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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 인류의 본질과 기원에 대하여 ㅣ 사이언스 클래식 13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5월
평점 :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이 책의 저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다. 특히 칼 세이건은 그 이름이나 명성보다도 <코스모스>라는 TV다큐와 책으로 더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아마도 왠만한 집의 서가에 코스모스한권쯤은 읽었던 아니면 장식용인든 자리잡고 있을 정도의 베스트셀러임에 틀림없다. <코스모스>의 내용이 무슨 흥행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어렵기만 한 우주천문학에 대해서 일반 대중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가 우주탄생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방대하고 스케일 큰 주제를 다루었다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지구의 생명체 그 중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물의 척도인 인간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고찰이라는 내용으로 생명의 기원에서 인간의 출현 그리고 현재까지를 서술한 인간에 관한 보고서 일 것이다.
대략 지구의 탄생을 45억년전(이것도 정확한것은 아니지만)으로 추정하고 있는것이 과학계의 정설이고 35억년전에 최초의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의 출현과 30억년전 조류의 일종인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출현을 최초의 생명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생명의 역사는 그야말로 숫자적인 정량감을 훌쩍 뛰어넘는 전설같은 일이지도 모른다. 최초의 생명체 출현 이후 지구상에는 수도 없는 많은 변화가 발생했고 그에 따라 수도 없는 무수한 種들이 출현하고 사라지기를 정말 수도 없이 반복하였다. 그만큼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는 길고도 긴 역사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길어서 실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이 책의 관점은 그동안 아니 지금도 불식되지 않는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에서 극히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모든 생명의 역사 특히 인간의 역사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과학적 논고와 그에 따른 유리품들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창조론이 부당하다는 논지 보다는 생명의 역사에서 창조론의 논지가 들어설 틈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고 아마도 그의 논거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상당한 취약점을 가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지 12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더 많은 과학적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정확히 말해서 과학이라는 문명이 싹트면서 서서히 과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19세기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과학적인 쾌거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고 그리고 당연히 인간을 포함한 이 지구상의 생명체는 신이 창조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지배적이고 불변의 사조였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런것은 아니였다. 단지 스스로가 만물의 척도라고 자부하는 인간,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은 어디에서 진화하기 보다는 신이라는 존재의 대리인쯤으로 생각하는게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합리성을 마련해주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한명의 박물학자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또한 그토록 문명의 이기로 간주된 인간 본연의 자긍심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된다. 바로 다름아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자 세상은 그야말로 도가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발표된 그 어떠한 논의도 이 보다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학계는 물론 종교계, 정치계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이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 다윈이 중세의 인물이었다면 필히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토록 다윈의 철학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가? 다윈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그 어떠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탄생한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진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주장의 논지이다. 또한 자연의 선택에는 그 어떠한 외부의 관섭도 존재하지 않고 또한 배려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당시에도 일부 수용가능한 그리 위험한 발상은 아니였다. 하지만 다윈은 모든 생명체에서 인간이라는 종도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주장이 창조론으로 무장된 이들에게 직격탄을 던졌던 것이다. 감히 신의 대리인인 인간을 그 하찮은 미물들과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는 과정을 거친 같은 생명체라는 사실이 창조론, 진화론등의 논의 도구방식을 떠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만큼 우리 인간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부터 지금까지도 인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고 또 인간과 다른 생물의 차이점에 대해서 많은 명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만물의 척도, 사회적 동물, 도구의 동물, 기억의 동물등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특징에 대해서 그래서 인간은 여타의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들어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역시 우리가 속해있는 영장류목에 있는 영장포유류를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실망을 가져다 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특징들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DNA검토 결과 인간과 챔팬지의 구조는 99.6%라는 놀라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화나 문명 그리고 도구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언어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적인 기법으로만 판단하면 인간이나 침팬지는 별단 다른 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물론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냐 되겠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저자는 창조론이 맞다, 전화론이 맞다, 그리고 생명은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란 존재 또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논지를 650여 페이지에 달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장류에서 사람속으로 가지치기를 시작한것은 불과 600만년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50세정도의 인간으로 따지면 정말 한 2주전에 발생했던 아주 가까운 과거였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인간의 역사는 정말 보잘것 없는 탄생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종이 마치 지구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고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이라는 종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지구를 지배했던 사례들이 있다. 마치 세상은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하는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았던 수많은 종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들 또한 자연의 선택이라는 거슬릴수 없는 거대한 흐름앞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런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자긍심, 어떠한 생명체보다 위대하다는 자부심은 마치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같은 종을 거의 말살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며, 근친상간등의 성적인 개념이 흐릿한 종이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 자긍심과 자부심은 손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가 인간을 봤을땐 아마도 이런 미개인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간이라는 종은 지금까지의 그 어떻한 생명체가 가지는 특징을 거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인간은 하찮은 존재인가? 다른 생명체에 비해 별단 특별한 존재가 아닌것이가? 물론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여타의 생명체에 생사여탈권을 지고 있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모든 생명체의 명멸은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일개 종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 자연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것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지금 당장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는 날까지도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인간의 개념에서 600만년이라는 시간은 어마어마 하지만 생명의 역사에서는 불과 몇주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전해준 유전자와 자연의 선택에 의한 흐름에서 살아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600만년전 사람과 침팬지가 갈라지면서 인간이라는 종은 많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급기야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지구생명이 지배자로 군림하고 아니 군림하려고 하고 있다. 보통의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이타성을 배제하고 그야말로 종의 번식을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걸음마단계에 불과한 시점에서 이렇게 타종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종 또한 역사적으로 찾을수 없을뿐더러 협동이나 협조가 아닌 독불장군인 종 또한 없었다. 아마도 600만년전 우리의 조상이 지금 현생인류를 봤더라면 정말 이게 나의 후손인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네들은 모든 자연속에서 서로 협조하고 배려하는 대 원칙하에 살았다. 그것이 자연의 선택이었고 그런 선택을 일찍 파악했기 때문에 더 나은 종으로 진화했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더 늦기 전에 조상이 그림자를 잊지말고 찾아야 할 것이다. 왜 우리 조상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후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살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곤충의 시대나 공룡의 시대를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구상에서 사라져갔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지금의 지구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배하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잊혀진 조상들이 바라는 바가 진정 이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자연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자연속에서 같은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유전자를 통해서 후손들에게 전달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잊혀진 조상들은 자연의 선택이라는 원리를 피부로 늦겼던 종이었다. 그래서 자연의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고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기 위해 많은 진화를 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 조상의 잊혀진 그림자가 말해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