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감정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회구조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사회을 합리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냉정한 논리뿐이다" 라는 신념으로 똘똘 무장한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 주임해석 연구원 가구라,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래도 맨발로 감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는 경시청 반장 아사마 이렇게 극단의 성정과 가치관이 다른 두 인물이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 추리스릴러소설로 국내에도 이미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대게가(물론 작가 자신의 전공인 과학분야의 소재를 카메오처럼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요) 개인 vs 개인의 구도를 띠고 있는 사건 해결의 메카니즘을 갖고 있죠. 물론 여기에 작가는 사회성이라는 담론을 깔아놓고 출발하지만 보통의 작품들에서 개인의 문제에 촛점을 맞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플래티나 데이타> 는 그동안의 작품과 사뭇다른 플롯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은 조지오웰의 <1984> 을 연상시킬만큼 그 내러티브가 상당히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띄네요.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서 도래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경고에 대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시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지만 결국 이번 작품역시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일종의 경고적인 멘트가 담겨져 있는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최첨단기술을 통해서 명목상으론 사회범죄를 사전에 예방할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하지만 결국 일반대중을 통제하는 권력층의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담고 그 담론들을 독자층에게 호소해옴으로써 단순한 추리스릴러장르를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호응을 받을수있는 기반을 구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 만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한 멘트와 플롯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네요. 아예 작정이라도 한듯이 작품의 서두에서 부터 강한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기에 추리스릴러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사회소설이라는 장르속으로 넘어가버린듯한 인상을 강하게 주죠. 여기에 추리스릴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요건들은 다 충족하고 있어 다소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스토리를 한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런면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만의 매력이자 차별화된 영역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죠.

   빅 브라더, 플래티나 데이타 가 이에 해당하겠죠. 그리고 DNA을 통한 일반대중의 통제 그러면서 기득권층과 권력층은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특권을 공고히 다지는 작중 "어느 세상이건 신분은 존재해.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어"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 문명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연보호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을 뿐이며, 자연에 친숙해지거나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뇌리속에 깊이 박혀있으면서도 대놓고 공론화 시키지 못하는 부분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서슴없이 들어내고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번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상당히 하이퍼 테크널리지한 최첨단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번역부분에서 다소 의아한 점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가구라와 스즈랑이 경찰청의 압박을 피해 야반도주하는 과정에서 번역가는 "회중전등"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왠지 이런 번역이 눈에 거스린다고 해야 할까요. 작품 분위기나 시대설정이 갑자기 20세기 중반이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움으로 남네요. 물론 의도적으로 작품의 플롯을 더 부각하기 위해 아나로그시대의 향수을 표현했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석연치 않습니다.

 

   그리고 유심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대한 독자라면 발견할수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아 명탐정의 규칙에도 나온 보레로라는 가상의 지명말고요) 다름아닌 '블랙커피와 밀크티' 입니다. 그의 작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료인데요. 항상 남자(특히 사건해결자인 남성)은 블랙커피를 마시고 여성들은 대부분 밀크티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죠. 이러한 점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가십거리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작품은 전반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 를 데자뷰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지만 그와는 또 다른 흥미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한 접근을 다양한 설정과 복선으로 메우고 끌어가면서 독자들에게 사회소설과 추리스릴러소설 두 장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자감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드네요. 작중 "어느 세상이건 신분은 존재해. 인간이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어" 는 말이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문명의 이기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전체적으로 사회전반에 던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강한 메세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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