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로 학부모총회였다. 이미 지난주 영재학교 때문에 휴가를 쓴 터라 벼룩도 낯이 있지 차마 휴가를 못 내고 잠깐 외출을 하기로 했는데, 그나마도 회의가 겹쳐서 장장 1시간 30분이나 지각해버렸다. 이미 강당에서 하는 공식일정은 다 끝나고 교실에서 진행되는 학부모간담회도 거의 끝날 무렵에서야 헉헉거리며 들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님은 딸 말대로 정말 예쁘고 자상하셨다. 그런데 건의사항을 말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엄마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장난 아니다. 매 단원이 끝나면 꼭 단원평가를 봐라, 단원평가 후에는 꼭 오답노트를 집에 보내라, 평일에는 학원숙제가 많으니 과제를 주지 말되 주말에는 팍팍 과제를 내줘야 한다 등등. 누가 선생인지 누가 학부모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 지각해서 늦게 간 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불편한 자리였다.


어쨌거나 간담회가 끝난 뒤 늦게 온 엄마들만 개별면담을 더 했다. 마로가 산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짧은 기간에 아이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하고 계셔서 감탄했다. 구체적으로 짚어준 문제는 '수업시간에 다른 책을 읽는다'는 것과 손장난이 심하다는 것. 특히 책 문제는 매 학년마다 듣는 지적이라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을 뿐이다. 결국 사물함이나 책상을 수색해 학급문고는 제자리에 꽂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하고, 집에서 가져간 책은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가장 난감한 문제는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혼내야할 지 모르겠다는 것. 사실 마로가 받는 지적은 하나같이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매번 혼나던 문제이고, 여전히 나는 산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딴짓 잘 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과연 애를 타이를 자격이 되는 걸까. 그저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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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3-1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언젠간 고쳐야 할 버릇이라면 나중에 무서운 선생님 만나서 혼나기 전에, 계속 굳어지기 전에 타일러야 할 듯해요. 선생님도 얘기를 했으니 무언가 달라지기를 기대하실테구요.

일단 공부시간에 다른 행동을 하는 건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께 죄송한 일이다, 선생님께 늘 집중을 해야 한다라고 얘기를 해 보세요. 똑똑한 마로니까 이해를 시키면 바꿀 수 있겠지요. ^^

숲노래 2012-03-15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이 재미없으니 다른 책을 읽어요.
아이를 탓할 수 없어요.
교과서나 수업을 재미없게 한다는 뜻인 줄 교사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면 아이들을 자꾸 나무라며 '버릇이 안 좋다'고 말하고 말아요.
아이도 수업을 할 때에는 수업을 듣는 버릇을 들여야 할 테지만,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되고, 왜 수업을 할 때에 다른 책을 읽는지 묻고는 찬찬히 얘기를 들으며 길을 찾아야지 싶어요.

손장난이란, 한창 크는 때이니 나쁜 일이 아니라, 잘 타이를 일이 되겠지요~

조선인 2012-03-1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치님, 네, 어제 아이랑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어요. 선생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차원에서 상대방에게 집중하자구요.
된장님, 수업이 재미없다기 보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대요. 쩝. 솔직히 그 심정은 저도 이해가 가는 터라. 쿨럭.

BRINY 2012-03-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들 연수가면, 대놓고 딴 소설책 보고 과자먹고 신문 보는 사람 얼마나 많다구요!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들!

책가방 2012-03-1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보다 책이 더 재밌다는 아이를 어떻게 혼낼수가 있을까요..
그저 재미없는 것도 하고 살아야하는 게 인생이다.. 뭐 이정도 얘기라면 몰라도..
전 내일 고등학교 학부모 총회에 가는데...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오실지, 어떤 얘기들을 나누게 될지 사실 기대가 돼요..^^
고등학생 학부모는 처음이라서요..^^

조선인 2012-03-1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ㅋㅋㅋ 정말 그래요? 막 상상 되네요.
책가방님, 으, 고등학교 학부모님들은 더 살벌하지 않을까요? 정말 무서웠어요. 전.

bookJourney 2012-03-1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원의 교육열이 굉장하군요. 저희는 교육열 높다는 동네를 벗어난 변두리 학교라서 그런지 전혀 살벌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오히려 좀 심하게 무관심한 듯?!

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 조금 일찍 안 끝내고 수업시간 딱 맞춰서 끝냈다고 대놓고 뭐라 하시던 기억이 ... ^^;;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어야 맘 편하게 책 읽을 시간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데, 학교 다닐 때는 그 계산까지는 안된다 말이지요~. ^^

조선인 2012-03-16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세상님, 그거 좋은 충고입니다. 딸아이에게 먹힐 듯 해요.

마녀고양이 2012-03-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쁜 엄마인지라, 총회 한번도 안 갔어요,,, (너무 떳떳한걸.)
그래도 공개 수업은 갔고, 개별 면담도 가염... ㅋ (이렇게 합리화를?)

저는 엄마들이 공부하는 방법 이야기하는거, 그리고 시험 보라는 성화들,
이런거 너무 싫어서 그런 얘기 듣는 장소는 가고 싶지 않아요. 엄마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아, 흥분하고 있는 나!)

그런데, 마로가 책을 엄청 좋아하는군요? 이야기를 좋아하나봐요. 거기다 손장난을 많이 한다니,, 머리가 좋은 아이들,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지요? 그런 아이를 사회의 틀에 끼워 맞추려니 좀 안타까와지긴 하네요.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테니, 하나씩 사회 규칙을 공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기는 할거 같구요... 멋진 따님이예요. (따님 맞죠? ^^)

조선인 2012-03-1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손장난이란 아이실리콘을 얘기하는 거에요. 하루종일 만지작만지작. 그 촉감이 좋대요. 혹시 스킨쉽의 욕구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딸아이가 고학년이 되니까 애아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예전보다 스킨쉽이 제한되더라구요. 특히 아빠가요... 그러다보니 요새 딸이 동생에게 제일 질투하는 것도 스킨쉽이에요. 음, 여러 가지로 고민중입니다.

크산티페 2012-03-1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기 무섭네요. 전 학부모총회라고 갔더니 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에 선생님 말씀만 주구장창 듣다 왔는데.. 1학년이라 그런건가요? ^^;; 거기다 3학년 이상은 엄마들 너무 안 왔다고 반 대표 엄마를 누굴 뽑아야 하나 고민하는 소리도 들었어요. ㅎㅎ

그나저나 마로, ㅎㅎㅎ 책 좋아하는 애들의 특성이지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는걸 알아야 할 시기군요. 그래도 이해하는데 말하기 쉽지 않으시겠어요. ㅎㅎㅎ 이것은 "업보"~

조선인 2012-03-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업보라. 정말 뼈저린 대못이다. ㅋㅋ

같은하늘 2012-03-19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모총회는 안가기도 그렇고 가서도 불편한 자리지요.
저희 아이는 행동이 느려서 항상 저한테 지적을 당하는데 고치기 힘들어요.
자기가 스스로 느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

조선인 2012-03-19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다른 학부모를 만나는 게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니, 참 안타깝습니다.

LAYLA 2012-03-1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시간에 할 일 다하고 책 보는건 괜찮지 않나요? 수학문제 풀라는 거 다 풀고 시간 남는데 멍때리는 것보다야.. 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ㅋ 지금도 생각나는 좋은 선생님이에요 ^^

조선인 2012-03-20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음, 문제는 글씨도 괴발새발 막 날림으로 해놓고 책을 보는 거죠. 혹은 쉬는시간 동안 읽던 책을 수업 시작해도 계속 보고 있다든지. 뭐, 저 역시 늘 혼나던 문제라 사실 마로를 혼내진 못했어요. 그냥 선생님을 존중한다면 선생님에게 집중해주라. 뭐 이렇게 몇 마디 하고 끝냈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