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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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한민국에서 미국을 한자로 표기하면 美國 그러니까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그 만큼 우리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아메리카드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 가서 정착만 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보듯이 미국진출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 않는가 미국이라는 큰물에서 놀아볼려고. 심지어 00 라이트라는 극우세력은 거침없이 미합중국의 일개주로 편입되는 것이 한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까지 거침없이 떠들어 대고 있지 않는가.  

세계최강의 국가, 세계경찰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 세계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국가, 세계의 모든 자본과 인재가 몰려드는 나라 그 곳이 바로 미국이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빈곤이란 단어와 적합한 곳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갑자기 세계최고의 강국인 미국이 빈곤대국이라니 믿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참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없이 가련해 보이고 딱해 보인다. 그 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생각들이 그동안 너무나 과대포장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에도 빈곤층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칼 마르크스가 죽도록 주창했던 이론아니겠는가?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하나의 법칙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의 격차가 개인의 후천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떠나서 국가라는 공정한 제도에 의해서 그 원인이 제공된다면 이는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인것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는 세계경제의 대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오는 빈곤에 대한 르포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의 근원국가이자 가장 충실한 신도인 미국내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일본인인 필자가 9.11테러를 현장에서 직접목격하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신자유주의의 대전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즉 시장경제에 맡겨두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아담 스미스보다 더 확실하게 이론무장하여 시장이외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국가의 역활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작은 정부로서의 역활만 충실히 이행하면 경제적인 문제는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이론 아닌가? 시장참여자들의 자율의사에 의거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적 왜곡이 없는 완벽한 경제이론인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영역확대를 시작했다. 국가의 기본의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 의료, 국방에 관한 문제까지도 이제는 국가보고 그냥 뒷짐지고 지켜만 봐라고 요구하고 있고 그런 요구를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물론 부시나 딕 체니같이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에게 민영화라는 허울속에 이권을 넘긴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 큰물결앞에 항복하고 만 나라가 미국인것이다. 교육경쟁력의 확보라는 차원, 의료서비스의 제고, 낙오 학생 방지법이란 명목으로 어린 학생들을 전장으로 몰아 가는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허울속에서 미쳐 발견하지 못하는 점이다. 교육의 민간이관으로 발생하는 교육비의 지원삭감과 그로인한 등록금의 상승이 결국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낙오 되는 학생들을 구제한다는 명목하에 군입대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제도는 가히 환상적인 신자유주의 절묘함을 보여주는 극치이다. 그 어떤 경제이론이 이런 절묘함을 보여줄수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몸이 아프면 안되는 나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료비 부담으로 파산하는 자가 부지기 수이다. 환자나 의사나 둘다 민간보험회사의 먹이감으로 전락한지가 오래된 것이다.  

시장원칙과 완전경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결과는 빈곤의 확대이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미국에서도 살아진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브프라임모기지도 이러한 발상으로 파생한 금융상품이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해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타킷이 빈곤층에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관한 정부의 역활을 민간으로 이양하면서 기존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푸드 스템프를 손에 들고 급식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패스트푸드 내지는 정크푸드와 콜라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식습관은 결국 비만을 초래하고 다시 비만은 갖가지 질병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마져도 쉽지 않는게 미국 빈곤층의 삶이다. 탈출구라고는 군입대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입대한 군에선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병사 살인기계만을 양상해 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인 것이다. 

맨하턴의 마천루가 즐비한 미국을 생각하면서 자유의 나라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그 자유의 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다. 국민들이 어떻게 먹고 살던 어떻게 죽어가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앞에서 그 어떠한 호소도 시장왜곡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의 실상은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과연 국가 정부의 시장에 대한 역활이 어디까지이며 무엇인가?민영화만이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투명한 경영이 가능한가라는 점에 지금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활>>에서 잘못 이양된 민영화는 돌이길수 없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교육, 의료, 국방이다.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케이즈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의 역활을 제대로 숙지하자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맞이하여 새로운 희망 <담대한 희망>이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서로가 머리를 맛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장벽을 극복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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