인과 바다> 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청새치를 배에 달고 귀향하는 극히 한정된 씬일 것입니다. 작품 전반을 통틀어서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고 상어떼들의 공격보다 더한 파토스를 남기고 있는 서사이기에 <노인과 바다> 하면 딱 그 장면이 고착화되어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솔직히 달리 떠오를 만한 테제가 없을 정도로 <노인과 바다> 는 저 개인에게는 굉장히 비쥬얼이 강한 작품속에 들기도 하고요. 왠만한 거장들의 명작품과 비교해봐도 이런점은 눈에 띌정도로 강하게 독자들 뇌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상으로 이 작품을 대하지 않더라도 독자들 머리속에는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장면이라는 말이죠. 인생에서 성공이라는 꼭지점에서 끝이없는 나락으로 일순 떨어지는 허망함과 더불어 모든것을 놓고 가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에서 밀려드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사실 작품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특별한 이슈가 보이지 않을 만큼 밋밋한 느낌을 주는것도 사실입니다(뭐 속된 말로 찰랑찰랑 파도 치는 바닷가에 발다금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노인과 소년 그리고 노인과 노인의, 노인과 고기라는 구조는 세대와 세대, 자신의 정체성과의 사투, 대자연과 인간이라는 또 다른 플롯을 상상케 하는 이중적 구조로 그리 난해하지도 않죠. 그리고 스토리를 전개상 두번의 클라이막스를 엿볼 수 있죠, 첫번째는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에서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 노인과 청새치의 전쟁의 결과를 주목하게 되고 노인의 승리로 막을 내린 1차 전쟁에서 희열을 공감하게 됩니다.(뭐 낚시광이라면 이 부분이 엄청난 느낌을 가져다 줄 정도로 헤밍웨이의 서사는 일품입니다) 그리고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바다는 그야말로 세상모든 것을 품을듯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 역시 노인과 더불어 편안하게 고른숨을 내쉬게 하지만 곧 이어지는 상어떼의 공격과 자신이 온힘을 다해 잡은 청새치를 지키는 2차 전쟁의 모습을 사뭇 다르게 전달됩니다. 헤라클레스같은 지혜와 힘으로 청새치를 굴복시켰던 노인은 온데간데 없고 무기력하게 상어떼에게 자신의 포획물을 헌납하는 순수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독자들의 심장의 박동 강도도 느려지고요 실상 내러티브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극적인 반전이지만 막상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강도는 한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설정이 헤밍웨이의 사유가 집약된 부분일거란 생각이 들구요. 등장인물들과 화자의 설정에서 이중적 구조를 보여주듯이 이러한 반전을 통해서 헤밍웨이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사슬구도를 암시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이는 소년과 노인과의 대화 노인과 노인(고기가 현현한 노인으로 봐도 무방하겠죠) 의 대화는 육지와 바다라는 구도와 일맥상통하기도 하죠. 뭐 평론적으로 파고들면 끝도 한도 없이 복잡한 구조를 말해야겠지만 겉으로 들어난 구조상으로도만 보더라도 많은 부분을 대변하고 있는 설정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들어가면 사실상 재미없는 논쟁만 남을테니까요.

 

 

   제목 자체로만 보면 독자들 머리속에는 쪽빛 같은 적도의 바다와 강렬한 태양에 반사된 눈부신 수평선 그리고 세상을 다품을 듯한 노을빛등 서정적인 묘사가 먼저 떠오르지만 내러티브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서정적인 서사와는 무관한 사실주의적 서사들을 대면하게 됩니다(아마 이부분이 작품해설과는 상반되는 부분일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낚시 장면, 생선을 해부(해체)하는 장면, 청새치와 사투하는 장면등...에서 서정적인 서사는 찾기 힘들어지고 그저 무덤덤하게 사실적인 면을 강조하죠. 뭐 작품 해설자는 하드보일드 기법이라고 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헤밍웨이는 이런 사실주의적인 서사속에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킨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죠. 노인과의 감정이입을 통해서 마치 바다위에서 실재로 청새치와 사투중에 느끼는 손맛이랄까요. 뭐 그런 상상의 나래속에 우리 독자들도 무임승차한다는 기분으로 슬쩍 다리하나를 걸치면서 나름이 감정을 흡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낚시중 노인이 내뱉는 코믹한 멘트나 바다 낚시의 생생한 묘사는 마치 살아있는 고기를 낚은 현장에서 리얼타임으로 생중계를 하는듯한 서사가 일품입니다. 만세기를 낚시로 잡는 장면과 해체하는 장면은 정말 실감나죠. 마치 생선의 비릿한 냄새마저 느껴지게 하면서(예전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사냥장면에서 화약냄새을 느낄 수 있었던 만큼이나 생생합니다) 생선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솔직히 입안 가득 군침마저 돌게 하구요. 마치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정리해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을 눈앞에서 처다보는 느낌마저 자아내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노인에 대한 애잔한 감정들 그리고 고기와 사투에서 느껴지는 비장함등 왠지 모를 일체감일까 뭐 그런 느낌들을 자아내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를 통해서 사실적인 서사와 더불어 감정적인 서사가 절묘하게 내러티브 전반에 깔려 있기에 스웨덴 한림원에서 대표적인 작품으로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정로 문학적인 격이 높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족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본문에 맞먹는 작품해설을 보면서 약간은 씁쓸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사실 작품의 해설이나 서평등은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마다 편차가 크기 마련이고 작품을 읽고 느끼는 느낌 역시 제각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처럼 본문에 맞먹는 역자의 해설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독자들 입장에서는 작품의 해설부분에 대한 의존도랄까 신뢰도등등 이런면에서 자신의 느낌이나 작품에 대한 감상이 훼손될 우려가 있습니다. 워낙 친절하게 해설을 달아 놓아서 마치 독자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어긋나거나 아예 감상평을 올릴 엄두가 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말이죠. 물론 어디까지 저 개인적 생각입니다만요 그냥 작품 그대로 나름 느낄수 있는 짧막한 해설이 수록되었으면 한결 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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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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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회구조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사회을 합리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냉정한 논리뿐이다" 라는 신념으로 똘똘 무장한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 주임해석 연구원 가구라,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래도 맨발로 감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는 경시청 반장 아사마 이렇게 극단의 성정과 가치관이 다른 두 인물이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 추리스릴러소설로 국내에도 이미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대게가(물론 작가 자신의 전공인 과학분야의 소재를 카메오처럼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요) 개인 vs 개인의 구도를 띠고 있는 사건 해결의 메카니즘을 갖고 있죠. 물론 여기에 작가는 사회성이라는 담론을 깔아놓고 출발하지만 보통의 작품들에서 개인의 문제에 촛점을 맞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플래티나 데이타> 는 그동안의 작품과 사뭇다른 플롯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조지오웰의 <1984> 을 연상시킬만큼 그 내러티브가 상당히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띄네요.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서 도래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경고에 대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시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지만 결국 이번 작품역시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일종의 경고적인 멘트가 담겨져 있는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최첨단기술을 통해서 명목상으론 사회범죄를 사전에 예방할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하지만 결국 일반대중을 통제하는 권력층의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담고 그 담론들을 독자층에게 호소해옴으로써 단순한 추리스릴러장르를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호응을 받을수있는 기반을 구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 만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한 멘트와 플롯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네요. 아예 작정이라도 한듯이 작품의 서두에서 부터 강한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기에 추리스릴러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사회소설이라는 장르속으로 넘어가버린듯한 인상을 강하게 주죠. 여기에 추리스릴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요건들은 다 충족하고 있어 다소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를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런면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만의 매력이자 차별화된 영역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죠.

   빅 브라더, 플래티나 데이타 가 이에 해당하겠죠. 그리고 DNA을 통한 일반대중의 통제 그러면서 기득권층과 권력층은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특권을 공고히 다지는 작중 "어느 세상이건 신분은 존재해.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어"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 문명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연보호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을 뿐이며, 자연에 친숙해지거나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뇌리속에 깊이 박혀있으면서도 대놓고 공론화 시키지 못하는 부분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서슴없이 들어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상당히 하이퍼 테크널리지한 최첨단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번역부분에서 다소 의아한 점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가구라와 스즈랑이 경찰청의 압박을 피해 야반도주하는 과정에서 번역가는 "회중전등"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왠지 이런 번역이 눈에 거스린다고 해야 할까요. 작품 분위기나 시대설정이 갑자기 20세기 중반이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움으로 남네요. 물론 의도적으로 작품의 플롯을 더 부각하기 위해 아나로그시대의 향수을 표현했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석연치 않습니다.

 

   그리고 유심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대한 독자라면 발견할수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아 명탐정의 규칙에도 나온 보레로라는 가상의 지명말고요) 다름아닌 '블랙커피와 밀크티' 입니다. 그의 작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료인데요. 항상 남자(특히 사건해결자인 남성)은 블랙커피를 마시고 여성들은 대부분 밀크티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죠. 이러한 점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가십거리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작품은 전반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 를 데자뷰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지만 그와는 또 다른 흥미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한 접근을 다양한 설정과 복선으로 메우고 끌어가면서 독자들에게 사회소설과 추리스릴러소설 두 장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자감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드네요. 작중 "어느 세상이건 신분은 존재해.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어" 는 말이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문명의 이기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전체적으로 사회전반에 던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강한 메세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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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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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3부작> 으로 이미 국내에도 많은 펜을 가지고 있는 폴 오스터의 신간 <선셋 파크> 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제대로 하나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논한다면 넌세스일 것이고 그저 이번 작품에 국한하여 리뷰를 작성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 조금은 안타깝기는 하네요. 폴 오스터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시건방진 끄적거림이 될 것이고 저처럼 그간 그의 작품을 대면하지 못한 독자들에겐 혹시 모를 도움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몇자 적어봅니다.

 

 

   "도회적이고 감성적인 언어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자의 상상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우연의 미학' 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국축한 탁월한 이야기꾼" 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아마도 현존하는 미국 작가중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중에 하나로 폴 오스터에 대한 평은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이런 평을 듣고 있으니 더욱더 처음 대면하는 독자들에겐 호기심이 증폭하게 되고 과연 어떤면에서 그런 평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죠.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선셋 파크> 하나만으로 전부를 제단할 수 없기에 이에 대한 언급은 보류하고 <선셋 파크> 에 대해서 받은 느낌을 정리해 보도록 하죠. 우선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그렇게 특이하거나 독자들의 눈길을 확잡아메는 힘은 다소 부족한것 같습니다. 작가나 리뷰어들의 평들이 오늘을 사는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 낸 작품으로 그동안 세계를 주름잡았던 '위대한 미국' 의 신화를 자아비판하면서 한편으로 삶을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라는 평이 지배적이죠. 어떻게 보면 이번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사유이자 내러티브 자체라고 해야할 정도로 작가는 '위대한 미국' '아메리카 드림','프론티어 스프리트' 등 미국만이 지니고 있는 '정신' 과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속에 들어있는 '위대한 미국' 의 실질적인 괴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로서 이러한 부분은 충분히 체득할 수 있는 스토리로 그렇게 가슴한켠을 밀물듯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미국 독자들에겐 그 반향의 강도가 우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름대로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폴 오스터가 심혈을 기우리고 작품 전체의 사유를 전달하는 방식에 이번 작품의 묘미가 들어있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인 마일스(사실 이번 작품은 누구하나 특정지어서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묘한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죠)와 필라가 조우하는 장면에 있습니다. 그것도 동시에 <위대한 개츠비> 를 공원의 벤치에서 읽고 있는점이죠. 약간은 유치한 설정으로 보일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설정들이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고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다소 진부한 묘사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결정적인 것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 에 있다고 보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는 미국내에서는 거의 바이블같은 존재의 작품으로 '미국 정신' 을 대변하는 작품입니다. 바로 여기서 폴 오스터의 기막힌 아이디어를 엿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전반(뭐 제목에서 부터 왠지 블루 아메리카를 연상시키고 있지만요)을 관통하는 사유를 극적인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무심코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갈 수 있는 하나의 소품정도로 보일 수 도 있지만 바로 이부분이 어쩌면 초장에 작품에 대한 써머리를 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4명의 젊은이(왜 이렇게도 위대한 개츠비의 인물구성요소와 기막히게 떨어질까요) 이라는 인물구성도 그렇고 내러티브의 결말 부분도 <위대한 개츠비> 을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다른점이라면 <위대한 개츠비> 의 경우 아메리카 드림을 향한 저마다의 질주와 그 이면에 감춰진 상징을 보여주지만 <선셋 파크> 는 위대한 미국이 몰락해가는 광경을 넷명의 젊은이 각각의 처해진 환경을 한데 모아 선셋파크라는 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더구나 뉴욕이라는 동일한 장소가 한때는 불나방이 모여들던 화려한 미국을 상징했다면 폴 오스터의 뉴욕은 그야말 지는 태양을 상징한다는 것이죠. '위대한 미국' 을 상징하는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전혀 위대하고 싶지 않는 솔직한 심정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네요. 반전(굳이 반전이라고 해야할 파토스가 있기나한것인지 모르겠지만요) 에 해당되는 부분의 처리방식, 결말을 매조짓는 뉘양스, 공간적인 배경등 많은 부분에서 <위대한 개츠비> 꼭 빼닮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폴 오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솔직히 F.스콧 피츠제럴드보다 훨씬 재미있기는 하네요.

 

 

   사족으로 이번 작품은 분량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스토리의 내용이 난해하고 용어의 부담등이 아니라 다름아닌 스토리에 속에 등장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작가들, 화가들 등등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인물검색을 하게 합니다. 뭐 그런것 있지않습니까 이런 인물들이 정말 실존했던 인물들일까라는 생각, 소설이기에 더욱더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죠. 결론은 야구선수들과 그들의 행적은 실존했던 인물들이 맞았고 작가들은 반반 정도 뭐 이렇게 인물 검색이나 지역검색으로 시간을 소비했지만 여기서도 나름의 소득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폴 오스터가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던 '위대한 미국' 의 사유가 담겨져 있기때문입니다. 세인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호령했던 스타들도 은퇴(자의든 타의든간에) 후 삶은 결코 '위대한 미국' 이 아니였다는 점, 그렇지만 평범한 삶속으로 되돌아와 무너저가는 위대한 미국을 체득하고 다시 일어설려고 하는 진지한 모습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존재케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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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세계사 - 부와 권력을 향한 인류 문명의 투쟁
스티븐 솔로몬 지음, 주경철 외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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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아시다시피 우리의 몸은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역시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는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행성이기도 합니다.(이러한 황금비율이 가능했기에 지구와 우리라는 공존관계가 이루어졌겠지만요). 이처럼 물(H2O)은 우리는 물론이고 지구라는 행성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기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뭐 항상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서(우리가 지금 현재도 숨을 쉬고 있는 공기처럼요) 우리는 등한시하거나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점이 있기 마련이죠. 이런 의미에서 바로 물이라는 존재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없으면 생존자체가 힘들 정도로 중요한 요소(자원)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물에 대하여 심도깊게(뭐 요즘은 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피부로 와닿는다는 느낌은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죠) 논거가 되거나 공동체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물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니죠 역설적으로 너무나 눈 앞에 널려 있기에(이렇게 말하면 사하라사막이나 물이 절실하게 보고 싶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몰매 맞겠지만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 서서히 물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물 부족(참고로 유엔에서 지정한 물부족 국가 반열에 대한민국도 머지않아 포함될거라는 놀라운 소식도 있습니다)에 대한 논의와 대응 방안들이 표면위로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왠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뉘양스를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물에 대한 접근 자체가 생존수단이나 환경문제등으로 협소화된 개념속에서 출발하기에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 라는 신간이 바로 이런한 협소적인 시각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저서로 보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상고하면서 물과 인류사의 연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왜 우리가 물에 대해서 기존의 사고를 바꾸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올 저서로 보이네요.

 

 

 

   <물의 세계사>우리 인류의 발자취를 재구성하여 새롭게 보여주는 세계사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 동안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주된 관점을 역사적 사건과 그에 걸맞는 인물(특히 권력지향적인 인물과 권력을 창출한 인물들 위주였죠) 들을 중심으로 연대기순으로 인식하는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뭐 사실 그게 전부다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 입니다. 물론 게중에 몇몇 색다른 접근을 시도했던 학자들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사는 우리의 기준에 맞고 우리의 입맛에 맞게 짜여진 식단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사실 그러다 보니 세계사를 관통하는 모든 기준은 인류의 문명창출에서 그 발전과 진행과정을 인류만의 유니크한 스트럭처로 인식할 수 밖에는 없는 어찌보면 반쪽짜리 세계사를 안고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물의 세계사> 는 그 접근에서부터 상당히 발칙한 아이디어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칙한 착상이 왠지 모르게 저서를 읽어나가면서 왜 이제와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의구심 마저 불러올 정도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된 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인류가 걸어왔던 길을 4대문명의 출발에서부터 현대의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각 문명의 투쟁, 부와 권력을 향한 인류의 발자취 이면에 항상 '물' 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사유의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초의 문명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비롯한 세계 4대 문명이 나일강을 비롯한 강 즉 물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은 기본적인 상식중에도 상식이지만 이후 확장 되어가는 인류의 세계사에서 바로 물의 역활이 어떠한 형태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냐에 대해선 소상히 모르고 있는 것이죠. 바로 이런 점이 그동안 세계사를 바라보았던 우리의 시각이었고 그런 시각의 틀에서 지금의 물부족등 수자원에 대한 접근이 협소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농업혁명에 맞먹는 산업혁명의 근저에도 역시 물이라는 패러다임이 존재했고 가까운 과거인 미국독립에서도 물과 관련된 쟁투가 결국 지금의 세계질서를 낳았다는 사실 동서양을 대표하는 로마제국과 중국제국의 흥망성쇠에 가장 결정적인 역활이 바로 '물' 관리 였다는 점. 지금처럼 동서양의 패권의 틀이 형성된 근본적인 역사적 사건을 저자는 명나라때 정화의 해외원정 중단으로 인해 동양은 그 패권을 서양으로 넘겨줄 수 밖에 없다는 논거등 이면에 다름아닌 바로 항해라는 물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 물론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내면의 역사적 변곡점에서 인간과 물의 상관관계가 이렇게 밀접하고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정도 저자는 세계사를 고찰하면서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물에 대한 담론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지하 대수층에 존재하고 있는 지하수를 퍼올리듯이 끝도 한도 없이 '물물물' 이야기가 나오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네요. 흔히 우리가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결정적인 시기나 사건들 속에는 물과 관련된 결정과 전환점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독자들은 이번 책을 통해서 인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상당히 넓어질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게 역사라는 개념이 인간이 중심에 있고 인간이 개척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이번 저서를 통해서 개척이나 정복 내지는 경쟁이라는 개념보다는 공존이라는 개념 인식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타이틀이 물의 세계사이지만 그리고 많은 부분들이 물과 인류역사의 연관고리를 서술하고 있지만 이번 책에는 지구과학, 기후학, 지리학등 전반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행성 지구를 되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70%라는 물이 지천에 널려있지만 정작 생명체가 음용할수 있는 가용 물자원은 0.003% 밖에 안되는다는 현실, 그리고 이 가용 물자원마저도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구 전체적인 역사를 상고해 보면 항상 반대급부적인 현상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뜻에서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을 다시한번 검토해볼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인지하게 해주네요. 인구자원 방정식이라는 전문적인 태제를 차치하더라도 분명 지금 인류에게 '물' 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 동안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다가올 것으로 보입니다. 부와 권력의 재창출이 아닌 생존 그 자체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할 일은 분명 아니죠. 그동안 인류가 걸어왔던 발자취를 감안 한다면 지금 물부족을 기회로 새로운 정책이나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열려 있는 것이니까요. 인류의 역사에 작위적이던 비작위적이던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물과 물의 관리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절실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대두되어야할 시기이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물의 세계사> 는 쉽게 접근해서 쉽고 재미있게 진도가 나가는 인류의 역사(물론 '물' 이 주체라는 점만 다르죠)를 리뷰하고 있는 책이지만 서사속에 담겨져 있는 사유는 그리 녹녹치는 않습니다. 물론 역사적 변환점에 억지로 끼워맞춘 뉘양스를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그 동안 역사를 바라 보았던 시각의 차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구요. 전반적으로 '물' 과 '인류' 두가지를 심도깊게 사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역사는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내게 하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네요. 모처럼 흥미롭게 술술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간과했던 사실들, 몰랐던 사실들,부와 권력을 향한 인류 문명의 투쟁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았던 역사가 아니라 한배를 타고 항해하는 공생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저서였습니다. 이번 저서를 계기로 '물' 에 대한 시각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 다시한번 재조명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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