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결국 9시가 넘어서야 마로를 찾으러 갔다.
엄마 왔다 소리에 신이 나서 뛰어오다 우뚝 멈춰서는 딸.
양팔을 힘없이 드리우고, 고개는 옆으로 삐딱하게 누이고, 한숨까지 쉰다.
"왜 이제서야 왔어."
새댁의 어설픈 바가지마냥 다분히 연극적인 태도에 미안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빨리 사과 안 하면 제대로 삐지니 얼른 '미안해요' 내 몫의 대사를 날린다.

다시 딸아이는 신이 나서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으로 나온다.
그러나 옷 입을 생각은 안 하고 가방을 뒤지는데,
대뜸 나온 건 조그만 하트 모양 박스에 담긴 초콜릿.
귀여운 무늬의 투명 셀로판지로 포장되어 있고 겹겹 리본으로 마무리까지.
순간 어린이집에서까지 발렌타인을 챙기나 싶어 목소리에 날을 세우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며 물었다.

"마로야, 이거 누가 줬어.?"
"유제민이 줬어. 그리고 나보고도 초콜렛 달라고 했어"
(마로의 으뜸친구는 김좌구이고, 버금친구가 유제민이다)
"어, 그래. 그럼 다음에 꼭 제민이 선물 사주자. 좌구 거도 사야 할까?"
"아니, 유제민만 주면 돼."
"왜?"
"좌구는 배민영한테 받았어.그러니까 안 줄 거야."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5살, 6살짜리가 벌이는 4각 연애라니.(마로는 2월생이라 6살반에 속한다)
정색을 하는 딸.
"왜 웃어? 뭐가 웃겨? 웃지마!"
아뿔사. 제대로 삐졌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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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2-15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구, 귀여워라(^.^). 흐뭇하시겠어요.

urblue 2006-02-1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까지 초콜릿을 주고 받는게 씁쓸하긴하지만, 마로는 이뽀요~

울보 2006-02-1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치원에 가니 많은것을 배우네요,,ㅎㅎ류는 아직 모르는데,

hnine 2006-02-1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9시까지 엄마를 기다렸군요..에구...

2006-02-15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6-02-1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하하하 귀여워 귀여워요 ~~ ㅎㅎㅎ

하이드 2006-02-1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드는 생각이, 우리가 그런저런 핑계에 굶주려 있다는 생각이에요. (무..물론;; 꽤나 오랫동안 줄 사람이 없어서, '로맨스' 와 연결이 안 되는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사무실에서도, 우리 비록 여자들끼리지만, 초콜릿도 주고, 사탕도 주고, 커스터머한테도 초콜릿 보내고, 그러면서 한 번 더 웃고, 신세한탄 하고 그러는것 같아요. 음.. 다섯,여섯살짜리들의 머릿속은 모르겠습니다만.

ChinPei 2006-02-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귀여워∼∼∼∼
울 명섭이도 2명의 애한테서 초콜릿 받았다고 슬그머니 자랑하잖아요. ^ㅇ^
그런데 내가 "어느 쪽 애가 더 좋으냐?"고 물었더니, 좀 고민하더라구요.
야!!! 명섭아!! 10년 빠르다!!

Mephistopheles 2006-02-1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워요..이뻐요..저도 마로 같은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선인 2006-02-16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리건곤님, 흐뭇이라, 엄마가 못해본 양다리를 해보는 게 뿌듯하긴 하죠. ㅋㅋㅋ
유아블루님, 뒷얘기를 들어보니 엄마가 아빠 줄 발렌타인 초콜렛을 살 때 따라간 애들이 졸랐나 봐요. 나도 초콜렛 줄 사람 있다고. 호호호
울보님, 모를 때가 좋아요. 아으, 속된 말로 이러다 까지는게 아닐까 걱정입니다.
hnine님, 흑, 절대 야근을 안 해야지, 하더라도 8시는 넘기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하지만, 이 놈의 회사일이란게. ㅠ.ㅠ
속삭이신 분, 아, 1번과 2번이 좀 다르군요. 가르침 고맙습니다. 불여튼튼의 충고도 고맙구요. 꾸벅꾸벅.
스윗매직님, 전 님이 더 귀여워요. 푸하하
하이드님, 참 좋은 핑계거리라는 건 맞아요. 만난 지 10주년 기념으로 저도 발렌타인을 챙겨볼까 생각하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연애를 하건 안 하건 여자는 언제나 로맨스를 그리워하지 않나요.
친페이님, 어머나, 2명이나. 축하드려요. 혹시 명섭이가 아빠를 닮은 건가요? *^^*
메피스토펠레스님, 좀 심한 얘기인데 딸 키우는 재미가 특별하긴 하지요. 호호호

산사춘 2006-02-1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구도 달라고 해주세요. 이름이 너무 귀여워요.
근데...... 왜 웃고 그러세욧?
글고 딸 키우는 재미가 아니라 '이쁜' 딸 키우는 재미잖아요! (미모환장병 춘 올림)

비자림 2006-02-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일이 너무 바쁘시네요. 저는 한달에 서너 번 정도만 늦거든요. 우리집 근처에 사시면 마로 우리집에서 놀게 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이네요.

조선인 2006-02-1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좌구, 귀여운 것 같지만 뜻풀이를 하면 어마어마한 이름이에요. 아홉 구에 자리 좌. 대단하죠?
비자림님, 흑, 제가 다니는 회사가 좀 그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