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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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민족, 900여차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5000여년의 역사를 지켜온 민족,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사랑한 민족 아마 여태까지 한국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점을 대단한 자긍심으로 가져왔던것 또한 사실이다. 그 만큼 한민족은 단결심이 강하고 우리것 이외에는 욕심이 없는 평화지향적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간의 역사교육이었다.  

그럼 과연 이 말은 진실일까? 우리민족이 평화를 사랑했을까? 우리 역사서를 검토해보면 이런한 미사여구에 대해 약간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들이 많다. 학계에서는 위서라고 진단하는 한단고기나 규원사화등을 통한 고조선의 정복전쟁을 보면 평화와는 거리가 먼 민족으로 인식될 수 도 있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을 보면 더 확신이 가는 부분이다.  

그럼 우린민족은 서양의 게르만족이나 중원의 몽골처럼 정복민족, 정복국가였나? 솔직히 이점에 대해서도 수긍하기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세계평화운운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외정벌역사를 들추어 극우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서두에 피력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우리들 머리속을 지배했던 소극적인 역사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풍당당이라는 제목을 건 한국사 그 중에서도 대외정벌과 관련된 극히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논평을 하고 있다. 

수천년전 치우와 황제헌원의 전쟁에서 부터 조선조 북벌의 일환으로 시작한 효종의 러시아 출병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민족국가의 대외정벌 역사를 다루면서 좀더 적극적인 역사관을 갖자는 취지로 이 책은 집필되었다. 물론 평화를 반대한다거나 소극적인 역사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대외정벌사를 통해 그 시대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여 왜 그런 정벌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 이 책의 취지인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창업부터 다물이라는 고조선의 영토회복을 지상과제로 삼고 출발하였다. 그 정신은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지고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 발해와 고려에 의해서 진행형으로 진행되었던 문제였다. 당초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한 고구려의 정벌은 광개토태왕대와 와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물론 왜국에 대한 정벌은 남쪽의 안정을 위한 부수적인 조치였고 또한 왜구들의 게릴라전을 일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고구려와 형제국인 백제의 요동진출과 왜국의 진출 또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발해나 고려 그리고 조선조에 와서 진행한 북벌의 경우도 결국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외정벌사를 통해서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일반 정복국가처럼 타 문명의 말살이나 속국으로 편입을 기본으로 하는 정복전쟁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대외정벌은 대게 당시의 동북아 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내에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적절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점은 후대 조선으로 가면 더 여실히 나타난다. 세종조의 4군6진의 설치나 대마도 정벌을 통해서 보면 많은 병력과 군수물자를 동원하면서도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보다는 외교적으로 교린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대외정벌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미리 주도권을 잡으므로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외교전에서 보다나은 카드를 쥐기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지 결코 단순한 정복전쟁만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고구려대의 광개토태왕을 우리는 흔히 정복군주라 평하지만 결코 그는 정복군주가 아니였다. 광개토태왕은 당시 한의 멸망이후 혼란에 빠진 중국대륙의 정세에서 고구려를 지키고자 하는 전략으로 대외정벌을 단행했던 것이지 단순한 영토확장을 위해서 대외정벌을 수행했던것은 아니다.

또한 대외정벌을 통해서 국가내에 잔존하는 잡음을 최소화 시키면서 자위적 군비증강과 경제성장의 측면을 동시에 감안하여 진행했던 것이다. 단순한 시위용이 아닌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대외정벌을 단행했던 것이다. 

우리역사의 대외정벌기록을 살펴보면서 그 동안 힘이 없어 한반도내에 웅크리고만 있었던 나라나 외침으로 인해 국가존망의 위기까지 치달아야만 했던 아픈 기억에서 벋어나 좀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역사관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 본다. 물론 이러한 역사관이 한창 유행했던 극우적이고 파쇼적 내지는 민족우월주의를 표방해서는 안될일이지만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역사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상고사의 정벌역사속에는 중국,일본,한국이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 또한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릴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사군중 낙랑군의 위치라던가 가야제국의 일본경영 및 고조선과 고구려의 강역확정등 우리에겐 풀어야 역사적 과제가 산더미만큼 많이 쌓여있다. 다소 부족하고 훼소된 역사적 사초를 가지고 파악해야 하는 단점은 있으나 그 객관적인 자료는 공평하게 부여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보는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역사는 180도 바뀌게 마련이다.  

후손들에게 백의민족, 단결심등의 평화위주의 역사관 주입도 중요하지만 대외정벌사같은 적극적인 역사관을 심어주므로서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정복과 자기방어의 정벌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 선조들은 다가올 역사를 미리 파악하고 그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대외 정벌을 단행했던 것이고 그 결과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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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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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까? 각종 문학이나 영화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고물없는 떡이 되듯이 사랑은 우리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을 하는 이든 사랑에 빠져있는 이든 사랑을 한번도 못해본 사람이든 간에 사랑에 대해선 누구나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단지 사랑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한다. 어쩌면 사랑하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포함한 몇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본 사랑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의 표현법에 대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작품속의 주인공들의 사랑을 통해서 보는 사랑에 대한 표현방식과 사랑의 형태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 책에 나오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표현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단지 사랑은 작품에서 표현되듯이 각양각색으로 각자에게 다가오고 표현방식 또한 로멘틱하기도 하고 다소 딱딱하기도 하면서 엉뚱한 면도 보여주지만 중요한것은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형태, 단어, 몸짓, 눈짓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달되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서 온갖 걱정을 하면서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가 있기도 하고, 그 당시 느꼈던 사랑에 느낌을 그대로 표현으로 담은 사랑도 있다. 어느 방법이 올바르고 틀리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 또한 사랑이는 언어의 특이한 점일 것이다. 그 만큼 인간의 감정과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단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에 대한 많은 표현과 의미를 생각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좀더 내 마음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좀더 사랑에 대해 진실하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문학작품에 나오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라도 상대방을 잡고 싶은 심정에 우리는 사랑고백을 한다. 그래서 사랑을 한다는 자체가 시인이 되게 하고 작가가 되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랑은 어떤 미사여구보다보 더 간결하면서 강력한 힘을 가진 언어이다. 그냥 사랑하고 있다는 말한마디에 모든것이 포함되어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사랑이라는 단어하나로 모든것이 전달될 것이다. 나머지 미사여구는 일종의 보너스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너스가 사랑을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의 주인공은 말해주고 있다. 사랑이라는 메인 요리에 에피타이저나 디저트같은 언어들은 메인요리를 더욱 돋보이기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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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4 -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 한국사傳 4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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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론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학문또한 마찬가지이겠만 역사라는 독특한 분야는 시대에 따른 연표중심의 이해방법과 각 왕조별 이해방법, 커다란 역사적 사건중심으로 이해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인물중심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사실 그동안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역사대중화는 거리감이 먼것이 사실이다. 역사는 사실 따분한 학문이다.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현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실망등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는 현대의 지침이고 미래를 엿볼수 있는 거울이다. 역사는 돈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의 역사는 반복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것도 이런 면에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이해의 가장 쉽고 빠른 길은 인물중심으로 더듬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이해하다보면 그 인물의 배경으로 한 앞뒤의 시대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중심의 역사가 주는 보너스는 다름 아닌 역사적 상상력의 배가이고 흥미의 자극일 것이다. 그러면에서 한국사전 시리즈는 역사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테마별 인물설정을 단순한 흥미위주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했다는 점과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다. 

이번 시리즈는 왕실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시대별로 보면 고구려 고국천왕과 산상왕 양대에 걸쳐 왕후를 지낸 우씨, 신라 왕자의 신분으로 중국선사들 중에서 우뚝솓은 김교각, 국내최초의 금동사리보관함의 비밀을 제공한 백제의 위덕왕 창,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불운한 군주 광해군, 한중록의 저자 혜경궁 홍씨, 정조의 손자 효명세자, 그리고 조선의 유일한 왕의 생부 흥선대원군의 삶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씩 파헤쳐 가는 역사여행을 떠나게 된다. 항상 역사서책을 접할때면 느끼게 되는 점이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일 것이다. 물론 역사엔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왠지 역사를 볼때마다 이런 만약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게 마련이다. 그 만큼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아쉬운 것이다. 

이번 인물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는 개인적으로 광해군과 효명세자 두사람이다.

7년전쟁이라는 유사이래의 환란에서 그나마 국토를 보존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중에 하나가 바로 광해군이다. 정작 군주라는 작자는 피난과 피난을 거듭하고 결국에는 해외망명이라는 곰수까지 두고 있는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서 정신적인 버팀목 역활을 했던 이가 바로 광해군이다. 오죽했으면 명나라에서도 은근히 왕권의 이양을 바라는 메세지를 전달했을 정도로 그의 정치력을 뛰어났다. 비록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옥좌에 앉아서도 대동법등의 실시라는 개혁과 명과 청사이의 실리적인 외교로 7년전쟁으로 타판난 조국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던 군주였다. 광해군을 폄하하는 쪽에서는 중심없는 외교활동과 영창대군의 죽음, 그리고 인목대비의 서궁유페등의 폐단을 지적할 수 도 있지만 그러한 일들은 조선역대왕조에서 무수히 많았다는 점에서 큰 비중을 둘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인조 반정이 없고 광해군의 치세가 이어졌다면 조선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7년전쟁과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은 실리와 명분에 둘다 큰 손상을 입고 내리막길로 질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차와 같았다. 그와중에 정조라는 마지막 희망이 있었지만 그의 본의아닌 죽음으로 인해 사실상 조선이라는 국가의 운명은 다했가고 있었다. 그 마지막에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있었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등극한 순조는 사실상 힘이 없었고 안동김씨를 위시한 세도가의 손아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었다. 순조도 이를 의식한듯 세자를 통해 대리청정을 시행하게 되고 효명세자는 그런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외척의 단절 및 왕권강화 정책을 펼치게 된다. 다름아닌 궁중음악과 춤을 통한 예악정치를 펼치면서 마지막 개혁을 시도할려고 했던 것이다. 조선절정기의 세종이 그랬듯이 예악을 통한 국가기강의 확립과 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반대세력의 의도였는지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고 이후 조선은 그야말로 진흙탕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번 왕실중심의 인물들은 특히 권력에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배제된 인물이다. 비록 권력이라는 냉정한 잣대에서는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도 있지만 그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은 진행형이었던 것이고 올바른 길을 가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은 결국 후대의 역사진행방향을 봐서도 결코 틀린 선택이 아니였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록 절반의 성공밖에는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런 인물들이 있어기에 역사라는 긴물줄기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던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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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처럼 경영하라 - 천년 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비즈니스맨이 꼭 읽어야 할 인사이트 시리즈 5
스탠리 빙 지음, 김중근 옮김, 김경준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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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세기경 로물루스가 창업하여 서기 476년 반쪽이 멸망하고 나머지 반쪽이 서기 1453년 멸망한 제국 로마.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기간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했던 로마. 지금 서양의 정신적, 제도적, 경제적, 종교적 모태된 로마. 각종 소설과 영화로 더욱더 잘 알려져 있는 로마. 서양사를 접하게 되면 이 로마사를 빼고선 이야기의 전개가 되지 않을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로마, 하지만 정작 왜 그토록 로마라는 제국이 오래토록 번성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단지 훌륭한 군주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하지만 이점은 후대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악명높은 황제가 더 많았던 것이 로마 역사이다. 고대제국의 경우 대게 황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게 보통이다. 황제내지는 절대권력자의 자질에 따라 국가의 존폐가 결정된 사례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 로마의 경우 상당히 불량한 절대군주가 다수 배출되었지만 일이백년도 아닌 수천년을 버텼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게 로마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해답이 로마의 시스템에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시스템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스템은 다름아닌 개방성에 있다는 것이다. 역대 제국들 중에 로마만큼 개방성이 열려있는 제국은 없었다. 민족, 경제, 종교, 신분등을 망라한 사회 전반에 걸쳐 로마의 사회는 열려있는 사회였다. 지금 현대의 잣대를 들이대어도 훌륭한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에 로마제국은 오랫동안 세계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던 것이다. 

초기 왕정으로 출발한 로마는 공화정이라는 획기적인 지도체체를 도입하여 내실을 다지면서 다시 제정으로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진행에는 로물루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5현제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있어기에 가능했지만 로마제국자체의 시스템개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로마제국을 연구하다 보면 다름아닌 지금의 기업경영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수 있다. 이 책은 그런측면에서 집필된 책이다. 필자 역시 다국적기업의 임원을 역임하고 있는 상태에서 효과적인 기업경영기법을 다름아닌 로마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국가를 경영하던 기업을 경영하던 작게는 가정을 경영하던 그 중심에는 항상 지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조직은 지도자를 모태로 조직운영을 하는 것이고 지도자의 지도철학이 조직을 이끌어가는 근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에서 로마제국 지도자들의 사고가 현대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는 많은 귀감을 주는것 또한 사실이다.  

로마는 표면상 황제가 의사결정의 최우선에 있었지만 황제를 둘러싼 원로원이라는 특이한 자문단이 존재하였고, 원로원을 포함한 수많은 참모단과 중간관리자들이 사실상 제국을 경영하였다. 로물루스가 이탈리아반도의 한쪽구석에서 구멍가게로 창업한 로마라는 기업이 차츰 인수합병을 하면서 반도을 통일하고 더 적대적 M&A를 감행하여 서유럽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기까지의 경영기법을 보면 다양한 각 기업문화에 대한 배타성보다는 새롭고 이질적인 기업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였다. 또한 로마라는 기업의 우수성은 단지 기업문화의 흡수에서 그친것이 아니라 흡수하여 고유의 기업문화를 창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로마라는 기업에 인수합병되는 것을 오히려 기대했던 종업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로마기업의 직원이 되면 받게 되는 혜택이 그동안 몸담고 있던 기업보다 많은 보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기업들의 인수합병을 비교해보면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로마라는 기업의 성장은 이런 열린 개방성에서도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로마는 CEO의 자질과는 별도로 중간관리자의 업무역량이 지대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잦은 CEO의 교체에도 로마라는 기업의 근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중간관리자들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중간관리자의 철학은 기존 CEO들의 뛰어난 방향설정과 목교의식제고에 의해 가능했지만 중간관리자 스스로의 의식고양이 큰 역활을 했던 것이다. 

로마제국과 기업경영을 고스란히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로마제국을 통해 기업경영의 효과적인 시발점은 충분히 밴치마킹할 수 있다. 기업이라는 지상최대의 과제는 영업이익을 창출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에서 로마제국의 성장모토는 기업경영에 또다른 성장 엔진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오래토록 성장가능했던 요소중 개방성과 함께 절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절대라는 개념은 결국 절대라는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절대라는 개념은 정체되고 그 정체는 부패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로마의 CEO들은 이런 절대라는 개념을 던져버렸다. 비록 자신의 권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라는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요소와 타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맥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이런 절대에 대한 불신에서 창조적인 사고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역사에 남을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제국과 버금가는 역대의 몇 거대한 제국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방성과 절대의 부존재가 가져다 주는 힘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큰 것이다. 이 차이는 지금의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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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파일 - 트렌드를 읽는 자가 미래를 선점한다!
리처드 왓슨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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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짧게는 10년전 좀더 길게 봐서 50년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기술적, 문화적으로 변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발달로 인하여 인간생활에 있어 편리성과 정보의 접근성은 가히 폭발적인 비약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어떤 시대일까?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삶들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면서 더욱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이제는 한낮 망상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래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학문이 탄생했고 미래학자들에 의한 미래의 예측을 100%는 아니더라도 가늠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미래의 몇가지 트랜드를 미리 보여 주는 책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아이템들이 전부다 실현될 수 있을지는 결국 그 시대를 겪어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대략적인 트랜드를 파악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의도로 집필된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했듯이 이러한 트랜드가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는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시간적인 갭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상이 현실로 도래되는 시점또한 점점 줄어들것이다. 

필자는 다가오는 미래의 사회를 지배할 트랜드를 세가지로 보고 있다.

1) 첨단기술의 발달 2) 인구구조의 변화 3)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추구

첫번째 트랜드인 첨단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주는 변화는 거의 무궁무진할 것이다. 인간복제에서 부터 로봇의 상용화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트랜드임에 틀림없다. 갈수록 편안해지고 빠르고 정확한 시스템의 발달로 아마도 미래의 사회는 첨단기술을 빼놓고서는 삶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 트랜드인 인구구조의 변화는 이러한 첨단기술의 발달로 인해 의류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한 수명의 연장으로 노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할 것이고, 정상적이라는 가족단위의 개념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직업의 선택 및 정년의 개념과 소비의 형태에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추구는 두개의 트랜드로 대변되는 사회의 질서 유지 및 정부와 기업의 역활면에서 투명해진 네트워크를 통한 투명도 높은 사회로 진입하면서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는 미래사회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가 도래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듯이 몇몇 사라진 문화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옛거에 대한 개인적인 향수나 취향으로 인해 존속하고 있는 문화가 있듯이 미래에도 지금은 것이 존속할것으로 보고있다. 결국 인간성에 대한 추억 내지는 회귀라는 면에서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다소 떨어진 문명에 대한 회귀는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트랜드의 대세를 뒤로 돌릴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트랜드는 지금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논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는 분명 장미빛처럼 낙관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처참할 정도로 비관적이지도 않다. 마지막 트랜드인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결국 우리는 지금 보다 더 책임감 있고 윤리성이 제고된 성장모델을 분명히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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