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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게티의 연주는 시골의 할아버지와 같다. 특별히 바하의 연주는 헨릭 쉐링과는 판이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둘의 연주를 비교해서 듣다보면 얼핏 시게티의 연주가 너무나 초라하다고 생각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 뿐이다. 그의 연주는 빈약한듯 들리지만 정겨움과 동시에 선명한 선율이 분명하게 들려온다.  다른 연주와 비교했을때 그의 선명하고 깨끗한 연주는 누구도 따라갈수 없을 듯하다. 그런 그의 연주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쉐링의 연주가 너무나 거추장 스럽게 느껴지고 시게티의  연주가 도리어 더 많은 정감과 감정을 아울러내게 한다.

그렇다. 나는 시게티의 그런 선명함과 정겨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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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카잘스

그의 연주를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불량한 음질이 기억에 남았다. 그후로 잘 듣지를 않다가  몇 년뒤에 그의 음반을 다시 꺼내어 들었다. 그 때는 전혀 새로움으로 들렸다.

바하를 연주하되 교조적인 해석과 지나치게 감정으로 흐르지 않는 그 중간선상을 멋지게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 대단한 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건하면서도 맛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담백한 맛을 뿜어내고, 첼로의 활이 튕겨지는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일정도로 그의 연주는 생동감이 넘쳤다.

무엇보다 그의 연주는 실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미학.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의 연주는 나의 삶에 균형의 미학이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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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나서 이 책이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칸트의 책을 심각한(?) 인내를 가지고 읽고나면 반드시 남는게 있다.

여전히 이해할수 없는 Kant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의 서적들이 오랜 사유끝이 50줄에 책들을 출판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인문학을 하는데 있어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삶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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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의 어거스틴....

신앙을 가지면서 가졌던 의문은 삼위일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고민중에 책을 택하게 되었는데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였다. 영원이라는 관점과 관계라는 측면에서 풀어가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놀랍다.

당시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너무나 어려웠던 그의 책들이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한 2년 후에 그의 책들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지성의 방황을 거친 그의 책들은 1500여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놀랍기 그지 없다. 현대 신학의 눈으로 보았을때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은총의 신학, 영원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 전적인 타락의 신학들은 현대 신학까지도 그 영향력을 줄곧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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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절대성....규범에 의한 질서.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삶의 원리를 제공해준 사람이다. 나에게 인문학과 신앙이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해주었고 그에 대한 길잡이를 제공해준 사람이다. 지금은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나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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