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지정면 안창리 덕가산 입구의 마을에는 서당 훈장을 지낸 황보라는 괴짜 선비가 있었는데, 성질이 괄괄한 데다가 참을성이 없었다. 가슴에 치미는 울분은 한바탕 욕 으로 퍼부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지 않으면 풀지 못한 심화 때문에 때로는 몸져 누워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가 하는 욕도 가지가지여서 어 떤 욕은 입에 차마 담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는 상스러운 욕을 마구 내뱉으므로 주위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 황보씨는 > 원주목사로 부임해 온 원님에 대하여 심히 못마땅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제깐놈이 뭐라고 날 업신여겨 오라가라하누 △△같은 자식." 물론 마음 속으로 하는 욕이었다. 만약 욕이 원님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곤란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정 면을 향해 그의 특유한 욕설을 퍼부었을 만도 하지만 어느 존전이라고 당돌하게 나설수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째 끙끙 앓고 있었다. 의원을 데려와 진맥을 했으나 한결같이 심화로 인한 병이라 했다. "약이 소용없어요. 가슴에 품은 일이 있으면 모두 큰소리로 외쳐버려요. 그래야만 병이 나을수있어요." 다른 의원도 같은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원주목사에 대한 욕을 참다가 이> 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수개월을 앓고 있는데, 그 목사가 다시 한양으로 영전이 되어 떠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욕선비 황보씨는 큰일이 났다. "떠나기 전에 목사를 보고 실컷 욕을 퍼부어야겠는데, 어떻게 한담." 욕선비는 쇠약해진 몸을 일으켜 집의 하인을 시 켜 되도록 긴 사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무엇에 쓰려 하십니까?" "잔말 말고 긴 사다리를 만들어라" 하인은 산에서 긴 나무를 베어다 사다리 를 만들어 두었다.

그날 아침 원주목사의 행차가 덕가산 기슭 산길을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아둔 욕선비는 사다리를 메고 그 원님이 기나가는 길옆 바위에 걸> 쳐 놓고 올라가서 사다리는 바위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곤 원님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자니 구종별배를 거느린 원님 일행이 나> 타나 높이 솟은 바위 아래 가까이 이르고 있었다. 욕선비는 때가 지금이라는 듯, " 네이놈 듣거라 △△같은 목사놈아." 목사일행중 제일 먼저 들은 것은 한 아전이었다. 어느 정신병자이거니 생각했으나 목사를 향해서 주먹질 발짓으로 욕을 하는데, 민망스럽고 망칙스러워 들을 수가 없었다. 하도 욕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원님 행차가 발길을 멈추었다.

"저놈이 웬놈인고?" "이 고장에서 욕 잘하는 선비라 하오."
"그런데 어찌 저토록 떠들고 있는가?" "황송하옵게도 원님께 욕을 퍼붓는가 하오."
"내게 욕을 퍼붓고 있다고? 당장 잡아오너라."
몇 사람이 바위 곁으로 달려갔으나 까마득한 바위 위만 쳐다볼 뿐 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늦추고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 > 붙잡아 내릴 수도 없었다.
"안되겠습니다. 워낙 높은 바위인 데다가 제가 올라간 사다리는 바위 위로 거둬버렸습니다."

원님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욕선비는 갖은 욕을 퍼부었다. "△△같은 목사놈아, 너의 어미 △△은 여우 △△인데 그> 것은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이놈아 그것은 이세상에 네 애비하고 나밖에 없느니라." 원님은 기가 찼다. 저런 능지처참을 할 놈 봐라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 그냥 놔두고 어서 길을 재촉하렸다." 원의 행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욕선비는 욕을 그치지 않았고, 목사는 별 수 없이 생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그냥 지나갔다는데, 그 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를 욕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욕바위는 지정면 안창리 덕가산 골짜기에 있는데, 전설의 유형 가운데 전형적인 암석 전설을 가진 바위 이릉이다. 또한 바위의 명명이 고 을 원에 대한 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서민들의 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는 전설로 볼 수 있다.
 
자료관리부서 : 원주시청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 033-74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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