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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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가 최초로 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아마 이것 역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진부한 족적일 따름일지도 모르겠지만) 태양계의 행성을 조사하는 인공위성을 쏟아 리고 전세계를 마치 옆집의 이웃에게 안부를 묻듯이 리얼타임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과연 어디에서 부터 왔으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그러한 연구와 물음 끝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다름아닌 우리 인류의 사고의 능력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에 비해 겉으로 들어나는 육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먹이사슬이 최상의 위치에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건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는 뇌의 진화와 더불어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발전가능한 진보적인 체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이디어는 지금의 문명의 총체적인 출발점이자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체 중심에 우뚝설 수 있는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준 근거인 것이다.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BC 만년전 수렵,채집의 시대를 살았던 머나먼 과거에서 출발하여 AD 2000년 까지 세상을 바꾼 170여개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마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상세한 설명과 비슷하거나 그 근원을 공유하고 또는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했던 결과물에 대한 또 다른 아이디어를 서로 연관 지어 하나의 아이디어가 서로 물고 물리는 과정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별건의 아이디어마다 훌륭한 삽화나 사진자료를 동원해서 시각적인 편안함과 자칫 사조라는 딱딱한 논조를 이끌어가는데 있어 부드러운 맛을 더해주고 있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서문에서도 밝혀듯이 다른 시각으로 보면 책보다는 왠지 전자회사에서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에 도움이 되고자 내놓는 다양한 메뉴얼을 모아놓은 카달로그 같다는 느낌마저도 드는게 사실이다. 이 말은 그만큼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자료를 한데 모아놓고 독자들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심판의 날-신의 정의라는 아이디어>장에서 신이라는 정의를 만들어낸 아이디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더불어 고대 성당의 벽화에 나오는 종교색이 짙은 삽화와 더불어 신과 관련된 영화의 한컷을 그림자료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또한편으로 관련된 사조에 대한 추천도서까지 친밀하게 소개해주는 저자의 박식함에 혀를 내두룰수밖에 없다. 여기서 추천하는 도서는 거의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책들이긴 하지만 저자의 주도면밀함에는 끝이 없어 보일 뿐이다. 마치 카달로그에 나오는 컨셉을 가지고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느껴질 소재를 전자렌지 설명서처럼 보기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저자 만의 특출한 능력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책의 구성이나 시각적인 판형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자료들만 내세워도 상당한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저작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매력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흔히들 지금의 풍요로운 세계를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대부분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산업혁명 이후 주체 없이 우리들에게 쏟아져 나온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활을 했을것라는 생각에 보기좋게 한방 먹여준다. 저자가 밝히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산업혁명이전 특히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수렵, 채집시대와 초기 농경시대에서 부터 그 기원을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그리스도교와 근대화라는 쌍두마차에 의해 세계가 진보했다고 믿는 많은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원초적인 아이디어는 그 이전시대로 부터 출발했고 단지 산업혁명과 근대화시대를 치면서 확대재생산되고 증폭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아이디어와 역사는 과거의 형식이라고 해서 결코 사장될 수 없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가 되풀이 되듯이 아이디어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인간의 사유가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대기별로 아이디어의 흐름을 역사와 비견해서 되집어 볼 수 있는 흔히 않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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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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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문자발명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인류는 문자라는 초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진 기호체계를 발명하면서 그동안 선조대대로 구두나 음률 그리고 단순화된 심벌를 빌려 축척해온 지식을 문자의 발명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이자 실시간으로 동시대 사람들과 다음세대의 후손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틀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그런 문자들을 한곳에 모은 책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가진 또 하나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류의 지적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지천에 널여있는 것이 책이지만 사실 산업화이전의 시대에 책은 그야말로 몇몇 특정계층에서나 소유할 수 있는 흔히 않는 소유물이었고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을 비롯한 네트워크화된 지식체계가 보편화된 현대와는 달리 산업화이전의 시대에는 책은 곧 부와 권력 그리고 계급이라는 대표성을 상징하는 메타포의 역활을 하기도 하였다. 즉 이 말은 책을 통해서 지식을 축척했고 그렇게 축척된 지식으로 권력을 창출했고 그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했을 정도로 책의 의미는 국가의 공식기관이 관장하는 거대한 지식의 보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의 기능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시민권력의 대두로 인해 종전에 가지고 있던 기능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실례로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각종 네트워크화된 경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경제학적 기회비용상으로도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 주변은 지나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책이 홍수속에 살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책을 집필하던 계층의 보편화로 인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마치 제조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극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이젠 책 또한 하나의 상품적인 가치로 독자가 아닌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합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마치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듯이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인식 해야 하는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설서가 선보였다 바로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독서의 즐거움>이다. 교양인이라는 제목 때문에 왠지 딱딱하고 난해한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제목은 잊어버리자. 부제인 독서의 즐거움만을 생각하면서 저자가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 30권과 각권마다의 독특한 내용 그리고 책을 읽는 방법 나아가 책을 통해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를 마치게 되면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자신만의 체계가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독서에 대해서 걸음마 단계를 밟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가 추천하는 30권의 책과 더불어 각권에서 소개되는 더불어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 90여권을 읽게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점은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한발 나아가서 지식을 어떻게 확장해나가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것에 대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즉 나는 누구인가와 작가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과 만남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책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관 그리고 그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을 비교해볼 수 있는 만남과 소통의 가도역활을 책이 해주는 것이다. 책은 작가의 사상을 대표적은 내포하고 있는 활자화된 형식이고 독자는 그런 작가의 사상과 독자 자신의 가치관을 책을 통해 상호 소통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수도 없이 가질수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의 사상과 나의 가치관이 상호 소통되면 이는 나와 작가를 뛰어 넘어 같은 책을 고유하는 세상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더욱더 소통의 실질적인 가치를 알게해주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서라는 행위의 가치는 정량화된 화폐단위로 표현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독서의 즐거움인 것이다.

다독을 하고 한분야의 난해한 독서를 해야만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가 밝혔듯이 자신의 실정에 맞게 꾸준히 실행해 나가는 독서가 가장 훌륭한 독서법인것이고 진실에 가장 근접하는 길이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책은 이렇듯 지식축척의 수단에서 이제는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책과 독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세상과의 소통을 다른 곳에서 찾을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필히 독서의 즐거움을 권해주고 싶고 바로 그러한 길라잡이로서의 역활을 훌륭히 해낼 책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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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없는 세상 - 얼음의 역사부터 지구의 미래까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
헨리 폴락 지음, 선세갑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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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30억년전 어느 날 갑자기 빅뱅이라고 불리우는 대혁명으로 우주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대략 45억년전에 우리가 발딛고 숨쉬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탄생하였고 직계 인류라 칭할 수 있는 인류의 탄생도 길게 잡아야 500만년전의 일이다. 130억년이니 45억년이니 500만년이니 하면 그 개념자체부터가 정립안된다. 이를 1년 12개월로 정리해보면 1년 12달로 보면 쉽게 와닿는다. 12월 31일 11시 45초에 로마제국이 탄생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가 자정이 되기 불과 3초전이고 한때 지구상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멸종한게 12월 26일경쯤 된다고 한다. 이제 대략 시간적인 감이 잡일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이 지구상에 출현해서 공룡의 시대처럼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이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마치 일년 내내 이 지구상에 살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구의 역사를 1년이라는 시간으로 보면 그동안 지구의 기후는 인간이 출현하기 전까지 지구자체의 매카니즘에 의해 아무런 문제 없이(물론 여기서는 외부적인 행성의 충돌등은 배제한다) 굴러왔다고 보면 큰 범주내에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 3초내에 벌어지는 기후이상의 현상들은 지구자체의 매카니즘을 뿌리채 흔들고 있다. 다름 아닌 지구 온난화 전혀 예상치 못한 난제로 인해서 지구가 어디로 향해갈지 예측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그만큼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 있는 물(H2O)는 대양이 96.5%, 빙하 1.74%, 지하수 1.7% 담수호를 비롯한 기타 0.06%가 존재하고 있다. 정확히 소금물을 빼면 대략 3%내외가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에 필요한 담수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세월 동안 담수 활을 하고 있는 것이 빙하을 비롯한 물의 고체형태인 얼음이다. <얼음없는 세상>는 바로 흔히 주변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접하는 얼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IPCC(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의 핵심멤버로 지구온난화 연구에 매진하면서 매번 우리에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는 구물리학의 권위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얼음의 생성 역사에서 부터 지구의 미래까지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아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맥락을 짚어주고 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논거들은 저자를 비롯한 지구물리학자, 천체물리학자, 지구기상학자들이 연구한 객관적이고 집적된 과학적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더 신빙성이 있는 논거들이고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흔히 지구 온난화라 하면 그저 기온이 상승하는 변화 정도로 인식하지만 여기에는 기후이상까지 다 담고 있는 담론이다. 가깝게는 기상측정이래 최저 4월말 기온을 기록한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왠만한 미래는 예측가능하지만 유독 기상변화는 아직도 아니 갈수록 더 예측하기 힘들어 지는 것이 현실이니 기상예보가 틀린다고 기상청을 원망해서도 될일이 아니라는 말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수긍이 갈 정도일 것이다. 

인류는 농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을 거치고 산업혁명과 디지털혁명을 거치면서 삶의 질이 풍부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가 대혁명이라고 명명하는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전지구 차원에서 보면 가히 쿠테타와도 같은 존재이다. 여태까지 지구상에 생존했다 멸종했던 생명체중 이렇게 단시간안에 지구라는 모체를 위협한 존재는 인간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인간만이 살아져야 지구가 살 수 있다는 영화까지 나오겠는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이제 피부로 느낄 정도로 기상이변도 잦아지고 그에 따라 삶의 쾌적성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원인, 심각성 그리고 향후 준비해야 할 대안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낙관론자이던 무지한 자이던 관심이 있는 자이던 간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제 지구온나화라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왔이다는 점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탄소발생억제, 화석연료의 자제, 에너지절약등을 통해서 그 진행속도를 잠시 느출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시각에도 북극과 남극의 빙하 그리고 영구동토층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얼음들은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럼 아무런 대안 없이 다가올 불안한 미래를 맞이 해야 하는가 물론 대안을 저자는 제시하고 있지만 각국의 지정학적인 이익 앞에 답보적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의 직시인 것이다. 다소 과격한 톤으로(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최대한 온화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해 주장하는 논거를 통해서라도 현실을 똑바로 보자는 취지가 더 강하다. 단순하게 인터넷만 검색하더라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폐해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일회성을 그치고 마는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인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지구에서 정말 주인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주인답게 행동하자는 것이다. 내집에 물이 새고 불이나면 어떻게 하는가 뻔하지 않는가 가장 먼저 집주인의 피해가 가장 큰 것이고 그래서 집주인이 발벋고 나서서 막아야 하듯이 이제는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집 지구는 더 이상 우리의 집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 얼마전 1500년주기론등을 들어 출간된 <지구온난화에 속지마라>라는 책과 비교해보면 그 허와 실을 다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IPCC 홈페이지의 리포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음 없는 세상>는 한마디로 우리에게 보내는 석학의 마지막 경고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다. 저자가 [땅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서 빌려온 것]라는 인디언의 속담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 뜻을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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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 위서 1
진수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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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작품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서구 그리스도문화권의 베스트셀러인 성경만큼이나 대중독자들에게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랑받아온 보기 드문 작품이다. 나관중 스스로가 칠실삼허라고 밝혔고 대부분의 독자층에게서 <삼국지연의>를 역사서로 인식하지 않고 있지만, 小說로서의 삼국지와 正史로서의 삼국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는 마치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서 성경과 역사적 사초로서의 성경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신주의자들과 다를바가 없을 정도로 소설과 정사인 역사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몇몇의 아쉬운 장면들로 인해 오히려 소설을 역사로 믿고 싶어함일 것이다. 이 역시 경전을 역사로 믿고 싶어하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엄연히 소설과 역사는 다른 것이고 우리가 소설속에서 예술적인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듯이 역사속에서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낄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는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사마氏에 의해 불안정한 통일을 이룬 시점에서 촉나라 출신의 진수에 의해 완성되었다. 역시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기전체의 형식을 근간으로 위서,촉서,오서를 편찬했으나 사기처럼 테마를 형성한 열전이 아닌 인물들의 전을 나열식을 기술했다는 점에서 사기에 비해 그 깊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역사서로서 그 가치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주축은 촉이자 촉의 창건자인 유비 그리고 그를 보필했던 제갈량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진수는 삼국의 정통을 조조의 위나라로 판단했다. 진수가 위를 정통으로 판단했던 것은 천하삼분지계는 위를 중심으로 그 역활을 해갔다는 점, 단적으로 강역을 비교해도 거의 2/3을 위가 통치했다는 점에서 촉이나 오를 번국으로 생각했다. 비단 자신이 촉출신이었지만 사관으로서 촉을 정통으로 보는 것은 불합리했다는 점에서 진수의 사관은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진수는 위서에서만 황제의 치세를 다루는 紀를 채택하여 조조를 비롯한 그 후예들을 황제로 인정했다.  

무엇보다 삼국지연의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였던 조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소설과는 천양지차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영향으로 그동안 조조는 간웅에 가까운 평가가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지만 정사속의 조조는 난세을 극복한 유일한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평가는 조조 주변에 모여든 인물들의 질이나 양에서부터 촉의 유비나 오의 손권과는 사실상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조조의 인적 경영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장수를 받아들여 공을 세우게 하는 인용술은 조조가 아니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비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조조의 이러한 인용술의 근간은 公과 私에 대한 엄격한 구분을 두어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자제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조의 가장 큰 장점은 참모들의 진언을 들을 수 있는 열려있는 통치술에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 바로 사과하고 시정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는 점이 유비나 손권에 비해 뛰어난 재사와 장수들이 앞다투어 조조를 찾게 했던 비결이었다. 유비의 촉이나 손권의 오는 혈연과 지연등의 인맥구성의 사적인 시스템이 강했던 반면 조조는 철저한 인적시스템 관리를 기반으로한 네트워크를 확립했기 때문에 그의 사후에 오히려 위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촉이나 오를 국경안에 기반을 두고 경영하는 국지적 기업에 비유한다면 조조의 위는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력과 인적자원을 확보한 다국적 기업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조조의 경영철학 1순위는 인재확보와 인재들의 적절한 이용이었다. 군주를 보좌했던 대표적으로 뛰어난 참모를 흔히 제갈량을 사례로 들지만 사실 촉에는 제갈량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참모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조조에게는 순욱,순유,가후,종요,화흠,왕량,정욱,곽가,동소등 그 수를 헤아릴 수 도 없이 많이 존재하였고 제각각만의 특유한 보좌를 했던 것이 위나라의 숨겨진 힘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둔전제를 입안하고 활성화하여 국가 살림을 확장했던 원환과 국연, 지금도 사형제 존폐를 두고 설왕설래하듯이 당시 사형제의 확대와 축소를 두고 쟁쟁한 설전을 벌였던 종요와 화흠등 조조에겐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확립된 인재풀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魏는 이렇게 조조라는 군주와 지연이나 혈연적으로 무관한 외부 인적자원과 하후돈과 조인등을 대변되는 내부적 인적자원의 상충되는 시스템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조조를 중심으로 빈틈없이 돌아갔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가능토록 한 것은 조조만의 인용술과 경영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진수의 평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조조는 비범한 인물이며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조조는 66세인 220년 임종할 때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고대의 규정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매장이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고 자신의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라" 라는 말을 유지로 남길 정도로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을 철저하게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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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 위서 2
진수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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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가 삼국중에서 황제국으로 대접받은 이유는 촉이나 오에 비해서 강역의 크기나 인구의 수 경제적 번영등의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두나라에 월등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위는 오나 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 다름 아닌 인적 관리시스템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조조라는 걸세출의 영웅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난세일수록 영웅의 주변으로 인물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맹장,책사들은 함부로 자신이 충정을 바치지 않는 법이다. 漢제국을 창립하는데 일등공신 역활을 한 장량은 군주를 자신이 가려서 삼는다고 했듯이 조조라는 인물을 보고 각지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그만큼 조조는 유비나 손권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라는 막강한 파워를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면적으로 보더라도 무신계통의 신하나 전략가인 책사들의 면모만을 보더라도 위나라는 그야말로 인재들이 넘쳐 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촉에 제갈량,방통,법정등의 전략가가 전부였다면 위에는 순욱,순유,가후,종요,화음,왕랑,정욱,곽가,동소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전략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또한 야전사령관들의 면모만 보더라도 하후돈,하후상,조인,조흥,장료,악진,우금,장합,서황,조엄등을 비롯한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장수들로 메워져 있었기에 제국의 창건이 가능했던 주요인이었다. 물론 이러한 인재풀의 네트워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던 뛰어난 감각을 가진 조조가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렇듯 조조의 위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진수는 선봉대장격인 장료,악진,우금,장합,서황의 전을 상당히 후반부에 배치했을 정도로 열거 해야할 인재들이 그 만큼 많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다시금 국가경영에서 인재의 중요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권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다양한 기예로 이름을 떨친 명인들을 모은 방기전과 한국사와 밀접하고 민감한 부분을 다룬 오환선비동이전이다. 우선 방기전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명이 화타, 아악의 부흥자 두기, 관상가 주건평,꿈 해몽의 달인 주선과 점패 풀이의 명인 관노등의 전을 다루면서 사마천의 사기열전의 테마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그 격은 많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사마천이 각양각색의 인간중심의 열전을 편찬했다면 진서는 공식적인 개념에 충실했다고 보는 편이 어울릴 것이다. 이번 책에서 진서는 등애와 종회전을 통해서 인간의 간사함과 허탈함을 대리표현하고 있다. 촉의 멸망을 받아낸 장본인 등애는 결국 종회의 모함으로 모반이라는 대역의 죄를 뒤집어 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종회 역시 모반으로 생을 마감하는 부분에서 진수의 평은 사뭇 애간장을 녹이듯 간절한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삼국지의 위서가 우리에게 주목받는 이유중에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오환선비동이전중 동이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의 조선열전>과 반고의 한서지리지, 후한서등 중국 고대역사서에 간간이 등장하는 우리역사 부분은 서술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다소 무리가 따른다. 워낙 춘추필법에 의한 역사서술이 관례화되었기 때문에(특히 공소도와 관구검전에서 마치 고구려를 멸한 것 같은 침소봉대된 서술이 대표적이다)우리의 상고사를 다루고 있는 유일한 정사인 삼국사기등과 비견하여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진수 역시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선대의 역사서의 내용들을 대폭적으로 수용하여 약간의 가감을 했을 정도이지만. 고구려,부여,동예,옥저,삼한등 우리의 상고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충분히 심사 숙고해야할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동이전에서 고구려와 부여를 비롯한 한민족의 기원이라 볼 수 있는 다양한 민족국가에 대한 개념이 중복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것은 다름아닌 동이의 강역이 상당했음을 은연중에 시사하는 것일 것이다. 지금 동북공정프로젝트라는 미명하에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 우리 상고사를 그들의 선조인 진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분명히 못박고 있다는 점이 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이처럼 위서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면서도 우리에겐 더 중요한 우리 상고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사서중에 하나이다. 조조는 분명하게 위대한 난세의 영웅이었다. 단지 그의 경영전략이 대중들에게는 너무 야박한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보였기에 좀더 덜 떨어진 유비에게 동정의 눈길이 가게 된 것이고 결국 간웅으로 낙인찍히는 능욕을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뿐이고 정사에서 평가되는 조조는 현대 다국적 기업의 CEO같은 존재였다. 빠른 판단과 실패를 인정하고 곧바로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가는 조조만의 특유의 용인술은 당대나 지금이나 범접하기 힘든 조조만의 장점이었다. 결국 위나라도 사마씨의 손에 넘어가게 되지만 진과 한에 이어 그나마 제국 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던 국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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