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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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쟁의 빈도는 이웃 나라 간이 가장 많고,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하나의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 가장 많이 남는다. 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했던 우리의 모습에서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있음을 감안할 때, 전쟁의 명분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 삶을 파헤쳐 속살을 들여다 볼 때에도 그러한 생각은 마찬가지로 남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마저 박탈당하는 사라예보 사람들의 삶을 오늘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라예보라는 지역의 이끌림 때문에, 그간 논픽션 자료와 책을 통해 만났던 곳이었다. 사실과 사실을 기록한 자료들에서 최근 도피 중이던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의 기소와 체포까지 관심 있게 지켜본 곳이었다. 대개 우리와 관계없다라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곳을 직접 경험해 알리고자 한 이들의 용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용없다라는 인식의 공유는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 사라예보에도 누구나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첼로 연주자가 있었다. 저격수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몇 시간씩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첼로 연주는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다. 살기 위해 몸을 숨겨야 할 때 드러내어 연주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것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해갔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이 그러하듯 작은 균열이 세상을 변하게 만든 것처럼. 이는 첼리스트의 바람이었다.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리라 여길 수 있는 것이라면 첼리스트의 연주가 시작될 가치는 있었다.

『첼리스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다. 폐허가 된 도시 풍경에서 거의 지워졌던 무언가가, 다시 새롭게 가치 있는 것으로 재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희망을 품는다.  p.14』

이제 희망은 포위당한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며, 그마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 이전 사라예보의 시간과 전쟁이후의 시간이라는 불일치 한 삶속에서 적응해 가는 동안 케난, 드라간, 애로의 삶은 분리되어간다. 분리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괴로워하는 이들은 사라예보의 사람들이자 내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노인의 낚실 줄에 낚이지 않는 비둘기는 행운이라 여길 테지만, 노인의 의지에 의해 잠시 안전할 뿐이다. 거리의 개는 저격수의 총을 맞게 될 운명에서 사라예보 사람들과 동등하다.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라예보의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모습이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동안 우위에 두었던 무언가를 버리고 이전 삶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을 함으로써 느끼는 비참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일깨워 주고 미묘한 변화를 이끌어주는 것이 선율이었다. 비록 목숨이 위태롭다 해도 죽은 이들을 위해 연주되는 선율은 이전의 사라예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연주되어지는 선율이다. 삶의 끝에 있다고 느껴져도 버려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언가를 품었을 때 자신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한다고 느껴지는 때가 되리라.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각인되는 이유다. 애로는 죽음에 직면했지만,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책은 사라예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만연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초래하는 모든 곳에서의 삶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전쟁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 가해자든 피해자든 승자는 없다. 인간으로써의 모습을 버린 혹은 버려진 이들에게 남은 것은 깊은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전쟁에 직면하기 전에 이와 같은 소설을 읽고 공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내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다. 첼리스트의 연주가 애로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처럼 이 책 또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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