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니 어김없이 옆지기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여자의 몸이 출산한 달을 기억하는 것처럼 옆지기의 몸은 단식하던 때를 기억하나 보다.
며칠전 울컥하고 싸운 것도 결국 그의 몸이 안 좋았던 탓으로 판명났고,
집에 오면 밤새 끙끙거리고 앓다가 아침이면 내가 출근할 때까지 일어나지도 못 하니,
어제 오늘은 마로는 물론 해람이 맡기는 것까지 내 차지가 되었다.

덕분에 시간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게 되니 어제 아침은 분식집 김밥을 사먹는 것으로 떼웠고,
오늘 아침은 콘프레이크였는데 그나마도 딸래미 늦장 덕분에 반도 못 먹고 나왔다.
해람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문단속을 하며 마로에겐 먼저 뛰어가서 엘리베이터를 눌러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하태평 딸래미는 저도 해람이 유모차를 끌겠다며 옥신각신하였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보니 하필 우리층을 막 지나 내려가는 중이었다.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마로에게 마구 짜증을 내버렸다.
"엄마 말대로 먼저 와서 버튼 눌렀으면 엘리베이터 안 놓쳤잖아. 다 너 때문이야."
<엄마 아빠의 칭찬기술>을 읽은 보람 없이 애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운 셈.
아차 후회하고 딸래미 눈치만 보는데, 딸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걱정하지마. 기다리면 되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와."
부끄러워졌다. 엘리베이터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이가 몇 분이나 된다고 딸아이를 몰아세웠던걸까.
미안한 마음에 얼른 칭찬해줬다.
"그래, 마로 말이 맞구나. 엄마는 그걸 잠깐 까먹었어. 마로가 가르쳐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머리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슴으로 말하면 안돼. 머리로 곰곰히 생각하면 알 수 있어."

하아, 딸에게 한 수도 모자라 두 수를 배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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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른의 스승이라고 하던데..
오늘 조선인님의 페이퍼에서
저역시 마로를 통해 좋은 걸 배우게 되었네요..^^

paviana 2006-11-1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역시 줄을 잘 섰어요.ㅎㅎ
마로한테서 떨어지지 말고 줄 잘 서있어야지요.^^

아영엄마 2006-11-1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집엔 아들냄이가 없는데...-.- 그래도 조선인님은 화나던 순간을 잘 대처하고 받아들이시잖아요. 전 아이가 마로처럼 한 수 가르쳐주는 말을 해도 감정 자제를 못하고 계속 아이를 탓할 때가 많은걸요.

반딧불,, 2006-11-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흑, 아픈 딸이 늑장 부린다면서 어지간히 성질 내고, 병원 다녀오고도 집에서
쉬라는데도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데려다주는데 짠해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오전에 좀 한가한데 이럴 줄 알았음 그냥 데려올걸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힘드시겠어요. 아침에 오분은 정말 크죠?

건우와 연우 2006-11-1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하신 조선인님이나 엄마를 달래는 마로나 얼마나 서로 마음아파가면서 의지가 되는지....
엿보는 사람도 애틋해요. 우리집 사는 모습하고 겹쳐서.. 힘내세요 조선인님!!!

2006-11-16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설 2006-11-1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힘드셨겠어요. 저도 종종 알도에게 엘리베이터 버튼 안눌렀다고 퉁을 주곤 한답니다. 기다려봤자 얼마나 기다린다고... 님도 마로도 해람이도 옆지기님도 모두모두 화이팅!!

해리포터7 2006-11-1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엘리베이터가 나쁜거에요..모든 엄마에게 이런 실수나 하게 하고 말이지요..우리집 애들도 불쌍해요..맨날 그런말 듣고 사니..에효..이제 후회해도 늦은 걸까요? 마로에게 고마워요..정말...마로에게 또 우리 아줌마들에게 해줄 말 없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조선인 2006-11-16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엄마들의 호응이 확실하군요. 이러니 메피스토님이 오해를 받죠. =3=3=3

울보 2006-11-1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책 잘받았어요,
오늘 책이 도착하자마자 한번 읽고 키에대해서 묻고 찾아보고 아주 좋아햇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은 류가 조금 나아지면 올릴게요,

하늘바람 2006-11-1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시겟어요. 빨리 옆지기님이 나으셔야할 텐데요

조선인 2006-11-2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류는 키가 무언지 알아듣던가요? 대단 대단.
하늘바람님, 지금은 감기까지 걸려 환자 행세가 대단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