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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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88 ( 35.67) , 1,516.30(▲27.30) 다름아닌 오늘 장마감은 대한민국 경제지표이다. 코스피지수는 3%넘게 급락했고 원달라 환율은 다시 1500원대에 재진입했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단지 주가와 환율로만 대변할 수 없지만 경기선행역활을 하는 주가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과 환율의 상승은 새삼 한국경제가 태풍속으로 진입했다고 하는 증표이다. 

1927년 세계대공황으로 전세계는 정말 공황이라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되었다. 이후 세계2차 대전과 케인즈학파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정책등을 대표로 하는 경제사조로 어둠의 끝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새로운 경제사조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이름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다아시다시피 신자유주의 대표적인 주장은 바로 시장의 자유이다. 모든 경제활동은 시장에 맡겨두고 정부의 역활은 작을수록 좋다는것이 이사조의 논조이고 그 본색이다. 한마디로 시장자체에 자정능력과 치유능력있다는 소리이다. 미국을 필두로 주창된 신자유주의는 급속히 전세계적으로 번져갔고 그 성과는 대단했다. 냉정시대의 종말을 고한 구소련의 몰락을 가져왔고 세계는 그야말로 산업혁명이후 최대의 부의 폭발시대를 향유하게 되었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급제동이 걸렸다. 다름아닌 고향인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번진 금융위기는 삽시간에 미국 월가를 마비시키고 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번져가고 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내놓는 정책의 약발이 그야말로 하루를 넘기기 힘들정도로 그 깊이를 재단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부랴부랴 미국은 국유화조치를 단행하고 긴급자금을 수혈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지만 정말 그 끝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일개 주택담보대출정도인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이리도 큰 영향을 미칠까하고 의구심이 자연이 들 것이다. 여기에 바로 신자유주의 막강한 힘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이전의 경제성장은 실물경제(제조업중심)을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태마는 금융자본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산업금융의 역활을 강조했던 부분을 수익창출모델로 확장하면서 발생하게 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수익창출모델로 전환되면서 다양한 금융상품이 창출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뮤츄얼펀드에서 부터 사모펀트, 헤지펀드등의 상품이 고수익을 가져오면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보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기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유동화한 CDO(부채담보부증권), 부채담보부증권을 헷지한 CDS(신용디폴트스왑)이란 형태를 띠고 헤지펀드, 투자은행, 상업은행등 가리지 않고 판매되었었던 것이다. 그 만큼 고수익을 가져오기 때문에 세계금융자본이 몰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조업을 통한 수익창출보다 손쉽고 또한 빠르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 상품을 누가 마다 하겠는가? 오죽했으면 한국의 산업은행에서 파산할뻔한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을 인수한다고 해서 시끄러운때가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고수익은 이면에 고리스크라는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경제의 정확한 법칙인것이다. 이렇게 고공성장한 신자유주의 급제동이 걸린것은 미국의 경기하락과 부동산가격의 폭락으로 발단이 되었다. 부동산가격의 폭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로 대출받은 이들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이를 유동화한 CDO/CDS의 부실 그리고 이에 투자한 각종펀드와 투자은행, 상업은행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파생상품이 복잡하다 보니 만든사람도 이해하기 힘들고 또한 어디까지가 부실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의사가 어디까지 수술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상황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과 같이 대외비중이 높은 나라의 경우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IMF를 거치면서 내실을 다졌다고 자부했던 우리경제가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덪에 걸리 꼴이 되었다. 지금의 경제는 금융이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산업금융의 역활을 마다한 수익창출모델을 추구했던 금융방식이 고스란히 금융시장 개방으로 한국경제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다보니 국내금융기관역시 수익창출모델로 카드,펀드,부동산P/F등을 통한 고수익을 창출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고수익이 고리스크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고 이는 국가경제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경제가 과연 미국도 포기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부의 시장개입의 방법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점에 미네르바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이 시끄러운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정부개입으로 감세정책을 비롯한 재정정책의 확대, 고용창출을 위한 SOC사업의 확대 및 공기업의 민영화등이 과연 유효적절한 정책인가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물론 정부가 주장하는 정책이 다 틀렸다는 소리도 아니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거가 다 맞다는 소리도 아니다.

단지 이제는 범국민적인 합의에 의한 신중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멀쩡한 공기업의 민영화가 과연 올바른 판단인지, 법인세 종부세등의 감세정책이 부가세나 소비관련 세제의 감세보다 그 효과가 크게 작용할지, 사회복지시설의 지출과 SOC지출로 인한 고용창출의 크기가 어느쪽이 더 확실한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IMF를 극복했던 이유중에 하나는 비록 IMF사태를 초래했던 실물경제에 대한 과투자라는 원인이 있었지만 이러한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가 바탕이 되어서 세계경제에 유래없는 빠른시기에 IMF를 졸업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국가경제의 기반이라는 개인과 자영업, 그리고 중소기업이 위기에 놓여있다. 경제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요소를 배제한 경제정책이 과연 어느정도 효과를 가져올수 있을까에 대해선 삼척동자라도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를 넘어선 위기감은 그대로 한국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우리에겐 1997년의 아픈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 위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도 않고 들려서도 않되는 것이다. 당시 장롱속에 간직했던 자식의 돌반지을 들고 나라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금반지를 모았던 기억은 한번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은 경제살리기 확신만 있다면 금반지 보다 더한 것도 서스럼없이 내줄 국민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확한 비전제시가 없는한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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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6일 ~ 2009년 3월 15일

향토문화전자대전은?
향토문화전자대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지역의 향토문화를 발굴, 보존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9년 17개 지역의 향토문화전자대전 사이트가 운영중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전국 232개 지역의 전자대전 편찬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편찬사업의 활성화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고객평가단을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모집기간 2009년 2월 16일 ~ 3월 15일
2009년 3월 17일 발표
모집인원 북스토리 회원 100명
도움주실 일 1. 향토문화전자대전 홈페이지 리뷰 작성, 스크랩
2. 향토문화전자대전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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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 - 나운규와 수난기 영화
최창호 지음 / 일월서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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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 - 나운규와 수난기 영화>>는 처음 북측에서 출간을 책을 다시 남측에서 재 편집하여 세상에 나운규에 대한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대체로 영웅적인 인물들의 생물학적 삶이 짧듯이 춘사역시 36세라는 박명으로 요절한 인물이다. 나운규하면 우리는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머리속에 오버랩이 되듯이 단순한 영화감독 & 제작자라는 도식에 사로 잡혀있다. 사실 그에 대한 연구자체가 그리 방대하지 못하다 보니 학술적인 접근이 극히 미비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춘사는 영화제작자감독 이전에 일제강점기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독립투사의 전력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인물중 하나이다. 물론 그 시대에 지각있는 사람들이라면 항일독립투쟁에 뛰어든다는것이 상식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춘사는 무장투쟁을 통한 항일에서 민족영화를 통한 항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된다. 아마도 3.1운동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경영에 대한 변경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춘사의 이력이 특이하듯이 그의 삶 또한 거침없는 독설과 주관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이 당대 인물들의 평가중 하나 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만의 소신과 신념이 있어기에 민족영화라는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남북공히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요절이 남북한 공통의 테제를 반영해주고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1940년이후 시작된 지성인들의 친일화라는 점을 비켜갔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그의 요절이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서는 축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사와 북한 영화사에서 공통으로 시조격으로 추앙받는 나운규 민족의 한을 영화라는 콘텐츠로 승화시켜 민족의식 고취에 누구보다더 강렬한 메세지를 민중에게 심어 주었던 그가 해방이후 분단된 조국에서는 그 평가가 폄하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좌우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잊혀졌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춘사에 대한 평가와 삶의 재조명이 이루어진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지금의 영화인들의 문화적사고에 대해서 논할 근거는 없지만 춘사만큼 영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영화인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런점이 춘사가 한국영화사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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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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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미국을 한자로 표기하면 美國 그러니까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아메리카드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 가서 정착만 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보듯이 미국진출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 않는가 미국이라는 큰물에서 놀아볼려고. 심지어 00 라이트라는 극우세력은 거침없이 미합중국의 일개주로 편입되는 것이 한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까지 거침없이 떠들어 대고 있지 않는가.  

세계최강의 국가, 세계경찰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 세계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국가, 세계의 모든 자본과 인재가 몰려드는 나라 그 곳이 바로 미국이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빈곤이란 단어와 적합한 곳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갑자기 세계최고의 강국인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믿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참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없이 가련해 보이고 딱해 보인다. 그 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생각들이 그동안 너무나 과대포장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에도 빈곤층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칼 마르크스가 죽도록 주창했던 이론아니겠는가?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법칙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의 격차가 개인의 후천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떠나서 국가라는 공정한 제도에 의해서 그 원인이 제공된다면 이는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인것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는 세계경제의 대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오는 빈곤에 대한 르포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의 근원국가이자 가장 충실한 신도인 미국내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일본인인 필자가 9.11테러를 현장에서 직접목격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신자유주의의 대전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즉 시장경제에 맡겨두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아담 스미스보다 더 확실하게 이론무장하여 시장이외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국가의 역활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작은 정부로서의 역활만 충실히 이행하면 경제적인 문제는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이론 아닌가? 시장참여자들의 자율의사에 의거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적 왜곡이 없는 완벽한 경제이론인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영역확대를 시작했다. 국가의 기본의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 의료, 국방에 관한 문제까지도 이제는 국가보고 그냥 뒷짐지고 지켜만 봐라고 요구하고 있고 그런 요구를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물론 부시나 딕 체니같이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에게 민영화라는 허울속에 이권을 넘긴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 큰물결앞에 항복하고 만 나라가 미국인것이다. 교육경쟁력의 확보라는 차원, 의료서비스의 제고, 낙오 학생 방지법이란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을 전장으로 몰아 가는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허울속에서 미쳐 발견하지 못하는 점이다. 교육의 민간이관으로 발생하는 교육비의 지원삭감과 그로인한 등록금의 상승이 결국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낙오 되는 학생들을 구제한다는 명목하에 군입대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제도는 가히 환상적인 신자유주의 절묘함을 보여주는 극치이다. 그 어떤 경제이론이 이런 절묘함을 보여줄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몸이 아프면 안되는 나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료비 부담으로 파산하는 자가 부지기 수이다. 환자나 의사나 둘다 민간보험회사의 먹이감으로 전락한지가 오래된 것이다.  

시장원칙과 완전경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는 빈곤의 확대이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미국에서도 살아진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브프라임모기지도 이러한 발상으로 파생한 금융상품이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해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타킷이 빈곤층에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정부의 역활을 민간으로 이양하면서 기존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푸드 스템프를 손에 들고 급식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패스트푸드 내지는 정크푸드와 콜라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식습관은 결국 비만을 초래하고 다시 비만은 갖가지 질병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마져도 쉽지 않는게 미국 빈곤층의 삶이다. 탈출구라고는 군입대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입대한 군에선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병사 살인기계만을 양상해 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인 것이다. 

맨하턴의 마천루가 즐비한 미국을 생각하면서 자유의 나라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그 자유의 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먹고 살던 어떻게 죽어가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앞에서 그 어떠한 호소도 시장왜곡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실상은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과연 국가 정부의 시장에 대한 역활이 어디까지이며 무엇인가?민영화만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투명한 경영이 가능한가라는 점에 지금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활>>에서 잘못 이양된 민영화는 돌이길수 없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교육, 의료, 국방이다.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케이즈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의 역활을 제대로 숙지하자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맞이하여 새로운 희망 <담대한 희망>이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가 머리를 맛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장벽을 극복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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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장성민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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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국권의 상실과 식민지세월을 보냈던 한반도의 국가는 타의에 의해서 해방이라는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준비되지 않은 해방은 결국 좌,우라는 이데올로기의 깃발아래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첫단추로 출발을 하였고 소련과 중국의 묵인하에 발발한 동족상단의 비극 한국전쟁을 통해서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 물론 한국전쟁의 원인과 발발에 대해선 여전히 이견이 있지만 구소련 해체로 인한 비밀문서의 공개로 보면 남침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분단된 상태에서 남과 북은 세계적인 냉전의 기조속에서 서로의 정권구축에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북측이 김일성 1인 수령체제로 전환되고 토착화되는 시기에 발맞추어 남측 또한 변질된 민주주의와 군부정권의 득세로 치닫고 있었던 점에서 남과 북은 엄연히 삐툴어진 정권확립과 유지에 모든것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마치 식민지시절 항일투쟁을 방불케 하듯이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해서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서로가 분단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그 어떤말로 변명할수도 없지만 마치 이런 원인을 상대측의 원인으로만 인식하고 국민계도에 앞장섰던것 역시 닮은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분단이 확정된지 반세기를 넘어버렸다. 그 긴 세월이 흐르면서 남측은 민주주의의 확립과 경제발전이라는 대업을 이루면서 미국중심의 자본주의세계에 편입하는 대성공을 이루었고 북측은 구소련의 해체로 촉발된 사회주의 국가의 해체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전세계적으로 몇안남은 사회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에서 그 아들인 김정일로 권력의 축이 승계됨으로써 세계 유일의 왕조사회주의 국가로 남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을 경계로 냉정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했던 곳이고 냉정해체이후는 떠오르는 패권대국을 자칭하는 중국의 영향과 세계경찰국가인 미국의 패권싸움의 마지노선인 곳이 바로 한반도인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북측의 핵문제는 그야말로 백척간두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아마도 국내에 나와있는 몇 안되는 북한입문서일 것이다. 그동안 남측 또한 북측에 대한 왜곡된 교육과 선전으로 인해 실상 북한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할 정도 너무나도 북한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 지도자인 김정일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비뚤어진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과 김정일 그리고 그의 권력 및 외교등에 대해선 부시가 말했듯이 악의 축이라는 정도 밖에 더 있을까 싶다.

북한하면 기아에 허득이면서 김정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정작 본인의 방탕한 사생활로 인한 국가파탄을 초래한 인물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 남한의 정권의 역활 또한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갔던것도 사실인 것이다.

지금 우리 한반도는 20세초의 국권상실의 시대나 1950년의 한국전쟁의 위기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 하지 않는 위치에 놓여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성공하고 핵을 체제유지의 유일한 대안으로 채택함으로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안개속으로 빠져든게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북한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정작 상당히 위험에 빠져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욱더 북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세계최강의 국가라고 자타가 공인한 미국이 북한과의 외교에서 철저히 패배했던 것이 무엇때문일까? 그 해답은 바로 북한을 몰랐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패라고 했다. 적을 모르면 그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한것이다. 물론 북한이라는 특수한 환경속에 자리잡은 국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그동안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몰랐던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서서히 베일이 벗겨진 북한과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자료가 언론매체를 도배했지만 정작 그 본의에 대해선 축측성 보도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 그동안 축척된 북한의 자료가 너무나 빈약했기 때문이다. 항상 북한의 돌발성 행동에 뒤북칠수 밖에 없는 현실이 다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에게 자리잡고 있는 북한과 김정일에 대한 몰이해가 결국 안보불감증의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든다.

이러면에서 <<전쟁과 평화>>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북한 핵의 해결방안은 아니더라도 그 역사적 원인과 주변국들간의 이해관계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일위원장의 성장배경과 그의 정치방식 및 포스트 김정일시대를 예측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북한 핵문제는 동북아시아국가 나 미국 나아가 전세계적으로도 위협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남과 북의 민중인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핵에 대한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고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을 제외하면 사실상 남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네들은 자신의 뒷마당에 벌어지는 불이 안 옮겨붙으면 그만이다는 생각이 있다. 정작 뒷마당에 불이 나면 타 죽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북한 핵문제는 이제는 한반도에 파멸이냐 아니면 영구한 평화정착이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산넘어 불구경해서는 안될 것이다. 좀더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펴내서 평화정책에 일조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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