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사
세계역사연구회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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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를 공부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사보다 세계사가 좀 더 어렵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분야일 것이다. 이유는 그 방대함과 머리속에 잘 기억되지 않는 이름과 지명 그리고 수없이 많은 국가들과 민족들의 흥망성쇄를 시대별 흐름으로 기억하기란 여간 쉽지 않는 문제이다. 그래서 대부분 세계사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면에서 이번 책은 세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것 같다. 인류의 탄생에서 부터 소련의 연방해체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쉽게 요약해 놓았다.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꼭 알아야하는 교양과목으로 여기는 것은 다름아닌 역사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사를 보게 되면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인류의 역사는 되풀이 되면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류의 탄생과 농업이라는 신기술이 발명되면서 문명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집트, 황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에 최초의 문명집단이 탄생하면서 역사라는 개념이 생겼나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씨족이나 부족 단위를 거치면서 도시국가로 발전하고 이어서 고대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영토와 자국민에 대한 구체적 개념이 형성되었고 그 개념의 확장이 바로 인접국가의 병합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면서 제국이라는 단위로 형성되어갔다. 그리고 다시 제국은 일개의 국가로 분활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됨에 따란 다시 병합하게 되는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다. 고대나 중세 그리고 근대을 보더라도 이러한 이합집산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세계는 통일과 분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분활이 오래가면 통일이라는 열망이 자연히 머리를 들게 되고 통일이 오래 지속되면 다시 분활이 대두되곤 하였다.  

항상 통일과 분활에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있었고 결국 세계사란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을 정도로 전쟁의 비중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사가 결국 전쟁의 역사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문화, 예술,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 또한 세계사의 또 다른 한축을 역임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전쟁과 평화 그리고 문화, 예술, 과학을 통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세계사는 발전할 것이다. 물론 그 중에 자연히 도태되는 국가나 민족이 발생하겠지만 이러한 흐름은 대세를 거스릴수 없는 흐림이 될것이다. 

항상 그 내용이나 자료가 방대하게 되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망설여 지고 결국 손도 못대고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공부가 이런 분야중에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이번 책은 세계사에 대한 맥락을 집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각론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세계사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좋은 자료인것 같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관람하듯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사진과 그래프 및 도표등을 통해서 좀더 알기 쉽게 서술되어 있어 청소년층이 봐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자주 접하지 않는 분야일수록 내용이 평이한 책에서 출발하는것이 좋다 이 책이 그런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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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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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내에 밀레니엄이 소개될때 각종 미디어에서 인용한 문구가 "이 책을 절대 일요일저녁에 보지 말라 그러면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이 문득 떨올랐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일요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것 자체가 후회 스러웠다. 이틀을 정말 꼼작못하고 책읽기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뒷끝은 잠을 제대로 못잤지만 정신이 맑고 시원한 느낌이 든 작품이다. 

스티그 라르손 스웨덴인이다. 노벨상으로 유명한 노벨의 나라 스웨덴, 그리고 <삐삐 롱스타킹>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린드그렌의 나라, 하지만 그외 스웨덴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편이지만 왠지 필자의 작품을 통해서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질 못했던 스웬덴, 그리고 그 중심인 스톡홀롬을 손바닥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만큼 필자의 작품에 매료되었다고 할까? 

<밀레니엄>은 잡지사 이름이자 발행하고 있는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타의 잡지사와는 상당히 진보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로 구성된 잡지사로 우리의 주인공이자 린드그렌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 슈퍼 블롬크비스트를 설정한 것 또한 필자의 의도된 인물 구성이지 않을까 또한 그 정체를 쉽사리 파악하기 힘든 아가씨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마치 삐삐의 성장후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공한 영화나 소설의 후속편은 1편에 비해 그 감흥이 떨어진다라는 속설이 있지만 밀레니엄 2부는 그런 속설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다를수는 있지만 1부에서 만끽한 서스팬스와 추리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그래도 이어지고 있다. 1부에서 미카엘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고 수수께끼를 푸는데 지대한 역활한 리스베트의 숨겨진 또다른 개인사로 시작되는 2부의 이야기 전개 또한 정말 박진감 넘치면서 추리의 그 끝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묘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전편이 금융그룹의 사기행각과 어느 대그룹의 가족사를 파헤친다면  이번은 리스베트의 출생에서 부터 시작한 사포라는 스웨덴 비밀정보기관의 엄청난 음모와 수사기관과의 숨막히는 정보싸움 그리고 그 정점에 다름 아닌 리스베트의 친부가 있다는 사실이 마지막 반전으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물론 3부로 이어지는 내용도 역시 예측하기 힘든 앤딩으로 인해서 더욱더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1부에 등장했던 미카엘의 연인인 에리카와 관계와 하이리트와의 관계, 다소 엉뚱하고 비정상적이다고 생각해던 리베스트의 신상을 자세히 비추면서 다시 1부의 여운을 남기고 있어 책장에 한번더 손을 가져가게 하는 점도 있다. 다소 국내의 독자들에겐 생소한 연인관계나 성개념, 자유분방한 성에 대한 사고방식들에 의해 의아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추리소설에서 빠질수 없는 부분이고 오히려 필자는 솔직하게 인간의 잠재적인 성에 대한 생각을 지면에 드러낸 것이다. 또한 필자는 르포르타주의 형식인 고발성을 가미해서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1부에서 대그룹의 잘못된 가족사와 크게는 금융계의 비리를 폭로했다면 2부는 역시 한 여인의 비참한 개인사를 통해 인신매매, 매매춘과 폭력, 그리고 정보기관의 음모등을 필자의 분신인 블롬크비스트를 통해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것이다.  

1부와 2부의 공통적인 맥락은 여성들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그 상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간에 그에 대한 댓가를 호되게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남성들이지만 비뚤어진 여성관에 대한 정말 철저한 응징이 이루어 지고 있는 점 또한 아마도 3부에서도 계속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면에서 극단과 중도를 오가는 페미니즘을 엿볼수 있는 또 다른 서비스를 필자는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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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 인류의 본질과 기원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13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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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책의 저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다. 특히 칼 세이건은 그 이름이나 명성보다도 <코스모스>라는 TV다큐와 책으로 더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아마도 왠만한 집의 서가에 코스모스한권쯤은 읽었던 아니면 장식용인든 자리잡고 있을 정도의 베스트셀러임에 틀림없다. <코스모스>의 내용이 무슨 흥행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어렵기만 한 우주천문학에 대해서 일반 대중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가 우주탄생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방대하고 스케일 큰 주제를 다루었다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지구의 생명체 그 중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물의 척도인 인간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고찰이라는 내용으로 생명의 기원에서 인간의 출현 그리고 현재까지를 서술한 인간에 관한 보고서 일 것이다. 

대략 지구의 탄생을 45억년전(이것도 정확한것은 아니지만)으로 추정하고 있는것이 과학계의 정설이고  35억년전에 최초의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의 출현과 30억년전 조류의 일종인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출현을 최초의 생명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생명의 역사는 그야말로 숫자적인 정량감을 훌쩍 뛰어넘는 전설같은 일이지도 모른다. 최초의 생명체 출현 이후 지구상에는 수도 없는 많은 변화가 발생했고 그에 따라 수도 없는 무수한 들이 출현하고 사라지기를 정말 수도 없이 반복하였다. 그만큼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는 길고도 긴 역사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길어서 실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이 책의 관점은 그동안 아니 지금도 불식되지 않는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에서 극히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모든 생명의 역사 특히 인간의 역사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과학적 논고와 그에 따른 유리품들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창조론이 부당하다는 논지 보다는 생명의 역사에서 창조론의 논지가 들어설 틈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고 아마도 그의 논거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상당한 취약점을 가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지 12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더 많은 과학적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리는 지난 세월 정확히 말해서 과학이라는 문명이 싹트면서 서서히 과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19세기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과학적인 쾌거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고 그리고 당연히 인간을 포함한 이 지구상의 생명체는 신이 창조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지배적이고 불변의 사조였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런것은 아니였다. 단지 스스로가 만물의 척도라고 자부하는 인간,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은 어디에서 진화하기 보다는 신이라는 존재의 대리인쯤으로 생각하는게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합리성을 마련해주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한명의 박물학자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또한 그토록 문명의 이기로 간주된 인간 본연의 자긍심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된다. 바로 다름아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자 세상은 그야말로 도가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발표된 그 어떠한 논의도 이 보다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학계는 물론 종교계, 정치계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이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 다윈이 중세의 인물이었다면 필히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러면 왜 그토록 다윈의 철학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가? 다윈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그 어떠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탄생한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진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주장의 논지이다. 또한 자연의 선택에는 그 어떠한 외부의 관섭도 존재하지 않고 또한 배려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당시에도 일부 수용가능한 그리 위험한 발상은 아니였다. 하지만 다윈은 모든 생명체에서 인간이라는 종도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주장이 창조론으로 무장된 이들에게 직격탄을 던졌던 것이다. 감히 신의 대리인인 인간을 그 하찮은 미물들과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는 과정을 거친 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이 창조론, 진화론등의 논의 도구방식을 떠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만큼 우리 인간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부터 지금까지도 인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고 또 인간과 다른 생물의 차이점에 대해서 많은 명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만물의 척도, 사회적 동물, 도구의 동물, 기억의 동물등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특징에 대해서 그래서 인간은 여타의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들어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역시 우리가 속해있는 영장류목에 있는 영장포유류를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실망을 가져다 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특징들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DNA검토 결과 인간과 챔팬지의 구조는 99.6%라는 놀라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나 문명 그리고 도구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언어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적인 기법으로만 판단하면 인간이나 침팬지는 별단 다른 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물론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냐 되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저자는 창조론이 맞다, 전화론이 맞다, 그리고 생명은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란 존재 또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논지를 650여 페이지에 달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장류에서 사람속으로 가지치기를 시작한것은 불과 600만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50세정도의 인간으로 따지면 정말 한 2주전에 발생했던 아주 가까운 과거였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인간의 역사는 정말 보잘것 없는 탄생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종이 마치 지구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고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이라는 종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지구를 지배했던 사례들이 있다. 마치 세상은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하는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았던 수많은 종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들 또한 자연의 선택이라는 거슬릴수 없는 거대한 흐름앞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런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자긍심, 어떠한 생명체보다 위대하다는 자부심은 마치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같은 종을 거의 말살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근친상간등의 성적인 개념이 흐릿한 종이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 자긍심과 자부심은 손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가 인간을 봤을땐 아마도 이런 미개인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간이라는 종은 지금까지의 그 어떻한 생명체가 가지는 특징을 거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하찮은 존재인가? 다른 생명체에 비해 별단 특별한 존재가 아닌것이가? 물론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여타의 생명체에 생사여탈권을 지고 있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모든 생명체의 명멸은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일개 종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 자연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지금 당장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는 날까지도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인간의 개념에서 600만년이라는 시간은 어마어마 하지만 생명의 역사에서는 불과 몇주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전해준 유전자와 자연의 선택에 의한 흐름에서 살아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600만년전 사람과 침팬지가 갈라지면서 인간이라는 종은 많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급기야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지구생명이 지배자로 군림하고 아니 군림하려고 하고 있다. 보통의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이타성을 배제하고 그야말로 종의 번식을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걸음마단계에 불과한 시점에서 이렇게 타종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종 또한 역사적으로 찾을수 없을뿐더러 협동이나 협조가 아닌 독불장군인 종 또한 없었다. 아마도 600만년전 우리의 조상이 지금 현생인류를 봤더라면 정말 이게 나의 후손인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네들은 모든 자연속에서 서로 협조하고 배려하는 대 원칙하에 살았다. 그것이 자연의 선택이었고 그런 선택을 일찍 파악했기 때문에 더 나은 종으로 진화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더 늦기 전에 조상이 그림자를 잊지말고 찾아야 할 것이다. 왜 우리 조상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살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곤충의 시대나 공룡의 시대를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구상에서 사라져갔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지금의 지구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잊혀진 조상들이 바라는 바가 진정 이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자연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자연속에서 같은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유전자를 통해서 후손들에게 전달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잊혀진 조상들은 자연의 선택이라는 원리를 피부로 늦겼던 종이었다. 그래서 자연의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고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기 위해 많은 진화를 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 조상의 잊혀진 그림자가 말해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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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 노벨과 교육의 나라
박두영 지음 / 북콘서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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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 교육의 나라 스웨덴


웨덴 하면 노벨상이 절로 연상되는 나라이다. 또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있는 삐삐의 나라, 바이킹의 후손들, 그리고 월드컵이 열리면 만만치 않는 유럽의 복병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스웨덴은 우리의 관심에서 살짝 벋어나 있는 유럽의 국가정도이외에는 별 다른 느낌을 주지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선진국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굳이 지금의 시점에서 스웨덴을 알아보자고 한 필자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스웨덴의 GDP나 국민소득, IT투자비율, R&D비용이며 국민의 수와 정치제도, 사회보장제도등을 일일이 책 전면에 걸쳐 설명하고 있는 필자의 의도가 과연 무엇일까? 일종의 관광가이드같은 역활을 하는것도 아니고 특정 국가의 전반적인 소개서같은 느낌도 주지만 실상의 교육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敎育百年之大計 라고 했던가 우리는 이런면에서 그동안 참 교육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처럼 백년은 아니더라도 50년 아니 10년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교육을 자녀들에게 고집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면에서 스웨덴의 교육제도나 정책, 그리고 교육에 대한 철학을 반면교사로 우리 현실을 되돌아 보게 하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벨상의 의미는 정말 대단하다 노벨상을 받는 개인의 영광 뿐만 아니라 그 수상자를 배출하는 국가의 위상도 같이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진정한 학문이나 문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을 배출하지 못한 우리에게 그 의미는 어쩌면 더 할 수 도 있다. 얼마전 일본은 장기적으로 노벨상수상에 대한 프로젝트를 세워서 상상을 초월하는 투자를 시행하고 과학강국으로 재도약하겠다는 해외 기사를 본것이 기억난다. 우리와 가장 인접한 국가이면서 아시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일본이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뜻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물론 노벨상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척도는 분명아니지만 그 나라의 과학,문화,정치의 시금석이 되는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 배출국가이다. 인구대비로 따진다면 그 순위는 더 높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노벨의 고국이기때문에 그럴 확률도 높지 않겠냐는 생각도 가질수 있지만 세상의 어떠한 상보다 공정한 것이 노벨상이라는것은 이미 알고 있다. 대체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교육에 대한 확실한 정책이다. 단기간의 성과나 미래를 보는것이 아니라 정말 먼 미래를 보고 교육에 임한다는 것이다. 스웨덴도 이런한 맥락에서 지금의 대열에 서있는 것이다. 

교육의 초점을 노벨상이라는 것에 두어 노벨상수상자가 많이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먼미래를 보고 투자했기 때문에 노벨상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는 교육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을 한다. 선진국의 교육기법을 벤치마킹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만의 특색이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누구하나 교육에 대한 문제에 열을 올리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 만큼 그동안 우리의 교육제도는 엉망진창이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그런데 문제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안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먼장래를 보지 못하는 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보여주는 스웨덴의 무상교육방침이나 개인의 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지금 당장 우리교육 현실에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이다. 단지 지금이라도 조금만 더 먼 미래를 보면서 교육에 임하자는 것이 필자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교육은 현세대가 후손들에게 배푸는 자비가 아니라 반드시 이행해야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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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물리학 - 탁상 블랙홀에서 양자 텔레포테이션까지 상상 초월 물리학의 세계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꿈꾸는과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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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물리학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일본의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가와 도시히테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난부 요이치로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다시말해서 일본인들이 이번 물리학상을 휩쓸었다. 우리와 지척에 있는 나라로 여태까지 진정한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필자 또한 일본인이다. 법학을 전공하다가 물리학으로 전공을 옮기면서 이론 물리학자가 보다는 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과학작가라는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배출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 이면에 이런 이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리에게 물리학이라 하면 어려운 학문, 숫자와 그래프 그리고 그런 학문을 하는 과학자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정상적인 멀쩡함보다 약간의 광기를 가진 이들로 점철되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왜 아인슈타인만 봐도 그의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이미지는 평범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람임을 느낄수 있지 않는가. 거기에다 밤의 물리학이라면 더 할 것이다. 멀쩡한 대낮도 아니고 어두고 약간은 스산한 느낌마저 주는 밤의 물리학이라는 표현자체가 뭔가 심상치 않는 이야기를 들려 줄거라는 기대가 되는 책이다. 

흔히 과학적 혁명이나 위대한 발견, 발명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학서적의 틈에서 연구되고 실험실에서 살다시피하여 나오는 결과물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는 공중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파악했고, 뉴턴은 산책길에 사과나무에서 만유인력법칙을 알았듯이 정말 우연치 않는 곳에서 인류의 위대한 역사가 쓰여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밤의 물리학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계의 정설, 그리고 타부시 치부했던 이단이나 가설들이 정설로 자리매김하는 산파역활을 하는 과정을 통칭하여 밤의 물리학이라고 필자는 표현하고 있다.  

과학 특히 물리학쪽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있어도 그 학문자체만으로도 범접하기 힘든 이들에게 이 책은 많은 위안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과학자들 역시 우리가 별반 다른것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양자역학, 초끈이론, 아기우주등 각종 과학적 이론을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물론 이 책으로 이러한 이론들을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만큼 이러한 이론들은 난해하고 정말이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이런 어렵고 난해한 이론을 설사 모른다고 해도 (왜 전문가들도 정확히는 모르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밤의 물리학입장에서 보면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위대한 발견 내지는 발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만큼 물리학은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필자는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리에게 밤은 하루 동안의 휴식을 가져다 주는 안식의 개념과 어둡고 침침한 무서움을 상징하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은 엉뚱하다싶은 정도에서 벋어났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행동이나 사고의 나래를 맘껏 펼칠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밤의 물리학인것이다. 그런 밤의 물리학을 통해서 인류의 진보는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한쪽면에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 밤의 물리학이라는 표현은 신선함을 가져다 주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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