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라고 하면 고급스럽다. essai(s). 단순히 일기 수준의 신변잡기 이상의 글쓰기는 되어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고전부터 넘겨온 까닭에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 문학의 고전에 참 무지한데,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박지원의 <열하 일기> 같은 것을 꼽아볼 수 있을까? 이름만 알지, 읽지는 않은 정약용, 이런 양반들의 글은 어떨지. 검색해보니 <열하일기>, 헉, 이렇게 두꺼운 거였냐, 냐, 냐 -_-;; 나는 한 권짜리도 읽은 것 같다.

 

 

 

 

 

 

 

 

 

 

 

 

 

 

 

20세기 초반 에세이는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고, <중고생 필독서 - 수필편> 이런 데 실린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동서양 수필에 입문했다. 찰스 램(?), 이런 이름도 있지 않았나. 교수 부부의 딸이었던 사촌 동생은 심지어 <바보네 가게>, 이런 것도 읽고 있었는데, 그 지적인 풍미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20세기 후반부터 에세이는 '산문'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소비되는 것 같다. 소설가나 시인이 어느 정도 명망이 쌓이면 산문집을 냈다. 작가의 이름값에 비례해 관심을 얻었고 또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영화 에세이도 적잖았고 언제부터인가 독서에세이, 각종 독후감책도 많아졌다. 21세기부터인가 그야말로 수많은 '작가'가 생겨났다. 소설가, 시인, 극작가, 이런 명칭과 달리 '작가'란 뭐든 쓰면 된다.(심지어 만들면 된다^^; - 작, 쓰꾸루!) PC통신은 이미 고물이고, 인터넷, 이어 스마트폰에 힘입어 쓰기(+ 사진 찍기 등)가 무척 용이해졌다. 덕분에 옛 기준이라면 도무지 '작가 아닌 작가'도 많아졌다. 그러나, 물론, 소위 등단(=자격증)이 그 작가의 품격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어느 지점부터 호칭에도 "- 작가님"이 일반화되었다. 대학교에서도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퍼진 것과 비슷한 듯하다. 누구에게나 두루 쓸 수 있는 경칭인 '선생님'과 달리, 이 교수님은 직업에다 '-님'을 붙이는 것이라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었다. 물론, 내가 시간강사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다 원론적으로, '직업+님'이 주는 불편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언중들의 합의에 따라 이제 보편화되었고, 나 역시 길들여지는 것을 느낀다. 청소부님, 환경미화원님, 고객님, 의사님, 교사님, 강사님, 헤어 스타일리스님, 간호사님, 의사님 등등.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다양한 종류, 성향의 작가들이 책을 낸다. 나야 물론 문학가들에게 먼저 끌리지만 독서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노력까지 해야 하는 이 상황(나이와 애 엄마라는)이 참 서글프지만, 그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훑어보려고 한다. 이런 것 역시 관성이려니.

 

 

 

 

 

 

 

 

 

 

 

 

 

 

 

지난 주말에 이삼일 동안 세 권을 훑었다.  허수경은 나에게 왠지 해탈한 개룡, 약간 이런 느낌을 주었다. 왠지 그녀의 전공만큼이나 독일에서의 그런 최후는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 반 정도를 읽었는데, 중간중간 울컥하곤 했다. 반면 <시절일기>는 오랫동안 김연수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로서, 뭐랄까, 그가 지금 한 박자 쉬는 중이랄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쉬는 동안 무엇을 할까. 역시 공부밖에. 제목은 '시절일기'지만, 나는 '공부일기'로 읽었다. 음, 그런데, 쬐금 지루했다^^;;

 

그래서 다음 책으로. '칼럼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다른 이름의 주체와 착각하여, 이제야 비로소 읽었다. 캭,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웹상으로 읽은 글들이 너무 재미있어, 나로서는 잘 없는 일인데, 이 책 한 권만 달랑 당일배송 주문했다. 얼굴은 굉장히 싱겁게(?), 재미없게 생겼는데, 문체는 정반대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이른바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 외에 거의 모든 칼럼이 굉장히 유의미하다. 학생들에게 쓴(주례사 포함) 글도 재미있었다. 15년 정도 아이들의 레포트를 읽어온 결과 쌓은(?) 내공이지만, 아무래도 사회과학(정치외교학부 교수라니)을 공부한 사람의 글쓰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명민한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들 글쓰기의 특징의 일관된 특성 중 하나는 '-끼' 없음이다. 간혹 '-끼'가 있어도 (레포트라는 제한된 장르에서!) 잘 발휘되지 못하기도 했을 터. 김영민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역시 학부가 고려대 철학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활자화된 (아마) 첫 글은 영화평론이다. 인터뷰 들어보니, 영화를 만들어 출품한 적도 있다고. 그런 '-끼'들이 '포텐 폭발' 하듯 넘치는 글들의 모음집이다. 지성과 감성이 만나면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반 이상 왔는데 마저 읽을 생각이다. 소설보다 재미있다니, 소설가로서 반성할 수밖에^^; 참고로, 저 책의 한 꼭지에 이인성의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 언급되었다. '마지막 강의'를 상상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가용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언제 저런 것까지? ^^;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생각한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살아 있으리라.

- 아침에는. 즉, 아침에 일어나 있으라.

- 생각. 그냥 멍때리거나 몽상하지 말고 생각, 생각을 하라.

 

*

 

모든 일에서 기대치를 낮추라. 추석과 설날은 물론, 모든 일에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마라. <기생충> 생각난다.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망한다.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된다. 이참에 저 책에 인용되는,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새겨(^^;) 본다.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는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너무 많이 '쳐맞아서' 지금 이 커피가 너무 고맙다. 오늘 아침 일주일만에 또 몸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이 회복된 것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어젯밤에 저 에세이를 읽으며 오징어파전을 한 판 다 먹고 감자칩까지 먹는 욕심을 부려서가 아닌가 싶다.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먹는다, 라는 계획을 버려야지. - 그러게,

 

- 욕심이란 무엇인가.

- 계획이란 무엇인가.

- 시험이란 무엇인가.

- 서울대란 무엇인가.

- 교수란 무엇인가.

- 아이(자식)란 무엇인가.

질문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

- 질문이란 무엇인가.

- 무엇이란 무엇인가.

.....

 

 

*

 

많이 찌질한 사족.

아마 내가 꿈꾸던 사오십대의 나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왕년에 소설을 좀 써본, 그러나 소설가로 일가를 이루기에는 재능이든 열정이든 뭐든 좀 부족했던, 그래도 그 '-끼'를 가지고 무슨 유사한 글쓰기를 하는 서울대 교수. 이건 정말로 사족이다. 이참에 찾아본다.

 

- 사족[뱀 발]이란 무엇인가.

 

 

*

 

유의미한(?) 족.

'쳐맞다'.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역시 사전에 없는 비속어이다, 헐.

'처맞다'도 없는 말이다. 안타깝다! 

가끔씩은 내가 (입-아가리를?) 더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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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19-11-18 15:54   좋아요 1 | URL
앗, <죄와 벌>은 민음사에서 나왔습니다, 나온지 오래 됐습니다^^;

타이슨은, 사실 저는 누구인지 잘 모르는 인물이고요,
저 책을 보다가 찾아보고 ‘아, 이 양반~‘ 했지요.
러시아의 전설적인 레슬러 알렉산드르 카렐린과 붙여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Falstaff 2019-11-18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쳐맞다‘ 혹은 ‘처맞다‘는 띄어쓰기 하면 괜찮은 거 같네요. 부사로 ‘ㅊ‘ 형제가 뜰 테니까요. ^^
제가 생전 처음 읽은 수필집이 램이 쓴 셰익스피어였습니다만.... 생각나서 댓글 쾅!

푸른괭이 2019-11-18 20:2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새로 찾아보니, 저 책에는 ‘처맞다‘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메일 받고 외로웠어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9 18:43   좋아요 0 | URL
사전 찾아보니 : ˝ 처 - ˝ 가 마구, 많이를 뜻하는 접두사‘라고 나오네요.
처먹다, 처넣다, 처맞다, 처박다, 처대다, 처담다......

푸른괭이 2019-11-1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두사는 그런데요, 처먹다, 처넣다 등은 사전에 있는데 처맞다, 는 너무 쎈^^; 탓인지 없던데요? 아무튼 어감은 잘 전달되는 듯요^^;
- 근데 대댓글(?) 다는 법을 모르겠네요 ㅋㅋ

Mind 2019-11-20 16: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대댓글 다는 건 댓글 타래의 맨 위 댓글에 있는 ‘댓글달기’ 단추를 눌러서 작성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곰곰생각하는 발 님한테 대댓글 드리려면 Falstaff 님 댓글에 있는 댓글달기 단추를 눌러 작성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처맞다’가 맞고 ‘쳐맞다’는 틀린 거란 사실을 확실히 밝혀두고 싶네요. 물론 아시겠지만 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참에 여기에 확실하게 밝혀두는 겁니다. 위 곰곰생각하는발 님 댓글에 나와 있듯이 ‘처- ’ 접두사는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사죠. 접두사 ‘처-’는 웬만한 동사에는 다 갖다붙여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해서 그런 활용 동사를 일일이 사전에 등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처맞다’란 동사가 아직 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은 까닭이겠죠.

한데 요즘 인터넷 누리꾼들이 대부분 잘못된 접두사 ‘쳐-’를 붙여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Daum) 기사 댓글란에 가보면 잘못된 접두사 ‘쳐-’를 붙인 비난 · 조롱 · 욕설 · 열폭 댓글들이 넘쳐납니다. 한국의 인터넷 언어가 무척 거칠어지고 천박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장하면 한국인들의 종특이 언어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참고로 저는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이랄까, 민도랄까, 양식이랄까, 이런 걸 아주 낮다고 봅니다. 지위고하, 학력고하, 빈부격차, 권력유무를 막론하고 모두 다 찌질하고 비열·비굴하고 천박하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봅니다. 저 자신도 거기에 포함되는 건 물론이고요.
 

 

지난 화요일 저녁-밤에 이런 곳에 갔다.

출연료가 없는 줄 알고(난 바보??) 갔기 때문에,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 완전 짜증이 났는데, 도착한 다음 구성작가분께 출연료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구, 안 왔으면 큰일 날뻔 했네요!"라는 말이 절로 -_-;; 알고 보니 메일에 다 쓰여 있었는데 읽다 말았던 것이다. 난 정말 부자?ㅋㅋ 그게 아니라, 내 책에 대해 말할 기회가 워낙 없어서 '착한'(!) 마음으로 간 건데, 돈까지 받아서 좋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무척 신선했다. 학교 바깥 사람들의 생활을 잠시 엿보는 기쁨도, 역시나, 신선했다. 다만,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흑. 이런 암초.

 

https://audioclip.naver.com/search?query=%EA%B9%80%EC%97%B0%EA%B2%BD%20%EC%82%B4%EB%8B%A4%EC%9D%BD%EB%8B%A4%EC%93%B0%EB%8B%A4

 

나는 원래 내 방송, 다시 안 듣는다.(들을 방송도 별로 없지만 ㅋㅋ) 남편 말론, 말도 너무 빠르고 어투도 사투리거나 그것도 아니거나 완죤 이상하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안 듣기로 한다.

 

그다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판매부수는 별로 흔들림이 없지? 오히려 옆에 책이 아무것도 안 해도 나간다는... 역시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할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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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팠다, 이 점을 그는 분명히 알아보았다. 그녀 앞에서 예의 그 불안을 느꼈음에도, 그는 갑자기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Marie있잖아아마 몹시 피곤한 것 같으니까, 제발 화내지 말고. 혹시 네가 괜찮다면, 가령 차라도 어때, ? 차를 마시면 힘이 날 텐데, ? 네가 괜찮다면!”

여기에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당연히 괜찮죠, 예나 지금이나 어린애로군요. 할 수만 있으면 좀 줘요. 정말 집은 왜 이리 좁은지! 춥기는 또 엄청 춥네!”

, 내가 지금 당장 장작을, 장작을나한테 장작이 있거든!” 샤토프는 정신없이 허둥댔다. “장작이라어쨌든 그래도 일단은 차부터!” 그는 필사적인 결의를 다지듯 손을 내젓더니 모자를 쥐었다.

어디 가요? 그러니까 집에 차가 없다는 거로군요?”

있을 거야, 있을 거야, 있을 거라고, 지금 당장 모든 게 있을 테고.” 그는 선반에서 권총을 집었다.

지금 당장 이 권총을 팔아서· 아니면 전당 잡히거나.”

진짜 바보짓일뿐더러 엄청 오래 걸리겠군요! 당신한테 아무것도 없다면 여기 내 돈을 가져가요, 이건 8그리브나 정도 되겠군요. 내 전 재산이에요. 당신 집은 꼭 정신 병원 같아요.”

필요 없어, 네 돈은 필요 없고, 내가 지금 당장, 냉큼, 권총은 없어도 되거든.”

그는 곧장 키릴로프에게 돌진했다. 분명히, 표트르 스테파노비치와 리푸틴이 키릴로프를 방문하기 2시간쯤 전의 일이었을 터이다. 샤토프와 키릴로프는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만난다고 해도 인사도, 말도 하지 않았다. 아메리카에서 너무 오랫동안 함께 <누워 있었던> 것이다.

키릴로프, 당신 집에는 항상 차가 있죠. 차와 사모바르가 있나요?”

방안을 거닐던(평소처럼 밤새도록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키릴로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막 뛰어들어 온 사람을 주의 깊게, 그래도 별로 놀라지는 않고 바라보았다.

차도 있고 설탕도 있고 사모바르도 있어요. 그러나 사모바르는 필요 없을 거요, 차가 뜨거우니까. 앉아서 그냥 마셔요.”

키릴로프, 우리는 아메리카에서 함께 누워 있었죠. 나한테 아내가 왔어요. 나는. 차 좀 줘요. 사모바르도 필요해요.”

아내가 왔다면 사모바르도 필요하겠네요. 하지만 사모바르는 나중에. 나한테 두 개가 있거든요. 우선은 탁자에 있는 찻주전자를 가져가요. 뜨거워요, 아주 뜨거워요. 전부 가져가요. 설탕도 가져가요. 전부. 빵도. 빵이 많거든요. 전부. 송아지 고기도 있어요. 돈도 1루블 있어요.”

어서 줘, 친구야, 내일 돌려줄게! , 키릴로프!”

그럼 스위스에 있던 그 아내인가요? 거참 좋은 일이네요. 당신이 이렇게 뛰어들어 온 것도 좋은 일이고.”

키릴로프!” 샤토프는 팔꿈치와 겨드랑이 사이에 찻주전자를 끼고 두 손에 설탕과 빵을 든 채 소리쳤다. “키릴로프! 만약만약 당신이 그 끔찍한 환상을 부정하고 무신론의 미망을 내팽개칠 수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될 텐데, 키릴로프!”

스위스에서의 일 이후에도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군요. 스위스에서의 일 이후라면, 거참 좋은 일이요. 차가 필요하면 다시 와요. 밤새도록 와도 좋아요, 아예 안 자거든요. 사모바르도 있을 거요. 1루블도 가져가요, 여기. 어서 아내한테 가봐요, 난 여기 남아서 당신과 당신의 아내 생각을 할 테니까.”

마리야 샤토바는 샤토프가 민첩함에 만족한 기색이 역력했고 거의 탐욕스럽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사모바르를 가지러 뛰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겨우 반 잔 정도만 마셨고 빵도 조그만 조각 하나만 삼켰을 뿐이다. 송아지 고기는 꺼림칙하다는 듯 짜증스럽게 거절했다.

넌 아픈 거야, Marie, 너의 모든 것이 너무도 아파 보여·.”

샤토프는 수줍게 그녀 주위를 맴돌면서 정말 수줍게 말했다.

물론, 아파요, 제발 좀 앉아요. 차가 없었다 어디서 가져온 거죠?”

샤토프는 가볍게, 짧게 키릴로프 얘기를 했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뭔가 들은 얘기가 있었다.

알아요, 미친 사람이죠. 이제 됐어요. 세상에 바보가 좀 많아야 말이죠, ? 당신들 그래서 아메리카에 갔다면서요?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신이 편지를 썼죠.”

 

 

많이 고치고 있다. 거의 새로 번역하는 느낌인데, 아마 다 하고 보면 딱히 그럴지도 않을 것이다. 이른바 원판 불변(^^;)의 법칙이랄까. 아무튼 <악령> 거의 막바지. 레뱌드킨 오누이 피살 사건에 완죤 정신이 나간 샤토프 앞에, '마리 샤토바'가 돌아온다. 이어지는 장면은 그녀가 스타브로긴의 아이를 낳는 것이다. 그 사이, 오랜 만에 재회한 그녀 앞에서 살살 녹고 반짝반짝 빛나는 샤토프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참... 도스-키의 소설의 출발점이 감상주의(!!!+ 낭만주의)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 참 안 변한다! 마리와 샤토프 장면, 너무 감동적이다!^^; 정녕 독자의 금선(!)을 건드린다.

 

그다음, 짧지만, 키릴로프와 샤토프의 대화 장면. 중간에 "친구야~" 하는 저 대사만 반말인데, 작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감정이 너무 격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애매하다. 아무튼 이 부분도 참 좋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천국-지옥, 아무튼 사후에 다시 만난 샤토프와 키릴로프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내 소설로 말이다. 혹은, 반대로, 소설 속에서 조금만 언급되는 둘의 아메리카 체류기도 상상, 써보고 싶었다. 이런 꿈조차도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악령>은 남는다! 스타브로긴보다 인간적으로, 샤토프와 키릴로프가 더 좋다. 이들이말로 <악령>의 감초. 이미지를 한 번 가져온다.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이 정녕 청춘(!)이라는 것이다. 자살도 이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두 컷 모두 오른쪽이 샤토프. 아래 사진은, 지금 내가 다듬은 저 장면인 것 같다. 소설 묘사를 보면, 샤토프도, 키릴로프도 방이 엉망이다. 정녕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 그들'이다.  

 

새삼스럽지만,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사람이 이런 소재로(혁명과 테러), 이런 인물들로(등신들과 광인들과 한량들), 이런 화법으로(안에서 들여다보기) 소설을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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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소설로

 

김연경(소설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

 

지난 5월 말, 주말에 아이와 함께 연례행사처럼 동물원에 갔다. 홍학부터 기린, 고릴라, 원숭이 등을 둘러보고 코끼리에 이른다. 진짜 코끼리를 구경하고 작은 나무 코끼리 위에 앉아 보고 큰 나무 코끼리를 만져본 다음 넓은 정자에 자리를 잡으니 12시 반이다.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을 먹는다. 주변의 대부분이 이런 가족들이다. 점심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한 중년 남자가 여자애를 데리고 나타난다. 손녀를 정자에 눕히는가 싶은데, 손녀는 벌써 곯아떨어진 상태다. 한 서너 살? 할아버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녀의 머리를 받혀준다. 고전적인 체크무늬가 들어간 짙은 베이지색 닥스이고 다림질도 잘 되어 있다. 손녀는 문자 그대로 큰 대자로 누워 있다. 배를 덮어주었으면 싶지만, 날이 더워 다행이다. 갑자기 자리에 앉지도 않고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저어, 휴대폰 좀 잠깐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어르신의 부탁에 남편의 표정이 굳어진다. 원래도 상냥한 인상이 아니거니와 아침에 면도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 무뚝뚝하니 더 살벌하다. 내가 옆에서 쿡쿡 찌른다.

잠시 빌려드려, 그거 뭐라고.”

휴대폰을 아이 유모차 뒤에 넣어두고 와서요전화 한 통만 부탁드립니다.”

마지못해라는 단어를 온 얼굴에 써 붙인 표정으로 남편은 휴대폰을 건넨다. 할아버지가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른 번호로 한 번 더 건다. 남편의 삼엄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점잖은 설명을 덧붙인다.

부인이 안 받아서, 제 휴대폰으로 해봤습니다.”

그 사이, 식사를 끝낸 아이와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랑이나 곰을 보러 가지 않고 하마 쪽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걸음을 뗀 지 한참 지났음에도 남편은 계속 정자에서 뭉그적댄다. 내가 전화를 한 다음에야 머뭇머뭇 내려온다.

아까 그 할아버지, 영 기분 나쁘단 말이야.”

, ?”

그제야 남편은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횡행하는 휴대폰 사기를 줄줄이 나열한다.

, 그럼 빌려주지 말지!”

아니, 네가 빌려주라고 했잖아!”

나는 그런 사기가 있는 줄 몰랐지!”

심지어 남편은 그동안 할아버지와 손녀의 동영상까지 찍어두었다. 자기 휴대폰에 찍힌 두 전화번호는 각각 동물원 할배’, ‘동물원 할매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었다. 지금껏 기다린 것은 그 할머니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딱 봐도 사람 점잖아 보이고 어린애까지 있고, 결국 할머니랑 만났다며?”

사기꾼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어디 있냐? 애도 어디서 잡아 왔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도 이상해. 물론 돈 주고 이런 쉬운 번호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두 개 다 그렇다고. 할머니 말로는, 할아버지 핸드폰도 유모차가 아니라 집에 두고 왔대. 서로 말을 잘못 맞춘 거지.”

원래 겁이 많은지라 남편의 얘기에 나도 귀가 솔깃하다. 세상에! 그래, 진짜 할아버지라면 손수건으로 아이의 배를 덮어주었을 거야. 무엇보다도, 그는 내 남편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내 아이의 얼굴을 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건 말하자면, 쓰이지 않은 소설이다. 상상력은 우리를 불안의 도가니로 안내한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아무 일 없다. ‘동물원 할배동물원 할매는 완전히 지워진다. 한 보름쯤 뒤 남편이 먼저 그의 존재를 상기해준다.

그 할아버지 있잖아, 그냥 멀쩡한 사람인 거 같아. 업체 하나 갖고 있고 카톡에 사진도 자주 올리고

그게 멀쩡의 증거가 돼?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면?”

다시 시작된 의심의 상상력은 그 촉수가 더 끈질기다. 설마 장기밀매업자? 소설 쓰고 있네, 정말.

 

*

 

프로필을 써야 할 때면 자문한다. 과연 나는 소설가인가. 전업 소설가는 아니지만, 나의 첫 책은 1997년에 나온 소설집이다. 이후 내가 쓴 책과 번역한 책을 쭉 세 보니 권수가 아닌 종수로 따진다면, 그래도 소설책이 제일 많다. 올여름에는 여러 지면에 연재한 세계문학 관련 글을 묶은 책(󰡔살다, 읽다, 쓰다: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민음사)이 나온다. 그동안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교과서 형식으로 편집, 정리한 19세기 러시아문학 연구서도 내년 초에는 출간될 예정이다. 이런 식의 소위 비평적 글쓰기 역시 대학원에 들어간 1997년부터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소설에 대한 욕심은 더 크다. 우리의 모든 활동처럼 글쓰기도 이력이 쌓일수록 한동안은 좋아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분명히 임계점이 있다. 소설 쓰기는 특히 그렇다. 40대도 절반만 남겨놓은 현재, 왜 나는 20대 초반보다 소설 쓰기가 더 힘든가.

20161학기부터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된 소설창작 강좌를 맡고 있다. ‘후생가외라는 말을 실감하는 수업이다. ‘읽기수업에서는 대개 내가 학생들보다 위에, 적어도 앞에 있지만 쓰기수업은 절대 그렇지 않다. 과연 문예창작’(창작으로서의 문학)학문’(학문으로서의 문학)의 영역일 수 있는가. 비슷하게, 소설작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가. 실상 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은 내가 당장 강의실에서 실천 중인 그 해법이란 아주 원초적이다. 바로, 읽기와 쓰기다. 전반부에는 고전을 읽고 후반부에는 요즘 우리 소설을 읽는다. 전자는 카프카, 보르헤스, 멜빌, 류노스케, 김승옥, 이청준 등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고 후자는 매 학기 절반 이상 바뀌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은 꼭 읽는다.

읽기와 나란히 쓴다. 나는 학생들이 쓰는 것을 꾸준히 읽고 수업 시간에 공유한다. 이미 완성된 채 왔으되 앞으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학생도 있고, 반대로, 아주 잘 쓰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 쓸 것 같은 학생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설가의 길은 결코 권장 사항이 아니다. 소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결국 버티는 놈이 이긴다. 한두 쪽, 한두 편 잘 쓰긴 쉽되 끝까지 밀고 나가기는 힘들다. 그다음, 많은 학생이 한 학기 내도록 특정한 소재를 예의 그 자신의 문체로 소설화한다. 그런데 소재와 문체의 측면에서 같은 작가임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는가가 그만큼 중요함을 증명한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과정에서 무한한 방법론적 고민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요컨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다른 한편, 뛰어난 작가일수록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가고(탐구) 찾아내는(상상) 능력이 뛰어나다. 말이 쉬워 상상력이지, 그 저변에 도사린 건 역시나 피나는 노력이다. 톨스토이는 평생 자기 얘기만 썼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의 얘기를 썼다. 주로 사회적 사건을 다루었는데 특정 이야기에 꽂힌 순간, 자기 안의 수많은 가 주인공의 형상으로 살아난다. 청년 김승옥의 소설은 온통 그 자신의 얘기이다. 청년 이청준의 소설 역시 그렇지만, 중장년 이청준은 다소 다르다. 그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런 수고와 고생을 하는 작가이다.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 속에서 무수한 의 페르소나를 창조한다. 흔히 성실’, 좀 더 무겁게는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고리타분한 자질이 천재성과 동의어임을 알겠다. 소설 쓰기에는 우아한 게으름과 촌스러운 학구열이 다 필요하다.

이 순간에도 기다린다, 나를 찾아올 이야기를.

동시에, 눈을 불을 켜고 찾는다, 그 이야기를.

 

*

 

어제 아침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가방 메기 싫어!”

가방은 내가 들고 살살 달래며 집을 나선다학교가 보일 무렵 가방을 메 주려고 하자 또 짜증이다.

가방 안 메! 안 멘다고!”

정말이지 너무 속상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꾹 참고 간신히 얼러서 학교 안으로 들여보낸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아니, 짜증이 난다, 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잠을 깬 아이가 요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밥을 빨리 안 먹는 것, 계속 종알대는 거, 엘리베이터 놓치는 것, 다 일상사지만 짜증이 난다. 학교 주변이 조용하니 아이도 긴장하는 눈치다. 학교 안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데 또 짜증이 확 뻗친다. 닫힌 교문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서성이신다. 4학년 손자가 필통을 두고 갔다며 손수 들고 오신 거다. 보안관이 교실로 전화를 건다. 막 뛰어나온 학생의 얼굴에는 창피함이 역력하다. 필통, 그거 뭐라고.

학교 주변, 여전히 명실상부한, 명명백백한 지각생이 더러 있다. 저 여유 있는 표정들! 지각, 그거 뭐라고. 학교,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 맞다, 모래놀이도구! 하지만 어쩌랴. 손자 필통 들고 뛰어온 할머니처럼 하긴 싫다. 필통, 그거 뭐라고. 사실 할머니 욕심이지. 점심시간쯤 되니 아침의 짜증도 그냥 가시고 없다.

오후 3, 교문에서 아이와 만난다.

“10개를 포함해서 10개 이상 맞힌 사람은 모두 4단원 통과예요! 나도 통과했어!”

단원평가 시험지를 받아보니 75. 반 평균을 웃도는 점수라지만 엄마는 계속 구시렁거린다.

한두 개만 더 맞히지, 하긴 네가 더 아쉬울 텐데 엄마가 자꾸 떠드네.”

나는 하나도 안 아쉬워. 75점이든 80점이든 남이 안 풀고 내가 풀어서 100점이나 다름없거든?”

시험,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홉 살인 아이는 발달이 장애 수준으로 지체되어 있다. 다행히 학교 잘 다니고 4cm5cm도 잴 줄 알지만 손이 떨려서 마지막 1cm 정도는 구불구불하다. 그런데도 엄마인 나는, 44년 평생 나 자신을 잡아 왔듯, 아이를 잡는다. 내 안에는 여전히 짜증 뻗치는 아홉 살 꼬마가 숨어 있는데, 내 앞에 그런 꼬마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아들이다. , 엄마, 그거 뭐라고.

 

*

 

이야기란 내 머릿속의 관념이라기보다는 내 배 속의 아이 같다. 과연 어떤 아이가 나에게로 올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잘 알려진 소설은 이런 두려움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소설과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케빈의 엄마인 에바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 더 할 필요가 있다. 출산이 고()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요즘은 더 절감한다. 아이는 어떤 인간으로 자랄 것인가. 이미 첫 문장, 첫 문단이 쓰인 이야기, 그것은 어떤 소설로 자랄 것인가.

 

*

 

<쓺>에서 청탁이 와서 쓴 글이다. <문학실험실>에서 단행본도 나오고 있다. 물론 주옥(^^;) 같은 작품이 많지만 어느 정도나 반응을 얻고 있는지, 내가 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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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yes24.com/Article/View/40079

 

사람이 책을 내고 이렇게 반응을 얻다니. 

워낙에 처음(혹은 오랜만에?) 있는 일이라 당혹스럽지만, 아무튼 좋은 일이다.

 

어릴 때는 뭔가를 위해 살고 읽고 썼던 것 같다.

'뭔가', 즉 그만큼 야망-욕망이 컸던 시절이다.

요즘은 이게 다 동의어다. 살다=읽다=쓰다.

간만에 교보 들렀다가 전화한 동기의 말처럼

"어차피 우리는 살거나 읽거나 쓰고 있으니까"

제목 보고 집어 들었는데, 내 책이었다는.

(그러는 너는 왜 또 회사 나왔냐? -_-;;)

 

북토크에 와 계셨던 분들, 조금씩, 다를 거다.

젊은(특히 학생) 그룹은 아마 그 무렵의 나처럼 '뭔가'가 강할 터이다.

중장년을 넘긴 분들은 이 역시 삶의 한 양상일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는 것이다.

 

이 책의 계약을 도와주었던 편집자가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한다.

그녀도, 잠시, 어쩌면 수시로 그리워했다.

아마 저 원고들에 대해 얘기하고

함께 도스토-키 책 만들고 하던 우리의 삼십대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주말 아침에 커피숍 앉아 담배 피우면서(그 커피숍 사라진 지 오래)

<카라마조프> 교정지 넘겨본 추억도 있다.

모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다.

행사장 가보니 알겠더라.

내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편집자들이 다 나보고 열살은 족히 어리다는 -_-;

 

 

장미는 지고

장미의 이름만 남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돈키호테>에서 <장미의 이름>까지. 책에서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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