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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복음 - 플레밍 러틀리지의 로마서 설교
플레밍 러틀리지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2년 10월
평점 :
나는 로마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새로워진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인 언어로 전달하기에, 현대인들은 4복음서에 나타나는 복음의 메시지 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읽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루터의 로마서 주석, 칼바르트 로마서 주석,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설교집들을 떠올리면 시대를 풍미했던 연설가, 신학자들의 발자국에는 로마서와 관련이 있다. 이런 역사의 시사점은 당시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로마서는 혼란을 정리하고 복음의 빛을 비춰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플레밍 러틀리지의 로마서 강해 설교는 어떤 점이 2022년 나에게 어떻게 다가 왔는가?
우선 러틀리지 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 신학과 교리에 충실하게 기반했다는 점이 눈에 띄인다. 읽으면서 대학 시절에 읽었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집이 떠올랐는데, 그만큼 신학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원문 고대 그리스어를 읊어주고 한국어로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교리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문헌사 배경, 성경 형성 과정, 문법 해석, 문학 양식 비평까지 검토한다. 러틀리지 설교가 신학 강론이라고 잠시 착각을 할 정도이다.
설교의 신학 및 교리적 충실성은 로마서를 대상으로 집필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면, 러틀리지의 새로운 시사점은 적용점이다. 러틀리지의 설교집에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지고 문화와 시대 사조로 정착된 종교 사상들과 현대인들의 심리와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자의 모습이다.
1950년대 실존주의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은 하나의 문화 사조를 넘어서 현대인의 생활 양식으로 자리한다. 대표적인 삶의 구호는 '네가 네 삶의 주인'이다. 그래서 긍정적 경험, 개인 취향과 자아 실현이 중요하다.
20세기 초반의 프로이드의 실현되지 않은 성적 욕망은 문화를 통해서 고급스럽게 포장되며, 이는 문화의 다양한 성적 코드를 숨기고 우리를 둘러싼다. 또 번영 신학, 삶과 분리된 도구화된 지식의 방식은 종교적 교리와 복음의 가르침을 포로로 삼는다. 현대인들은 종교에서 느끼는 숭고함과 도덕적 행위들로 고양되는 카타르시스등을 종교의 역할이요 본체라고 한다.
러틀리지는 죄(단수 sin)를 세력으로 언급하고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 전적 타락설을 연결하여 설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인과 비교인 모두는 원죄가 아닌 개별 죄들(sins) 을 언급하며, 원죄가 더 이상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도리어 내가 자범죄를 목록화 하고, 범죄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즉, 강력한 세속화된 세계관에 우리의 신앙이 하나의 개념화된 지식으로 포착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신앙, 신학, 교리는 더 이상 삶의 주도적인 지침이 되지 않고, 하나의 내 삶의 한 부분인 종교 도구로 자리 잡는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세속화된 종교 세계관은 굉장히 단단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 침윤해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는다. 러틀리지는 이러한 전모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원죄에 대한 로마서 설교 대목을 설교하면서, 현대인들의 심리, 정치, 문화, 사회에 숨겨진 메시지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주님의 수난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 한 성도가 종려주일 주간에 '나는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는 대사를 할 수 없었다' 라는 성도의 고백 속에 숨겨진 현대인의 종교적 우월성과 현대 심리학적인 관점을 해부하며 그 모습을 밝혀낸다.
그렇기 때문에 러틀리지의 설교 내용은 상당히 불편한 내용들이 많다. 불편함은 신학 및 교리적인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서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범죄했고 범죄하는 모습, 상황과 예수님의 은혜를 여지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얽혀지고 문화 코드에 숨겨진 우리의 언어, 문화, 정치 생활 전반에 드러난 죄의 영역과 윤색한 우리의 삶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러틀리지는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의 자세, 범죄함, 악한 세대와 하나님의 은혜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혼란스런 시대일까? 신앙인이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말할 것같다. 그러나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 영상, 행동 양식, 주거 양식마저 깊숙하게 자리 잡은 로마서의 죄의 양태가 '생활' 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생활이므로 그 모습이 거의 드러지 않는다라는 점이 정말 무서운 대목인 것 같다.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은 평온의 시대에 이유를 알지 못하는 불편함을 느끼는 신앙이라면, 혹은 기독교의 본체를 알고 싶은 분이라면 권장하고 싶은 로마서 강해서이다. 이런 내용의 해결을 위해 기독교 세계관 논쟁 관련된 여러 책들도 권장할만 하지만, 러틀리지의 로마서를 읽는다는 것은 좋은 신앙과 세계관 변화와 기준을 기대하고, 삶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번역자의 실력과 노력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의 높은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좋은 번역서의 기본은 외국어 능력은 기본이고 한국어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김지호 번역자님의 한글자 한문장에 대한 조심스러운 번역 작업의 노고를 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