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현재나 과거나 한 국가의 흥망성쇄를 절대적으로 좌지우지 하는 것은 대다수의 민중계층이나 일부 지배계층이 아니라 절대권력자의 정치적 역량과 인간적인 소양에서 발전이라는 방향으로 도약하느냐 늪의 구렁텅이로 빠지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그들의 의사결정은 결국 국시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권력유지를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그리고 자신의 치세를 이끌어가는 나침반 역활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권력자에 대한 검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조선왕을 말하다>는 조선시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있었던 군주들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 철학과 의지로 인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줌으로서 현재의 바로미터 역활을 하고 있다. 물론 왕이라는 군주 한사람만으로 평가하기엔 지배계층의 역활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군주가 감당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바로 절대권락자의 비애이기도 하다. 또한 시대적 순차에서 어긋나지만 9명의 군주을 통해서 조선사 전체를 개략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고 있어 시대흐름 전체와 군주 개인에 대한 치세를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그동안 대한민국 사학계를 일맥상통하게 지배해왔던 거대한 사학권력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고 있고, 바로 노론식민사학계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물론 저자의 반론는 정확한 사초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책에서는 크게 예종과 경종처럼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과 조선시대를 통들어 가장 성공했다고 공인받은 세종과 정조, 그리고 인조 이후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효종,현종, 숙종을 조명했고 마지막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나라을 닫은 고종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런 9명의 임금중에서 효종시대 북벌정책을 둘러싼 진실, 세종의 치세중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의 또 다른 면모, 그리고 얼마전 공개되어 학계에서 독살설을 일축했다는 정조의 비밀어찰에 대한 재해석등이 저자 자신의 일관된 사관을 증빙사료를 통하여 일관되게 전개하고 있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흔히 우암 송시열이 효종의 북벌정책을 지지했다는 노론사학계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낭설인지에 대한 논거와 대왕세종으로 만민의 아버지였던 세종이 한때는 백성을 괴롭히는 악법으로 회귀등으로 지탄받았다는 점과 한글창제에서 부터 한글변천사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정조의 화성신도시 건설의 내막등은 역사를 볼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본보기로 남는다. 

전편에서 연산군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해석을 끌어내면서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왜곡된 사관과 평가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었던 저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장을 확대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역사평설(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면서 대중들에게 역사에 관한 편견을 일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 아니라 현대를 투영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대중화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정도로 그동안 노론식민사학계가 주류를 이룬 우리사학계에 자성의 목소리를 던져 주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새롭게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했다. <조선왕을 말하다>는 기존의 사관과 상당하게 배치되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의 행간을 읽는 눈은 항상 자의적일 수 밖에 없지만 객관적인 사초자료나 당시의 정황을 추정하는 일은 객관적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생타여탈권을 행사했던 군주에게 이러한 공명정대한 평가는 두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전에 탄생한 사마천의 <사기> 만큼 오랫동안 많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역사서는 드물 것이다. 특히 우리에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알려져 있는 저서이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소설이라는 대중성으로 인해 인기가 식지 않고 꾸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서인 <사기>의 폭넓은 독자층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설시대인 오제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대사를 다루고 있기에 역사적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지 않고서는 쉬이 접근하기 곤란한 책임에 틀림없으나 꾸준하게 읽혀 나가는데는 뭔가 <사기>많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매력은 아마도 <사기>라는 책의 탄생과정과 저자인 태사공 사마천의 삶속에 묻어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일어난다.사마천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억울하게도 사형을 면했지만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처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과 아버지의 뜻을 피력하기 위해 <사기>의 완성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사기는 그 질적인 내용만큼이 방대한 양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힘들며 그 해석이나 번역에 따라 천차만별적인 이미지를 전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떠한 번역서를 통해서 사기를 접하는냐에 따라 사기에 대한 진면목을 제대로 보느냐 아니면 그저 따분하고 어려운 책으로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덮어버리느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국내에 수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사기>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일본학자들의 <사기>번역본등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기존의 이러한 번역본들의 공통점은 거의 <사기> 중 그나마 흥미롭다는 <열전>편에 가장 집중되었고 <본기><세가><표><서>등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사서를 흥미위주로 몰고갔다는 점도 있다. 더구나 거의 비슷한 번역과 편집방식으로 인해 실상 <사기>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상당히 따분한 역사서로만 인식 되었던 것 역시 현실이다. 그저 책장에 두꺼운 <사기>한권쯤은 간직하고 있어야 제대로된 지성인으로서의 겉치레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이번 국내학자중 <사기>에 가장 권위자인 역자의 <사기> 완역작업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전작중 <난세에 답하다>에서 그동안 사기가 가지고 있어던 다소 무겁고 지루한 사서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사마천의 집필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풀어가는 <사기>전반에 대한 해제는 그야말로 멋진 강의를 보는 듯하게 술술 사기에 대한 매력속으로 이끌어갔다.

이번 완역 <사기본기 1>편 역시 역자만의 사기에 대한 특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사서에 대해서 그동안의 편집방식에서 벗어나 각종 사진자료와 왕조의 계보도 그리고 왕조별 인명표와 지명표, 사마천이 참고했던 관련 서명 일람표를 추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각 본기 서두에 해제만으로도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다가온다. 특히 단락별 주요내용을 간단 명료하게 집약하여 자칫 방만하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들을 바로 잡아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본기 각 부분별로 <주요사건>을 별도의 주석으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역자는 각 본기중에 발생했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시한번 정리하고 해제를 덧붙여 한번 읽었던 내용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유니크한 편집방식으로 인해 제대로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도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대표적으로 춘추오패중에 하나였던 秦목공의 백리해 영입과정과 그로 인한 晉문공과 그 아들 양공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복날과 보신탕의 공식적인 기원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제공하게 된다. 이렇듯 이번 <사기본기>는 기존 번역서와는 상당히 혁신적인 방식과 편집으로 <사기>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보기드문 완역본이다. 이는 역자가 그동안 사기에 대한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기도 했겠지만 <사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왔을 것이다.

그동안 <사기>는 중국역사서나 우리의 역사서등 한자권 국가의 역사서 기술방식의 표준이 되어왔다. 본기, 세가, 표, 서, 열전으로 구성되는 기전체는 정례화되고 부동의 방정식과도 같이 보편화되어 왔다. 하지만 사마천 이후의 사가들은 진정한 역사기술방식을 곡해해왔다. 단지 사기의 형식상 분류방식과 방법론에만 집착을 했을뿐 사마천의 혁신적인 역사적 인식과 시각만큼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 본기에 진본기와 진시황본기를 별도편으로 기술했고, 비록 황제라는 칭호는 받지 못했지만 항우와 여태후를 본기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역사인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유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 진시황은 폭군으로 낙인찍혀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했으나 사마천은 가감히 본기 특히 진본기와 별도로 기술했던 것은 진시황이나 항우, 여태후가 한시대를 풍미했고 한획을 긋었던 혁신적인 인물임을 제대로 인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는 사기를 집필하는 방식과 전제로서 사마천의 역사인식과 인물평가방식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사기>는 비록 역사서이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어찌보면 인물백과사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각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한 평가 남다르게 기술되었있다. 사마천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심성자체에 대한 그만의 의지를 가지고 역사를 인물과 더불어 평가하고 기술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한치앞을 예견할 수 없는 시대를 이른바 난세라고 칭한다. 사기의 주무대인 춘추전국시대 역시 난세였고 우리는 <사기>를 통해서 난세를 살아가는 법을 엿볼 수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사기>는 특히 지금처럼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와 더불어 인간 본연에 대한 가치판단 상실의 시대에 어쩌면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책중에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데자뷰처럼 되풀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우리는 그 수레바퀴를 어떠한 방향으로 돌릴 힘을 가지고 있다. <사기>는 바로 우리에게 수레바퀴를 어떤 방향으로 돌려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희제 평전 - 민생을 살펴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통합의 지도자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자오청 지음, 이은자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조선은 청태종 홍타이지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하고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전무후무한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겪고 청과 부자의 관계를 강요당했지만 여전히 숭명배청사상의 뿌리는 그대로 이어지면서 자력강생보다는 복제문제(예송논쟁)등으로 서인과 남인의 치열한 권력쟁탈전이 벌여지고 있을때 중원땅 청이라는 제국에서는 향후 135년간 중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안정적인 황제의 시대를 알리는 한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애신각라현엽, 후대에 강희제라고 불리우는 황제가 등극했다. 그리고 강희 이후 옹정과 건륭의 제위기간은 청제국 뿐만 아니라 중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안정적인 정치적 순항을 이룩하는 태평성대의 시대라고 평가받게 된다. 이는 로마제국시대의 3현제의 시대를 방불케할 정도로 정치적 안정과 강역의 확장 그리고 민생의 안정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치적을 남기게 된다.  

청제국이 군사력을 앞세워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으나 강희가 제위에 오르기까지도 안정이 이루어 지지 않을 정도로 한족의 저항은 뿌리 깊었으며 권력중심부를 비롯한 정권의 안전성 역시 신생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이런 시기 여덟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제위에 오른 강희제에게 청의 미래가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결과론적으로 보아서 강희제의 치세가 청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60여년이라는 기나긴 제위기간의 표면적인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오삼계를 비롯한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대만을 복속시키고 러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는등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대 황제등 중에서 가장 많은 과업을 달성했기에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 보정4대신의 보신정치를 받으면서 정치력을 스스로 키웠던 강희제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선조들과는 다른 정치관을 키웠고 결국 강희제만의 차별화된 정치역량을 가지게 된다. 이점은 로마제국이 개방성과 다양성을 수용함으로서 팍스로마나를 달성할 수 있었듯이 강희제 역시 개방적인 사고와 큰것을 취하기 위해 작은것을 과감하게 버릴수 있는 정치적 용인술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삼번의 난이나 대만의 평정등에서 보여준 그의 용인술은 한두걸음 앞을 내다보는 근시안적 접근방식이 아니라 수십년을 기다리면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인내의 정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희제의 치세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이런 외형적인 강역의 확대나 반란을 처리하는 과정보다 대내적인 정국의 안정을 이룩했기에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 여타의 권력자와는 사뭇 다른 길을 걷게 했다. 강희제는 " 백성들을 쉬도록 하는것도 치도의 첫 번째 중요한 일이다. 백성들을 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먼저 휴식이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말은을 자신의 치세철학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지배계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경면전(국가소유 황무지를 민중의 소유로 이전) 시행함으로써 민중들의 부담을 덜어주게 한다. 그리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민중의 토지를 강탈하는 행위를 근절시키고 노예를 해방시켜 농민층의 증대를 이끌게 된다. 또한 각종 요역과 부세의 경감을 통해서 경제적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강희제는 그저 정책의 시행만을 단행한 것이 아니라 수시로 순행을 하면서 지방관들의 착취를 근절하고 민중들의 고충을 확인하는 피드백작업을 통해서 정책의 실효성을 더욱 높였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에 군대의 황무지 개간을 통한 둔전의 활성화를 통해 군량의 비축과 더불어 조세의 증가를 가져오는 이중효과를 통해서 제국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농업뿐 아니라 상업분야에 대한 개혁을 통해서 농업과 상업이 상호 적절히 작용할 경우 경제가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선례가 되었다. 

또한 당시 서양문화의 대명사인 서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강희제의 또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강희제는 서학을 철저히 자신의 용도에 맞게 부합하여 취사 선택하였다. 서학이 가져다 주는 우수하고 선진적인 과학문물에 대한 수용은 오히려 제신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다시 청제국의 현실에 맞추어 리모델링하면서 획기적인 비약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강희제는 서학의 종교적인 색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는 당시 조선과는 상반된 길을 가게 되고 조선은 한없는 늪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되지만 청은 탄탄대로를 질주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를 볼때 최고권력자 한사람의 판단이 국가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굳이 논거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에겐 부모의 나라를 앗아간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청제국은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물줄기를 바꾼 나라였다. 그리고 비단 이민족의 제국이었으나 다양성과 개방성를 모토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제국의 틀을 마련한 강희제에 대해서 그동안 국내의 독자들은 역사교과서 정도를 통해서 알려졌을 뿐 세세한 평가과 삶 그리고 치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이번 <강희제 평전>은 우리에게 강희제라는 한 황제의 삶과 치세을 전해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최고 권력자의 정치철학으로 인해 국가나 민족이 흥망성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청과 조선은 그야말로 극과 극의 길을 걸었다. 한쪽은 열린사고로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자기것으로 재창조하였다면 다른 한쪽은 예송논쟁등 이미 사장화된 가치관에 목을 메고 철저히 은둔함으로써 암흑의 시대로 치달았다는 점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책은 강희제의 탄생에서 제위 그리고 죽음까지를 연대적으로 중요사건을 통해서 서술했고 더불어 강희제의 정치철학을 대변하는 경제와 민생 그리고 서학에 대한 수용등을 별도의 장으로 따로 서술하므로서 강희제 연간의 시간적 흐름을 인식할 수 있는 동시에 중점적인 각론의 분야까지 섭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강희제는 만주인,몽고인,한인의 결합을 다양성과 개방성이라는 대전제에서 포용하고 이끌어 가면서 청제국의 물질적, 사회적 기초를 세웠다는 점은 시간이 흐른 현실의 정치권에 좋은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발지상주의에 피멍이 들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여실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도시, 신시가지라는 단어는 어느듯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그다지 낯설지 않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스을 포함한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국토를 신도시와 구도시로 구분하고, 도시내에서서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획하는데 전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론 행정법상이나 지적법상에 이러한 용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법정 동명으로만 존재하지만 실생활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법규상의 구분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자신들이 정해놓은 신시가지나 신도시가 더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新이라는 개념에도 모호한 정의가 뒤따른다. 언제부터인가 新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뛰어 넘어서서 새롭다는 뜻보다는 "좋다" 혹은 "남들과 다르다"라는 의미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增이라는 뜻이 있건만 이제 우리는 "좋다"는 의미로 新을 사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신도시나 신시가지라는 말은 그 본연의 개념인 새롭다는 뜻을 희석해버리고 "좋다"라는 의미로 굳어져 버렸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속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재화에 좋다는 의미로 항상 新을 덧붙이면서 타인과 조금이라도 차별화 자신의 모습에 자위를 삼는게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모습이다

<비즈니스>는 한마디로 소설임에 틀림 없지만 왠지 소설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래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석연치 않은 점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이 작품속의 내러티브와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의 삶이 바로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마치 리얼타임으로 찍어내는 듯한 한편의 다큐를 보는듯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회고발 프로를 시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소설이다. 작중 여주인공이 뇌깔리이듯 성토한 "이 이 도시에서의 윤리성이란 안팎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는 가치가 아니라 지켜지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 얻어내는 가치였다. 쉽게 말해 들키면 반윤리, 안들키면 윤리라 할 수 있었다."라는 말에서 이 작품의 플롯이나 그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개발발전주의와 빗나간 자본주의의 정점인 ㅁ도시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매춘)를 하는 어머니, 자신을 등진 세상에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도둑질)을 하는 전직 경찰, 오로지 선거와 발전만이 지상과제인양 열을 올리는 시장이 속해 있는 신시가지는 겉으로는 좋다라는 의미를 부여잡고 있지만 그 내막은 그야말로 낭떨어지 위를 외줄타는 아슬아슬한 인생들의 집약판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서로가 알면서 속이고 속는 과정의 되풀이가 바로 신시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임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타잔의 자폐아 아들 여름이와 여주인공의 남편을 통해 신시가지에 입성할 수 없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또 다른 어둠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구시가지는 惡을 대변하는 곳으로 비쳐진다. 좋다라는 개념에 비견 되어서 실패했다는 인생들의 도피처가 바로 구시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 어떠한 희망도 정열로 없는 죽은 시가지로 남겨지게 된다. 그러나 정작 악의 근원은 다름아닌 다리 건너 신시가지라는 좋은 곳에 있었던 것이었고 이를 누구나 알면서 속이고 속고 그러게 스스로를 자위하게 되는 것이 신시가가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일 것이다. 

전국토가 부동산투기장으로 돌변하고 급속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마지막 끈이라도 잡을려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엔 신도시나 신시가지의 新자만 접두어로 붙게 되면 모든것이 다 양해되고 용서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느 그룹 총수는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야지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듯이 우리는 舊라는 글자를 이제는 오래되고 고풍스럽다는 의미보다 나쁘고 뒤떨어진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정말 모든 것을 바꿔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을 행위들을 <비즈니스>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탈바꿈시켜 전국민의 비즈니스맨, 비즈니스우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공간적 신시가지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처럼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 다름 아닌 우리가 오매불망 바라고 그 속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입하고 싶어하는 신시가지의 참 모습인 것이다.  

대체로 사회고발적인 소설의 취약점은 플롯이나 내러티브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편협될 수 있는 우려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 비뚤어진 인간 군상들의 빗나간 행태보다 그들 내면속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상태와 그에 따른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격분된 감정에 휘말리는 것을 자제토록 한다. 우리주변의 이야기이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읽어 나가게 하는 안전장치를 인물들 각각의 가슴속에 녹아 놓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소재의 작품이 시니컬한 뒷맛을 자아내게 하지만 영화 <폭풍속으로>에서의 엔딩장면처럼 모든 것을 품고 삼킬 것 같은 파도속으로 떠나는 이와 이를 지켜보면서 살아 숨쉬는 듯한 파도 소리를 듣는 남겨진 이를 통해 세상과 화해를 하고 新의 진정한 의미인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의 가슴속에 각인시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