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며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냐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린 것은 모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 그림이었습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에서 '나'는 보아 뱀이 동물 하나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꽤 만족하여 주변 어른들에게 내보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한 답변-모 자가 뭐가 무섭냐뿐. 그는 낙담하여 한동안 펜을 놓고 그림을 숨겨두었다가 불시착한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에게 다시 꺼내 보인다. 양을 그려달라고 오복조림하던 어린 왕자는 그림을 보자마자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한다. "아냐, 아냐! 뱀은 싫어. 내가 언제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려 달랬어? 보아 뱀은 아주 위험해. 그리고 큰 코끼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워. 자리를 많이 차지 하기 때문에 함께 지낼 수 없단 말이야.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아. 그러니까 조그맣고 귀여운 양을 그려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러니까 '나'와 어린 왕자의 순수한 시각이나 어른들의 잃어버린 동심 따위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근원적인,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에 대한 것이다. 뱀은 무엇이든 씹지 않고 삼켜 소화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한다. 외국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거대한 뱀-비단뱀 등이 수풀을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길고 큰 몸뚱어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팔뚝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뱀이 사람을 삼킨다는 입소문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실제로 한 탐험가는 자신 동료의 머리가 뱀의 입에 들어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사진을 보고 많은 학자은 뱀이 사람을 끝까지 삼키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유는 많다. 뱀의 입이 아무리 크게 찢어진다 하더라도 성인 남성의 어깨가 들어갈 만큼 넓게 벌어지지 못하고,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자칫하면 뱀이 터지기 때문이다. 악어를 삼켰다가 옆구리가 터진 뱀의 사진은 유명하다. 그렇다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그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그림을 그린 '나'의 손을 빌려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한 것일까.


미치오 슈스케는 [구체의 뱀]을 통해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거짓을 품은 사람이라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은 사실 죄악과 거짓을 품은 사람이라고, 원죄로부터 시작해 자죄까지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죄악과 거짓을 삼킨 사람이라고, 미치오 슈스케는 첫 문장부터 차근차근 자의를 구축하고 있다. 장편소설이긴 하나 부담 없는 양에, 등장하는 소수 인물은 모두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현실 그 자체다. 토모히코와 그의 이혼한 부모, 토모를 거둬 함께 사는 오츠타로네-오츠타로, 나오, 죽은 아내 이츠코와 사요, 토모코, 타사이…. 꿋꿋하게 사회를 견디어 가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미치오 슈스케의 손길을 거친 사람들로서 그렇지 않다. 


나열한 인물들은 모두 작거나 큰 거짓을 몸에 품고 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애써 현실을 피하고 죽는다. 그러한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에 갇혀 있다. '구체'이다. 미치오 슈스케의 인물들이 그토록 많이 가진 '스노우 돔'이다. 미치오의 말을 빌리자면, 구체에 갇힌, 저마다 거짓말을 품은 사람들이, 언젠가 구체에 비칠 저녁 해가 유리 속의 차가운 눈을 녹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즉 구체-스노우돔은 배가 빵빵하도록 거짓을 지닌 사람들이 터질 듯 쌓인 어두운 공간인 동시에 그들이 속죄를 기다리는 밝은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스노우돔 안의 물을 유영하는 하얀 눈은 예수의 십자가 흘린 피와 비슷한 의미로 해석된다. 미치오의 인물들이 스노우돔을 저마다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소망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짊어짐과 비슷한 의미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도 그러한 구절이 있다. 


"여기에 들어갈 수 있으면 행복할지도 몰라"

맑은 음색이 점차 늘어지더니 결국 곡이 연주되는 도중에 멈춰 버렸을 때, 토모코가 불쑥 말했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스노돔의 유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어째서?"

"그러면 언제나 아름다운 경치만 볼 수 있잖아."

생각해보니 스노돔에 대해 사요와 토모코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요에게 스노돔은 자신을 가두는 보이지 않는 유리를 연상시키는 물건이었다. 토모코에게는 아름다운 경치를 언제까지나 보존해 주는 물건이었다.


위의 이치를 따르자면 깨어진 사요의 스노돔은 구원의 길이 사라진 걸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토모히코의 거짓된 긍휼, 거짓된 동정에 상처 입은 사요가 자살을 선택한 그 순간, 구체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광명의 저녁 해'가 그녀에게 비칠 일은 없어진 것이다. 또 그러한 이치에서 토모히코가 토모코의 스노우돔을 깬 것은 또한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토모히코는 그녀의 죽음을 후일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가 미치오의 이러한 의도를 깨달았다면 슬퍼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스노우돔만 깨지 않았으면 되었기에.


이야기를 조금 틀어,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범인이야 뻔하디뻔하다손 치더라도 마지막 반전은 소설에서 내내 견인해오던 싱크홀 같은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을 모조리 메꾸어 주는 것이어서 꽉 찬 폭발이 속에서 터지는 듯했다. 전형적인 신인작가의 면모. 미숙한 전개의 확실한 폭발. 그에 반해 [구체의 뱀]은 이제 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작품이다. 생텍쥐페리의 보아뱀을 끌어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 글솜씨는 그의 성장을 방증한다. 인물들이 살아 있는데다 하나하나 매력적이어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다만, '개발새발'이라는 번역에서 눈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어야 했는데, 아무리 맞춤법으로 인정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공식적인 글에서 보기에 껄끄러운 면이 없잖아 있다. '괴발개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개발새발'로 표현하는 건 소설의 흐름을 깨는 것 같기도 해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외에는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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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2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2-1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흥미로운 리뷰이군요.. 다만ㅠ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저로서는 죄송스럽게도 몇 몇 부분이 잘 와닿지 않네요. 책을 한 번 읽고 또 읽어보아야겠네요. 많이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ㅎㅎㅎ

이진 2013-02-16 23:13   좋아요 0 | URL
그런 걸 감안하지 못한 제 탓인 걸요. 제가 죄송합니다아 ㅠㅠ
한 숨 늦게, 가연님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는, 많이 늦었군요.
그렇지만 저도 역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인사 보낼게요.
굳밤 :D

jo 2013-02-16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린왕자다!!!개발새발에까지 민감하진 말아요!!! ㅎㅎ 괴발개발보다 난 개발새발이 더 눈에 편한건... ㅎㅎ
한국어 능력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 국어 실력을 한탄 또 한탄합니다. 어렵다 마음먹지만 능력시험 모의고사 풀고서 난생처음 그렇게 비 많이 내린 시험지 처음봤습니다. ㅎㅎ 언제나 홧팅! 공부해야하는데.. 하면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이진 2013-02-17 21:24   좋아요 0 | URL
개발새발에 어쩔 수 없이 눈이 멈추더라구요. 안 그래도 몇군데 맞춤법상 맞지 않거나 어색한 부분이 많아 고개를 갸웃하던 때여서 더욱 그랬어요. 한국어 능력 시험이라니! 저도 한번 공부해보고 싶네요. 어디, 모의고사 시험지좀 주실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