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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19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5월
평점 :
채호기를 읽는다. '지독한 사랑'은, 이제는 너무나도 평면화된 글귀라 감동의 자투리마저 남아있지 않은 제목이다. 또한 그것은 도덕적 가치(라는 게 있다면)를 상실한 기형적 사랑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마찬가지로 채호기의 '지독한 사랑' 또한 불구의 사랑이지만 섬뜩할 정도로 치열하고 민감하다. 하지만 김진석의 말대로 사물을 보는 눈은 지극히 정답고 따뜻하며, 그들을 관찰하는 시각 또한 허투로 된 것 하나 없이 섬세하고 날카롭다. 쉬임없이 분열하다가 어느 순간 합일로 도약하며 한없이 냉소적이다가 눈물날 정도로 살가와지기도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체에 대한 이데올로기로 꽉 차 있다. 불가능하고, 방심할 수 없는 공포. 굳이,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단단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강은교 선생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상상력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 포커스를 맞춘 시는,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섬뜩하다. 그래서, 집어들 때마다 진한 눈물이 맺히는 건지.
너의, 살 속으로 들어간다. 투명한 너의 몸이 나를 감싼다. / 나를 보태고도 넘치지 않는 너의 몸! 찢어지는 아픔도 피 / 흐르는 고통도 없는 너의 몸 속에서 나는 숨이 가쁘다. 호흡 / 이 곤란하다. 내가 나의 몸으로 남아 있으려고 몸부림칠수록 / 숨은 점점 끊어져오고 네 몸은 내 몸을 틈없이 너무나도 꼭 / 맞게 마신다. / 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는 내 속으로 들어왔었다. 그 / 걸 알았을 때 내 몸은 네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나 / 를, 내 몸을 찾을 수 있을까? 너를 다 퍼내고 남은 발라진 / 생선 가시일까? 내 몸은, 네 몸이 증발하고 남은 얼룩일까? / 너의 살 속으로 들어갈 때 이미 나는 네 몸에 젖어 있었다. / 물 속의 물방울이여. - '물 속의 물방울' 전문
누군가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일, 먼지 한 톨 틈입할 수 없게 그를 포획하는 일, 나의 견고한 자아, 명료한 의식을 버려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일까. 사랑은, 그렇게 나를 버리고 네게로 열린 길을 향해 내딛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 나를 잃고 어떻게 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살아가야 할 날들이 석탄더미처럼 시커멓게 드러누워 있 / 는데 그대는 꽃잎 하나로 이 세월을 버티나. 황토를 거머쥔 / 뿌리로부터 솜털난 잎, 새 잎 가는 줄기를 거쳐 울컥, 새벽을 / 부르는 북소리같이 첫새벽 새 바람을 일으키는 이슬같이 아 / 름다움을 낳아놓은 그대, / 견뎌야지, 견뎌야지 - '작고 짧은 속삭임' 일부
역시 사람만이 희망인 것일까? 석탄더미 같은 삶들, 그것을 마시며 갈 수밖에 없다는 자각은 실로 참혹하다. 앞을 보니 끊겨진 교각마냥 황폐하기만 한 시간들이고, 뒤를 보니 희망이 휘발된 앙상한 뼈의 무덤 뿐일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덤에 묻히거나 끊긴 교각으로 돌진하는 일 뿐이다. 이런 절망에서 나로 하여금 '견뎌야지'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낳는, 낳아놓는 그대라는 고백, 정말 아름답다.
토사물을 볼 때의 낯섦처럼 그 밤에 내 속에서 내가 울컥 /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혓바닥을 까부리며 국수가락 빼듯 말/ 들을 토해냈다. ... 오물을 몸에 처바르고 팬티를 벗겨내리고 / 더럽고 더러운 짓을 할 때에도 내 몸은 민감하게 반응할 뿐 / 죽은 시체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몇 걸음 / 떨어져서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책들을 뜯어발기는 생피비린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 지경이었다. ... 책 속에서 조화롭게 / 서로서로를 지탱하는 말들이 찢겨져서, 절룩이는 말, 피 흘리 / 는 말, 마지막 숨을 내쉬는 말, 비명지르는 말, 살려달라고 / 애원하는 말, 살점이 찢겨져 삼켜지는 말들로 삽시간에 아수 / 라장이 되었다. / (그 참혹한 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고 말하지 / 않는다. 나는 증거를 찾기 위해 나를 심문한다. 그 참혹한 밤/ 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 말의 몸, 몽염 8 중 일부
'몽염' 시리즈에서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어,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첨예하게, 혹은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립한다. 또한 인간이 사물화되기도 하고, 나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나를 찢어발기는 익명들과 만나기도 하며 유리의 이쪽과 저쪽에서 결코 만질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이, 입김만이 둘의 존재를 가늠케 하는 소통 불가의 공간에 놓여지기도 한다. 읽을 수록 답답하고 시인의 가위눌림이 내게 전이라도 된 듯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포의 시간이 펼쳐진다. 차라리 화악, 손목이라도 그어야 놓여날 절망. 하지만 얄밉게도 시인은 이러한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눈물 찔끔 짜도 좋을 만큼 따뜻한 손길로 가슴을 쥐기도 한다. 영악한 것인지, 죽음의 공포와 치열하게 싸운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자비로움인 것인지.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넌다 / 베지 않은 키 큰 옥수숫대가 서 있고 / 누렁빛 들판에는 풍성한 예감이 있다 / 먼데 산이 선명하다 / 형은 펌프 옆에서 양말을 빨고 / 하, 참 이 가을엔 / 햇빛의 뼛속까지 보이는구나 -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전문
근래 들어 또다시, 호흡이 불안정한 때가 잦다. 이러다 죽지 싶게 심장이 조인다. 내 멋대로 쓰고 죽고 달뜨다가 침몰하다가 허술한 일면 마음껏 들키다가, 막상 부딪치면 피 나게 후회하고 도리질하고, 이끌림에 대한 열망 수없이 부정하고. 담배가 늘었다. 불꽃 잠들 날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