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난 담임 복이 있는 편이다.
참 좋으신 분들이었고, 잊지 못할 스승도 여러 분 만났다.
하지만 딱 2번, 운이 없었는데, 중1때와 고2때 담임.

중1때 담임은 반장, 부반장 어머니를 시켜 참 부지런히 돈을 걷었다.
나무 산다고 돈 걷고, 씨름판 겸 넓이뛰기터 모래 바꾼다고 돈 걷고, 기타 등등.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반장 어머니가 좀 극성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소풍 간다고 집집마다 전화해 이것저것 배분시켰는데, 우리집이 맡은 건 후라이드치킨.
반장 엄마는 아예 소풍장소까지 차를 몰고와 술이며 과일을 상자로 내려놓고 갔지, 아마?
그때 우리 어머니는 집 앞 치킨집에 웃돈까지 줘가며
새벽부터 문 열어 두 마리를 튀겨갈 수 있게 해줬고,
1마리는 선생님 드리고, 또 1 마리는 나랑 친구들이 나눠먹으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에게 줄래줄래 가서 1상자만 내려놓고 나오려 했으나
날 발견한 반장 어머니의 쌍심지로 인해 2상자 모두 술판 벌인 선생님들에게 바쳐야했다.
생전 처음의 호사를 눈앞에서 뺐기고, 어린 마음에 반장 어머니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ㅎㅎ

고2때 담임의 악명은 다 말하기도 싫다.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꾹돈을 상납해야 했는데,
오죽하면 울 어머니가 또 모의고사 보냐고 질색했을 정도.
그렇다고 처음부터 꾹돈를 줬던 건 아니다.
우리집의 경우 우편물 분실사고가 많아 성적표를 직접 받아가곤 했는데,
담임이 날 못 믿겠다며 어머니보고 직접 와서 받아가라고 했던 것이다.
울 어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그만 선생님 뵈러 갔다가 당신 보약을 깜박 잊고 놔두고 오셨기에 다음날 나보고 찾아오라 하셨다.
그런데 교무실로 찾아가보니 보약이 없단다.
당신이 모르고 가져갔다며 내일 돌려주겠다는 말을 하는 선생님 표정은 뭐 씹은 거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기 것도 아닌데 왜 집에 가져간 지 모르겠다고 선생님 흉을 봤고,
이에 질세라 어머니도 열심히 담임 흉을 봤다.
"니 담임 정신 사나운 건 진작에 알아봤다. 일 없이 책상 서랍을 열 번은 더 열었다 닫았다 하는데
그리 분잡스런 사람이 우찌 선생을 하는지, 원."
마침 우리집에 놀러와 있던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 모녀의 수다에 대경실색을 하며 결례를 범했단다.
서랍 여닫는 게 다 꾹돈 넣으라는 신호인데, 그걸 모른 척 했을 뿐 아니라
줬던 선물까지 도로 빼앗는 걸로 여길테니 선생한테 단단히 찍혔을 것이라고.
생전 처음 당해보는 경우와 충고에 어머니는 당황했고,
그게 계기가 되어 매번 꾹돈을 드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한 충고였고, 순진한 모녀였다.

* 딴 소리.
진주님이요, 촌지는 일본식 한자어래요.
그리고 숨은아이님이 어쨌든 촌지는 좋은 말인데,
나쁜 데 쓰는 게 안 좋다고 꾹돈이란 말 권했어요.
진주님, 숨은아이님, 분부 받잡았습니다. 히히
* 진주님 페이퍼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08118
* 숨은아이님 페이퍼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4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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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0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하네요.. ㅎㅎㅎ
저는 눈치가 없어선지, 하도 맞고 다녀서 그런건지 그런 기억이 별로 없어요.

Mephistopheles 2006-04-0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3때요...항간의 소문으로는 어찌나 책상서랍을 열고 닫는 속도가 빠른지..
그 서랍에 찡긴 학부형 손이 한두명이 아니라고 하는 소문이 있습니다...ㅋㅋ

sooninara 2006-04-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약은 정말..ㅋㅋ 선생님이 오해 할만도 하네요.
서랍을 여닫아라..흠 전 그렇게 티나는 선생님을 안만나서요.
국민학교4학녀때 선생님이 그렇긴 했지만 ..그런 사람도 있구나..그려려니 했고..
아니면 너무 둔해서 모르고 넘어간건지도..^^

진주 2006-04-0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진주님이요~'해서 깜딱 놀랐어요^^;;;
페이퍼 브리핑에서 <꾹돈>이라는 참신한 단어가 눈길을 확 잡아 당겨 냉큼 달려 왔어요^^

숨은아이 2006-04-0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바로 활용해주시고! 조선인님 고마워요. ^________^

코마개 2006-04-0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썅!(조선인님 한테 욕한거 아닌거 아시죠?)

조선인 2006-04-0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님도 선생님 복이 있던 거죠. ㅎㅎㅎ
메피스토님, 우리집 식구들이 원래 눈치가 좀 없어요. 그냥 부산하다 생각했으니.
수니나라님, 그냥 보약이 아니라 어머니 당뇨약이었거든요. ㅋㅋㅋ
진주님, 숨은아이님, 헤헤.
아핫, 강쥐님, ㅎㅎㅎ

비로그인 2006-04-0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페이퍼에 쓰겠지만, 저희 어머니께선 제가 다니는 학교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데, 여동생의 학교에선 거의 살다시피 하셨어요. 선생님들께 뇌물을 거의 집 한 채(다 합치면 아마도) 돌리셨는데, 그 많은 선생님들 중 단 한 분도 거절한 분이 없으셨다고 해요. (동생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제 여동생같은 경우에는, 다행이라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욕 한 번 하고 웃고 넘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이라고 댓글 달고싶어져서요. 후훗

Koni 2006-04-0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꾹돈'이란 게 그런 의미군요. 무슨 뜻인가 했어요.^^

조선인 2006-04-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동생분이 운이 없었군요. 안타깝네요.
냐오님, 꾹돈, 괜찮은 표현이죠?

비로그인 2006-04-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전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군요. 신설학교만 다녀서 그래서 죽어라 공부시키는 분들은 계셨어도 돈 찔러주길 바라는 분은 없었다지요. 원래 신설학교는 좋은 선생님들만 선발해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중학교는 심지어 1회 졸업이었는데, 그 때 서울시 전체에서 제가 졸업한 학교가 강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1위를 해서.... 교육청이 뒤집혔었다는;;;

조선인 2006-04-0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신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여대생님이 진짜 복을 타고난 거에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신설은 아니지만, 강북에서 강남으로 막 이사를 한 학교였는데, 처음 이사왔을 때는 선생님 중 소나타 모시는 분이 장교 출신 교련 선생님밖에 없었지만, 3년만에 모든 선생님이 다 삐까번쩍한 차를 뽑더이다. 아주 악명이 높은 학교였죠. 으흐흐흐

2006-04-07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6-04-0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전 꾼돈 얘긴 줄 알았어요 ^^;;;

조선인 2006-04-0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저야 옛날옛적 이야기인데요. 근데, 체벌이라니, 음... 지금은 그게 제 얘기보다 백배쯤 더 기분나쁘네요.
스윗매직님, ㅋㅋㅋ 꾼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