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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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신시가지라는 단어는 어느듯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그다지 낯설지 않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스을 포함한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국토를 신도시와 구도시로 구분하고, 도시내에서서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획하는데 전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론 행정법상이나 지적법상에 이러한 용어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법정 동명으로만 존재하지만 실생활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법규상의 구분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자신들이 정해놓은 신시가지나 신도시가 더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新이라는 개념에도 모호한 정의가 뒤따른다. 언제부터인가 新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뛰어 넘어서서 새롭다는 뜻보다는 "좋다" 혹은 "남들과 다르다"라는 의미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增이라는 뜻이 있건만 이제 우리는 "좋다"는 의미로 新을 사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신도시나 신시가지라는 말은 그 본연의 개념인 새롭다는 뜻을 희석해버리고 "좋다"라는 의미로 굳어져 버렸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속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재화에 좋다는 의미로 항상 新을 덧붙이면서 타인과 조금이라도 차별화 자신의 모습에 자위를 삼는게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모습이다

<비즈니스>는 한마디로 소설임에 틀림 없지만 왠지 소설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래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석연치 않은 점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이 작품속의 내러티브와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의 삶이 바로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마치 리얼타임으로 찍어내는 듯한 한편의 다큐를 보는듯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회고발 프로를 시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소설이다. 작중 여주인공이 뇌깔리이듯 성토한 "이 이 도시에서의 윤리성이란 안팎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는 가치가 아니라 지켜지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 얻어내는 가치였다. 쉽게 말해 들키면 반윤리, 안들키면 윤리라 할 수 있었다."라는 말에서 이 작품의 플롯이나 그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개발발전주의와 빗나간 자본주의의 정점인 ㅁ도시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축소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매춘)를 하는 어머니, 자신을 등진 세상에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비즈니스(도둑질)을 하는 전직 경찰, 오로지 선거와 발전만이 지상과제인양 열을 올리는 시장이 속해 있는 신시가지는 겉으로는 좋다라는 의미를 부여잡고 있지만 그 내막은 그야말로 낭떨어지 위를 외줄타는 아슬아슬한 인생들의 집약판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서로가 알면서 속이고 속는 과정의 되풀이가 바로 신시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임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타잔의 자폐아 아들 여름이와 여주인공의 남편을 통해 신시가지에 입성할 수 없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또 다른 어둠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구시가지는 惡을 대변하는 곳으로 비쳐진다. 좋다라는 개념에 비견 되어서 실패했다는 인생들의 도피처가 바로 구시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 어떠한 희망도 정열로 없는 죽은 시가지로 남겨지게 된다. 그러나 정작 악의 근원은 다름아닌 다리 건너 신시가지라는 좋은 곳에 있었던 것이었고 이를 누구나 알면서 속이고 속고 그러게 스스로를 자위하게 되는 것이 신시가가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일 것이다. 

전국토가 부동산투기장으로 돌변하고 급속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마지막 끈이라도 잡을려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엔 신도시나 신시가지의 新자만 접두어로 붙게 되면 모든것이 다 양해되고 용서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느 그룹 총수는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야지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듯이 우리는 舊라는 글자를 이제는 오래되고 고풍스럽다는 의미보다 나쁘고 뒤떨어진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정말 모든 것을 바꿔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을 행위들을 <비즈니스>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탈바꿈시켜 전국민의 비즈니스맨, 비즈니스우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공간적 신시가지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처럼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 다름 아닌 우리가 오매불망 바라고 그 속으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입하고 싶어하는 신시가지의 참 모습인 것이다.  

대체로 사회고발적인 소설의 취약점은 플롯이나 내러티브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편협될 수 있는 우려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 비뚤어진 인간 군상들의 빗나간 행태보다 그들 내면속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상태와 그에 따른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격분된 감정에 휘말리는 것을 자제토록 한다. 우리주변의 이야기이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읽어 나가게 하는 안전장치를 인물들 각각의 가슴속에 녹아 놓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소재의 작품이 시니컬한 뒷맛을 자아내게 하지만 영화 <폭풍속으로>에서의 엔딩장면처럼 모든 것을 품고 삼킬 것 같은 파도속으로 떠나는 이와 이를 지켜보면서 살아 숨쉬는 듯한 파도 소리를 듣는 남겨진 이를 통해 세상과 화해를 하고 新의 진정한 의미인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의 가슴속에 각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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