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방바닥에 엎드려 내 그림자에 입을 맞추네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 뜯네


내 그림자의 눈이 반짝 켜지네


내 상반신엔 평생 한 번도 씻지 않은

낙타 같은 사람

내 하반신엔 깊은 바다 속으로 내 몸을 끌고 헤매는

검은 상어 같은 사람

숨어 있네


나는 그런 시큼한 채찍을 든

오래된 사람들에게 반씩 먹힌 여자


그리하여 고단한 내 얼굴엔

내 후생의 몸뚱어리, 모래 언덕의 요염한 곡선

멀거니 바라보는

퉁방울 같은 낙타 눈동자 열려 있고

내 발목엔 낳지 않은 아가들의

수백 개 손톱 같은 비늘들이 따갑게 박혀 있네

평생 떨어지지 않네


한 사람이 저 멀리 사막으로 가자고 내 팔을 흔드네


한 사람이 저 멀리 바다로 가자고 내 다리를 묶네


따끈한 혀가 내 손가락보다 먼저 얼어붙네

춥다 춥다고 말을 더듬네

생리통이 모질게 하반신을 휩쓰네

아프다 아프다고

반쯤은 사막에

반쯤은 심해에

붙들린 몸을 뒤트네


내가 내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뜯네

하루 종일 나는 나를 헤엄치네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인어는 자가 생식하는 걸까?





<김혜순 "당신의 첫"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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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9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1-2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과 외롬과 아픔과 상처를 갖는 모든 대상들은 이미 <인어의 숙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진님도 인어, 덧글 다는 저도 인어...

지켜 보며 연민만 하고 싶은 인어지만 결국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막과 바다를 헤매는 어쩌지 못하는...

이진 2013-01-21 19:24   좋아요 0 | URL
우리는 모두 인어군요.
다리를 잃은, 몸과 다리가 분리된,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읽으면 읽을수록 아픈 시라는게 체감되어요.

jo 2013-01-2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요? 남자인어도 있지 않나요? 농담입니다. 조크조크 ㅋㅋㅋ
인어.. 불쌍하네요. 이리저리 갈팡질팡.
인어의 숙명인가요? 어디도 못가는 인어네요...

이진 2013-01-21 19:24   좋아요 0 | URL
남자인어도 있다네요!!
완전 신기하죠? 희희...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