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기
이사 후기의 후기

1.
어제 오후 조퇴하고 아버지 병실을 지키다가 그만 귀가가 늦어져버렸다.
과속으로 해람이 유모차를 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도착하니 7시 20분.
딸아이가 현관문 앞에서 울고 있을까봐 불안초조한 마음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는데,
현관문이 조금 덜 닫혀있는 게 보였다.
마로가 혼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나 보다 안심하고 딸을 부르는데 대답이 없다.
혹시나 해서 윗집에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딸은 다은이네 있었다.
게다가 이미 밥상을 받았으니 저녁 먹여서 돌려보내겠단다.
친구와 짜장밥을 먹고 흡족한 얼굴로 돌아온 딸과 함께
반찬하려고 사둔 돈까스 살을 들고 올라가 인사를 했다.
미안하고 고마워 황망하게 고개를 조아리는데,
앞으로도 집에 엄마가 없으면 윗집에서 기다리라고 딸아이에게 당부해두란다.
윗집은 떡을 돌렸을 때 바로 접시를 돌려줬던 고마운 집 중 하나이다...

2.
지난 토요일.
나는 해람이를 맡기고 출근했고, 옆지기와 마로는 집에 있었더랬다.
그런데 해람이를 찾아 퇴근해보니 현관문이 조금 열려져 있었다.
세상 모르고 낮잠 든 아빠 때문에 심심해진 딸래미가 윗집에 놀러가면서 문을 덜 닫은 것.
혀를 차며 집에 들어서는데 신발장 위에 찐 감자가 잔뜩 담긴 접시가 있었다.
떡 돌린 접시 중 하나가 더 돌아온 것이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나눠먹는데 거짓말 안하고 지금껏 먹어본 제일 맛난 찐감자였다.
주먹만한 크기였는데도 속까지 잘 익었고, 무엇보다 적당히 골고루 밴 소금간이 예술이었다.
대체 요령이 무얼까 옆지기와 궁리해보고, 검색까지 해봤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남아있던 두 집 중 누가 돌려준 접시인걸까? 비법을 전수받고 싶다.

3.
결론?
떡 돌리다 접시 하나쯤 잃어버린다고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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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주님, 돗자리 까세요. 이사후기 4탄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6-21 23:48 
    비가 와서 창문을 열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딸아이 돌아오기 전에 황급히 집안일을 해치우려고 하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마로인 줄 알고 쫓아...
 
 
홍수맘 2007-06-1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챙겨주는 이웃이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남은 접시하나에도 뭔가 담겨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되는 거 있죠? ㅎㅎㅎ

Mephistopheles 2007-06-1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전에 사셨던 그 비리있는 부녀회장이 있는 아파트보다는 아직까지는
더 좋은 환경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마로 대견해요.^^

icaru 2007-06-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이 있는 이웃들 페이퍼라 그런지.. 훈훈하네요.
담에 이사하면 저도 떡 돌려 볼까.. 했어요.

조선인 2007-06-1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흐흐 사실 하나 더 돌아오면 좋겠다 욕심도 내고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님, 지난 번에도 제가 늦은 적이 있어요. 현관문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걸 보고 어찌나 속상하던지, 만의 하나를 위해 예쁜 만화경 목걸이에 열쇠를 달아 가방 속에 넣어줬지요. 열쇠로 문 여는 법도 가르쳐주구요. 그래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참 장하다고 저도 뿌듯해 하는 중입니다.
이카루님, 저번 아파트에선 떡 돌리고도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곳은 정말 훈훈하네요.

세실 2007-06-1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페파 보면서 갑자기 떡 먹고 싶어 졌어요. 아...먹고 싶다.
전 밥 할때 함께 넣어둡니다. 속까지 잘 익어요~~
꺼내서 버터 두른 프라이팬에 구우면 아이들이 맛있어 합니다~

마노아 2007-06-1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셨어요. 조선인님도 그 아름다운 이웃 중의 하나일 테지요. 늘 '삭막'하다고 구박받는 도시 생활에서도 이런 멋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에요. ^^

전호인 2007-06-1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운감자가 먹고 싶어집니다.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건조실(담배건조)의 연탈불에 올려놓고 구워먹던 감자의 맛이 일품이었지요.
좋은 이웃집을 두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

조선인 2007-06-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우리집 밥솥이 워낙 작은 사이즈라 감자가 들어갈지 모르겠어요. ㅎㅎ
마노아님, 네, 정말 아름다운 이웃이에요. 어제 윗윗집을 만났는데, 그집도 윗집을 참 칭찬하더군요.
전호인님, 연탄불에 구워먹는 감자라니, 말만 들어도 군침이 흐릅니다.
새벽별님, 네, 비록 제가 아끼던 접시였지만, 하나쯤이야. ㅎㅎ

진주 2007-06-2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아직 일러요~
아직 잃어버렸다고 속단하긴 이르다구요.
지금 그 한 접시도 뭘 담을까 고민고민하는 중일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그렇더라구요 센스있게 재깍 뭐라도 담아 되돌려 주면 쉬울 텐데
오래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움..작년에 어떤 언니가 시골김칫독 헐었다고 김치를 한 통이나 줬는데
넘 고마워서 나도 근사한 걸로 담아 되돌려주려고 벼루기만 하다가 여태...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