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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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회원국이자 세계 10대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 얼마전 G20회의를 개최하면서 명실상부한 선도국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역량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실상 이러한 발전이라면 발전은 가히 기적적인 극히 드문 케이스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고 전혀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하여 이데올로기의 진흙탕속에서 전쟁의 포화로 그나마 남았던 기반이 무너진 국가에서 몇십년만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뭔가 특별난 집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발전과는 별개로 내부적인 의식수준의 발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존하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성만은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제단하면 편향된 우향우집단들의 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해서 시작된 보수,수구세력의 점진적이면서 치밀한 전략은 이땅에 진보개혁이라는 보잘것 없는 씨앗을 뿌리내리지도 못할정도로 국민의 우경화를 이끌었다. 어느 국가조직이던 이런 보수수구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대한민국의 보수수구세력만큼 견고한 뿌리를 갖고 지배력이 강한 곳도 없을 것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대한민국의 프리즘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고 결국 김대중/노무현정권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노무현정부의 탄생은 가히 드라마틱하다고해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보수수구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면서 정권창출에 성공했고 지금현재 대한민국은 토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2008년 대선의 참패는 많은이들이 어느 정도 예측했던 바이다. 386세대를 필두로 일대 변혁을 일구었던 진보진영은 결국 제대로된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보수와 진보 양진영으로 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원이이야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가 진보답지 못했다는 점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는 대한민국사라는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형국에 이르게 된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에서 진보세력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시점에서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오현오와 서울대 조국교수의 대담집 <진보 집권 플랜>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논거이다. 특히 진보개혁세력이라고 자부하는 이들과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386세대들에겐 더욱더 중요한 메세지를 던저주고 있다. 특히 진보개혁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색깔과 개혁의지 그리고 정치철학등에 대한 가감없는 비판이 압권으로 다가오면서 한편으로 재각성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정책분야와 교육, 남북문제, 검찰등 각론에서 그동안 진보세력이 추진해왔던 정책들의 비판과 보수세력의 정책등을 비교해서 진정한 진보개혁세력이 나아가야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향후 진보진영의 집권재창출을 위해서 진보세력이 스스로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막연하고 구름잡는식의 의견제시가 아닌 아주 구체적이며 결국 유권자들의 가슴에 와닿을 수 있는 진정한 진보적인 색체를 띤 사안들이다. 그동안 진보개혁세력은 추상적인 이념개혁을 중시해왔고 민생문제등의 각론적인 면에선 오히려 보수세력보다 그 색체가 더 우향화된 면마저도 보여왔다. 이젠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개념에서 탈피하여 구체적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향후 다가오는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진보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선 이제 더 이상 386세대를 대표로 하는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형이상학적인 비전제시로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색체를 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정책을 들고 유권자들에게 심판받아야 진정한 진보개혁의 승리가 도래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생각자체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한번 밀어줄땐 두말없이 밀어주지만 한번 외면하면 정말 냉정할 정도로 돌아서는 것이 지금의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이는 그동안의 선거과정을 통해서 분명히 과시되었다. 진보진영이라야 말로 이러한 유권자들의 심정을 올바르게 살펴 더이상의 실패를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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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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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아는 범주내 아니 그러하리라고 받아들여져야 했던 논쟁이 가정들 특히 급변하는 사회를 그나마 대변할 수 있을거라는 정통경제학에선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 그리고 이기적인 존재로 상정해왔고 이에 기반한 각종 이론들과 정책들이 우리사회를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근저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중에 유독 인간만이 유니크한 존재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있기도 하다.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와의 근연성이 오차범위한도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특유의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그 어느 집단보다 복잡하고 우월하다는 강하고 변함없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 누군가 돌을 던진다. 잔잔한 호수가에 던져진 돌은 처음엔 무심코 지날칠 수 있겠지만 하나 둘 던져진 돌에 의한 그 파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게 되듯이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가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저자는 정통경제학에서 가정한 합리적인 행위에 대해서 가차없는 부정을 끌어낸다. 그리고 개인에 촛점을 맞추었던 지난날의 방식에도 메스를 가하면서 집단주의, 민족주의, 합리주의, 부와 빈곤등의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 아닌 조직화된 사회적 패턴의 되먹임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사회,경제,역사,정치등 일련의 범위에는 사회적원자(각 개인들)들이 마치 물리학에서 보여지는 일정한 사회적 패턴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런 패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논리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게 한가지와 다른 한가지 사이의 상관관계에 집중해 왔다. 예를들어 빈곤과 범죄율, 교육과 소득사이의 상관관계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그 근저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인과의 매커니즘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논쟁은 지금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바로 자기조직화적인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통경제학에 반기를 든 행동경제학에서는 시장을 형성하는 개별적인 개인들의 복잡성 때문에 갈수록 시장을 이해할 수 없으며 정통경제학의 이론적 기반인 합리성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사회물리학 역시 합리적선택이라는 고전적 발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개인의 복잡성 역시 긍정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지금의 시장이 이해하기 힘든것은 시장참여자들의 복잡성 보다는 시장속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섬세한 질서와 조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완벽한 합리성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적응적 학습을 가정을 선택한 일명 적응적 행동자들에 의해 패턴이 형성되기 때문에 각각의 원인보다는 이러한 사회적 원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패턴을 파악해야만 진정한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정량적 모델의 정립을 위해서 수학적인 기법을 차용해 왔지만 그 대세는 아직도 이념적인 틀에 갇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세기 들어 행동경제학, 복잡계경제학등이 대두 되면서 기존 경제학에 대한 고찰의 범위를 증폭시키고 확장시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역활은 미미한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갈수록 복잡한 사회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학이나 물리학의 공식처럼 아주 단순한 패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단순한 패턴이 거의 모든 일련의 법칙을 가능케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회물리학은 이처럼 가장 단순화면서도 근본적인 패턴을 기초로 우리 인간사를 규정해보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사회물리학은 사람보다 패턴을 중요시한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것은 원자가 빛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자들이 특별한 패턴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듯이 중요한 것은 부분이 아니라 패턴일때가 많고 이러한 점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사례와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정통경제학에 근저한 이론들을 무색하리만큼 해체해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실상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처럼 인간 본연에 대한 고찰들이다. 다만 이러한 고찰을 물리학이라는 과학적 영역으로 단순화 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다소 폄하적인(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내용으로 비쳐질 수 도 있지만,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라는 대전제에서 절실히 필요한 분야로 받아 들여진다. 그만큼 현대는 학문의 한 분야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좋은 본보기로서 <사회적 원자>가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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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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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인디아나존스를 보는듯한 박진감과 스펙타클 그리고 대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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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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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不老長生), 불로불사(不老不死) 라 함은 우리는 고대인들의 영속적인 삶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이러한 불로나 장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인간의 눈은 항상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갈망들은 종교적인 신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설화와 전설을 남기게 되고 그 중에서 우리는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과 관련된 또 하나의 전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불로초"이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는 자신이 세운 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정치적인 메스를 가하지만 자신 역시 일개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불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불로초를 찾아 머나먼 한반도의 남녘 탐라까지 원정대를 파견하게 되고 파견대장 서불(서복)의 책임하에 불로초의 신비를 파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알고 있듯이 시황제는 불로초를 손에 쥐지 못한채 한 풀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무덤속에 병마용갱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서 불로초의 애환을 달랬다.  

<불로문의 진실>은 바로 시황제의 밀명을 받았다는 서불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차용해왔다. 우리에겐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불로초 이야기를 창덕궁의 불로문과 제주도 정방폭포 암각등을 절묘하게 컨텍하였고 숙종을 비롯한 역사적 팩트를 가미하여 마치 역사소설의 뉘양스를 느끼게도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은 판타지소설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성배의 비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한국판 인디아나존스를 보는듯 내러티브가 박진감 넘치면서 스팩타클하게 진행되고 있다. 2천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설정은 다소 황당한 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불로초에 대한 진실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구성요소로 비쳐진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부분에서 예리한 독자라면 어느정도는 예감할 수 있지만 구명환교수의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이 커다란 반전으로 다가온다. 또한 서불의 시대와 숙종이후의 시간의 빈간격을 독자들의 상상으로 채울수있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재치와 필력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다만 화자의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이지만 왠지 너무 현대 스러운 분위기 내지는 뉘양스가 다소 눈에 거슬린다. 전반적으로 유니크한 레퍼토리와 내러티브의 지루함이 없어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하는데는 무리가 없어 보이며 특히 창덕궁등 소설내용을 한층 더 이해하기 쉽게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불로장생은 제국의 황제나 일국의 국왕뿐 아니라 일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면 누구나 욕망하는 바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정점을 이룬 현대에도 다양한 생명공학기술이나 의료기술 및 웰빙식품등에 이러한 불로장생의 욕망이 깃들여져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뚤어진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게 되고 그 욕망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지난간 역사를 되돌이켜 봐도 익히 알수있는 것이다. 작중 마쓰다가 말했던 "어떻게 살 것인지는 살피지 않고 얼마나 살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인위적으로 노력 한다면 그건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수치로 들어나는 양적인 삶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불로초는 아마도 이러한 욕망이 끝나지 않는한 항상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에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허망속의 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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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 -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자연과 인간 1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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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문학의 적절한 조화만이 향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보다나은 대처와 풀리지 않는 마법의 성을 깨뜨릴수 있다는 개념으로 <통섭>을 제시했던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기존의 과학(생물학)에 대한 탐구가 인간이 처한 사회를 배제하고 단순하게 생물의 세계를 연구했다면 윌슨은 여기에 사회 즉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접목하여 생물과 사회를 통합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고 이러한 시도의 배경은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의 연구나 생물을 제외한 인간의 세계가 결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종의 우월적 관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체에 대한 시각에서 이제는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생명체와 인간은 동반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시각으로의 전환을 서서히 가져오고 있다. 

<바이오필리아>는 지금으로부터 26년전에 출간된 서적이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담론만큼은 시대의 시차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 이시간까지도 유효하게 전달되고 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또한 과학의 발달과 전 지구적인 공감대의 형성으로 환경보전의 절실함과 그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리도 있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보존등의 진행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을 제시하거나 그 방향성에 대한 적절성의 논의보다는 외형적으로 그리고 수치상으로 들어나는 환경보존에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파괴해 놓은 자연환경을 복구하는 방식에서도 역시 인간 스스로의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에 환경을 황폐화 시켜놓고 또한 각종 첨단과학기술과 자본을 동원하여 인간의 방식대로 복원할려고 하는 의도는 아닌가에 대해 저자는 색다른 담론을 던져주고 있다. 

환경보존의 기본적인 근저에는 생명사랑이는 태제가 깔려있다. 생명사랑은 그동안 인간이 가진 우월적 관리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명은 동등한 동반자라는 입장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인식의 출발만이 지구전체의 입장에서 종의 다양성확보라는 순리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 인간과 생물에 대한 근본적인 동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환경과 동식물등의 생명체를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인간과 불과 몇퍼센트 차이나는 유전자를 가진 근연관계에 있는 동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계통학상으로 친인척간에 있을법한 생명체들에 대한 유전학적 의무가 아닌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나아가 인간과 여타의 생명체가 동등하다는 생각만이 진정한 환경보존의 길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환경보존의 방식에 이러한 생명사랑의 근본적인 대전제가 깔리지 않고서는 그 진면목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 인간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예술이나 문화를 소중히 여기듯이 인간을 중심으로 둘러쌓여 있는 다양한 종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환경의 생명체를 단순하게 살려내야하는 생물로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살릴듯 사랑을 담아서 인식할 것인가?라는 생각여하에 따라 자연환경보존에 대한 접근 자체에서부터 많은 차이점을 가져 올 것이다. 

분명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등 온갖 필요에 의해서 자연과 생물들을 활용 해왔다. 그 이면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 대한 우월적 관리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고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그래서 환경보존의 시급함이나 절실함을 느끼면서도 항상 우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오필리아>을 통해 이러한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심사숙고해야 할때이지 않나 싶다. 인간이 다른 여타의 생물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우월성이 다른 생물을 더 잘 안다는 이점인 것이고 이러한 이점이 사실은 생명의 참된 의미를 고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6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어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담론은 지금 현재 생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환경보존에 열의를 갖고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 나아가 자연생태계의 보존의 필요성에 이구동성 말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필요성에 대해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과학 에세이지만 <바이오필리아>속에는 과학을 넘어선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바로 생명사랑은 우리 모두, 인간과 생물들 모두가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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