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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마리나 네이멧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노란 약이 얼굴에 덧칠 해진 한 여인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생김새로 보자니, 한국인이 아닌 듯 했다. 기사 제목은 “여자가 학교에 갔다는 이유만으로”였고 클릭 해 읽노라니, 아프가니스탄 여인이었다. 학교에 갔다가 이를 저지하는 탈렌반 무장세력에 의해 산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은 서구적인 것을 지독히 저주하며 여인들이 외출하는 행위조차도 반대한다. 여인이 외출을 할 경우에는 남자와 함께여야 하며 학교에 가는 것은 절대 금지된다. 이러한 규정을 어긴 여인은 여자의 얼굴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이란에서도 얼마 전 혼란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반미세력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으며, 여인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 마리나가 소녀시절인 80년대 이란은 지독한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 마리나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이다. 지금은 이란이 아닌 캐나다라는 곳에 정착해 중산층의 가정을 이룬 마리나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을 침묵하는 행위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알리고자 했으며 치유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마리나는 이란에 거주하는 소수의 크리스쳔이었다. 크리스쳔이 된 이유에서도 역사적 굴곡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란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리스쳔이면서 책을 사랑하는 마리나는 친구를 사랑하고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런 날들이 다가온다. 샤 왕조의 부패로 인해 여론이 들끓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혼란이 찾아왔다. 사회주의 사상가들, 무자헤딘, 근본적인 이슬람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그러했다. 이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종교밖에 길이 없다고 주장하는 호메이니가 결국 정권을 잡았다. 많은 사람은 호메이니를 원했고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사회주의자들과 무자헤딘 그리고 반정부주의자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숙청은 혁명의 필수 단계인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 마리나의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19세의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가 교장이 되었고 수업은 모두 종교수업이 되어버렸다. 크리스쳔인 마리나의 학교생활은 곧 지옥처럼 변해갔다. 어느 날 수업을 거부하고 나온 것이 화가 되어 악명 높은 ‘에빈’으로 끌려간 마리나는 그곳을 나온 이후에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에빈’은 정치범 수용소로써 현 정부에 반대하는 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감금, 고문, 처형 등을 하던 악명 높은 곳이다. 고문의 끝은 밀고였으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처형을 당했다. 마리나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만난 알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지만,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했다. 자신은 살아남고 친구들은 모두 죽음을 당해야 하는 상황은 마리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국 알리는 암살당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에빈에서의 기억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란은 이라크와의 오랜 전쟁과 내분으로 인해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할 곳이 되었다.
혼란 속에서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마리나는 신념을 가진 여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었던 이들이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고 저주하는 모습을 본 마리나는 상실과 고통의 삶에 용기 있게 맞섰다. 이란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생이 결코 죽음 앞에서도 후회가 없도록 노력했다. 이 여인이 침묵한 20여 년의 시간을 누가 감히 돌팔매질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출간 된 이후 이란 사회가 보내는 욕과 비방은 그녀의 용기 앞에서 하찮은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고, 인종을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독재자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상식과 신념을 갈고 닦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마리나를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