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제 생의 절정에서 미처 시들지도 않은 꽃잎을 미련없이 떠나보낸다.
질 때조차도 이쁜 척하는 벚꽃은 내게 이은주를 연상시킨다.
작고 작은 꽃잎은 길바닥에 떨어져도 사람들이 밟기 전에 바람따라 휘이이 꽃보라를 일으킨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정주기가 두렵다. 

반면 목련은 참 미련맞고 묵묵하다.
봉오리 때의 순결함, 피었을 때의 담담함은 꽃 중의 제일인 듯 싶은데,
나무에 끈질기게 매달려 시들대로 시들어서 가장 초라할 때 큰 잎을 뚝뚝 떨어뜨린다.
무거운 꽃잎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사람들의 발에 사정없이 짓이겨지고 더러워진다.
그래서 내게 목련은 늙은 여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짧은 청춘은 한참전에 보내고 세월따라 거짓없이 늙어 마침내는 쪼그라든 어머니의 모습,
혹은 언젠가는 늙어갈 내 모습이다.
그래서 목련은 보통 사람과 더 닮았고, 익숙하며, 그래서 목련은 더 가슴 깊은 곳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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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10-04-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같은 이유로 벚꽃이 더 좋아요. ^^

꿈꾸는섬 2010-04-1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봄이 되면 목련 피는 걸 기다려요. 조선인님 말씀대로 봉오리때의 청초한 순결함이 좋아요. 게다가 피었을때의 담담함, 정말 그렇지요. 초라하게 진다고 지저분하다고 하는데 전 그래도 좋더라구요. 늙은 여인을 닮았다는 말, 공감되어요.^^

마립간 2010-04-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화, 隱逸士이기 때문입니다.

비로그인 2010-04-1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시절 창 밖 교정의 벚꽃이 꽃보라 일으킬 때... 좋아하던 국어쌤, 하필 그곳을 지나치시고...
그 환상적인 영상은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벚꽃이 쬐끔 더 좋네요.

토토랑 2010-04-1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에서 세번째.. 두번째 줄.. 찌르르 하네요..
그런데 질때의 모습이 가장 추한(?) 건.. 칸나 꽃이 최고인거 같아요..

저는 봄꽃은 아니지만 어릴적에 자다 깨서
늦은밤.. 달빛에 핀 배꽃을 본적이 있는데
비록 돌배 나무였지만.. 이화에 월백하고 하는 말이 이런거구나 싶었어요.
달밤의 배꽃이 좋아요 ^^

웽스북스 2010-04-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련 지는 거 보면...참 속상하죠...
저는 목련은 항상, 안쓰럽게 애쓰는 꽃 같아서요.
그러니까, 달밤에, 혼자 빛을 내보려고, 그렇게 애쓰면서 은은한 빛을 뿌리는,
비참한 말로가 예견되어 있어도,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는 고고하게 피어보겠다며,
가장 우아한 흰 빛을 내는 그 애씀이 참 좋아요.

그래서, 벚꽃을 보면 마음이 들뜨고,
목련을 보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지요.

순오기 2010-04-2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이네요.
목련은 봉우리로 있을 때가 좋아요. 하얀 등불을 매단 그 모습~~

같은하늘 2010-04-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목련 지는 모습이 싫었는데 글을 보니 그런 마음도 드네요.

메르헨 2010-04-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 그렇네요. 늙은 여인의 모습과 같다는 글이 ....정말 그렇구나 싶습니다.
참...목련은 목련..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인 2010-04-2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윗매직님, 저 역시 벚꽃도 좋습니다.
꿈꾸는섬님, 목련은 제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꽃이랍니다.
마립간님, 안타깝게도 향알러지가 있는 제게 매화는 가까이 하기 먼 당신입니다. 흑
마기님, 와우, 그야말로 청춘영화의 한 장면이네요. 부러운 기억입니다.
토토랑님, 달밤에 끝내주는 꽃은 메밀꽃도 빼먹을 수 없지요.
웬디양님, 안스럽게 애쓰다... 참 근사한 표현입니다.
순오기님, 하얀 등불을 치켜들었기 때문에 새 시대의 선구자겠죠?
같은하늘님, 가감없는 그 모습이 참 슬프고 봄이 짧은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메르헨님, 넵, 목련은 목련이지요...

펭귄 2010-04-2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글이 참 아름답네요. 전 벚꽃과 목련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내내 "오, 봄이 오는가?" "오! 봄이 왔군!"하고 말았거든요. -_- 아, 왜 이렇게 텁텁하게 살까요?

조선인 2010-04-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아, 경산의 봄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울텐데. 지금이면 사과꽃이 지천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