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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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쇼크>>,<<제3의 물결>>,<<권력이동>>,<<부의미래>>라는 불세출의 미래학 전망을 저술하여 우리에 너무나 익숙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현재의 경제, 정치, 문화, 사회에 대한 연구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향후 우리가 겪게될 미래사회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 혹은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되는 이론이나 패러다임을 소개함으로서 앞으로 우리에게 도래할 미래에 자신감을 심어진 저자이다. 이번 <<불황을 넘어서>>라는 책은 신작이 아니라 저자가 1975년에 저술한 미래 보고서이다. 당시 세계는 세계양차대전으로 인한 부의 폭발시대에 돌입한 상태였다. 미국은 세계경제와 정치에서 그야말로 우뚝솟은 독보적인 존재였고 양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새로운 패러다임속에서 승승장구 하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전세계는 부의 축복을 누리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오일쇼크가 터진다. 그동안 서구화, 근대화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선진산업국에 종속되었던 중동의 산유국들의 저항이 일어났던 것이다. 석유라는 자원의 무기화 그로인한 유가의 폭등과 인플레이션의 대두등 세계적인 경제위가 팽배했던 시점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듯이 그 당시 경제관련 전문가들은 20세기초의 세계 대공황을 방불케 하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고 예견했다. 그리고 이 불황의 늪을 빠져나기기 위해선 대공황당시 처방되었던 경제정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다들 'Yes'라고 할때 홀연히 'No'라고 주장한 이가 있으니 바로 저자인 앨빈 토플러이다.  그는 비록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경제를 보는 눈이 남달랐다. 그 이유는 필자가 말하듯이 경제란 단순한 경제학의 모델이 아닌 다양성이 함유된 복합체라는 인식이 여타의 경제학자나 이론가와의 사고의 틀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30여년전 필자가 제시했던 다국적기업의 폐해, 식량 및 자원에 대한 대비책, 고용정책의 변화등에 대한 견해는 지금의 경제상황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이러한 미래예측을 가능케 했던 점은 다름다인 복잡성에 기반을 둔 경제를 둘러쌓고 있는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경제만이 아닌 전부다를 고려하기 때문에 정확한 미래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20세기초에 발생한 대공황의 원인과 지금의 경제불황의 원인은 다른 것이고 또한 그 당시의 경제를 둘러싼 주변환경여건이 동일할 수 없는 시대에 똑같거나 비슷한 처방은 경제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진단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필자의 예견에 대해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으로 부터 30년전에 작성했던 보고서가 마치 지금의 세계적금융위기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너무나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맞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20세기초의 세계 대공황, 1970년대의 오일쇼크를 촉발로 대두된 경제위기, 그리고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출발한 지금의 세계적 금융위기, 경기순환론의 관점에서 보면 경기는 그 경기의 고저가 마치 서퍼가 파도를 타듯이 순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활황기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불황기가 있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단지 경제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의 경우 이런 불황기의 폭을 최대한 감소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 뿐이다. 금세기 들어 발생한 이런 큼직한 경제위기는 얼피보면 일맥상통한것 같기도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대공황이나 오일쇼크의 시대의 경제위기에 비해서 지금은 국경이 소멸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리적인 국경이란 이제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에겐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또한 경제와 사회의 움직이는 속도면에서도 가속화 내지는 탈동시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앞선시대의 위기보다더 위기의 원인들이 복잡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단순환 수요공급의 차원을 넘어서 금융,제조,과학,의료등이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시대는 기존 경제위기의 시대에 비해 지식산업의 역활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시대이다. 경제지표를 떠받치는 역활을 하는 유형의 생산요소보다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생산요소의 역활에 따라 부의 창출이 좌지우지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닥쳐온 경제위기를 마치 지난날 처방했던 정책을 들이대면서 위기 극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경제적 모델들이 진부해진 시대인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우리의 경제 또한 최대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구 오마바정권의 출발이후 쏟아내는 각종 경제정책들을 우리현실의 경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듯이 지금의 경제위기의 해법을 지난간 위기상황에서 적용했던 정책들로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경제라는 사실하나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잡경제계속에 살아가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했던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경제위기의 해법은 단순하게 경제정책만 부각해서는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종사회요소가 네트워크화된 사회에서 경제관련 정책 또한 독불장군처럼 혼자 내지는 극히 소수의 집단에 의해서 결정되어질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상황에 대한 해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 해법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다름아닌 전체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 단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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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가지 결정 - 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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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매 순간마다 선택 혹은 결정의 순간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이나 결정은 본의이든 타의에 의한든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그 결정이 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나 또는 더 나아가 조직체의 수장으로서 하는 결정 내지는 역사적인 위치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등 그 의미의 대소를 떠나서 선택과 결정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것이다. 이러한 선택이나 결정을 행할때 많은 참고자료를 동원하고 주위의 조언을 구하여 올바른 선택이나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이 책은 불교의 108번뇌라는 말처럼 우리의 한국사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108가지의 역사적 결정을 통해서 한국사의 맥을 집어보는 책이다. 사학계의 학자들의 추천을 받아서 한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 108가지를 위만 조선의 성립에서 2005년 민법 부계성 강제조항의 폐지에 이르기 까지의 한국사 전반에 대한 108가지의 중요한 선택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108가지의 선택이나 결정중 한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정들을 순위를 매겨 따로 편집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럼 한국사의 선택이나 결정중 가장 영향력이 큰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한글창제를 가장 영향력 있는 결정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 우리민족은 독자적인 우리의 문자를 가지기 위해 고래로부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신라시대 이두의 발명에서부터 시작된 독자적인 문자에 대한 갈망은 결국 조선 세종조에 와서 한글이라는 독특하고 과학적인 문자를 가지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한글창제가 돋보이는 점은 비록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왕실이 주가 되어 국가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설총의 이두같은 경우 개인의 역량이 지대한 역활을 하였다면 한글의 경우 비록 세종의 많은 영향은 있었지만 집협전학자들을 통한 총체적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한글반포이후 450여년후의 갑오경장시기에 국문으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기 전까지는 별다른 공식적인 역활을 수행하지 못하였지만 궁궐과 사대부가의 여성중심으로 한글에 대한 효과는 입증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아마 이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과 같은 한자를 공식문자로 사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몇안되는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결정이 있어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사에서 가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특히 분수령이 될 수 있는 결정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광해군이 절대군주의 자리를 보존하면서 치세를 계속했다면 호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좀더 개혁적인 정치를 펼쳐 발전적인 방향으로 역사가 나아가지 않았을까라던가, 근대에 들어 백범의 암살이 없었더라면 남북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역사적 선택이나 결정은 그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몫인 것이지 후대의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선택이나 결정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를 보면서 이러한 결정과 선택에 대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결정이 있는가 하면 안타까움에 한숨을 토하게 하는 결정도 분명 존재한다. 역사를 보는 후대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정을 통해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지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되는 당시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우선시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향후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에서 비슷한 사례의 결정적 순간이 발생했을때 역사를 참조로 올바른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결정은 내리는 순간까지 그네들은 많은 번뇌와 생각을 하고 결정하였을 것이다. 물론 충분한 검토없이 이루어진 결정들도 있지만 대게의 경우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판단을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단지 결정이후 발생하는 역사적 흐름이 선택과는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결정순간만은 정도를 향해 갔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하는 점일 것이다. 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결정적 순간은 객관보다는 주관이 관여되기 마련이다. 역사적 진실은 이러한 주관보다는 객관의 눈으로 바라봐야지 진정한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의 선택들을 지켜보느라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인식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결정은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한다. 비록 역사적의미를 부여하긴 힘든 결정이더라도 충분한 검토와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되풀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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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베스트 연설문 - 열정과 감동으로 오바마 열풍을 일으킨
김욱현 지음 / 베이직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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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국, 민주주의 표본의 나라, 각양각색의 인종과 언어 및 문화가 혼재하는 나라, 자칭타칭 세계경찰국가라고 여기기는 나라, 대한민국의 우방이라는 개념을 넘어 혈맹이라고도 부르고 싶은 나라, 아메리카 드림의 본고장이자 팍스 아메리키나를 꿈꾸고 있는 나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이렇게 겉모습으로만 봐도 온갖수식어가 따라붙는 세계인의 초미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이 감기에 걸리면 그 주변국은 그야말로 독감으로 번지고 급기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될 만큼 세계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런 미국이 변했다. 바로 내부로부터 변했다. 그동안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 확실히 전세계에 보여였던 미국이지만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에 대한 편견은 존재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이후 흑백에 대한 인종적인 차별은 공식적으로 살아졌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 그 차별은 어마어마했던 것이 사실이다. 권력과 부의 집중은 유색인종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던 것이다. 그런 미국이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것도 엄연히 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서 말이다.  

버락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미니사이의 혼열로 출생하여 미국의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그의 여정은 철저히 준비되어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번 책 <<오바마 베스트 연설문>>은 오바마의 정치활동중 결정적인 시기에 행한 연설문중에 정말 베스트만을 엄선하여 수록하였다.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존 케리의 기조연설자로 출연하여 연설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을 통해서 정치신인인 오바마의 위상은 급상승하게 된다. 전국에 생중계된 그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생애와 미국민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게 되고, 미전역에 오바마라는 이름를 각인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이후 오바마의 행보는 예비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충분히 심어주는 형태가 된다.  

오바마의 연설문을 보면 주된 내용에 대한 간결하고도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주제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그 어떠한 인신공격의 말투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한 희망(hope), 화합(harmonious), 변화(change)등의 상징성있는 문구들을 자주 사용한다. 대게의 정치인들이 즐겨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오바마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는 이러한 상징적인 문구를 단지 문구의 나열로 끝내지 않고 자신일 지금까지 걸어왔던 생애의 예를 통해서 재현하고 증명하면서 유권자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미흑인인권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에서 볼 수 있듯이 구체적이고 희망적인 메세지의 반복전달의 힘은 그 파괴력과 각인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오바마의 연설문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명정치가들의 연설문을 보게 되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1) 호소력 2) 간결성 3) 반복성 4) 상징성 이러한 요소를 절적히 사용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하는 것이고 유권자들은 그 연설을 들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미국이가는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였을 것이다. 비록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고도 하고 자기들의 잣대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경제적 식민지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이지만 유색인종의 대통령이 탄생할수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민주주의 확대라는 면에선 높이 평가받을만한 나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면들이 우리의 정치현실과 너무 비교가 되는 점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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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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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윤지당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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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5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진정한 승자들의 역사 한국사傳 5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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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한국사에 대한 저변확대와 역사인식 고취의 목적으로 방영된 교양 다큐멘타리의 최종판 한국사傳 시리즈가 완간되었다. 역사 서술은 중국 사마천의 史記 형식이 그동안 正史의 기술방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본기와 세가를 대표로 하여 열전을 포함한 사기는 지금까지도 불후의 명작으로 역사서의 최고봉에 올라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기의 높은 평가는 다름 아닌 열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분량의 절반을 넘는 방대한 양을 사마천은 열전에 비중을 두고 저술하였다. 그 열전에는 위인들도 있지만 간신, 자객 및 일반 평민들에 대한 내용도 부지수로 수록되어있다. 그럼 왜 사마천은 열전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역사의 주역을 다름아닌 인간, 사람에서 찾았기 때문인다. 즉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간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심을 끌고 흥미로운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 잣대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롭고 역사적 인식을 한층 더 고취시켜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사전의 편집의도는 바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 내용이나 발켜지지 않거나 잘못 인식된 내용들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서 한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 인물이 역사적으로 미친 영향력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물들의 고뇌와 신념들을 새롭게 부각시키므로서 진정한 열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번 시리즈는 그동안 관심밖의 대상으로 분류되었거나 사실상 방치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조명이 있어 더욱더 반갑다고 할 수 있다. 홍역의 퇴치법을 발견하고 서민의료에 혼심을 다한 이헌길, 한일합방의 주역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사의 후견인이자 독립운동의 후원자였더 최재형,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 우리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 전형필을 조명함으로서 그동안 역사의 뒷안길에 묻힐뻔한 사실들을 추론해주고 있다. 또한 조선의 혁명을 꿈꾼 자유주의자이자 영원한 이단아 허균, 어느날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 암행어사의 대표선수 박문수,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통해선 그동안 역사에서 바라보았던 시각의 초점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특히 이순신의 새롭게 발견된 난중일기를 보면 우리의 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침범불가침이 강인함 보다는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망라해서 흥미진지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그렇고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그러하듯이 역사의 주역은 사람들이다. 특히 절대권력자와 그 권력을 사수하는 이들의 이야기보다는 다소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일반인들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층더 흥미로운 것이다. 역사라는 큰강은 이런 일개의 개인들의 사소한 역사가 모여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우리는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을 통해서 인물의 됨됨이와 역사적 사실, 영향등을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 인물들의 주관과 신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살았던 그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의 지표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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