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함께한 나의 사반세기

- 김연경: 소설가, 번역가, 서울대 강사

 

20079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156번으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낸 이래 총 714권의 역서를 냈다. 497~498번으로 나온(나올) <백치>를 끝으로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다 번역했고 그사이에 <지하로부터의 수기>  번역도 내놓았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내 번역이다. 그동안 도스토옙스키와 러시아 문학을 향한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전문학 전반에 대한 갈증, 그리고 특히 러시아 문학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겠다. 정녕 묵직한 벽돌 책에는 각종 숏츠와 스크롤로 인한 뇌 썩음을 치유하는 신비의 묘약 성분이 숨어 있는 듯하다.


































세계문학의 빛나는 고전 중 도스토옙스키는 정녕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작가다. 동시대 러시아의 또 다른 거장 톨스토이와 정반대로, 그는 보편성(생활 밀착형)이 아닌 특수성에 천착해 삶과 관념의 변증법을 소설화한다. 그의 주인공들이 평범이 아닌 비범의 대명사인 것은 뭔가 천재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들은 수재임에도 학교 안 다니는 대학생, 자격증이 있음에도 경제활동 안 하는 백수, 각자 자기 식으로 미친 광인에 불과하지만, 세계와의 대립 구도에서 각종 을 넘는 인물로 그려진다. ‘지상으로 올라온 지하인-관념인의 활약에서 의 존재가 요청되는 것도 흥미롭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써서 세계를 구원하려던 몽상가였는데, 적어도 번역자인 나와 내 가족을 구제해준 건 맞다.


1999년 초,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 학위논문을 민음사의 고() 박맹호 회장에게 보냈다. 스물네다섯 젊은 학자의 당돌한 행동에, 고인은 편집부 직원의 유선 전화로써 앞으로 함께 일해보자는 황송한 답신을 보내주셨다. 2년 뒤,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참 무례하게도 무작정 민음사를 찾아가 당시 편집장이었던 시인 박상순에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번역을 맡겨달라고 문자 그대로 졸랐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첫째, 그때 막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괴테의 <이피게니에> 등을 내놓은 <세계문학전집>에 독자로서 존경과 응원을 표현한 발걸음이었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정겨웠고 하얀 바탕의 밝은 표지에 절반을 채운 명화의 고풍스러움이 좋았으며 적절히 건조한 속지도 마음에 들었다. 둘째, 그것은 석사 과정 때 <악령> 번역을 내놓은 이력에 덧붙여 노문학자를 꿈꾸던 대학원생의 포부를 밝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고전문학 번역을, 그 한심하고 미련한 측면까지 포함하여, 고도로 지적이고 숭고한 작업으로 생각해왔다. 당시 나의 제안은 물론 가뿐히 거절당했지만, 3년 뒤 박사학위를 따고 찾아갔을 때는 귀중한 계약서를 받아쥘 수 있었다.


봉천동의 네다섯 평짜리 원룸에서 하루 두 갑 이상의 담배를 연거푸 피워가며 밤낮없이 번역했다. 당시 관리비가 포함된 월세가 28만원이었고 스물아홉 살 갓 박사로서 서울대에서 두 강좌를 맡아 80만원 정도를 벌었다. 어엿한 사회인임에도 학생 시절과 다름없이 가난한 처지가 좀 서러웠지만, 그 역시 자업자득이었다. 강의 시수를 줄임으로써 대신 시간을 벌었다.


시작은 분명 착한 마음이었다. ,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소설을 향한 사랑, 전공자로서 소명감에서 시작한 번역이었다. 그랬던 것이 제비와 까치처럼 은혜 갚음을 해주고 있다. 막스 베버의 말대로 직업으로서의 학문’, 간단히 교수 되기가 얼마나 힘든가. ‘직업으로서의 문학’, 간단히 소설 써서 먹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번역가 인생도 어느덧 25, 전임교원이 아니어도, 인기 작가가 아니어도 나의 삶은 그 어느 시절보다 충만하다. 번역서의 시간을 벌어주고 어엿한 인세 생활자가 된 덕분이다.


여전히 잠을 많이 자고 꿈도 많이 꾼다. 구체적으로 <네이버>의 채널을 통해 초고를 잡아둔 도스토옙스키 연구서를 대거 퇴고, 출간하고 싶다. <19세기 러시아문학 산책>(민음사, 2020)에 이어 20세기까지 아우르는 연구서도 꾸리고자 한다. 고전문학 공부의 기록인 <살다 읽다 쓰다>(민음사, 2019)를 낸 바 있는데, 특정한 주제가 더 도드라지는 에세이를 책으로 묶어볼 계획(<한겨레 출판>)이다. 첫 장편 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민음사, 2009) 출간 이후 약 2년에 한 권씩 꾸준히 소설을 써온 흐름도 유지하고 싶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나의 모습은 읽고 쓰는 나이다. 참 고소하게도 누구나 다 겪는 노화에 덧붙여, 좀 억울하게도 연이은 가족 참사가 터져 체호프의 작은 주인공들처럼 기가 폭 죽었음에도, 오히려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알겠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해설에 썼던 문장을 상기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함께한 나의 사반세기

(프리미엄콘텐츠: 김연경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 https://youtu.be/4-Dn2NXCuiU?si=gDyrQPW5yQPskk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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