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의 잠
요르기 야트로마놀라키스 지음, 안진태 옮김 / 자연사랑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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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내게 작가적 이름을 가졌다 했다. 난 B와 L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이야말로 글쟁이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이름을 지니지 않았는가 물었다. C는 그들보다는 내 이름이 훨씬 근사하다고 대답함으로써, 이름 하나로 등단식이라도 치룬 양 헤실거리는, 나의 어처구니 웃음을 유도하였다. 그런데 ‘요르기 야트로마놀라키스’라니. 이름만 들어도 놀라 자빠질 정도로 난해한 작품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말이다. 더욱이 이 책을 잡은 시점이 알코올에 젖어 정신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때라, 두 발 내디뎠다가 다시 한 발 되돌리는 장정에 끊임없이 헉헉거려야 했다. 술이 깨고도 어쩐 일인지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읽는 내내 허술한 정신을 타박하며 엉치를 차줘야 했음은 물론이다.

<소들의 잠>은 크레타 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병폐와 그리스의 민주화라는 역사적 상황을 꼬집는다. 하지만 일전에 소개했던 <라모의 조카>가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이나 철학적 배경지식 없이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소들의 잠>은 이러구러한 스키마 없이도 수이 읽을 수 있다.

물질이 야기한 현대의 불치병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다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군부가 정권을 잡고 독재가 판을 치고, 국민이 흘린 피로 혁명이 꽃을 피우고, 민주 정권이 수립되었나 했더니 일각의 비리와 입신을 위해 하루아침에 진영을 바꾸는 정치인, 비대해진 차관과 정치인의 자가당략으로 침몰한 경제, 또다시 피를 쏟는 건 국민 뿐인 악순환은 이미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타이틀이 아니었던가.

다만, 작가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흉내내려한 것인지는 몰라도 살인자인 디케오스, 그의 아들 그리고리스, 피해자인 세르보스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그리고리스에게 칼을 꽂은 마르코스의 이야기가 중첩되고 역전되고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진행되는 바람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곧잘 길 잃기 일쑤이다. 그러나 헷갈려 죽겠네, 하면서도 책을 붙들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은근히 웃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구절들.

- 부당한 일을 당한 자만이 경찰이나 관리에게 말해야 한다.... 죄가 없는 사람은 경찰에게 말을 해봤자 권리를 찾지 못하므로 그저 질문을 받을 때만 예 또는 아니오 하고 답변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용건 없이 우연히 참가한 사람들은 늘 권력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하며...

- 갖가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구원책은 나무 위로 몸을 날려 새의 세계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뭇잎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첫 번째 시도할 때 자신의 근심을 셋 이상의 사건과 관련시켜서는 안 되는데, 이렇게 하면 나무나 근심 없는 새들의 사회도 그를 구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정의라는 것은 각자의 재산에 좌우되고 소유물과 인력의 법칙에 관련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주지되었다.

- 결국 모든 물체가 어떻게 무게와 가치를 상실하는가를 본 것은 그가 피를 사방에 흘리며 죽기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물질에 가치를 둔 삶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닫는 대목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깨닫는 시점은 언제나 뒤늦다. 삶의 아이러니다.)

- 이런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듯이지지 정당을 바꾼 유권자들은 새로운 신념을 보이기 위해 과장된 열의를 보이기 쉬웠다.

당신이 지금 맥주병을 손에 쥔 상태가 아니라면, 실연으로 인해 뭉개진 심장을 추스릴 수 없어 벽에다 머리통을 짓찧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금치산자나 난독증 환자가 아니라면, <소들의 잠>에 기꺼이 동참하는 건 어떤가. 당신이 눈 감고 자도 좋을 만큼 현실은 당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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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정말 과학자가 되고 싶니? - 자연의 아이들
권수진.김성화 지음, 이윤하 그림 / 풀빛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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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꾼 한권의 책’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노란 바다를 춤추 듯 수영하는 여자아이가 그려진 책 한권을 떠올렸다. 내가 설 곳을 만들어 준 책, 내가 천문학자가 될 수 있도록 등불이 되어준 책, 바로 <얘들아, 정말 과학자가 되고 싶니?>라는 책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별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밤하늘에 설탕가루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별을 보고 있으면 몸이 붕 뜨고 내가 먼 우주를 향해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그래서 밤이면 창을 열고 별을 보았다. 별과 이야기를 나누고 별과 함께 우주를 여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별을 관찰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졌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피아노를 열심히 쳐야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열심히 읽고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밤마다 별을 관찰하면 자연히 과학자가 되는 걸까?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나에게 선생님께서 이 책을 권해 주셨다.

처음 이 책을 읽고 과학에 굉장히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생물학, 물리학, 화학, 지학, 공학, 의학 등, 더욱 놀란 것은 농업을 연구하는 농학도 과학의 일종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별을 연구하는 과학이 천문학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난 그때부터 막연히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에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으로 꿈을 좁힐 수 있었다. 천문대의 대장님이 천문학자들은 부자는 될 수 없지만 아주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얘기를 읽고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나도 특별한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 되자! 결국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발견한 11번 째 행성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는 극심한 환경 오염으로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머지않아 지구인들은 내 이름을 딴 ‘마녀 행성’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정말 설레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 이를 테면 호기심과 상상력, 글을 잘 쓰는 것, 책을 많이 읽는 것 등에 대해서 그에 알맞은 위인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재미있게 이야기해 준다. 호기심 많은 파브르가 ‘빛은 입으로 볼까? 눈으로 볼까?’ 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눈은 감고 입은 크게 벌려서 빛을 볼 수 있는 지 실험했었다는 대목을 읽고는 위대한 사람들도 이런 바보같은 행동을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바탕 웃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호기심을 갖을 수 있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나는 실수를 많이 한다. 어렸을 때는 건망증 때문에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의자를 뱅뱅 돌리다가 의자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컴퓨터를 이것저것 만지다가 아버지의 자료를 모두 날려버리기도 했다. 난 그런 내 자신이 쓸모없이 느껴져서 속상했지만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수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분을 읽고 정말 기뻤다. 물론 실수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을 모두 읽은 후 나는 엄마를 졸라 지구본, 나침반, 세계지도, 망원경, 노트 등을 샀다.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과 가까이 하는 것이 과학자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쓰여있기 때문이다. 노트에는 내가 관찰한 것들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비밀관찰노트인 셈이었다. 이 책을 교과서처럼 생각하고 천문학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제인구달, 아인슈타인, 파브르, 케플러 등 유명한 과학자들의 일화는 너무너무 재미있다. 또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어린이들이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유익하다. 마음 속에 꿈을 지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어릴 때부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니 꼭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마녀 행성’을 발견하고 지구인을 구한 천문학자, 마녀물고기를 있게 한 이 책에 언제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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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04-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지금 열 살이야.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미래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게 되는 거지. 재미있을 것 같잖아? 라고 생각하며 쓴 건데 별로 재미있지 않다. ㅠ.ㅠ

2004-04-28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물고기 2004-04-2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소식이네요. 주문하신 책들 다 읽으신 후 감상문 올려 주세요. 같은 책 다르게 읽기, 참 재미있더라고요.

비로그인 2004-04-2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재밌어요. 보관함에 담았어요. 열 살 된 아들위해서^^

마녀물고기 2004-04-2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열 살 된 아드님이 와하, 재미있어요 엄마! 해야할 텐데 말이지요.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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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의 : 김운하의 <언더그라운더>가 검색이 안 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하루끼의 비슷한 이름을 빌렸습니다. 상품명이 등록되지 않으면 리뷰 등록이 아예 안 되도록 되어 있군요. 하루끼 리뷰를 검색하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언더그라운드는 오버그라운드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오버그라운드가 빛, 지상, 양지, 전통, 규범, 긍정, 속박으로 표현된다면 언더그라운드는 어둠, 지하, 음지, 급진, 반체제, 부정, 자유로 표현될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는 문화적 양식의 한 갈래이지만 전통적인 문화 형식을 파괴하고 해체하며 비상업적, 실험적, 전위적 방법을 표방한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탓에 음지로, 지하로 숨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아방가르드 영화인 장 콕도의 <시인의 피>가 영화관에서 상영된 것을 시발로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재조명의 움직임이 일었다. 결국 1940년대 미국에서는 아방가르드 영화 전문관이 설립되었고 최근에는 비디오아트와 결합하는 실험적인 영화 제작이 비교적 활발해졌다.

또한 기존의 작곡 양식을 완전히 뒤엎는 우연의 음악(우연의 음악이 차용한 탈개념의 음악적 방법에 대해서는 폴오스터의 ‘우연의 음악’ 감상문을 참조하시라)과 케이지 음악, 전자 음악 등이 탄생하고, 인간의 내적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실험적 양식의 퍼포먼스 등이 미술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주받은 시인이자 악마주의로 치부되었던 랭보, 로트레아몽, 위스망스, 말라르메 등 20세기 문학의 ‘전위의 원류’였던 작가들이 최근에는 상징주의 작가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식들이 예술로 인정받는 것은 예술사에 있어 극히 미미한 위치를 점유하는 것으로 그들이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운하는 이러한 외면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예술의 아방가르드 현상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킨다. 인간과 신, 문학, 예술의 본질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사회적으로 언더그라운드에 속한 인물(전위적 예술가, 창녀, 동성애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부각시킨다. 일전에 김운하의 <137개의 미로카드>를 꽤 참신하게 읽은 기억도 있고, 책벌레 친구가 <언더그라운더>에 대해 슬쩍 운을 띄운 적도 있고 해서 꽤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대체로 좋았지만 가뜩이나 무거운 소재를 무거운 문체와 상황을 통해 이해하려니 버겁기도 했다. 또 <137개의 미로카드>에서도 그랬지만 이 소설에서도 김운하의 어깨에 들어간 힘 때문에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인문적 지식의 넓이와 깊이를 말하는 것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지적 유희와 현학의 힘을 소설 속에서 잘 버무려낸 최근의 작가는 스위스산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깔끔한 단문과 치고 빠지기식의 민첩함과 경쾌함으로 진지함의 무게를 던다. 독자로 하여금 요람 속의 아이처럼 달콤하게 흔들리며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는 작가다. 하지만 김운하는 진지함과 무게를 너무도 정직하게 그린다. 잠시 침묵하며 그의 고뇌에 동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잡지에 속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창녀와 카페 주인인 이혼녀를 등장시킨다.

나 - 언더그라운드의 편집자이자 소설가이다. 전통적 양식에 반하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집필 중이나 별 진척이 없다. 나도 사는데 네가 왜 죽어? 라는 고백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자신을 무기력증에 빠진 음울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불분명함으로해서 읽는 이(나)로 하여금 약간의 조롱을 어쩔 수 없도록 만든다.

민재 - ‘나’의 애인이자 진화라는 여성의 애인이기도 한 철학도. 둘 사이를 오가며 육체를 즐기지만 사랑은 주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법처럼 그녀의 삶도 어느 한곳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형민 - 나이를 먹고도 동정을 버리지 못한 사내. 어릴 때 목격한 고모부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허무함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그가 찍는 사진은 이 사회가 수용할 범위를 넘어선 전위적 형태의 것들이다. 창녀에게 동정을 바치고 순애보에 빠진다.

진화 - 민재의 애인, 동성애자이고 페미니스트다. ‘언더그라운더’에 동성애자의 삶을 다룬 특집 기사를 싣는데 앞장선다. 잡지가 나간 후 ‘포르노 잡지’라는 험악한 질타의 수렁에 빠진 언더그라운더를 구할 요량으로 인터뷰를 자청, 커밍아웃한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나약한 여자로 페미니스트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범수 - ‘언더그라운더’의 편집자이자 창업주. 돈 많은 부모를 둔 덕분에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아버지의 지병으로 인해 결혼과 가계 계승의 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별다른 고통 없이 사회적 관습과 주류에 편승한다.

강현 - ‘언더그라운더’의 편집장. 언더그라운더에 속한 인물 중 가장 열정적이며 언더그라운더의 미래를 가장 많이 걱정한다. 언더그라운더의 사활이 그의 사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슬픈 인물. 대학 때의 재기발랄함이 사회에 속박된 후부터 빛을 잃는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화이트 칼러를 대변하는 듯.

블루 마담 - 이혼녀이자 카페 블루의 사장. 언더그라운더의 비공식 자문 역할을 담당하며 그곳의 남자들 모두와 성관계를 갖는다. 육체적 쾌락으로 자신의 불행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루카치는 아방가르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견지한다. 고독은 인간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적 특성에 기인하므로 개인의 고독은 특수한 사회 현상일 뿐인데, 아방가르드 존재론은 인간의 고독과 그것에서 파생된 불안의식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짓고 고독을 보편화 시킴으로 해서 고독이 인간의 관계 맺음에 부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인간 고립을 생산하여 탈사회화를 가속시키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아도르노의 이론은 이와 상치한다. 고독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소외현상에 극명하게 항거하는 하나의 양식이며 그것이 내재한 힘이 인간의 역사를 재창조하는 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 반박한다.

루카치와 아도르노의 공방을 김운하의 <언더그라운더>에 대입시켜 보는 것은 재미있다. ‘언더그라운더’ 인물들은 아도르노의 편에 서서 썩어빠진 사회, 정통성을 고수하는 예술이 지닌 기득권과 나태에 도전한다. 그들은 고독의 항문까지 핥다 온 인물들이고 서로에게 위안을 구하지 않으며 반성없이 돌아가는 사회에 진력이 나 있다. 이들이 예술과 철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흐르지 않아 악취나는 사회에 항거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반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에게 이들은 악마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들의 진보적, 반체제적 성향과 자유로운 행동양식은 꾸준히 누려온 자신들(극소수인)의 평화를 겁탈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은 결국 탄압의 욕망을 자극한다. 결국 ‘언더그라운더’는 보수세력의 금력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들이 전면에 내세운 해체의 양식은 결국 ‘언더그라운더’들을 해체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만 것이다.

앗, 이 감상문으로 인해 <언더그라운더>가 딱딱하고 하품나고 잘난 척만 하는 소설이라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요즘 활개치는 허랑방탕한 몇몇 소설들과는 비교할 바 아니다. 재미있고 진지하고 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감상문을 이 따위로 썼느냐고? 내 맘!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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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미셸 파스투로 지음, 강주헌 옮김 / 이마고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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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공짜를 좋아한다. 공짜로 먹는 밥은 간이 덜 되었어도 맛있고 공짜로 먹는 술은 이를 악물고서도 먹을 자신이 있으며 공짜로 얻게 되는 책은 마리화나 없이도 충분히 황홀하다. 그런 내가 책 하나 더, 이벤트를 놓칠 리 있겠는가. 궁색한 살림에도 아랑곳 없이 몇 권을 저질렀다. 거기에 딸려 온 책이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다. 제목부터 스스로 코뚜레를 자청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 저자는 줄무늬 특유의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색과 무늬를 감지하는 방법과 같은 문제에 핵심을 두고 있다. 이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행사할 영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 중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별나고 이상한 무늬의 전기를 다룬 매혹적인 책이다. 그 누가 위험한 의미가 내포된 이 줄무늬에 대해 이처럼 잘 알 수 있을까? (에스콰이어)

- 이 책의 저자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줄무늬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는 줄무늬에 대한 많은 재미있는 의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수평적 혹은 수직적 컬러가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어나 불어에서 ‘줄무늬’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리스트)

책의 뒷 표지에 실린 리뷰의 조각들이다. 의아하다. 도대체 난 이 리뷰를 쓴 작자들이 책을 제대로 통독이나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물론 저자가 142쪽 짜리 얄팍한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장장 72권이나 되는 문헌을 참고했다는 사실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는 방대한 문헌에 실린 글들을 요령껏 짜깁기 해서 간추린 것에 불과하다(물론 그가 참고했다는 문헌들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한 주제에 감히 이런 단언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중세로부터 시작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줄무늬의 사회적 용례만 다룰 뿐, 그것이 왜? 그 시대의 상징으로 출현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부재한다. 그러니 간추린 자료의 나열이라 볼 수밖에).

내용 또한 단순하다. 중세에는 줄무늬가 악마, 창녀, 거지, 범법자, 환자 등 수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으나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아름다움이나 자유 등을 상징하는 것에 사용되면서 악의적 의미에서 조금씩 탈출을 시도했고,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서는 힘과 멋, 품위, 역동성을 상징하며 장식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부단한 변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문헌을 통독하는 동안 끊임없이 제기해 왔던 의문들을 독자에게 돌리고 있다. 독자에 저자 자신까지 포함시켜서 말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세간의 평을 읽으며 나의 ‘읽기’에 넌지시 의혹을 던진다.

- 저자는 여기에서 줄무늬의 확산 이유를 기막히게 해석해 준다. 마치 미스터리 소설의 끝부분에서 멋진 반전이 일어나 듯이 줄무늬에 대한 해석이 180도 달라진다. 중세시대부터의 해석을 단숨에 뒤집어버린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미리 말해버리면 독자에게 그런 재미를 빼앗는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더 이상 밝히지 않으려 한다. 직접 읽고 그 순간에 무릎을 쳐보라! ‘창의적 발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책의 서두를 장식한 옮긴이(마크 트웨인의 ‘참혹한 슬픔’을 옮긴이)의 글이다. 무릎을 치게 된다니. 대체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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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04-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이딴 감상문을 누가 추천하는 것이야! -.-

하나무라만게츠 2004-04-2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로봇..

마녀물고기 2004-04-24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츠님 서재에 갔더니 아무 것도 없더만요. 역시 추천 로봇 답습니다. 쩝
 
참혹한 슬픔 - 마크 트웨인의 불온한 독설
마크 트웨인 지음, 강주헌 옮김 / 경당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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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무지를 무관심탓으로 돌리고 탱자탱자한 세월이 벌써 백 년이다. 난 신문도 보지 않고 티브이 뉴스와도 친하지 않다. 부스스한 머리로 아침 뉴스를 꼬박 챙기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손석희 아나운서의 지적인 갸름함과 정확한 발음에 넋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지렁이의 눈에서도 정치적 눈물을 쏙 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통령 탄핵 어쩌구 하는 사회 선생님 말씀은 분명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지만, 그것이 선생님의 붉은 입술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온몸이 오소소 떨리며 이가 시큰거리고 짧고 굵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휘익 휩쓸고 지나던 경험은 너무도 생생하다.

그런데 아직 천 년도 채우지 못한 내 삶이 그런 독설과 맞부딪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어 무슨 때만 되면 발휘되는 대한국민의 응집력이 촛불로 승화되어 나타났다. 그들은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전경들과 몸싸움 한판을 벌이지도 않았으며 물폭탄을 만들어 폭우를 흉내내지도 않았다. 다만 손에 쥔 촛불이 꺼질새라 한숨마저 죽인 채 고요히 기도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혈기방자한 국민성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무단횡단과 쓰레기 투척과 폐수 방류 등을 일삼는 그들이, 모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보도는 참으로 난해했다. 정말 슬프도록 아름다운 유머로구나, 생각할 수밖에.

그때의 슬픈 유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바로 마크 트웨인의 《참혹한 슬픔》이다. 그의 슬픈 유머는 첫 번째 챕터인 <불가사의한 족속>에서부터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브와 아담의 일기로 표현되는 <불가사의한 족속>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오만한 편견으로 가득찼는가 회의하게 한다. 아담은 끊임없이 만물에 이름을 붙이려는 이브를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이라 조롱하는 반면 이브는 아담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을뿐더러 어리석기까지하므로 자신이 만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담을 구원하는 행위이자 아담의 결점을 보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데 있어 아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세심함까지 보임으로해서 아담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감탄하는 것이라 자신한다. 또 불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하찮으며 공허한 것이라는 이브의 말을 통해 불의 발견으로 시작된 인간의 부조리한 문명을 살짝 비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타락천사>에 등장하는 헤스터와 한나 이모는 ‘절대적인 진실, 굽힘 없는 진실, 타협 없는 진실’을 신봉한다. 그들에게 거짓말은 죄악이다.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런 그들이 돌림병에 걸린 질녀를 위해 거짓말과 타협하고 만다. ‘해가 없는 거짓말은 죄가 아니라 무의식적 양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이 도덕이라는 명분하에 자아를 유린하고 타인에게 자행하는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 그 깨달음의 경로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깜찍하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잘근거리며 웃다 보면 정작 작가가 외쳐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수장시킬 가능성이 크다.

표제이기도 한 <참혹한 슬픔>은 그러나 유쾌하지 않다. 참혹하다는 말 외엔 그 어떤 낱말로도 슬픔을 대변할 수 없다. 도입부에서 마크 트웨인은 화자인 프레즈비티리언 개의 엄마인 콜리의, 뜻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멋지고 거창한 낱말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습관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지적 허영심에 일침을 놓는다. 그러고 이어지는, 자기 만족을 위해 인간이 행하는 잔혹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떨구게 만든다. 결국, 인간적이라는 것은 그들의 폭력까지 수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으로만 행동하는 짐승이 보다 더 인간적인 것일까 하는 문제.

<건전한 오락> 당신이 지금 로또에 당첨되어 50억을 거머쥘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난 일단 해변가에 창 너른 집을 짓고, 지금의 내 방 만큼 커다란 책상과 소리 죽여주는 진공관 앰프가 포함된 오디오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그 끝을 만질 수 있는 책방을 꾸미겠다. 또 뚜껑 열리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한 대 사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드라이브를 할 것이고 황금종을 울리며 “오늘은 내가 쏜다” 거창하게 외쳐보기도 할 것이다(어? 이건 어디선가 본 장면인데). 또 유망한 재테크 사업가를 두 명쯤 거느리며 50억이 500억이 되는 그날을 기리며 축배를 들고 출판사 몇 개를 사들여 그들이 수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이 출판하고 싶은 책들을(여기엔 내 입심이 9할 정도 개입할 것이지만) 출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인생역전의 기회가 떨어질 확률은 마이너스 퍼센트니 오늘도 눈물 머금고 땅이나 팔 수밖에 더 있으랴. 이러한 인간의 허영과 사치와 몽상과 좌절을 그린 것이 <건전한 오락>이다.

이후의 몇 개의 소품들에서도 유머 넘치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손뼉 쳐대며 와와할 수는 있지만 쏙 빠져들기란 요원하다. 그럼에도 사지를 늘어뜨리고 추락을 향해 가는, 표지의 검은 그림자를 덮으며 씨익 미소 지을 수 있으니 당신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글에서 몇 구절 발췌한다.

- 마크 트웨인의 글에는 유머(humor)가 담겨 있다고 했다. 어원적으로 “유머”는 “젖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젖는다. 그것은 눈물이다. 웃음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그러나 트웨인은 그 눈물을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로 보았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착각과 거짓 속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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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4-2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쓰기도 괜찮군요.조금은 공적인 느낌말입니다.나는 아주 사소한 쪽지하나도 쓰기가 힘겹습니다. 할말이 뒤엉켜 앞 말이 뒷 말에 걸려 넘어져버리거든요^^ 횡설수설하고 지리멸렬하고 우왕좌왕하고...ㅎㅎㅎ 그러고 보니 글쓰기나 글쓰는 인간이나 몰골이 비슷하군요.날씨 기막힙니다.맘껏 누리시길.이럴 때 우중충하면 인생에 대한 죄!

마녀물고기 2004-04-2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의 몰골이 사뭇 궁금해지누만요. 그런데 제가 워낙 잡다하게 죄 짓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이라. 으으.. 오늘 날씨 더웠어요.

마녀물고기 2004-04-2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조고 쓰고 나서 이천원 이벤트에 당첨 되었어요! 이야~ 즐거워라~

hanicare 2004-04-2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