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마을지기
아쉽게도 이번 경매껀은 입찰하실 때, 현재의 가격보다 1천원씩만 올리는 규칙에 어긋난 입찰껀이 다수 발생하여, 입찰이 취소되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예정된 세트 경매가 모두 이루어진 후, 다음주 월요일, 즉 7월 25일 동일한 시각 (2~3시)에 재경매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2005-07-20 15:04

얼른 회의를 끝내고 경매에 참여해야 하는데, 안절부절, 좌불안석.

그러나 자리에 와보니 이미 3시하고도 30분이 경과된 후.

에고, 누구에게 얼마로 낙찰되었나 싶어 힘없이 클릭해보는데, 마을지기님이 남긴 댓글.

오늘 경매에 참여했던 분들께는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다시 기회가 생겼다.

에루에헤야 어야디야 어절시구 흥이로구나~ ㅎㅎㅎ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엔리꼬 2005-07-2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허벌레~~ 조선인님, 지금 긴급 연락이 왔는데요. 조선인님 회사 다음주 월요일 2시부터 3시까지 회의가 잡혔답니다... 안타깝습니다. ^^

물만두 2005-07-20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흐흐흐 납량특집인가요^^

조선인 2005-07-2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서림님, 어떻게 아셨어요. 으아아아아앙 절망중입니다. ㅠ.ㅠ

chika 2005-07-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쯔쯧,,, 정말 회의예요?

조선인 2005-07-2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ㅠ.ㅠ

바람돌이 2005-07-21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회사는 휴가도 안 보내준다면서 무슨 놈의 회의는 그리 많이 한다나요? 내 참! 회의주의자들 치구 잘 되는 것들 없다는데...^^

조선인 2005-07-2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사막의 그림자님,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히이잉.

조선인 2005-07-2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방금 전 결론이 나왔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SAT입니다. ㅠ.ㅠ
 

문근영 모드는 아니지만 엉겁결에 2개나 받으니 무지하게 기쁩니다.

착용컷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영엄마 2005-07-1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는 하나밖에 안 주셨어요!! ㅎㅎ ^^
 

원주 치악산에 한 절이 있어 하루는 불존(佛尊) 수좌(首座)가 법당(法堂) 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감싸고 있었고, 구렁이와 꿩이 서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 이렇듯 서로 물고 버티며 놓지 않는 다툼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싸움하는 사이에 어부지리(漁父之利)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불존 수좌가 지팡이로 구렁이를 풀어 꿩을 구하니, 이날 이경(二更 밤10시경)에 하얀 형상을 한 노인이 와서 전등(剪燈)의 왼쪽에 앉아 쇠붙이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기를, "나는 이내 이 절의 종을 주조하는 화주승(化主僧)이다. 사방에서시주를 모아 자선(慈善)을 베풀고자 이 큰 종을 주조하였으나 종소리가 맑지 못하여 도리어 죄업(罪業)에 대한 응보(應報)를 받았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구렁이의 뜻이었고, 지금에는 재앙과 액운이 헤아릴 수 없다. 오늘 다행히 꿩 한 마리를 얻어 점심으로 먹으려 하였다. 그대의 자비로 이와 같이 한번 굶주렸으니 반드시 그대를 대신으로 먹어야겠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를 위해 종을 쳐서 소리를 내면 이러한 추한 응보를 면할 것이니, 이것 또한 자비이다." 하고 말이 끝나자 홀연히 떠나갔다.


의심스러워 괴상하게 여기는 사이에 앞에 있는 울리지 않던 종이 천천히 하늘 밖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두운 속에서 한 쌍의 꿩을 보니 부리를 사용하여 종을 울렸다. 한 번은 소리가 크고 한 번은 소리가 작아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마디가 있었고 한 번은 암컷의 소리였고 한 번은 수컷의 소리여서 암컷과 수컷의 차례가 있었다. 일종(一宗)이 죽고 일종(一宗)이 살았으니 죽고 사는 것에는 표지(標識)가 있으며 이것이 불문(佛門)에서 예악(禮樂)을 짓는 법이다.


동틀 무렵에 노인이 다시 와서 말하기를, "나는 종이 울리는 힘을 입어 얽어맸던 몸에서 벗어나 승천한다."고 하였다. 해가 솟아 밝아올 무렵에 가서 보니 금구렁이 한 마리가 남쪽 처마 아래에 죽어 있으므로 승(僧)이 죽었을 때의 예와 같이 장사지냈다.


아, 꿩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목숨을 구해준 승(僧)의 은혜를 보답했고 승(僧)은 꿩의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보답을 받았다. 구렁이는 승(僧)으로 인하여 생명을 아껴 꿩을 살려 주었고, 꿩으로 인하여 쌓였던 억겁(億劫)의 고통을 벗었으니 이것이 일거삼득(一擧三得)이다. 사물은 비록 같지 않았으니 세상에서 뛰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치악(雉樂)으로써 그 산의 이름으로 하고 종을 쳤던 소리로써 온 나라의 사찰에 퍼졌다고 한다. (자웅종기에는 雉岳이 雉樂으로 되어 있음.)


- 해남 대흥사에서 1921년 발간한 「범해선사 문집」중의 '자웅종기(雌雄鐘記)'
- 『원주얼 9호』에서 발췌
 
자료관리부서 : 원주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 033-741-2226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7-1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5-07-1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꿩이 부리를 사용해서 종을 울렸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네요 부리가 해낸 거군요

水巖 2005-07-1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남 대흥사라니 생각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茶神傳의 초의선사와 소치 허유.
 

 

述懷  술회  산속에 사는 맛

 

結茅仍補屋  결모잉보옥  띠풀을 엮어서 지붕을 이고

種竹故爲籬  종죽고위리  대를 심어서 울타리 삼았네

多少山中味  다소산중미  그런대로 산속에 사는 맛을

年年獨自知  년년독자지  해가 갈수록 혼자서 느끼네

 

雪後(설후)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외딴 마을 섣달 눈이 쌓인 채 안녹으니,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그 누가 사립문을 즐거이 두드리랴.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밤이 되어 홀연히 맑은 향이 전해 오니,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매화꽃이 가지 끝에 피었음을 알겠노라. 

유방선

17살(1405년, 태종 5)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21살 되던 해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관련되어 연좌되어 청주에 유배되었다. 그 이듬해 다시 서울서 더 멀리 떨어진 영천으로 유배되었는데, 22살의 청년은 팔공산 기슭에 태재(泰齋)라는 현판을 붙이고 고을 제자들을 가르치며 5년을 보냈다. 27살이 되던 해 유배에서 풀려나 원주로 가 다시 제자를 받았고, 그 무렵 법천사에 기거하며 사사를 받은 제자가 서거정, 권람, 한명회 등이다. 그 셋은 훗날 모두 영의정까지 올라 스승 유방선의 이름을 높였으나, 유방선 자신은 다시 모함을 받아 영천 유배길을 떠났고, 39살(1427년, 세종 9)이 되어야 풀려났다. 세종은 그의 학문이 깊음을 알고 유일()로 천거하여 주부(簿) 등의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고 후학양성과 시문, 산수화로 소일하였다. 하지만 세종은 이에 굽히지 않고 집현전 학사 등을 보내어 그의 자문을 구하였고, 경제에도 밝은 그의 재능을 활용하고자 크게 등용하려던 차 55살을 일기로 병사하였다. 문집으로 태재집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원주 지정면 안창리 덕가산 입구의 마을에는 서당 훈장을 지낸 황보라는 괴짜 선비가 있었는데, 성질이 괄괄한 데다가 참을성이 없었다. 가슴에 치미는 울분은 한바탕 욕 으로 퍼부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지 않으면 풀지 못한 심화 때문에 때로는 몸져 누워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가 하는 욕도 가지가지여서 어 떤 욕은 입에 차마 담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는 상스러운 욕을 마구 내뱉으므로 주위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 황보씨는 > 원주목사로 부임해 온 원님에 대하여 심히 못마땅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제깐놈이 뭐라고 날 업신여겨 오라가라하누 △△같은 자식." 물론 마음 속으로 하는 욕이었다. 만약 욕이 원님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곤란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정 면을 향해 그의 특유한 욕설을 퍼부었을 만도 하지만 어느 존전이라고 당돌하게 나설수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째 끙끙 앓고 있었다. 의원을 데려와 진맥을 했으나 한결같이 심화로 인한 병이라 했다. "약이 소용없어요. 가슴에 품은 일이 있으면 모두 큰소리로 외쳐버려요. 그래야만 병이 나을수있어요." 다른 의원도 같은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원주목사에 대한 욕을 참다가 이> 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수개월을 앓고 있는데, 그 목사가 다시 한양으로 영전이 되어 떠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욕선비 황보씨는 큰일이 났다. "떠나기 전에 목사를 보고 실컷 욕을 퍼부어야겠는데, 어떻게 한담." 욕선비는 쇠약해진 몸을 일으켜 집의 하인을 시 켜 되도록 긴 사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무엇에 쓰려 하십니까?" "잔말 말고 긴 사다리를 만들어라" 하인은 산에서 긴 나무를 베어다 사다리 를 만들어 두었다.

그날 아침 원주목사의 행차가 덕가산 기슭 산길을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아둔 욕선비는 사다리를 메고 그 원님이 기나가는 길옆 바위에 걸> 쳐 놓고 올라가서 사다리는 바위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곤 원님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자니 구종별배를 거느린 원님 일행이 나> 타나 높이 솟은 바위 아래 가까이 이르고 있었다. 욕선비는 때가 지금이라는 듯, " 네이놈 듣거라 △△같은 목사놈아." 목사일행중 제일 먼저 들은 것은 한 아전이었다. 어느 정신병자이거니 생각했으나 목사를 향해서 주먹질 발짓으로 욕을 하는데, 민망스럽고 망칙스러워 들을 수가 없었다. 하도 욕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원님 행차가 발길을 멈추었다.

"저놈이 웬놈인고?" "이 고장에서 욕 잘하는 선비라 하오."
"그런데 어찌 저토록 떠들고 있는가?" "황송하옵게도 원님께 욕을 퍼붓는가 하오."
"내게 욕을 퍼붓고 있다고? 당장 잡아오너라."
몇 사람이 바위 곁으로 달려갔으나 까마득한 바위 위만 쳐다볼 뿐 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늦추고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 > 붙잡아 내릴 수도 없었다.
"안되겠습니다. 워낙 높은 바위인 데다가 제가 올라간 사다리는 바위 위로 거둬버렸습니다."

원님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욕선비는 갖은 욕을 퍼부었다. "△△같은 목사놈아, 너의 어미 △△은 여우 △△인데 그> 것은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이놈아 그것은 이세상에 네 애비하고 나밖에 없느니라." 원님은 기가 찼다. 저런 능지처참을 할 놈 봐라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 그냥 놔두고 어서 길을 재촉하렸다." 원의 행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욕선비는 욕을 그치지 않았고, 목사는 별 수 없이 생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그냥 지나갔다는데, 그 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를 욕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욕바위는 지정면 안창리 덕가산 골짜기에 있는데, 전설의 유형 가운데 전형적인 암석 전설을 가진 바위 이릉이다. 또한 바위의 명명이 고 을 원에 대한 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서민들의 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는 전설로 볼 수 있다.
 
자료관리부서 : 원주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 033-741-2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