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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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담배연기,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재즈와 재즈의 박자에 몸을 맡기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선남선녀들 영화 <에덴의 동쪽>은 시대의 반항아이자 자기 신념이 강한 제임스 딘이라는 불세출의 히이로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재즈,청바지,제임스 딘은 당시를대변하는 문화적 코드이자 콘텐츠로서의 역활을 수행했다. 비록 세계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이었지만 전후시대에 대한 사회 각층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개인들 특히 젊은층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가 바로 비트문화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리듬 앤 블루스(R&B), 재즈, 마리화나, 구속받지 않는 섹스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속 화자인 셀 파라다이스는 작가 자신의 현화이고 그의 평생친구였던 닐 캐시디는 딘 모리아티로 현화시켰다. 소설속 화자인 셀과 그의 나이 어린친구이자 정신적 지주 역활을 했던 딘과 미국 대륙을 東에서 西로 그리고 南에서 北으로 히치하이크를 통해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삶과 그 삶에 배여있는 우울,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이 대표적인 비트문학의 선구작품의 반열에 올라있다.

작가는 전후 미국사회의 상반된 즉 극단적인 사회적 현상을 작가의 눈과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쟁특수로 인한 부유층의 증가와 그와 상반된 늘어나는 거리의 불랑아층 그리고 이쪽 저쪽에서도 소속감을 찾질 못하는 전후 세대 젊은층의 분출적인 욕구를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잭 케루악의 비트문학은 1955년 개막한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을 통해서 당시 미국 젊은층의 변화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립심이 강하면서도 그 어떠한 상황에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젊은층의 탄생을 작가는 미리 경험했고 그 경험을 그대로 활자화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길 위에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방탕함과 무절제(물론 기존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무질서나 무절제속에는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삶 또한 우정과 사랑으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미국대륙을 횡단하면서 길 위에서 그 절망과 고독을 느끼면서도 희망이라는 끈을 단 한번도 놓칠 않고 있다.  

길이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화적인 의미를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실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교통수단으로서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의미등 우리 인간들은 이렇듯 길에 대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길 자체에 유독 집착하기도 한다. 임제선사는 길 위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여라는 아주 극단적인 선문답을 던졌다. 서산대사는 눈덮인 길을 걸어갈때 더욱더 조심하라고 했다. 뒤에 따라 오는 이들이 자신이 걸어갔던 발자국을 보고 오기 때문에 더더욱 첫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정표는 그 누구도 제시해주지 않으며 역시 어느 누구의 길을 따라 걸어갈 수 도 없는 것이다. 삶에 종착역에 이르는 길은 수만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판단은 자신만의 몫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길 위에서>는 대략 3여년 동안의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기난긴 여정이다. 그 기간동안 셀과 딘은 같은 길 위에서 같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도 서로 다른 희망과 삶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는 고뇌와 방황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길 위에서 찾게 된다. <길 위에서>는 1950년을 전후한 미국 전후세대 젊은층의 아노미같은 공황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경자체가 미국전역을 다루고 있어 소설을 따라 동반여행한다는 느낌을 불러오기도 한다. 히치하이크방식의 여행에서 보여주는 짜릿함과 고단함 그리고 한순간 분출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살아있는 젊음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비단 문화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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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7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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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담배연기,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재즈와 재즈의 박자에 몸을 맡기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선남선녀들 영화 <에덴의 동쪽>은 시대의 반항아이자 자기 신념이 강한 제임스 딘이라는 불세출의 히이로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재즈,청바지,제임스 딘은 당시를대변하는 문화적 코드이자 콘텐츠로서의 역활을 수행했다. 비록 세계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이었지만 전후시대에 대한 사회 각층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개인들 특히 젊은층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가 바로 비트문화라는 새로운 충격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리듬 앤 블루스(R&B), 재즈, 마리화나, 구속받지 않는 섹스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속 화자인 셀 파라다이스는 작가 자신의 현화이고 그의 평생친구였던 닐 캐시디는 딘 모리아티로 현화시켰다. 소설속 화자인 셀과 그의 나이 어린친구이자 정신적 지주 역활을 했던 딘과 미국 대륙을 東에서 西로 그리고 南에서 北으로 히치하이크를 통해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삶과 그 삶에 배여있는 우울,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이 대표적인 비트문학의 선구작품의 반열에 올라있다.

작가는 전후 미국사회의 상반된 즉 극단적인 사회적 현상을 작가의 눈과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쟁특수로 인한 부유층의 증가와 그와 상반된 늘어나는 거리의 불랑아층 그리고 이쪽 저쪽에서도 소속감을 찾질 못하는 전후 세대 젊은층의 분출적인 욕구를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잭 케루악의 비트문학은 1955년 개막한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을 통해서 당시 미국 젊은층의 변화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립심이 강하면서도 그 어떠한 상황에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젊은층의 탄생을 작가는 미리 경험했고 그 경험을 그대로 활자화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길 위에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방탕함과 무절제(물론 기존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무질서나 무절제속에는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삶 또한 우정과 사랑으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미국대륙을 횡단하면서 길 위에서 그 절망과 고독을 느끼면서도 희망이라는 끈을 단 한번도 놓칠 않고 있다. 
 

길이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화적인 의미를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실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교통수단으로서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의 의미등 우리 인간들은 이렇듯 길에 대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길 자체에 유독 집착하기도 한다. 임제선사는 길 위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여라는 아주 극단적인 선문답을 던졌다. 서산대사는 눈덮인 길을 걸어갈때 더욱더 조심하라고 했다. 뒤에 따라 오는 이들이 자신이 걸어갔던 발자국을 보고 오기 때문에 더더욱 첫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정표는 그 누구도 제시해주지 않으며 역시 어느 누구의 길을 따라 걸어갈 수 도 없는 것이다. 삶에 종착역에 이르는 길은 수만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판단은 자신만의 몫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길 위에서>는 대략 3여년 동안의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기난긴 여정이다. 그 기간동안 셀과 딘은 같은 길 위에서 같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도 서로 다른 희망과 삶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는 고뇌와 방황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길 위에서 찾게 된다. <길 위에서>는 1950년을 전후한 미국 전후세대 젊은층의 아노미같은 공황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경자체가 미국전역을 다루고 있어 소설을 따라 동반여행한다는 느낌을 불러오기도 한다. 히치하이크방식의 여행에서 보여주는 짜릿함과 고단함 그리고 한순간 분출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살아있는 젊음을 느낄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비단 문화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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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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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1년 9월 11일 우리에게 9.11테러라고 알려진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세계의 중심이자 선도국가라고 자타가가 공인했던 미국의 심장부에 난데없는 자살테러로 인하여 세계를 공포와 경악의 도가니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족과 친지와 연인과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밤을 보내고 각자의 일터로 출근해서 간단한 커피타임을 가지기도 전에 세상은 한줄기 섬광과 그리고 이어진 암흑, 절규, 생과사의 갈림길로 나뉘게 되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친구를 잃었다. 민족국간의 선전포고로 인하여 발생한 전쟁이라는 개념이 아닌 어느날 느닷없이 삶의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말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도 없이 한순간에 쓰나미처럼 모든것을 휩쓸어가벼렸다. 그리고 이제는 남겨진 이들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만이 가슴한곳에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바로 9.11테러를 다룬 작품이다. 세계무역센타에 회의가 있어 이른 아침에 나간 아빠 그리고 등교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서 부재중 메세지속의 아빠 목소리를 듣고 그저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오스카, 시간이 흘러 텅빈 관만을 매장할 수 밖에 없었던 아빠의 장례식 그리고 어느날 아빠의 서재에서 발견한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메모와 남겨진 열쇠 하나의 비밀과 아빠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어린 주인공 오스카 셀의 여정을 통해서 서서히 사랑하는 아빠를 잃어버린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러티브만 담고 있다면 다소 싱거울 수 있을 것이지만 작가는 오스카 셀의 알려지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내러티브를 추가함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또 하나의 플롯으로 작품전반을 통찰해가고 있다. 세계2차대전의 와중에서 사랑하는 가족, 연인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자신의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린 할아버지와 자신의 언니의 연인인 할아버지를 남편으로 받아들인 할머니의 숨겨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플롯은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을 앓아가는 남겨진 이들에게 그저 슬픔과 증오만이 남겨지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아홉살의 천재적 기질을 지닌 오스카라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비극을 유쾌한 흥분과 그러면서도 한없은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아빠가 남긴 흔적을 찾아서 뉴욕시 전체를 마치 탐정이 수사를 진행하듯이 한사람씩 찾아가면서 아빠가 혹시라도 남긴 흔적을 되집어 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명의 블랙을 통해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어쩌면 아빠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홀로 남겨질 자신의 아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편주를 남겨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두명의 아들과 두명의 아버지 결국 3대의 걸치 가족사를 다루고 있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면서도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2차대전과 9.11이라는 참사를 통해 한 아버지는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시켜 버렸고 그리고 다른 아버지는 끊임없는 소통을 남겨두고 있다. 그렇다고 전혀 상반되는 아버지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한 아버지는 남겨둔 아들에게 전하지는 못했지만 끊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남겼고 다른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받지 못하 아버지의 정을 죽어서라도 전하고 싶었던 차이밖에는 없다. 결국 남겨진 이 두사람은 아들과 아버지의 흔적을 결국 텅빈 관에 고스란히 남겨두게 된다. 할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 손자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그날 밤 아빠의 묘지에서 텅빈 관을 열고 미안함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묻고 일어서게 된다.

이처럼 작가는 전쟁과 테러라는 끔직한 트라우마를 통해서 치유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요란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섬세하게 마치 모노드라마 같은 전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아픔의 깊이를 전달해 주고 있다. 특히 타이포 그래픽 형식을 빌러 문자나 글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깊이를 표현함으로서 작품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 각자의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마지막 무역센타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의 사진을 거꾸로 나열함으로써 그날의 일이 사진의 전개처럼 거꾸로 흘러갔으면 하는 애달프고 간절한 마음이 배어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표현하기 힘든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 작가는 9.11테러라는 비극적인 일은 결코 단 한번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왜 발생했으면 이후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라는 그리고 또다른 공포인 세계2차대전에 관해서도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단지 이러한 비극적인 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적인 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플롯을 통해서 작가는 개인적이지만 한층 더 심오한 슬픔과 이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어떠한 제도적 해설보다 개인의 삶에 촛점을 맞춤으로서 진정한 슬픔과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인간의 삶을 통해서 정치적의미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숨겨진 의도를 보여준다고 할까...

남겨진 이들에게 자신을 떠난 사람들의 의미는 그 어떠한 정치적 제도적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저 상호간의 소통에서 이런 제도적인 의미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개인적인 소통과 화해만이 우리가 형식적으로 부여하는 제도적 정치적의미의 화해를 진정으로 넘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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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
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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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 <헴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세익스피어. 그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었던 읽지 않았던 간에 그에 대한 명성은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영국인들은 인도와 세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폭풍의 밤>>
이 책은 이런 전설적인 인물인 세익스피어의 유언장을 토대로 그의 장례식 직후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팩션이다.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었으나 그 역시 죽음의 손길은 피하지 못했고 살아생전 작성한 유언장이 공개되는 순간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점을 필자는 이 책의 소재로 삼고 있다.
 

막대한 유산을 남기면서 유독 장녀인 수재너에게만 대부분의 재산을 남기고 둘째 딸과 아내에겐 초라한 유산을 남긴 행동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세인들의 추측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때문에 사랑하는 가족 전부에게 공평하게 남기지 않고 장녀에게만 막대한 재산을 남겼을까?
 

이 소설은 유언장의 공개로 부터 출발한다. 세익스피어의 생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유언장의 내용만으로 상당한 부분을 추측할 수는 있다. 세익스피어는 장녀를 제외한 아내와 나머지 자녀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들 사이가 안 좋았을까? 이 역시 그동안 많은 의문과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전해졌지만 정작 본인과 그 가족들 말고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필자는 그 원인을 세익스피어 아내의 불륜행각을 원인을 상정하면서 소설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런 스토리라면 결과가 뻔한것 아닌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내의 불륜과 다른 남자의 자식들을 키우는 세익스피어에 대한 연민과 고통 그로인한 유언장의 작성,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장녀의 그동안의 의문 해소, 그리고 유언장의 비밀을 알게되면서 눈녹듯이 녹아내리는 그간의 감정들, 이건 정말 뻔하고 어찌보면 3류연애소설의 줄거리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맞는말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의 독창성을 돋보이는 보너스가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이 작가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체험이 작품속에 녹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면에서 세익스피어의 출세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로미오가 세익스피어의 분신이고 줄리엣이 아내 앤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 하나 하나와 그의 생애를 접목시켜 세익스피어가 아내의 불륜과 다른사람의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어도 묵묵히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지켜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마음속의 고뇌를 고스란히 그의 작품을 통해 승화시키면서 결국 <푹풍>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수재너에게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으로 통해 세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삶과 영욕을 서술해간다. 청교도의 비밀집회를 우연히 목격한 이후로 마음속의 끌어오르는 복수를 접고 작품세계에 온신의 정열을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폭풍>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세이스피어 자신이 걸어왔던 삶을 고스란히 작품에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필자는 마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유심히 보면 바로 그의 삶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자신의 연애담과 결혼, 4대비극을 통해서 불우한 가정사,<폭풍>을 통한 자신의 핏줄에 대한 사랑과 보상 그리고 통쾌한 복수 그러면서 화해의 메세지...
 

마지막으로 필자의 보너스가 하나 더 있다. 이 소설 한권으로 세익스피어의 왠만한 작품들의 간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챕터마다 세익스피어의 불후의 명작들 중 중요대사를 수록해서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마도 이러한 발췌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세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단지 세익스피어의 유언장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집필된 팩션이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처럼 세익스피어의 아내가 불륜을 했고 나아가 남의 아이까지 낳았다는 설정은 단지 소설이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문호라는 개념보다 역시 그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세익스피어도 여타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똑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그러한 감정은 같다는 것을..


다만 세익스피어와 일반이 다른점은 이러한 감정의 골을 그대로 밖으로만 표출하지 않고 그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의 불후의 명작을 보고 웃고, 울고, 분노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희망이라는 단초를 발견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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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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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은 요즘 대한민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처녀작을 세편(엄밀히 말하자면 두편이라고 해야겟지만)을 모은 단편집이다. 첫 작품 키친과 이어지는 만월은 키친의 뒤이야기라고 보면 되지만 마지막 작품인 달빛 그림자는 앞선 작품과는 별개의 내러티브이다. 미카게와 유이치, 사츠키와 히토시가 등장하는 각각의 내러티브는 독립적인 영역을 각자 가지고 있지만 두 이야기는 하나의 플롯으로 전개 된다고 볼 수 있다. 키친과 달빛 그림자의 전체적인 플롯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별 그리고 그로인해 마음에 상처받은 아픔의 치유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가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묵도하게 되고 또 이별하게 되고 이로 인한 아픔을 가슴속에 담아주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힘든 것이다. 특히 남아있는 사람에게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상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시련을 가져다 준다.

작가가 그려내는 두편의 이야기는 바로 흔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이별이야기 그렇지만 한없이 아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미카게와 사츠키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거창하게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일상생활에 묻어나게 그리고 있다. 또한 두 사람을 통해서 결국 자신들의 상처를 꿰메는 방법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미카게는 키친을 공간으로 음식을 통해서 죽은 할머니와의 의미있는 이별을 준비하고 사츠키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애인 히토시의 죽음을 강과 다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게 된다. 어릴적 일찍 고아가 된 미카게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면서 유독 집안중에서 주방에 애착을 갖게 된다. 할머니 사후 덩그러니 남겨진 집안에서도 주방에서만이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추슬릴수 있을 정도로 주방에 집착하게 되고 주방에 있으면 마치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은 것 처럼 느껴진다. 이후 유이치와의 조우를 통해서 그리고 유이치의 엄마(사실은 아버지)죽음 그리고 상호간에 느끼는 아픔과 끌리는 감정들, 미카게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지속을 주방의 연속이자 주방의 산물인 음식과 결부짓게 된다. 결국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서히 할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고 자신과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을 시작한다. 또하나의 이야기인 달빛 그림자 역시 연인인 히토시와 산책했던 길을 잊을 수 없어 매일같이 그길을 따라 조깅을 하면서 연인을 잊을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 길은 죽은 연인의 추억과 그리움만을 더 키울 뿐이다. 뻔히 알면서도 조깅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차마 그 사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런 이별이었기에 연인의 웃은 모습이라도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에 매일 아침 그 길을 조깅하게 된다.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라라를 만나 그 길위에서 사츠키는 한없이 웃는 히토시를 만나고 비단 꿈이나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강건편 다리를 지나 영원히 연인을 보내게 된다. 이 영원한 이별이 오히려 사츠키에게는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안도감으로 그리고 이제 정말 가슴속에 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가오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바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평범한 이야기를 그녀답게 아주 잔잔하게 수면에 물잽이 일듯이 편안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비록 중간에 등장하는 트랜스잰더 이야기나 죽은 애인의 세일러복을 입고 다니는 약간의 괴이한 설정을 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와 다른 일본의 또다른 문화적 현상일뿐이다. 하지만 이 특이하게 설정된 인물들 역시 각자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의 아픔을 자신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극복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키친은 등장 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렇듯 서로 각각 다른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구도이다. 그러면서 서로 각각 이별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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