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행길을 물으며 다가오셨던 아주머니에게.
제가 코를 쥐어막고 도망쳐서 황당하셨죠?
미안합니다.
제가 향 알러지가 있어요.
당신에게는 상큼하게 느껴질 플로랄 향수가 저에겐 최루탄만큼이나 맵고 아픕니다.
잠깐의 스쳐지나감만으로 전 목이 퉁퉁 부어 약을 흡입해야 했어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
XX씨, YY씨, ZZ씨....
제가 밖에서 만나면 아는 척도 안 하고 인사도 안 받는다고 흉보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야맹증이 무지 심한 데다가 하늘 보며 걷는 버릇이 있어요.
컴컴한 퇴근길이라면 코앞에서 딸아이가 지나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서운해마시고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반갑게 인사 나눌게요.

3.
00 연구원님, ## 과장님에게
얼떨결에 치한 취급받아 불쾌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거듭 사과 드립니다.
제가 여고, 여대를 나온 데다가, 애 둘 낳은 아줌마지만 남편 외에 연애해본 적이 없어,
가족 외의 사람과 스킨쉽하는 게 전혀 익숙하지 않습니다.
두 분에게는 동료에게 하는 아주 평범한 행동이었겠지만,
전 제 어깨에 누가 손을 올리거나 앉아 있을 때 무릎을 툭 치는 정도의 스킨쉽도 아주 어색합니다.
하긴 그렇다고 해서 비명까지 지를 일은 아니지만 제가 워낙 오바의 달인인 건 아시잖아요.
너그럽게 봐주세요.

.
.
.

살다 보면 구구절절 다 설명해도 상대방이 납득하기 힘든 일이 있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정도가 심하다는 거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사연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그러려니 넘어가는 아량을 베풀어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절박한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유모차 끌고 횡단보도 건너는데 경적 울리는 사람은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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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8-01-1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모차 가는데 경적을 울리는 사람 나쁩니다.

Mephistopheles 2008-01-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마님이 임신했을때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건너편 시장에 잠깐 다녀오는데..
좁은 골목길 힘겹게 올라오는데 뒤따라오는 노란 학원버스가 엄청나게 경적을 울리면서
비키라 짜증을 냈더랍니다. 그냥 갔으면 모를까 차창문까지 내려서 마님을 째려봤다나요.
주변에 있던 동네 어르신들이 임산한 여자한테 넘하는거 아니냐 해서 따졌기에 그냥 넘어갔다나요. 아마...제가 옆에 있었으면....흐흐..흐흐....

웽스북스 2008-01-1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정말 손 붙잡고,
제가 정말 어쩔 수 없었거든요- 라고 마구 변명하고 싶은 상황이 있긴 해요

알라딘은 사연을 싣고~

무스탕 2008-01-1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향수 싫어요. 머리 아파요..
저도 길 걸을때 사람을 안봐서 잘 못알아봐요. 한 번은 신랑이 옆에 쫒아오면서 제 쪽으로 붙는거에요. 계속 옆으로 피했죠. 그랬더니 부르더라고요. 오해하는 사람들 많은건 저도 마찬가지..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리면 그 순간 보행자가 된다는 생각을 안하나봐요. 자기가, 자기 부인이 유모차 끌고 가는데 누군가 그러면 얼마나 화날까 생각하면 쉬운것을..

미설 2008-01-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면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랍니다. 그저 못하고 넘어가면 또 하나가 맘에 쌓이지만 그렇다고 붙잡고 다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공감가네요.

조선인 2008-01-1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맞아요, 맞아.
메피스토펠레스님, 학원 버스. -.-+
웬디양님, 정말 어떻게든 사연이 전달만 된다면. 흑.
무스탕님, 그 사람들은 절대 안 걷나보죠, 뭐.
미설님, 마음엔 쌓이는데 매번 일일이 설명하는 건 또 구차하고, 어째야 할 지 모르겠어요.

sooninara 2008-01-1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읽으면서 웃긴했는데..
정말 일일이 말하고 다닐수도 없고 힘들겠어요.
나도 주변분들을 오해한 일은 없나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순오기 2008-01-12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람 오는 걸 잘 못 봐서 코앞에 다가서야...미안할 때 많아요.ㅠㅠ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고...... ^^

비로그인 2008-01-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한 번 날잡아서, 구구절절 다 설명하고픈 충동까지 드는 소소한 사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나마 충동에만 그치는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 하고 생각해 버리곤 해요.

그런데 경적은 왜 울린답니까? 위험하니까 피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빨리 지나가겠다고 울린 것 같은데! 그것도 횡단보도에서! 무섭게 노려보고 싶을 것 같아요. 아주 잡아먹을 듯이요.

2008-01-1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2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8-01-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어떤 여선생님 생각이 나요.
만성질환이 있어 약을 장복하다보니 얼굴이 늘 붉은데 동네 아주머니가 낮술을 늘
마시나보죠 그러며 뒤에서 흉을 보더래요.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싶어요.
구구절절 다 얘기 못하는 사연들이 있을텐데 참 너무 쉽게 판단하고 말한다 싶어요.
조선인 님, 속상하셨던 거죠? ^^

조선인 2008-01-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언니가 웃었다니 어쨌든 좋습니다.
살청님, 아하하 님도 웃으셨다니 뭐 나쁜 건 아니죠. ㅋㅋ
순오기님, 우리나라도 아직 은근히 서열이 있는 거 같아요. 누가 먼저 인사해야 하는. 한눈파는 무리들에겐 아주 위험한 일습.
쥬드님, 전 노려보는 걸로 그치지 않아요. 그야말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꽁무니까지 삿대질을 계속 해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컥.
속닥님, 근사한 덕담이십니다. 도착하는 대로 소식 주세요.
또 속닥님, 어이구 고생하셨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게요.
혜경님, 네, 특히 첫번째 아주머니에게요. 마지막으로 흘깃 본 얼굴의 표정이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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