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느 뒤 프레 - 예술보다 긴 삶
캐럴 이스턴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엘가의 첼로협주곡으로 읽는 천재의 삶


Epilogue


  차곡차곡 쌓이던 빗줄기가 멈춤과 동시에 밤을 잡는 건 이미 가을이다. 열어둔 창틈으로 성마른 바람이 스민다. 쇄골이라도 만져질 듯 강파르고 괴괴하다. 알맞게 차고 알맞게 쓸쓸하고 또 알맞게 은밀하며 스스로 붕괴하는 가을. 가을은 그가 지니는 분위기의 낮음만큼이나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으면 숨이 막힌다.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스물다섯의 나이에 썼다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을 때에도, 스물세 살에 발표한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들을 일독할 때에도 그러했다. 젊은 그들이 향유하는 사유의 깊이와 치밀함과 해박한 지식이 ‘소설’이란 형태로 탄탄하게 구조화된 것에 대한 일종의 시기심이었을 테다.

  『오감도』의 작가 ‘이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상’의 작품들 거개가 너무 난해하여 읽기에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평가만큼이나 그의 천재성에 대한 상이한 태도들로 인해 그는 내게 여전히 멀고 요원한 작가이지만 그를 향한 부러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이른바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와 질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아이들처럼 한 몸을 이루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삶이 불운하고 절망적이었으며 때로 세인의 경멸을 감수해야 했고 제 아무리 요절을 했다 하더라도 내게 그들은 ‘행운아’ 외에 다름이 아니다. 이렇듯 감상성 짙은 부러움은 내 안의 ‘욕망’ 탓이겠다.



Ⅰ. Adagio - Moderato


  독서의 장점 중 하나는 그와 관련된 참고 서적이나 음악, 미술이나 건축 등 제 분야에 관한 폭 넓은 호기심과 경험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을 읽으며 그녀의 연주 동영상을 찾아서 보고, 그녀가 가장 많이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명반으로 꼽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담긴 CD를 구입해서 듣는 등의 행위는 따라서 아주 자연스럽다. 텍스트만으로는 그녀의 연주가 얼마나 감각적이고 열정적인지, 그 미소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녀의 첼로가 이루어내는 미혹이 얼마나 광적인지에 대해 피상적으로 밖에는 알 도리가 없다.

  강가에 흐르는 버들잎처럼, 때로는 성난 파도의 포말처럼 기다란 금발을 휘날리며 연주하는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 음악에 문외한인 내게도 그 이름은 낯설지 않다. 아마도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법한 ‘다발성 경화증’이란 희귀한 질병을 앓았다는 혹독함 때문일 것이다. 공식 데뷔 이후 십이 년간의 연주 활동과 마흔둘의 생애,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녀가 이룬 성과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천재로 태어났고 천재로 키워졌으며 천재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그녀, 엘가의 첼로 협주곡 제 1악장 모데라토에는 그녀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는 동안 느꼈을 비애와 우수, 우울과 외로움의 정조들이 녹아있는 듯하다. 한없이 낮아졌다가 어느 순간 힘차게 솟구치는 현의 폭발, 그리고 또다시 길고 긴 여정처럼 느리게 이어지는 선율을 뒤로 한 채 광활한 대지 위로 몰아치는 바람처럼 육중한 클라이맥스들. 여러 가지 표정을 다채롭게 선보이는 1악장은 꼭 그녀, 자클린느 뒤 프레를 닮았다.

  병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복병처럼 살금살금 다가왔다. 피로, 감각 상실, 허약, 시력 변화 등에 이어 연주 도중 템포를 놓치는 일도 생겨났다. 자클린느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 특히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를 가리켜 정신의 문제라 치부했다. 나태와 해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자클린느가 일주일에 5회씩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가인 월터 조피에게 진찰을 받으러 다닌 것은 지극히 온당한 것처럼 여겨졌다. 남편에게 병의 증세들을 숨기고, 마침내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자 정신 장애가 아닌 것에 오히려 기뻐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행복과 친교가 얼마나 허위적이었는가를 말해주는 듯하다. 

  “연주는 삶의 방편 이상이고, 삶 그 자체”라고 말한 바 있는 자클린느에게 있어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절망적인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자클린느는 가족들에게서 위안을 받을 수 없었다. 진부한 말 같지만 가족은 모든 피로의 휴식처이며 안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전차의 맹렬함과 격정의 소유자인 바렌보임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들도 그녀에게 안락한 애정을 선사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윌리엄 잉그레이가 자클린느의 가족들에 대해 “그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거나 “훈훈함이 없었”다거나, “그들 모두가 연기에 능숙했”다고 말한 것을 참조할 때, 그들의 능숙한 연기만큼이나 자클린느의 고립감과 상실의 부피는 컸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친숙해야 할 이들의 외면을 감내하고,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에게 자신의 정신과 육체 모두를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일상, 그 중점에 있는 것이 매력과 활기 넘치던 천재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삶이다.  



Ⅱ. Lento - Allegro Molto


  사 분 삼십여 초의 이 짧은 악장은 격정과 서정을 아우르고 있다. 첼로의 레치타티보로 시작하는 열정은 수줍은 발랄함으로 이어지고 수줍음은 곧 광휘와 사랑의 충일함으로 채워진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연상케 하는, 더할 나위 없이 영국적인 자클린느가 바렌보임과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을 때의 긴장과 흥분이 느껴지는 곡이다.

  바렌보임은 자클린느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운동과 언어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자클린느와는 달리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었으며 장갑차와 같은 기세와 활력으로 빽빽한 연주 일정을 소화했다. 바쁜 와중에도 ‘바렌보임 일당(이작 펄만, 알프레드 브렌델, 핀커스 주커만,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등)’이라 불리는 이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실내악을 연주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정력가였다. 자클린느의 육체가 이상을 감지했을 때조차 그녀는 바렌보임을 향한 사랑으로 그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자클린느의 피로와 근육의 경직이 바렌보임에게는 한낱 엄살이나 정신의 해이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위풍당당한 영국의 장미와 왜소한 이스라엘의 선인장은 외양으로는 가장 어울리지 않을 쌍으로 보였지만 그들의 차이점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었으나 이는 자클린느의 건강이 악화되기 이전, 세간의 관심과 열광이 그들 부부를 향하고 있을 당시에 그치고 만다. “자클린느가 조페에게 의지할 때 다니엘은 친구들에게 눈길을 돌림으로써 가장 좋은 시절이라 해도 하기 어려운, 친밀감과 상처를 나누는 일을 차단시켰”던 것이다.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이 한낱 질병에는 무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Ⅲ. Adagio


  자클린느 뒤 프레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는 사실은 자클린느와 첼로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은 것은 네 살 때의 일이었으며 다섯 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다.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그리고 로스트로포비치의 사사를 받았으나 자클린느에게 있어 평생에 걸쳐 가장 오래도록 사랑한 ‘첼로 아빠’는 윌리엄 플리스였다. 자클린느가 수지아 상의 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한 것도 플리스다.

  그러나 자클린느가 첼로와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간 것의 반대급부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의 저자인 캐럴 이스턴은 “재키는 수지아 상을 계기로 또래의 친구들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고 정상적인 어린시절 비슷한 것도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특히 사춘기에 이르는 아이들에게 ‘차이’란 모조리 파멸적”이라는 단언과 함께 “영재들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우정이 필요하고 개인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확실히 자클린느가 맺은 관계들은 하나의 ‘개인’으로서가 아닌 감탄의 대상으로서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클린느의 학우였던 아드레아 배런은 “우리는 사실 그녀를 몰랐어요. 이어주는 끈이 없었으니까요. 그녀를 우리의 삶 속에 한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는 셈이죠. 우리는 그녀가 자기 자리에 있도록 내버려 두었어요.”라고 말한다. 배런이 말한 “자기 자리”란 뛰어난 ‘첼리스트’란 명성일 것이다.

  자클린느의 유년을 기억하는 이들 거개가 그녀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찬사 속에 존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행복은 ‘관계’ 안에서 싹트는 것이며 신실하고 온화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 속에 뛰어들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자기 자리에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방치이다. 감탄스러우리만치 정돈되고 완벽하게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들, 특히 어머니의 이미지는 자클린느 말년에 보였던 냉담함을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삶은 재단된 것도 아니고 계획되어 있는 것도 아닌 바, 서로 부대끼고 투덜대는 불협화음 없이 완전한 평화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클린느가 투병 중 왕왕 “어머니가 자신을 방에 가두고 연습을 하게 했다든지 부모님이 충격적일 정도로 자신을 심하게 다루었다든지”, 학창시절의 불행에 대해 토로했던 것은 “다른 아이들로부터의 고립은 후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클린느의 외로움과 고통을 단적으로 반영한 예라 할 수 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제 3악장 아다지오는 전원에 내리는 석양처럼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목가적이다. 음색은 풍요로우며 활은 느긋하고 애잔하게 첼로 현을 어루만진다.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영혼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저 높은 곳의 자유롭고 행복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간다.”는 자클린느 자신의 말처럼, 보우잉을 하는 자클린느의 육체가 점점 투명해져 세계를 향해, 세계의 바깥을 향해 분사되고 있는 듯하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마냥 투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냥 쾌청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고독과 우수를 함께 지닌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하는 첼로를 연주하면서 행복했던 반면, 첼로 때문에 포기하고 제외되어야만 했던 부분들로 인해 우울했던 그녀처럼 말이다.



Ⅳ. Allegro - Moderato - Allegro, ma non troppo


  “그녀는 연주회에 나가야 하고 그녀의 몸통에는 이 우스꽝스럽고 짜증나는 울 조끼가, 연주할 때 그녀의 우아한 가운 위로 땀이 흐르지 않도록 땀을 흡수할 수 있는 구멍을 낸 조끼가 꽉 달라붙어 있었지요. (중략) 아주 상징적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옷을 한껏 차려입고 멋진 곡들을 연주하는데 옷 밑에는 이 낯익은 것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인간임을 증명하듯 말이죠.”

  작곡가 알렉산더 괴르는 자클린느가 드레스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에 껴입는 남루한 조끼에 대해 이처럼 말한 바 있다.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스마일리”한 천재 첼리스트도 땀이 흐르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간혹 ‘보여지는’ 모습에 더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모습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자클린느의 고립감과 우울은 많은 부분 사람들의 이러한 습성 탓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많은 이들의 찬사와 상찬의 뒤에 한 인간으로서 느껴야만 하는 고독과 욕망과 감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되고 만다.

  휠체어에 앉아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데서 오는 자괴감, 언제나 반가운 탈출구였던 연주가 어느 순간 불안의 근원으로 전락하고 만 데서 오는 상실감,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람의 외면, 가족들의 비난, 한쪽으로만 치우쳤기 때문에 차단되어버린 일상적 우정에 대한 갈망, 근사하고 황홀한 연주. 엘가의 첼로 협주곡 4악장에는 자클린느의 짧은 생애가 모두 녹아있는 듯하다. 격정, 사랑, 우수, 비애, 절망, 고독, 쉼 없이 몰아치다 잔잔해지고 한없이 낮아지다가 돌연 솟구친다. 파도처럼 넘실대다 슬픔으로 흐느끼면서 1악장부터 3악장까지를 다시 아우른다. 자클린느의 말처럼 “어김없이 가슴을 찢어놓”는다. “마치 눈물을 말려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자클린느 뒤 프레, 찬탄과 비탄의 경계를 오가는 그녀의 삶을 접으며 천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과 파괴의 가열찬 속도에 공감한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닌 ‘천재성’에 질시와 부러움 담긴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범박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범박하면서도 욕망은, 탐욕스럽기까지 한 욕망은 결코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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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8-10-3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랫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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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l의 stationary traveller가 듣고 싶은 날입니다. 이 글 퍼갈게요.
어떻게 지내시나...오래된 알라딘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