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백의민족, 900여차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5000여년의 역사를 지켜온 민족,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사랑한 민족 아마 여태까지 한국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점을 대단한 자긍심으로 가져왔던것 또한 사실이다. 그 만큼 한민족은 단결심이 강하고 우리것 이외에는 욕심이 없는 평화지향적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간의 역사교육이었다.
그럼 과연 이 말은 진실일까? 우리민족이 평화를 사랑했을까? 우리 역사서를 검토해보면 이런한 미사여구에 대해 약간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들이 많다. 학계에서는 위서라고 진단하는 한단고기나 규원사화등을 통한 고조선의 정복전쟁을 보면 평화와는 거리가 먼 민족으로 인식될 수 도 있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을 보면 더 확신이 가는 부분이다.
그럼 우린민족은 서양의 게르만족이나 중원의 몽골처럼 정복민족, 정복국가였나? 솔직히 이점에 대해서도 수긍하기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세계평화운운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외정벌역사를 들추어 극우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서두에 피력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우리들 머리속을 지배했던 소극적인 역사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풍당당이라는 제목을 건 한국사 그 중에서도 대외정벌과 관련된 극히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논평을 하고 있다.
수천년전 치우와 황제헌원의 전쟁에서 부터 조선조 북벌의 일환으로 시작한 효종의 러시아 출병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민족국가의 대외정벌 역사를 다루면서 좀더 적극적인 역사관을 갖자는 취지로 이 책은 집필되었다. 물론 평화를 반대한다거나 소극적인 역사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대외정벌사를 통해 그 시대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여 왜 그런 정벌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 이 책의 취지인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창업부터 다물이라는 고조선의 영토회복을 지상과제로 삼고 출발하였다. 그 정신은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지고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 발해와 고려에 의해서 진행형으로 진행되었던 문제였다. 당초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한 고구려의 정벌은 광개토태왕대와 와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물론 왜국에 대한 정벌은 남쪽의 안정을 위한 부수적인 조치였고 또한 왜구들의 게릴라전을 일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고구려와 형제국인 백제의 요동진출과 왜국의 진출 또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발해나 고려 그리고 조선조에 와서 진행한 북벌의 경우도 결국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외정벌사를 통해서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일반 정복국가처럼 타 문명의 말살이나 속국으로 편입을 기본으로 하는 정복전쟁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대외정벌은 대게 당시의 동북아 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내에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적절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점은 후대 조선으로 가면 더 여실히 나타난다. 세종조의 4군6진의 설치나 대마도 정벌을 통해서 보면 많은 병력과 군수물자를 동원하면서도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보다는 외교적으로 교린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대외정벌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미리 주도권을 잡으므로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외교전에서 보다나은 카드를 쥐기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지 결코 단순한 정복전쟁만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고구려대의 광개토태왕을 우리는 흔히 정복군주라 평하지만 결코 그는 정복군주가 아니였다. 광개토태왕은 당시 한의 멸망이후 혼란에 빠진 중국대륙의 정세에서 고구려를 지키고자 하는 전략으로 대외정벌을 단행했던 것이지 단순한 영토확장을 위해서 대외정벌을 수행했던것은 아니다.
또한 대외정벌을 통해서 국가내에 잔존하는 잡음을 최소화 시키면서 자위적 군비증강과 경제성장의 측면을 동시에 감안하여 진행했던 것이다. 단순한 시위용이 아닌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대외정벌을 단행했던 것이다.
우리역사의 대외정벌기록을 살펴보면서 그 동안 힘이 없어 한반도내에 웅크리고만 있었던 나라나 외침으로 인해 국가존망의 위기까지 치달아야만 했던 아픈 기억에서 벋어나 좀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역사관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 본다. 물론 이러한 역사관이 한창 유행했던 극우적이고 파쇼적 내지는 민족우월주의를 표방해서는 안될일이지만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역사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상고사의 정벌역사속에는 중국,일본,한국이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 또한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적 이해를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내릴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사군중 낙랑군의 위치라던가 가야제국의 일본경영 및 고조선과 고구려의 강역확정등 우리에겐 풀어야 역사적 과제가 산더미만큼 많이 쌓여있다. 다소 부족하고 훼소된 역사적 사초를 가지고 파악해야 하는 단점은 있으나 그 객관적인 자료는 공평하게 부여되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보는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역사는 180도 바뀌게 마련이다.
후손들에게 백의민족, 단결심등의 평화위주의 역사관 주입도 중요하지만 대외정벌사같은 적극적인 역사관을 심어주므로서 올바른 역사관 형성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정복과 자기방어의 정벌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우리 선조들은 다가올 역사를 미리 파악하고 그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대외 정벌을 단행했던 것이고 그 결과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