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있었던 건 5월 7일이다.
학교 저금하는 날이었고, 마침 어린이날 용돈 받은 게 많아 3만원을 봉투에 넣어 보냈다.
딸아이는 봉투에 따로 넣어준 걸 모르고, 통장집이 비어 있다고 저금을 하지 않았다.
하교한다고 책가방 싸다가 뒤늦게 봉투를 발견했고,
어차피 저금 못 한 거 이 돈으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기로 했단다.
문방구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카네이션을 사며 봉투를 꺼내는 걸 본 친구들이 졸라,
카네이션이며, 수첩이며, 친구들이 사달라는 거 사주고, 슬러쉬도 사먹고, 떡볶이도 사먹었단다.
뭐, 여기까지는 어차피 제 용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태권도 학원에서.
뭘 살 때마다 만원짜리를 냈는지 천원짜리를 수북히 가지고 있었고,
언니, 오빠들이 마로는 정말 부자라며 치켜세우자,
신이 나서 돈을 하늘로 던져 뿌리며, "먼저 줍는 사람 임자" 그러며 놀았단다.
마침 관장님이 이걸 목격하여 언니, 오빠들이 챙긴 돈을 도로 뺏고, 마로랑 같이 기합을 줬단다.
저녁에 관장님에게 전화로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부끄럽고 창피하고 황당하고... 하이고... 

아, 정말이지 5월 7일 저녁과 5월 8일은 기억하기 괴롭다.
옆지기도, 나도, 분을 이기지 못해 마로를 쥐잡듯이 몰아쳤고,
마로는 계속 울었지만, 반성의 눈물이라기 보다, 겁에 질린 거였다.
어버이날은 아가씨댁에 아침 일찍부터 모두 모여 놀기로 했건만,
우리 가족은 딸아이랑 사단을 하느라 점심상 다 치운 다음에야 뒤늦게 갔고,
나도, 마로도, 옆지기도, 가족 모임에 쉽게 어울리지 못 하고 죄다 따로 겉돌았다.
덕분에 5월 8일 사진에 아예 마로가 없다. -.-;; 

8일 저녁, 옆지기의 재촉으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온 뒤 마로와 다시 앉아 대화를 시도했다.
너가 돈의 가치를 너무 모르는 거 같으니, 이번 기회에 교훈을 얻자 했다.
니가 써버린 1만4천원을 니 힘으로 다시 구해보라 했다.
엄마가 봉투접기든, 인형눈알붙이기든, 부업거리를 찾아줄테니 일을 해서 벌어볼래,
니 책을 중고서점에 가서 팔아올래,
아니면 청소년센터 벼룩시장에 가서 니 물건을 팔아볼래 선택하라 했다.
딸아이는 한참을 방에 틀어박혀 고민하다가 반성문을 내밀며 벼룩시장을 하겠다 했다. 

생일선물로 받아 포장도 안 뜯은 키티지갑, 예쁘다고 사모은 지우개, 스티커, 머리띠, 머리핀,
연필 하나 꺼내쓴 피터래빗 종합문구셋트, 제 손으로 만든 비즈반지,
서랍안에 쌓여있던 각종 문구류, 그림도구, 키티치마, 키티 스웨터, 키티 바지,,,
그렇게 제가 아끼던 물건들을 챙겨 가격을 매길 때마다 마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까워했다.
그래도 벼룩시장 자리를 폈을 때만 해도 마로는 천하태평이었다.
동생과 장난도 치고, 물건 구경하는 사람들은 본체만체하고 책 읽기만 하고...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록 단 1개도 못 팔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제 물건이 너무 비싸다며 가격을 조정했고, 사람들이 오면 싹싹하게 인사도 하고,
그러고도 별로 안 팔리자, 다시 가격을 조정하고, 소리 지르며 호객 행위도 했다.
"물건 사면 공책 한 권이나 연필 한 자루 드려요, 핀 하나 사면 한 개 더 드려요"
제법 물건이 팔리기 시작하자 신이 났다.
안 팔리길 희망하며 일부러 옷 사이에 숨겨놨던 키티 지갑과 피터래빗 문구셋트를 양 손에 들고,
"포장도 안 뜯은 키티지갑 단돈 3천원", "피터래빗 종합셋트 2천원에 팔고 덤도 드려요"
벌떡 일어나 소리지르자마자 바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거의다 100원, 500원 가격이라 이걸 팔아 얼마나 돈을 모을까 솔직히 나도 가슴 졸였는데,
5시 파장시간까지 꼬박 자리지켜 열심히 장사한 보람이 있어, 12,200원을 벌었다.
2천원은 자릿세삼아 기부를 하고, 남은 돈 3,800원은 6월 벼룩시장에서 벌자고 하니,
딸아이는 신이 나서 그러겠단다. 어라, 벌이란 걸 잊고 장사에 재미 붙인 걸까? 
뭐, 어쨌든 마로는 아직도 반성기간중이라 용돈도 못 받고, 선물도 못 받고, 책도 못 산다. @.@



사진의 조끼는 옆자리 중학생 언니들에게 산 것.
마침 문화센터에서 무료로 페이스페인팅을 해줬는데 나비문양과 잘 어울리는 조끼다.
대부분 3-4시에 철수한 것과 달리 이 학생들만 유일하게 마로랑 같이 파장시간까지 있었다.
괜시리 고마워져 물건을 살펴보니 마로에게 맞을만한 옷도 많아 이것저것 샀더니,
파장할 때 미처 못 팔은 책들이랑 필통을 마로에게 선뜻 선물로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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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를 알게 하는 조기교육이로군요. ㅎㅎ
호객행위를 하다니 그거 불법아닌가염? ㅋㅋ
나름대로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이었겠어요.
마로, 해람 홧팅^*^

2010-06-16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6-1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6월 26일에 또 해야 합니다. 홧팅해줘서 고마워요.
속닥님, 어맛, 님이 그런 말씀하면 안 되죠. 아이는 엄마 혼자 키우는 거 아니잖아요? 만약 저 혼자 키우는 거라면 저도 무서워서 못 했죠. ^^

2010-06-16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6-16 13:18   좋아요 0 | URL
호호 속닥님,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가진다, 만화 대사지만 정말 명대사 아닙니까?

글샘 2010-06-1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로양의 사고가 저거였군요. 인간은 누구나 돈 확 뿌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인님 평생 한 번도 못 누린 사치를 마로는 이미 누렸네요. ㅎㅎㅎ

2010-06-16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6-1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난 감동의 페이퍼에요. 추천 꾹~~~~~~

울보 2010-06-1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저금을 받는군요,
우리학교는 없던데,
류는 주로 어른들이 용돈을 주면 바로 엄마에게 주어요,,잘챙기지 못하는것을 아는걸까
그래서 받는대로 저금을 해주려고 노력중,
그리고 일주일에 천원을 주는데 주로 다 지갑안에 있고 밖에 놀러가거나 하면자신도 지갑안에 돈이 있다며 자랑하면서 음료수를 사주거나 자기가 사먹곤해요 , 엄마는 안되니까 ,,ㅎㅎ 그래서 가계부 쓰는것도 시키려고요,,
마로가 이번에 잘 알았을거라 생각을해요, 그래도 멋진 엄마 아빠를 둔 마로는 행복할거예요, 전 류가 저렇게 행동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저도 생각을 해봐야 겠네요,

조선인 2010-06-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그래서 마로가 반성기간이랍니다.
속닥님, 흑흑, 저희는 이틀 동안 아이를 아주 잡았더랬어요. 정말 마귀같았죠.
순오기님, 큭큭 어느 대목이 감동?
울보님, 학교에서 일괄 신협통장을 만들어줬어요. 한 달에 한 번 저금하는 건데 강제는 아니구요, 자율입니다만, 3년째 모으니 꽤 쏠쏠하네요.

순오기 2010-06-16 21:00   좋아요 0 | URL
애들 어렸을 때, 우리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마로가 고민고민하다가 벼룩시장으로 하겠다는 결정에
그때 생각이 불쑥 떠올라 눈물이 났어요.ㅜㅜ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죽을때까지 몰랐을 수많은 감정의 파도들~~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이 또 눈물과 미소를 부르는 추억이지요.^^

마노아 2010-06-1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부모님이세요. 그러니 마로가 벌받으면서도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겠죠.
마로는 교훈도 얻고 재미도 얻었을 거예요.^^

루체오페르 2010-06-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경험을 했네요. 마로 입장에선 아프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성장해 나가는 거니까요. 돈의 소중함, 경제의 원리, 장사 등에 대해서도 배웠고요.
두 분께서 아이를 혼낼때는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지만 그렇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그래줄수 있는것이 부모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이 아니라 부모인 거겠죠.

무스탕 2010-06-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뿌리며 뿌듯(?)해 했을 마로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이.. ^^;
아이들은 다 그런가봐요. 정성이 친구들을 봐도 거리낌없이 타인에 뭔가를 사 달라 그러고 자기가 돈을 갖고 있으면 사주기도 하더라구요.
(정성이도 서울랜드에 가지고간 돈을 몽창 썼길래 뭐했니? 물어보니 친구들 뭐사주고 뭐사주고.. -_-;)
아이들에게 적당선의 경제교육을 시키는건 정말 어렵더군요..

하늘바람 2010-06-16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단단히 경제 개념을 배웠군요 벼룩시장으로 돈을 버는 것 참 좋네요
얼마나 아까웠을지요.
마로야 마로야
가서 안아주고 싶네요
조끼 참 이쁘네요

하늘바람 2010-06-1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적에 엄마 지갑에서 동전을 잔뜩 가지고 나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답니다. 친구들은 그 돈으로 신나서 뽑기를 하고 전 그 기뻐하는 걸 바라보는 게 기쁨이었다죠.
엄마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셔서 전 혼나지 않았는데 마음으로 내내 남네요

글샘 2010-06-16 20:15   좋아요 0 | URL
과연 엄마가 그 사실을 모르셨을까요? ㅎㅎㅎ 엄마는 신인데...

kimji 2010-06-17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는 이렇게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것을
알거에요. 깊게 배우고 갑니다.
(마로의 눈물 값을 kimji가 거저 가지고 가는 거 같으니, 미안해라^^;)

조선인 2010-06-1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동감입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던 수많은 감정의 파도들!!!
마노아님, 교훈보다는 재미만 얻은 거 같습니다. 쿨럭.
루체오페르님, 부모니까 혼낼 수 있다... 참 고마운 말씀입니다.
무스탕님, 아직 돈에 대한 관념이 없는 거죠, 에구에구.
하늘바람님, 님도 참... 친구들 뽑기하는 걸 보고 좋아하시다니. ㅋㅋ
글샘님, 알면서 모른 척 해주는 부모의 마음도 배워둬야 할까요?
김지님, 하이구, 모르셔서 그래요. 이틀 동안 애를 아주 잡았다니깐요.

마녀고양이 2010-06-1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벼룩시장 가고 싶어요. 잼나겠다...

저도 어렸을 때, 저금통 홀랑 뜯어서 크리스마스 트리 맘대로 사고 엄청 혼난 기억이..
다 멋진 추억으로 남을거여염~

같은하늘 2010-06-1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경제를 배워가고 있군요.ㅎㅎ
울 큰넘은 아직까지 경제개념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갖고싶은게 있어 조르지도 않는 그런 어리버리한 아이라 걱정이라지요. -.-;;

BRINY 2010-06-1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생각해보니 저랑 동생들도 어릴 때 어리버리해서 다 이런 문제로 한번씩 부모님께 혼난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조선인 2010-06-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벼룩시장에서 해람이 옷도 잔뜩 샀답니다.
같은하늘님, 애들이 하나같이 돈 무서운 줄 몰라요. 그죠?
briny님, 어마, 님은 똘망똘망하게 뭐든지 잘 해냈을 이미지인데. ^^

2010-06-2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아이가 아니라 그런지 읽으면서 마냥 귀엽기만 했어요. ㅋㅋ 벌이라도 이런 벌이라면 달게 받겠다눈.. //벼룩시장 같은 것도 있고 좋네요. 사실 귀국해서 거라지 세일(garage sale)이나 craigslist.org(우리나라로 치면.. 온라인 중고시장?) 같은게 참 아쉬웠는데, 우리동네엔 없더라도 활성화된 지역이 있다는게 참 보기 좋아요. 인터넷에 중고시장 둘러봤는데 중고 가격이 너무 높아 김샜답니다.

조선인 2010-06-2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 보통 지역사회센터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개최해. 우린 아름다운 가게도 자주 가는 편이고. 보통 사는 거보다 기증하는 게 더 많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