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코필리아] 서평단 알림
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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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뮤지코필리아

음악(Music)과 사랑(Philia)의 합성어로 음악를 사랑하면서 인체의 변화에 대한 일종의 뇌신경학 가설중의 하나로 올리버색스는 이 책에서 음악과 관련된 아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음악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전작인 <색명의 섬>에서 펼쳐지는 한편의 수채화같은 흐름을 다소 기대하였으나 이번 책은 그야말로 일종의 학술보고서의 양식같아 속도를 높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속으로 빠져들어보면 정말 올리브색스다운 필체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중에서 인간이란 종만이 향류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여러 시각과 관찰을 통해 음악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단의 사고로 인하여 마치 이명현상같이 귀속이나 머리속에 음악소리가 들린다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그런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공통적으로 사고로 인한 머리의 충격 내지는 외상으로 인해 그러한 현상이 유발되고 있고 그것은 저자의 전공인 뇌신경학과 상관성이 높다는 결론을 가지면서 그의 본격적인 음악과 인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

흔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부지불식간에 음악과 접촉하고 있다. 내가 싫든 좋든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는 거의 매일 음악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만큼 음악은 인류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초의 문자발명이전 부터 각종 역사의 전달방법중 음악이 차지했던 비중도 높거니와 종교와 관련된 그리고 정치와 관련된 음악 또한 수많이 있다. 왜 그럼 인간은 음악에 그토록 많은 비중을 두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의 구조가 우리 인간의 뇌구조에 반응하는 시스템이 마치 일종의 언어형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구상의 여러소리를 접하면서 음악만큼 우리의 정서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가 없듯이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언어의 또 다른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인간의 청각기관과 신경체제는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마음속으로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방식으로 인식하더라도 그에 대한 전달이미지는 모두 파악하게 되는것이다.

그동안 음악과 관련한 과학적이고 특히 의학적분야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되어 왔다. 사실 의학기술이 좀더 발달한 지금의 시점에서야 음악을 인식하는 뇌의 부분이 언어를 인식하는 부분과 일맥상통한다는 결과를 얻기 까지 우리는 과연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가에 대한 과학적 반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상담결과를 통해 어릴적 부터 음악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으면 뇌발달에 크게 도움이 되고 뇌졸증이나 알츠하이머병, 실어증, 운동실조증, 기억상실증의 치료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것을 말해준다. 특히 발달지체, 자폐증, 파킨스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좀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음악이 그러한 질병치료에 치료제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와 같이 병행할 경우 생각보다 더 효과적인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다고 본다.

음악이 인간에 전해주는 사랑이라는 언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이해해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가는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사랑에서 출발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해 온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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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나의 고전 책꽂이 2
김진섭 지음, 양상용 그림 / 깊은책속옹달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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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전

홍길동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없을 정도로 우리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중의 하나이다. 사대부가의 서자로 출생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적인 아픔을 딛고 신출귀몰한 행동으로 탐관오리를 격파하고 후에는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어간다는 내용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읽어도 가슴속까지 통쾌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하물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은 조선을 대표하는 엘리트중의 하나이다 그의 집안자체만 보더라도 누나인 난설헌의 경우 신사임당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여류문학가이고 아버지를 비롯한 선조들 역시 정권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던 동인출신이었다. 물론 역사는 광해군이후 정권에서 배제된 허균이 정권의 허탈함과 무상함을 몸소 느끼던 시절 창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주제가 길동이라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임금이 내린 벼슬마저 돌보듯이 뿌리치는 장면에서 아마 허균 자신이 그렇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권의 정점에서 추락한 이후 그가 세상을 바로보는 눈은 이전의 눈과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7년전쟁을 거치면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산하와 그 속에서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보면서 과연 그는 무슨생각을 하였을까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마 홍길동이라는 소설이 그 시점에서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백성들의 아픔과 현실을 고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그렇게 믿고 충성을 다했던 정권에 일말의 저항도 하면서 말이다. 허균은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오면 천주교 12단을 국내로 반입한 어떤면에서 보면 조선인 최초의 천주교 신자라고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태인에 유배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정권의 양날의 칼을 뼈저리게 겪었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허균의 정치적인 이력이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아실현 내지는 정권의 한풀이로 역활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에서 말이다. 

우리의 고전의 큰틀은 권선징악 즉 해피엔딩을 주제로 다룬다. 그런 면에서 홍길동전 또한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홍길동전에는 정치적인 요소 들이 상당히 내포해 있는 현대판 정치소설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시대적으로 봐도 이 고전은 진보적인 소설이다. 성릭학으로 똘똘뭉친 사회에서 새로운 나라의 건설이라는 발상자체가 자칫하면 역모로 이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자체를 평가해야 하지만 그 작품의 저자의 시대적 배경이나 정신적인 상태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서 허균은 역모로 몰려 참형을 당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홍길동전이라는 고전에 암시되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홍길동전의 문학사적 가치는 대단하다 한글로 된 최초의 소설로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임에 틀림없다. 또한 저자인 허균이라는 천재적인 작가가 있어 이런 불멸의 고전이 탄생한것도 또한 사실이다. 홍길동전이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 아닐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권력에 대한 민초들의 생각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홍길동같은 이의 출현을 바라는 그럼 마음도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아마도 위정자를 비롯한 정권에 간여하고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길 바라는 바람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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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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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傳 3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국사에 대한 뿌리를 인물중심의 열전형식으로 방영하는 한국사전 시리즈 그 세번째 책이다. 대게 역사를 접하는 방식이 군주중심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물론 문자발명이후 역사기술에서 절대군주국가의 중심인 군주에 대한 기술이 절대적일 수 밖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역사인식을 하는 과정중에서 시대의 흐름을 기년체형식으로 나열해가면 파악하는 방법이 가장 쉽게 그리고 정리된 형태로 역사인식을 하는 방법이지만 그 당신 인물을 연구하면서 인물중심으로 역사을 인식하는 방법 또한 역사서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이번 책은 백제의 무령왕, 조선최초의 청정을 행한 정희왕후, 비운의 여성문장가 허난설헌, 의병장 곽재우, 서학의 대부 이벽, 발해의 대무예와 대흠무, 가사의 최고봉 정철, 세종대왕에 관한 일련의 사건과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무령왕 백제의 중흥군주이다.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왕의 죽음(개로왕)을 맞이하여 백제는 일대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왕비와 왕자를 일본으로 피신시키고 웅진으로 천도를 단행하면서 백제는 제기의 발판을 마련하게되고 그 중심에 무령왕이 있었다. 우리에게 최초로 지석이라는 무덤의 주인을 알게 해주었던 무령왕 그는 백제의 중흥의 일으켜세웠고 백제문화를 정점에 있게 했던 장본이었다. 그런 점에서 군주의 역활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왕이다

정희왕후 세조의 비이자 예종의 어머니 그리고 성종의 할머니 그녀는 당초 수양대군의 배필이 되는 과정에서 부터 범상치 않는 삶을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언니의 혼처를 가로챈 당돌한 소녀에서 계유정난시 남편의 갑옷을 직접챙긴 당찬 여인으로 그리고 조선 최초로 청정을 시행한 철의 여인으로 역사에 남는다. 그리고 무멋보다 그녀가 역사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 것은 권력에 대한 속성을 제대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청정을 거두고 그까지 권력에 관여하지 않고 성종의 큰 버팀목이 됨으로써 세종조 이후의 전성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남편과 두아들을 먼저 보낸 비운의 여인이었지만 조선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여인이기도 하다

허난설헌 아마 그녀가 좀더 생존했다면 신사임당을 능가하는 조선의 여류문장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인이다. 비록 조선의 철저한 가부장제도하에서 그 빛을 읽었지만 중국의 학계에까지 그 명성을 떨친 그야말로 천재작가가 아니였나 싶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속설을 유감없이 보여준 여인이지만 그래서 더 그녀의 문장이 후대에 남게 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의병장 곽재우 7년전쟁의 화마속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켜낸 몇안되는 인물이다. 백성들에게 신망을 받고 자기 신념하에 고국에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 사대부였다. 관군은 도망간 상태에서 자비를 털어 의병을 조직하여 육상전투에서 최초의 승전보를 안겨주고 진주대첩등과 같은 수많은 전장에서 진두지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선조의 의심과 당쟁의 여타 속에 유배를 당하는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아마 그 또한 이순신처럼 전장에서 전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벽 조선 천주교전파에 가장 공이 큰 인물중에 하나이다. 천진암모임을 주도하고 이승훈을 북경으로 보내 세례를 받아 오게 하는등 그는 천주교에 대한 신념을 포기 하지 않은 신지식인이었다. 비록 집안의 반대와 아버지의 회유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자살아닌 자살을 택한 그는 아마도 교리마저도 그의 죽음으로 지켜내지 않았나 싶다

대무예/대흠무 우리에게 발해사는 아지까지 미개척분야이다. 그 만큼 사료도 부족하고 아직까지도 발행의 강역에 대한 제대로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대조영의 아들과 손자로 이 두 군주는 가히 세상에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할 정도로 국력에 대한 자신감과 고구려의 후예라는 힘이 있었다. 당나라도 넘볼수 없는 그런 강국으로 발해을 이끌어갔던 것이다. 급기야 당에서도 그 국력을 인정하여 해동성국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지금처럼 동북공정해서 고구려 발해을 자국의 역사로 왜곡할려고 하는 중국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발해를 세우고 키웠던 우리 선조들의 지략을 다심금 생각나게 한다 

정철 국어교과서에 가사의 달인으로 표현되는 그가 실상 당쟁의 화신이었다는 점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만큼 권력의 비정함과 무서움을 정철을 보면서 다시금 알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 권력지향적이었던 그는 결국 그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하였고 그 한이 각종 별곡으로 후세의 문학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아닐까 싶다.

세종 조선역사를 통틀어 조선과 세종은 동일시 되는 단어중 하나이다. 사실 조선은 세종조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세종조에 이루어진 것이 결국 왕조의 마지막까지 큰틀의 변화없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 그의 미래를 보는 혜안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민본정칙의 표상으로 그리고 언론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자주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해준 그런 군주이다

 

역사는 분명 한두명의 인물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에 이처럼 족적을 남기는 인물들에 대한 올발은 판단과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것 또한  제대로된 역사관을 가지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결국 역사는 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런 인물들이 모여서 역사라는 큰 틀이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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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한스 바이스.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이상호 감수 / 프로메테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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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쁜 기 업


경제발전은 몇몇가지 이를테면 인간성에 대한 본질에 대한 문제 환경과 기업도덕성에 관한 문제와는 무관하게 아니 억지로 관심을 회피하면서 진행해야만이 가능하다. 그동안 세계경제는 세계화를 화두로한 산업국가들의 신자유주의 지향적인 경제패러다임을 줄곧 외치고 있다. 그 커다란 흐름속에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이 대안이 없다라는 논리에 수긍하면서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앞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세계화이며 누구를 위한 경제발전인가에 대한 단 한번의 생각도 없이 말이다.

▶▶ WTO, IMF, IBRD을 대표로 하여 그야 말로 총기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세계인구의 0.1%가 나머지 99.9%의 부를 합친것 보다 많은 부를 향유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루에 1달러의 생계비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이도 있지만 년봉이 몇억달러를 초과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어찌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격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수치적인 개념을 넘어선지 오래되어서 가타부타 논쟁의 대상에 올리기도 힘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의 실상에 대해서 그 내막을 파헤지는 르포르타주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얼굴에 열이 나고 손에 힘이들가고 끊었던 담배도 한두개피 피우게 된다. 그야말로 야누스의 두얼굴처럼 일반인들이 그동안 광고라는 마력앞에 얼마나 철저하게 속아왔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기분을 느끼게끔 한다. 물론 기업이란 이윤창출을 최대의 목표로 설립된 구조이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석유, 의약품, 식품, 장난감, 의류, 핸드폰등 거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분양에서 다양한 형태로 각종 악행이 저질러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 이다. 소비자에게 익히 각인되어 있는 브랜드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추악한 착취로 버젖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 굴지의 S그룹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적을 초과하여 이윤이 있는 곳에는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이 아동이나 여성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착취하던, 전쟁을 지원하던 간에 가리지고 않고 그들의 이윤확보를 위해서는 심지어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그야말로 합법을 사칭한 불법이 난무하는 현장에는 꼭 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 이윤을 확보하고 나면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는 기생충처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로운 출구를 향해 온갖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목표를 달성하는것이 이들의 특징이자 전략이고 최대의 목표이다. 주주들의 권익보장과 세계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 이 책을 읽고 우리같은 소비자입장에서 과연 거대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그 브랜들의 불매운동도 하나의 방편이고 항의성 메일을 발송하는것 또한 소비자의 주권확인 방법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우선 지금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생각과 경제발전에 대한 우리의 생각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경제시스템인 신자유주의가 결국 이런 기업들을 존재하게 했고 앞으로도 끊이없이 창출할 것이다. 결국 이들 기업은 신자유주의의 보호막속에서 오늘도 지구의 어느 한구석에서 자원을 착취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지불을 미룰것이다. 일부는 그들의 이윤으로 일부는 해당국가 위정자의 주머니속으로 결국 최저생계비정도밖에 안되는 몫만 노동자에게로 돌아가는 현실은 지금의 경제시스템이 바뀌지 않는한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개미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돌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기업이 백주대낮에 설치고 다니는 이유는 다름아니 우리자신에게 그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산업국가(선진국)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하여 그 이면에 꼭 보살피고 챙겨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했다는 생각이 든다. 실례로 대한민국 또한 한때 최빈국의 위치에 있었다. 그 때 오직 목표는 잘살아보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때가 분명존재했다. 이제 좀 나아지니까 오히려 우리가 더 그때 겪었던 설움을 더 빨리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세계화 경제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속담에 있듯이 쥐를 몰때는 도망갈 구멍을 남기고 몰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세계화외에 대안이 없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똑같은 하늘을 보고 공기를 숨쉬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고 여성들이 노예노동과 열악한 보건환경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런 브래드의 불매운동을 떠나서 현명한 소비형태를 만들어 가고 지금의 경제발전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제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인간성 본질에 대한 자숙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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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잃다
박영광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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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잃다

우선 저자의 이력이 남달라서 호기심반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현직 경찰이자 수사과 형사로 재직중에 있으면서 소설의 주인공인 한진수 직업 또한 강력반 형사로 설정되어 있는 점 부터 심상치 않음을 말해준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박진감 넘치는 그런 설정 또한 없다. 그러면 이 소설은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의 제목 자체에 모든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 이별을 한다 혹은 이별을 생각한다는 등의 제목이 아닌 이별을 잃다라고 했을까 뭔가 문장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보통 우리는 잃다라는 말을 사랑을 잃다 소중한 물건 따위를 잃다고 표현하지 누구나 이별이라는 좋지 않는 의미의 단어에 잃다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 책제목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한두장 넘기고 마지막장을 덮을때 정말 이별을 잃다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흔히 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죽음을 이별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면에서 소설속의 주인공 한진수는 미성년자의 노동과 육체를 강탈할려고 하는 범죄인으로 부터 칼을 맞고 순직하게 된다.

딸아이 작품발표에 가기로 한 그 날 더욱이 아들녀석은 비오는날 학교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시대 가장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그는 그렇게 죽음을 맞고 정말 이별을 할 시간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듯이...

소설은 첫장면부터가 한진수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영화 친구의 한장면처럼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범죄인한테 칼을 여러군데 맞고 죽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그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부터 시작된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동료 경찰관의 울부짓는 소리를... 그러면서 어릴적 나이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때 어머니의 추억과 현재의 아내를 만나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는 내용이다. 죽은 자신의 육체를 지켜보면서 정말 이별을 할 틈도 없이 잃어버린 가슴아픔 사연이 들어있다.

우리에게 흔하지 않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의 경우 정말 그럴수 있는 확률이 높은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그런면에서 소설의 주제를 얻지 않았나 싶다. 이별을 하고 싶은 것이지 잃고 싶지는 않는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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