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너머의 역사책 3
임상혁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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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586년(선조 19년) 나주 관아에 기이한 訴가 접수 되었다. 다름아닌 칠순의 노파가 자신은 양인이 아니라 노비라는 주장과 원고측은 노파가 노비가 아니라 양인이라는 소송이 들어왔다. 당시 나주 목사로 재임하고 있던 이는 학봉 김성일이었다. 일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대게의 송사라는 것이 노비임을 부정하는 것이 태반사 일텐데 이번의 경우는 스스로 나서서 노비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니 송관인 김성일의 입장도 대략 난감했을 것이다.  

<나는 노비로서이다>는 다름아닌 조선시대의 집행되었던 법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사회문화를 엿 볼 수 있는 책이다. 문화라는 키워드를 법과 접목시켜 조선시대의 전반적인 법감정에서부터 소송의 준비과정과 절차 그리고 판결에 이르는 일련의 형태를 통해서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생생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주제가 돋보이는 책이다. 법이라는 규칙규범은 윤리라는 도덕규범과 더불어 한 시대 문명의 잣대를 가름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규칙규범인 법은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핵심적인 소프트웨어로 고조선의 시대부터 명문화되기 시작하여(물론 이전 선사시대에도 이러한 규칙규범은 존재했을 것이다) 위정자의 정책이념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더 심도 깊은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왕조국가에서의 법집행은 절대권력자인 군주의 영향력이 지대했겠지만 일반민중들의 법감정 역시 마냥 무시할 수 만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기에서 언급한 소송의 예를 보더라도 극히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이렇듯 최하층의 계층에게 까지 소송의 길이 보장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근대 법감정으로 재단하긴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서 그동안 곡해되었고 잘못 알려져 왔던 조선시대의 법과 사회에 대한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조선사회는 소송이라는 쟁송이 잦지 않는 사회, 즉 유교적인 집단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혈연과 지연으로 무장한 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에 소송이 거의 없었을 거라는 착각, 그리고 비단 소송이 있었더라도 지금의 근대적인 법집행, 형식이나 절차등과는 사뭇 다른 관리의 일방 독주적이고 전근대적인 법집행이 자행되었을거라는 생각, 그리고 소송이라는 행위자체가 신분상 양반계열에서나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등 이러한 일련의 속설아닌 정설을 한방에 해결해 주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만만한 사회도 아니였고 그리 매정한(법집행면에서) 사회 역시 아니였다. 고려가 멸망했던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과도한 송사가 한 몫을 차지했듯이 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소송의 남발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결국 수많은 송사로 지방관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고, 소송당사자 역시 사대부를 떠나 모든 계층에서 각양각색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노비가 주인을 대리하는 소송도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점을 볼때 오히려 지금의 우리사회보다 법대로라는 의식이 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의 법원과 법관의 역활을 담당했던 지방관들은 소송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일일이 사안에 대한 확인과 검증절차를 거쳐 판결을 했다. 물론 이에 불복하는 자는 상급심에 해당하는 중앙관서에 항고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왕에게 호소할 수 도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조선의 법집행과정이 안하무인격이 아니였다는 점 역시 확인된다. 어린 사촌동생이 버선을 훔쳐갔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촌형에게 오죽했으면 태형을 가하고 벌금을 물릴 정도로 조선의 지방관은 부임과 동시에 소송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고 최초의 목민서 역시 소송관련 서적이라는 점에서 조선시대는 소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해답은 다름아닌 신분제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평등한(100% 수긍할 수 는 없는 부분이더라도)사회와는 달리 반상이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관아에 호소하는 소송이라는 형태가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역사 사초를 살펴보더라도 유독 신분관련 쟁송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조선의 민중은 자신의 한계를 달리 호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법은 사회전반에 걸쳐 있는 문화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라는 컨텐츠가 법이라는 형태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법을 살펴보면 그 사회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나주관아에 접수된 이 소송은 판결은 원고의 승소로 그 막을 내렸다. 피고인 다물사리는 자신이 양인의 신분이었지만 관청의 하급관리와 결탁하여 관노비로 투탁까지 하여 노비신분을 회득했지만 결국 이러한 전모가 밝혀져 원래의 양인신분으로 돌아갔다. 이는 자신이 노비와 결혼하여 낳은 자신들이 결국 원고의 노비로 귀속됨을 최대한 막고자 하였던 방편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는 모계의 신분을 따라가는 종모법을 선택하였기에 다물사리는 사노비보다는 자식들을 좀더 자유로운 관노비로 살아갈 길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신분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과 또한 철저했을것 같았던 신분사회의 헛점 역시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소송의 절차와 형식 그리고 판결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일반인들로 하여금 마치 고을 동헌에 나와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현장감 있는 저서이다. 우리는 이번 저서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법질서와 법집행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지만 무엇보다 당시의 사회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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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세상 -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
박성민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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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확실한 것(certainty)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공부를 하는 수험생이든 연애를 하는 청춘남녀이든,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든 국가을 이끌어가는 위정자이든 간에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가지는 것을 선호하고 그런 확실성을 갖추기 위해 시험에 자주 나올만한 문제들, 연인의 성격과 취향, 향후 고객들의 니즈와 효용등, 그리고 민족이나 국가 구성원들의 정체성이나 각종 경제적 지표들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인 타인들 보다 많은 수고와 비용을 지출하면서 확실성에 접근할려고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확실성에 대해 집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한 간단명료할 것이다. 다름아닌 불투명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들 스스로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있는 영역이니 그 만큼 불안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아프리카의 드넓은 대초원(당시에는 사바나성 기후가 대세였다)에서 지금의 각 대륙으로 이동하였고 농업혁명이라는 회기적인 발명으로 수렵채집의 노마드적인 문명에서 한곳에 정착하는 혁신을 가져왔다. 그리고 인류는 먹거리와 더불어 기초적인 경제활동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다름아닌 수렵채집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업이라는 정해진 수순에 따른 회득의 산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일 것이다. 정확히 몇월 몇일에 파종을 하고 언제 김매기를 하면 풍요로운 먹거리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감으로 먹거리를 찾아 해매였던 수렵시대보다는 확실성에서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인류를 편안한 상태로 이끌었다. 그러나 인류는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겪으면서 이러한 확실성에 대한 의구심을 조금씩 키워오다가 급기야 글로벌시대와 디지털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속으로 던져지면서 이제 그동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확실성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치 앞도 예측 할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흔히 대한민국 정치권을 풍자하는 말인 안개정국이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앞은 가시거리가 극도로 불투명해진 안개속에 내던져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은 이렇듯이 예측불가능한 지금의 시대와 그리고 향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각계의 지성인들이 토로하고 제시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헤처나가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손에 든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즉 저자들은 이 책에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아만 가게 된 배경을 고찰하므로서 향후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낮추어보자는 견지에서 토론의 대상 폭을 정하는 것이지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때문에 대안없는 과제를 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정치,경제,문화,종교,과학이라는 인간활동의 큰 테두리안에서 그동안 많은 발전을 가져왔고 확실성에 대한 자부심을 스스로 키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실성에 대해서 아니 적어도 불확실성을 해치한다는 대안으로 많은 제도적 방안과 의식적인 사조들을 탄생시켰지만 결국은 불확실성의 크기만을 증폭시킨 자가당착에 빠졌이었던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개미가 뫼비우스띠를 따라 끊임없이 제자리를 걷듯이 불확실성을 제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다른 난관에 부딛치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 아니 정확히 확실성에 대한 수 많은 오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 불확실성을 해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자칫 이러한 논조가 다시금 종교로 회귀하잖는 퇴보적인 의식이나 자포자기적인 주저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저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다름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도 가장 확실한 자료들 즉 우리가 겪어왔던 지난일들에 대한 상고와 재검토를 통해서 불확신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트비히 비겐슈타인은 "확실성이란 새로운 대안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닫힌 공간"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상징하는 의미에서 바로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시금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불확실성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대안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불확신한 수렵채집의 시대를 마감하고 농업혁명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찾았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말인 것이다. "안전벨트의 역설"에서 알 수 있듯이 다가오는 미래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세상이며 브레이크를 밝기 전까지 앞의 像이 허상인지의 여부도 닥쳐봐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허상을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오히려 확인도 못하고 빈털터리로 일어서는 카드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지나온 시대에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여겼던 진리와 가치관들이 과연 확실하였는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미래의 불확실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이 비로소 생길 수 있다는 극히 간단단순한 논지를 우리는 항상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자기반성에서 우러나오고 축적된 자기테크놀러지가 결국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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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사 - 조선왕조실록에서 다루지 못한 진짜 조선이야기 박영수의 생생 우리 역사 시리즈 2
박영수 지음 / 살림Friends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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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우리의 최고의 역사서는 이미 알고 있는 대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전통적인 역사서술방식은 기전체의 형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편찬한 정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사가 아닌 야사로써 역사를 바로보는 시각에서 정사보다는 낮은 등급으로 폄하하고 있는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 만큼 승자의 시각에서 서술하게 되었있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의구심이 든다. 그럼 승자들의 기록인 정사를 제외한 나머지의 기록들은 역사적 문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고 역사적 타당성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정사만큼 소중한 우리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遺事는 단어 뜻 그대로 예로 부터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형식으로 전해준다는 말이다. 비단 정사에는 기록되지 못했지만 당시대를 살았던 일반대중 정확히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민중들의 시각을 반영한 역사가 봐로 유사와 야사라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오히려 역사편찬형식에 얽매여 있는 정사보다 자유분방한 소재와 주제로 그 시대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장점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조선유사>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냥 설화나 전설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우리선조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모아모아 한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한때 청백리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었던 황희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바로 이러한 유사나 야사를 통해 정사를 고증한 결과 그 본색이 알려졌듯이 유사나 야사는 정사를 보완하는 자료로써 그 가치가 높은 것이다. 이번 책에서는 그동안 세인들에게 회자된 인물이나 사건들도 있지만 생소하면서 흥미있는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을 엿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 왕이 하사한 은잔이 너무나 작아 그 크기를 늘려서 술을 마셨다는 손순효, 돼지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돼지정승으로 불리었던 장순손, 선조때 문재인 고죽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애끓는 순애보,을사사화로 역적으로 몰린 옛주인의 복수를 한 계집종, 연암 박지원의 재치있는 술 낚시와 홍국영과 바둑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로만 들어도 그 재미가 솔솔하다.  

하지만 이러한 야사를 단지 가십거리나 흥미위주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정사에서 다루지 않는 일반 민중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사라는 것은 어찌 보면 위정자의 정책 메타포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역사기술의 한계성자체를 갖고 있지만 정사를 제외한 그 밖의 역사적 기록물들은 이러한 제약을 전혀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사라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사마천 사기중에서 유독 <사기열전>이 지금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마천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다름아닌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에 인간에 관한 이야기 즉 열전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후대에 교훈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야사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삶, 특히 공식화되지 않은 개개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정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미를 우리는 야사에서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 이러한 야사를 다 수용할 수 없지만 정사와 비견해서 참조하면서 상고할때 비로소 역사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눈이 뜨일 것이다. 모처럼 흥미있게 읽어나갔던 책이었다. 그만큼 그동안 우리의 역사서들의 경직성이 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팁으로 저자는 주막, 숙주나물, 막걸리, 흥청망청, 사약등 역사서나 현재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의 어원에 대해서 당시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별도의 페이지를 마련해 주고 있어 청소년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모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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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너머의 역사책 3
임상혁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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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가 되어야만 살아갈수있었던 고달픈 조선민중들의 삶 그리고 치열한 법정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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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 의사결정에 관한 행동경제학의 놀라운 진실
마이클 모부신 지음, 김정주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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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속된 표현으로 날고 긴다는 전문가들이 부지기수이다. 의학/법률/경제/증권/부동산/사업/연애등등... 우리와 같은 문외한들이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바로 다름아닌 이러한 전문가들의 고견을 참조할 때가 많고 그들의 예측에 편승해서 의사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독불장군식으로 자신만의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도 왕왕있지만 대게는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결정 이후 처해지는 결과물이다. 속칭 전문가들 그러니까 나도다 객관적으로 더 똑똑하다고 판단했던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실행했던 의사결정의 결과가 참혹할 때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흔히들 이러한 경우를 "전문가 열세"라는 용어를 빌어 표현한다. 즉 오래된 사고방식에 매인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에 필요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새로운 의미를 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걸까?  

저자인 마이클 모부신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착안하여 의사결정에 관한 행복경제학의 놀라운 진실을 서술하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으로 소비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장 합리적인 욕구에 의해 한계효용이 최적화 되는 시점에서 소비하는 합리적 소비자를 그 모델로 하고 있으나 전통경제학에서 예측하는 소비행태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러한 전통경제학의 대안과 보안으로 <행동경제학> 내지는 <복잡계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자리잡은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일반대중 심지어 전문가집단에서 조차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좀더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라잡이들을 제시하고 있다. 휴리스틱(heuristic)으로 표현되는 문제 해결할때 노력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고찰이나 과정을 다양한 예증과 실례를 들어서 왜 그러한 선택이 잘못되고 또한 올바른 선택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부동산중개인과 일반적인 부동산수요자들의 부동산을 평가하는 방법에서 볼 수 있는 내부적 착각은 흔히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히 개인적인 의사표현의 방식같지만 범위를 확대하면 기업의 의사결정구조와도 비견되는 요소이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속에서 기준점을 설정하게 마련이고 이러한 기준점을 설정하고 의사결정의 기본 판단요소로 활용한다. 그러나 기준점설정 뒤에 올바른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그 기준점이 올바른 기준점으로서 역활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함정인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내부적인 착각으로 인해 그 설정된 기준점을 파레토의 최적점으로 인식해 버리고 이를 토대로 모든 의사결정을 확증하여 한쪽 방향으로 몰고가는 편향성을 보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을 터널비젼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터널속에서의 view는 한방향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고 그 방향으로 나가야만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확증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오류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대형서점에서 책을 선택할 때 대게의 경우 책의 표지만을 보고 그 내용을 쉽게 판단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부조화로 말미암아 내려지는 의사결정의 경우 대게는 몇만원하는 책값에서 부터 수천수억원의 커다란 경제적 손실로까지 이어진다. 결국 한순간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되돌릴 수 없는 막심한 심적물적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다. 

흔히들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결정을 내릴까라고 혀를 차지만 이는 모든 이들의 딜레마와도 같은 것이다. 나 자신 스스로에 잠재해있는 내부적 착각과 인지부조화 그리고 확증편향등의 성향을 다스리지 못하는한 우리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저자는 좀더 똑똑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 심리학과 행동과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행동경제학의 논지에서 그 오류들을 제거하는 방법론적인 제안을 던져 주고 있다. 사업을 하던 삶을 살아가던 간에 리스크는 상시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리스크중에 통제가능한 리스크을 줄여나가는 것이 실패를 최소화하고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일 것이다. 이러면에서 <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는 다시한번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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