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전에 탄생한 사마천의 <사기> 만큼 오랫동안 많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역사서는 드물 것이다. 특히 우리에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알려져 있는 저서이다. 삼국지연의가 역사소설이라는 대중성으로 인해 인기가 식지 않고 꾸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서인 <사기>의 폭넓은 독자층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설시대인 오제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대사를 다루고 있기에 역사적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지 않고서는 쉬이 접근하기 곤란한 책임에 틀림없으나 꾸준하게 읽혀 나가는데는 뭔가 <사기>많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매력은 아마도 <사기>라는 책의 탄생과정과 저자인 태사공 사마천의 삶속에 묻어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일어난다.사마천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억울하게도 사형을 면했지만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처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과 아버지의 뜻을 피력하기 위해 <사기>의 완성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알려진 대로 사기는 그 질적인 내용만큼이 방대한 양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힘들며 그 해석이나 번역에 따라 천차만별적인 이미지를 전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떠한 번역서를 통해서 사기를 접하는냐에 따라 사기에 대한 진면목을 제대로 보느냐 아니면 그저 따분하고 어려운 책으로 몇 페이지 넘기지 않고 덮어버리느냐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국내에 수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사기>번역본이 출간되었고 일본학자들의 <사기>번역본등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기존의 이러한 번역본들의 공통점은 거의 <사기> 중 그나마 흥미롭다는 <열전>편에 가장 집중되었고 <본기><세가><표><서>등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던게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사서를 흥미위주로 몰고갔다는 점도 있다. 더구나 거의 비슷한 번역과 편집방식으로 인해 실상 <사기>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상당히 따분한 역사서로만 인식 되었던 것 역시 현실이다. 그저 책장에 두꺼운 <사기>한권쯤은 간직하고 있어야 제대로된 지성인으로서의 겉치레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이런면에서 이번 국내학자중 <사기>에 가장 권위자인 역자의 <사기> 완역작업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전작중 <난세에 답하다>에서 그동안 사기가 가지고 있어던 다소 무겁고 지루한 사서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사마천의 집필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게 풀어가는 <사기>전반에 대한 해제는 그야말로 멋진 강의를 보는 듯하게 술술 사기에 대한 매력속으로 이끌어갔다.

이번 완역 <사기본기 1>편 역시 역자만의 사기에 대한 특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사서에 대해서 그동안의 편집방식에서 벗어나 각종 사진자료와 왕조의 계보도 그리고 왕조별 인명표와 지명표, 사마천이 참고했던 관련 서명 일람표를 추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각 본기 서두에 해제만으로도 전체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다가온다. 특히 단락별 주요내용을 간단 명료하게 집약하여 자칫 방만하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들을 바로 잡아준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본기 각 부분별로 <주요사건>을 별도의 주석으로 추가했다는 점이다. 역자는 각 본기중에 발생했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시한번 정리하고 해제를 덧붙여 한번 읽었던 내용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유니크한 편집방식으로 인해 제대로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도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대표적으로 춘추오패중에 하나였던 秦목공의 백리해 영입과정과 그로 인한 晉문공과 그 아들 양공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복날과 보신탕의 공식적인 기원을 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제공하게 된다. 이렇듯 이번 <사기본기>는 기존 번역서와는 상당히 혁신적인 방식과 편집으로 <사기>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보기드문 완역본이다. 이는 역자가 그동안 사기에 대한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기도 했겠지만 <사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왔을 것이다.

그동안 <사기>는 중국역사서나 우리의 역사서등 한자권 국가의 역사서 기술방식의 표준이 되어왔다. 본기, 세가, 표, 서, 열전으로 구성되는 기전체는 정례화되고 부동의 방정식과도 같이 보편화되어 왔다. 하지만 사마천 이후의 사가들은 진정한 역사기술방식을 곡해해왔다. 단지 사기의 형식상 분류방식과 방법론에만 집착을 했을뿐 사마천의 혁신적인 역사적 인식과 시각만큼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 본기에 진본기와 진시황본기를 별도편으로 기술했고, 비록 황제라는 칭호는 받지 못했지만 항우와 여태후를 본기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역사인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유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 진시황은 폭군으로 낙인찍혀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했으나 사마천은 가감히 본기 특히 진본기와 별도로 기술했던 것은 진시황이나 항우, 여태후가 한시대를 풍미했고 한획을 긋었던 혁신적인 인물임을 제대로 인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는 사기를 집필하는 방식과 전제로서 사마천의 역사인식과 인물평가방식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사기>는 비록 역사서이지만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어찌보면 인물백과사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각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에 대한 평가 남다르게 기술되었있다. 사마천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심성자체에 대한 그만의 의지를 가지고 역사를 인물과 더불어 평가하고 기술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한치앞을 예견할 수 없는 시대를 이른바 난세라고 칭한다. 사기의 주무대인 춘추전국시대 역시 난세였고 우리는 <사기>를 통해서 난세를 살아가는 법을 엿볼 수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사기>는 특히 지금처럼 가치관의 아노미 상태와 더불어 인간 본연에 대한 가치판단 상실의 시대에 어쩌면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책중에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데자뷰처럼 되풀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하고 우리는 그 수레바퀴를 어떠한 방향으로 돌릴 힘을 가지고 있다. <사기>는 바로 우리에게 수레바퀴를 어떤 방향으로 돌려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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