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추워지니 어김없이 옆지기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여자의 몸이 출산한 달을 기억하는 것처럼 옆지기의 몸은 단식하던 때를 기억하나 보다.
며칠전 울컥하고 싸운 것도 결국 그의 몸이 안 좋았던 탓으로 판명났고,
집에 오면 밤새 끙끙거리고 앓다가 아침이면 내가 출근할 때까지 일어나지도 못 하니,
어제 오늘은 마로는 물론 해람이 맡기는 것까지 내 차지가 되었다.
덕분에 시간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게 되니 어제 아침은 분식집 김밥을 사먹는 것으로 떼웠고,
오늘 아침은 콘프레이크였는데 그나마도 딸래미 늦장 덕분에 반도 못 먹고 나왔다.
해람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문단속을 하며 마로에겐 먼저 뛰어가서 엘리베이터를 눌러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하태평 딸래미는 저도 해람이 유모차를 끌겠다며 옥신각신하였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보니 하필 우리층을 막 지나 내려가는 중이었다.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마로에게 마구 짜증을 내버렸다.
"엄마 말대로 먼저 와서 버튼 눌렀으면 엘리베이터 안 놓쳤잖아. 다 너 때문이야."
<엄마 아빠의 칭찬기술>을 읽은 보람 없이 애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운 셈.
아차 후회하고 딸래미 눈치만 보는데, 딸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걱정하지마. 기다리면 되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와."
부끄러워졌다. 엘리베이터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이가 몇 분이나 된다고 딸아이를 몰아세웠던걸까.
미안한 마음에 얼른 칭찬해줬다.
"그래, 마로 말이 맞구나. 엄마는 그걸 잠깐 까먹었어. 마로가 가르쳐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머리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슴으로 말하면 안돼. 머리로 곰곰히 생각하면 알 수 있어."
하아, 딸에게 한 수도 모자라 두 수를 배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