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신학의 눈으로 본 성경
최경환 지음 / 지우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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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삶의 거처는 땅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교육을 받고 남자라면 군대를 다니고, 취직 하고, 결혼 하기도 합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수익을 얻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더 많은 업무들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내세관은 불교요, 관계 방식은 유교적이며, IT 기반의 가상 공간, 개인성에 대한 강조하는 삶을 살아가며, 화폐에 의해서 사람 및 사물의 가치가 평가되며, 돈을 숭배하는 물신주의자인데, 일요일에는 교회를 출석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을 가끔 골치아픈 나라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내주 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성전이 됩니다.


성전된 그리스도인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군대에서 집총을 거부해야 하는가, 교회 다니는 비윤리적인 정치인에게 투표해야 하나 불교 다니는 윤리적인 정치인에게 투표해야 하나, 생명 보험을 들어야 하나 생사 주관하는 하나님을 믿고 가입하지 말아야 하나, 우리 상품의 가치를 부풀리는 광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핵 개발하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에 찬성해야 하나, 만약 내 배우자가 불신자였다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세속적인 공교육을 해야 하나 기독교 가치 에 기반한 홈스쿨링을 해야 하나 아니면 기독교 미션 스쿨만 보내야하나, 자원을 파괴하고 가속화하는 고사양의 신형 자동차를 사야 하나 대중교통 내지 도보 이동만을 추구해야 하나.


사실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제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예수님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했을까요? 군대는 가셨을까? 보험 가입하셨을까? 직장생활하셨을까? 승용차 구입했을까 아니면 걸어 다니셨을까? 자녀가 있다면 학교 교육은 시켰을까? 


본 도서는 우리의 삶의 굉장히 다면적이고 구체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들이 자주 간과하는 점은 실제 우리의 삶은 학문에서 다루는 논증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삶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다양한 삶 모양에서 어떤 선택지를 택할까하는 성경적인 근거를 찾고자 합니다.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삶에 대해서 신경쓰지 마라는 무책임한 인용보다는, 삶의 복잡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우리에게 걸려있는 직장, 가정, 지역 사회의 기대와 책임들을 충분히 고려하는 현실적인 책입니다.


본 도서의 서론과 12장의 인간의 번영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저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시민으로서, 부모의 아들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살아있는 성전의 몸된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축복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맡기신 사명에 대한 부담감도 느낍니다.


하늘 시민권과 이 땅의 시민권을 지닌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나와 동일한 생활형 기독교인에게 좀 더 많은 생각을 접한 멋진 동지를 만난듯한 위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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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빛 2023-06-2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공감이 가는 글이라 감히 댓글을 남겨봅니다. 교회 뿐 아니라 제 주위에서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너무 반갑기도 해서요... 올리신 글들을 보아하니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시는 분 같네요.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kimbk975 2023-06-27 23: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끄럽지 않은 복음 - 플레밍 러틀리지의 로마서 설교
플레밍 러틀리지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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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마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새로워진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인 언어로 전달하기에, 현대인들은 4복음서에 나타나는 복음의 메시지 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읽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루터의 로마서 주석, 칼바르트 로마서 주석,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설교집들을 떠올리면 시대를 풍미했던 연설가, 신학자들의 발자국에는 로마서와 관련이 있다. 이런 역사의 시사점은 당시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로마서는 혼란을 정리하고 복음의 빛을 비춰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플레밍 러틀리지의 로마서 강해 설교는 어떤 점이 2022년 나에게 어떻게 다가 왔는가?


우선 러틀리지 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 신학과 교리에 충실하게 기반했다는 점이 눈에 띄인다. 읽으면서 대학 시절에 읽었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집이 떠올랐는데, 그만큼 신학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원문 고대 그리스어를 읊어주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교리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문헌사 배경, 성경 형성 과정, 문법 해석, 문학 양식 비평까지 검토한다. 러틀리지 설교가 신학 강론이라고 잠시 착각을 할 정도이다.


설교의 신학 및 교리적 충실성은 로마서를 대상으로 집필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러틀리지의 새로운 시사점은 적용점이다. 러틀리지의 설교집에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지고 문화와 시대 사조로 정착된 종교 사상들과 현대인들의 심리와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자의 모습이다. 


1950년대 실존주의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은 하나의 문화 사조를 넘어서 현대인의 생활 양식으로 자리한다. 대표적인 삶의 구호는 '네가 네 삶의 주인'이다. 그래서 긍정적 경험, 개인 취향과 자아 실현이 중요하다. 


20세기 초반의 프로이드의 실현되지 않은 성적 욕망은 문화를 통해서 고급스럽게 포장되며, 이는 문화의 다양한 성적 코드를 숨기고 우리를 둘러싼다. 또 번영 신학, 삶과 분리된 도구화된 지식의 방식은 종교적 교리와 복음의 가르침을 포로로 삼는다. 현대인들은 종교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도덕적 행위들로 고양되는 카타르시스등을 종교의 역할이요 본체라고 한다. 


러틀리지는 죄(단수 sin)를 세력으로 언급하고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 전적 타락설을 연결하여 설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인과 비교인 모두는 원죄가 아닌 개별 죄들(sins) 을 언급하며, 원죄가 더 이상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도리어 내가 자범죄를 목록화 하고, 범죄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즉, 강력한 세속화된 세계관에 우리의 신앙이 하나의 개념화된 지식으로 포착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신앙, 신학, 교리는 더 이상 삶의 주도적인 지침이 되지 않고, 하나의 내 삶의 한 부분인 종교 도구로 자리 잡는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세속화된 종교 세계관은 굉장히 단단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침윤해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는다. 러틀리지는 이러한 전모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원죄에 대한 로마서 설교 대목을 설교하면서, 현대인들의 심리, 정치, 문화, 사회에 숨겨진 메시지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주님의 수난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 한 성도가 종려주일 주간에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는 대사를 할 수 없었다' 라는 성도의 고백 속에 숨겨진 현대인의 종교적 우월성과 현대 심리학적인 관점을  해부하며 그 모습을 밝혀낸다.


그렇기 때문에 러틀리지의 설교 내용은 상당히 불편한 내용들이 많다. 불편함은 신학 및 교리적인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서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범죄했고 범죄하는 모습, 상황과 예수님의 은혜를 여지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지고 문화 코드에 숨겨진 우리의 언어, 문화, 정치 생활 전반에 드러난 죄의 영역과 윤색한 우리의 삶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러틀리지는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의 자세, 범죄함, 악한 세대와 하나님의 은혜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혼란스런 시대일까? 신앙인이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말할 것같다. 그러나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 영상, 행동 양식, 주거 양식마저 깊숙하게 자리 잡은 로마서의 죄의 양태가 '생활' 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생활이므로 그 모습이 거의 드러지 않는다라는 점이 정말 무서운 대목인 것 같다.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은 평온의 시대에 이유를 알지 못하는 불편함을 느끼는 신앙이라면, 혹은 기독교의 본체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권장하고 싶은 로마서 강해서이다. 이런 내용의 해결을 위해 기독교 세계관 논쟁 관련된 여러 책들도 권장할만 하지만, 러틀리지의 로마서를 읽는다는 것은 좋은 신앙과 세계관 변화와 기준을 기대하고, 삶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번역자의 실력과 노력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의 높은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좋은 번역서의 기본은 외국어 능력은 기본이고 한국어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김지호 번역자님의 한글자 한문장에 대한 조심스러운 번역 작업의 노고를 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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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라한대역/해제/역주본)
마틴 루터 지음, 최주훈 옮김 / 감은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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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매우 유명한데 중고등 시절 세계사 시간에만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유명한데, 그 내용을 읽어본 사람이 없다는 게 흥미로운 점.


사실 루터의 면죄(벌)부와 95개조 논제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신학,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최주훈 박사님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더불어서 루터가 반박을 위함이 아니라, '논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해당 문서가 시간이 흐름을 따라서 짚에 불을 지른 것처럼 여러 소요를 발생하고, 이에 대한 로마 교화청, 면벌부를 둘러싼 종교인들의 탐욕, 루터의 순진함과 용기를 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소중한 점은 95개 논제를 소개하면서 루터가 해당 논제에 대해서 설명한 핵심적인 해설을 같이 실어 놓아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느끼게 되는 점은, 과연 이게 중세 시대만을 위한 95개조 논제인가? 라는 의문이 절로 든다.


그렇다면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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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사회
Hans Schwarz 지음, 최주훈 옮김 / 크리스천헤럴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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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존재 유무와 다양한 해석의 접근을 보여준다. 나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론으로부터 출발하는 책을 잘 보지는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회의론적이고 환원론적인 현대 철학의 의미로 본다면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실체인가 허상인가 꿈인가 조차 궁리해야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존재론부터 출발하는 도서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말로 이야기 해서, 나 자신의 실제도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증명이 어떤 의미로 나에게는 와 닿을까?


다양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사유 방식을 궁금해 한다면 추천하겠지만, 나 같이 성경을 텍스트로 간주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현대 인문학적 접근 방식이 썩~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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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재발견 - 질문, 저항, 소통, 새로운 공동체
최주훈 지음 / 복있는사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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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종교 개혁을 배웠을 때,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세계사에서 뚜렷하게 각인된 종교인이라고 한다면 루터외에 누가 상상이 될까? 그만큼 루터의 영향력은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우리의 상상이다.


왜냐하면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면, 많은 것을 알고 있을것 같지만, 실상 떠오르는 것은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 95개조 반박문 조금 더 알고 있다면 독일어 성서 번역이 전부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루터의 생애, 신학, 영향력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루터의 칭의론에 해설 부분이다. 기계론적이고 법적인 칭의론에 주안점을 두는 현장 신학의 경우 구원파적인 의미로 해석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김세윤 박사님은 이를 두고 구원파적인 칭의론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루터의 칭의론은 단순히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루터의 칭의론은 신분의 변화, 하나님의 계명의 준수 불가능성과 준수해야하는 논리 모순성을 보여준다. 즉 준수할 수 없지만 준수해야 한다. 준수할 때 죄인됨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감사를 하게 된다.


즉, 인간의 순종 불가능성과 순종해야하는 이율배반을 제시한다. 이러한 모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칭의론에서 해결이 되며, 이러한 칭의론을 북유럽 복지 시스템, 만인 제사사장직, 직업 소명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등의 강력한 기반 근거한다. 루터의 칭의론은 신분의 변화라는 '무서운' 세례를 기반으로 철저한 삶의 변화를 요구하며 신앙을 개념적으로만 취급하거나 생각의 변화 심리적인 만족으로만 한정 짓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더 나아가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루터를 바라본다면 질문과 소통이다. 현대 사회학에서의 언급되는 담론중에 하나는 하버마스의 의사 소통 행위이다. 대학교 은사님 한분은 하버마스 이론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맞는 말이 맞는 것이다' 라고 하신 적이 있다. 즉, 권위, 권위주의, 자격이라는 이름의 차별 기제를 배제하고 열린 의사소통을 통하여 상호 검증을 통하여 진리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저자인 최주훈 박사님은 95개조 논제를 통하여 질문과 소통을 언급하는데, 이 대목은 하버마스를 떠 오르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95개조를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반박문'이 아니라 '논제'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논리를 따지는 주제' 이므로 주요 목적이 반박이 아니라 서로 토의를 해서 검토를 하자는 것이었다.


작금의 시대에도 정치, 종교, 학계 권위주의에 기반한 질문을 금하고, 피조물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시대에, 저자가 발견한 루터의 재발견은 질문, 소통, 저항이라는 주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회학적 의미로 조망한 루터에 대한 잘못된 오해인데, 사회학자들은 근대적 개인을 등장 시킨 주인공으로 루터를 언급하고, 종교를 개인의 심리적 영역으로 내 몰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루터의 이후 주장은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으며, 공동체를 떠난 기독교 신앙은 있을 수 없으며,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은 루터의 재발견이라고 하기에는 제목이 너무 부족하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혹은 오해했던 루터의 신학, 철학, 사회적 진짜 영향' 을 보여주는 추천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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