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로 학부모총회였다. 이미 지난주 영재학교 때문에 휴가를 쓴 터라 벼룩도 낯이 있지 차마 휴가를 못 내고 잠깐 외출을 하기로 했는데, 그나마도 회의가 겹쳐서 장장 1시간 30분이나 지각해버렸다. 이미 강당에서 하는 공식일정은 다 끝나고 교실에서 진행되는 학부모간담회도 거의 끝날 무렵에서야 헉헉거리며 들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님은 딸 말대로 정말 예쁘고 자상하셨다. 그런데 건의사항을 말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엄마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장난 아니다. 매 단원이 끝나면 꼭 단원평가를 봐라, 단원평가 후에는 꼭 오답노트를 집에 보내라, 평일에는 학원숙제가 많으니 과제를 주지 말되 주말에는 팍팍 과제를 내줘야 한다 등등. 누가 선생인지 누가 학부모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 지각해서 늦게 간 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불편한 자리였다.
어쨌거나 간담회가 끝난 뒤 늦게 온 엄마들만 개별면담을 더 했다. 마로가 산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짧은 기간에 아이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하고 계셔서 감탄했다. 구체적으로 짚어준 문제는 '수업시간에 다른 책을 읽는다'는 것과 손장난이 심하다는 것. 특히 책 문제는 매 학년마다 듣는 지적이라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을 뿐이다. 결국 사물함이나 책상을 수색해 학급문고는 제자리에 꽂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하고, 집에서 가져간 책은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가장 난감한 문제는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혼내야할 지 모르겠다는 것. 사실 마로가 받는 지적은 하나같이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매번 혼나던 문제이고, 여전히 나는 산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딴짓 잘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과연 애를 타이를 자격이 되는 걸까. 그저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