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딘가 쿡쿡 쑤시는 것도 좋고, 끊임없이 저려서 제 손으로 제 몸 주무르는 것도 좋고, 기억을 더듬으며 혈흔같은 눈물 한 점 떨구는 것도 좋다. 정신을 놓는 것은 싫다. 고통이 명치 끝까지 부풀어 올라도 마음놓고 술에 나를 부리는 일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죄길, 그럼에도 올곧지도 못한 생의 하루를 그나마 잃게 되다니. 나약한 정신이 불러온 질병 하나 이기지 못해 까무룩 죽음을 더듬다 온 미련함이라니.

게슈탈트 심리학(형태주의 심리학)은 20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방법과 원자론적 접근방법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심리 현상의 본질은 원자론적인 분석으로는 밝혀낼 수 없고, 그 자체가 구조나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 ‘따귀 맞은 영혼’은 이러한 게슈탈트 심리학의 토대 위에 저자의 임상 경험담을 느긋하게 섞어 마음 상함의 근원적인 배경을 파헤치고 그것에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우리가 마음을 상하는 것은 비난이나 배척, 거절, 무시 같은 것들로 인해 자존감이 약화될 때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남들이 나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다는 ‘투사’와 타인의 확신을 내 것으로 내면화 시키는 ‘내사’가 심리적 기제로 작용한다. 저자는 마음 상함을 일으키는 비판의 요건들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추려 보자면

- 제삼자가 비판할 때
- “넌 이해 못해”라든가, “네가 전적으로 잘못한 거야” 하는 식으로 매도된다고 느껴질 때
- 듣는 사람의 인격 전체에 해당하는 비판이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바보라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할 때
- 비판자가 듣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자기가 훨씬 더 잘 안다는 걸 뽐내려 할 때
- 특별히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또는 잘 보이고 싶은 장소에서 비판받을 때, 등이다.

20년된 친구에게 두 해 전에 결별 당한 적이 있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가 내게 등을 돌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친구가 나열한 이유들은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어서 난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다 하더라도 난 관계를 호전시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를 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당시 내가 알고 지내던 분에게 친구를 소개시키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한 목걸이가 하도 예뻐서 그것을 화제로 올려서 얘기를 하던 중 그것이 이미테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내가 “이미테이션 하면 간지럽지 않니? 난 알러지가 있어서인지 아무리 예뻐도 가짜는 못 하겠더라.” 했다는 것이다. 혜음! 이야기를 듣고 십분 이해하고 반성했지만 그러한 것들이 이십 년 우정을 단칼에 동강낼 정도인 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비판을 받자 즉시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고 그것이 분노를 일으켜 나와의 관계를 끊게 만든 방어 기제로 작용을 한 것이다. 여튼 그 친구를 생각하면 아직도 내 따귀를 갈기고 싶어진다.

앞서 말한 ‘내사’에 관련해서 재미있는 용어를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내사 성향이 농후한 사람을 가리켜 ‘치아 장애자’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도 치아의 기능에 이상이 있는데 무엇이든 잘 으깨어진 상태로 받고 싶어하고, 남의 의견을 비판과 검토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처 받기도 그만큼 쉽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비판에서 아무런 모순도 발견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삼켜버리므로 자괴감과 수치감을 느끼는 정도 또한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마음상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사를 버리든가 변화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내사를 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내사는 대개 어린 시절의 경험과 직결되어 일찍 형성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옭죄는 과거 속의 원인을 찾아 마음에서 추방시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거부당하고 상처받은 우리 안의 어린 아이, 다시 말해 예전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했던 부분을’ 찾아내어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조차 함부로 대했던 이 어린아이를 긍휼히 여겨 함께 울고 슬퍼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그 어린아이(어릴 적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싹튼다는 것이다. 전자가 원인을 거세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원인을 끌어안는 방법이랄까.

임상의 이러저러한 예를 들어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대상과 관계를 끊는 것은 결국 더 깊은 상처로 남을 뿐이며, 그보다는 그와 일정거리를 두고 계속 접촉하며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과도한 자기애는 버려야 하며 좀 더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말이다. 난 가끔 무언가 제안을 한 뒤엔 상대의 반응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대가 거절하면 수치심 때문에 자괴감 느껴지고, 상대가 허락을 하더라도 그것이 흔쾌한 반응인지 아니면 내키지 않아 힘겹게 내린 수긍인지 걷잡을 수 없어 뭐 마려운 개새끼마냥 종종거린다는 것인데, 이런 것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있었던가. 타인과의 접촉 기능이 붕괴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내가 점점 수상해진다?!!)

아흐, 이런 책의 독후감을 쓰는 건 너무 힘겹다. 수박 겉 핥기를 모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궁금하면 읽어봐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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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7-27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테이션 사건이요..저도 그런일 당한적^^ 있어요 .대학다닐때 후리지아를 좋아해서 사갖고갔더니, 다른 애들은 이쁘다이러는데, 유독 한 아이가.."후리지아, 제일 싼꽃이잖아" 이러는거예요.-..- 도대체 아름다운 꽃의 가격을 누가 정한단 말인가요..저도 그 친구와 의절했어요..그렇게 친한 애도 아니었고, 잘보이고 싶은 사람들 앞도 아니었지만..두고두고 생각나서, 어처구니 없게하네요..지금두요.

마녀물고기 2004-07-2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게 그 친구는 각별했습니다. 속 좁은 친구가 아니어서, 그 친구가 의절을 선언한 데는 그간 알게 모르게 저지른 제 잘못이 두터웠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힘든 일이 생길 적마다 생각나는 친구인데, 요즘은 더욱 자주 생각이 납니다.
우우, 근데 후리지아에 그런 대사라니. 의절 잘 하신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