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길 싫어한다. 그래서 잘 모른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다른애들이 스터디하자고 해도 난 하기 싫었다. 책을 쫌 읽다보면 화가 나고 눈물 나고 너무 속상하고 그래서였다. 바보같은 짓이다. 타조인가 낙타인가 사람이 쫓아가면 머리만 모래에 묻고 숨었다고 한다는데(자기가 안 보이면 남도 안보일 줄 알고) 내가 딱 그꼴이다.

이 책도 그래서 보면서 너무 괴로웠다. 근현대사의 질곡과 모순과 서러움을 한데 뭉뚱그린 내용과 또 그것에 너무도 어울리는 그림체를 그냥 설렁설렁 넘기기가 너무도 괴로웠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괴로웠다.

가슴에 돌덩어리를 턱, 하고 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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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멘트에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오이대왕 - 사계절 1318 문고 7 사계절 1318 교양문고 7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민주주의와 부적절한 권위에 대해 이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고 적절하게 묘사한 우화가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평범한 집의 부엌에 어느날 오이 같기도 하고 호박 같기도 한 불쾌하고 물컹한 것이 왕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망명을 청하노라!"

이 무슨 황당한......쪼고만 괴물이 등장하는 동화라니, 웬지 저학년용 동화일 것 같지만 이것은 굉장히 효과적인 사회 참고서이다. 재미있기까지 한....

이 가정은 이 세상 대부분의 가정의 모습과 비슷하다. 권위적인 아버지 휘하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은 대부분 무시된다. 정하는 건 부모, 따르는 건 아이들이다. 휴일에 소풍을 어디로 갈지, 딸의 귀가 시간은 언제까지여야 하는지, 딸이 아르바이트를 할지 안할지 그 돈으로 뭘할지 이런걸 결정하는 건 아버지다.(이 부분에서 나는 매우 찔렸다. 나도 권위적인 부모가 아니라고 절대 말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 밑엣것들에게 이렇게 권위적인 아버지, 왕관을 쓴 대왕에게는 너무나 쉽게 복종한다. 그 집의 다른 식구들이 오이대왕을  "쟤 뭐야?"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그를 자기 침대에서 재우고 먹을 걸 갖다 바친다. 알량한 권위를 가진 자는 원래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쉽게 복종하는 법, 우리가 살면서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비열한 오이대왕은 아버지를 꼬드겨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킨 후 복지사회를 건설하고 있는 지하세계의 구미-오리들을 몰살시키려 하는데.....아버지에게 달콤한 댓가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과연 누가 이 실패한 독재자 망명가를 집에서 쫓아내고 아버지를 제정신으로 되돌릴 것인가?

읽고 나면 부적절한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추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가정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그리고 한 가지 더. 쿠데타와 혁명의 차이에 대해 이 집 딸이 똑 부러지게 설명해 놓았다.

"군인들을 끌고 와 의사당을 점령하고, 평소에 싫어했던 사람들을 가두고, 신문이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쿠데타예요. 하지만 백성들이 왕을 밀어 내고, 의사당의 문을 열어 놓고, 투표를 하고, 신문이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있다면 그건 혁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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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10-1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희 집에 책 [오이대왕] 없는디요.....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오이대왕'이 있습니다.... ㅠㅠ

로드무비 2004-10-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참 쉽게 재밌게 잘 쓰세요.^^

숨은아이 2004-10-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보관함으로 직행.

깍두기 2004-10-1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마음 속에 있는 오이대왕이 참 무섭죠......다들 감사!^^

깍두기 2004-10-10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닮으면 보장 충분히 될 것 같은데요^^

자유소녀 2004-12-0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잘 쓰셨는데, 오이대왕이 나타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어요..8
 

 

 

 

 

 

의미있는 얘기였으나 설득력과 끌어당기는 힘이 좀 부족함.

줄거리 : 주인공의 단짝 친구가 멀리 이사간다는 폭탄 선언을 한 데 이어 아빠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신단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떠나는군. 게다가 엄마까지 아빠를 만나러 가 버리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할머니와 지내게 되었으니......그런데, 이 생활이 싫지만은 않네? 그들이 없는 동안 나는 외로움을 이기려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그만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발견해 버린거야! 게다가 어색하기만 했던 친척 할머니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시고.....이별이란 게 꼭 안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어린이가 크는데는 이별도 필요했던 거야. 그들 없이도 설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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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 1 - 레제르 만화 컬렉션
장 마르크 레제르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레제르의 만화를 보면 항상 묘하게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무덤덤하면서도 충격적이고, 잔혹하면서도 따뜻하고, 깊은 슬픔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이 흘려 쓴 필기체 같은 만화를 보고 나면 나는 인간이란 참 복잡한 감정을 지닌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 '원시인'은 말 그대로의 원시인은 아닌 듯하다. 그들의 모습은 석기시대의 원시인이되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빌딩 숲 속 현대인의 무자비함이 오버랩된다. 레제르가 우리에게 '그렇게 사는 너희들이 원시인이야'라고 말하는 듯.

그런데 이 사람의 매력은 잔혹함, 비열함, 어리석음 등을 묘사하는데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무심하다는 것이다. 다리가 떨어져나가고, 목을 매달고, 사람이 짓이겨지는 장면이 수시로 묘사되는데도 이 사람의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그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이(그건 사실이기도 하다) 조금의 감정표현도 없다. 그래서 나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책장을 슬렁슬렁 넘기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딱 덮고 나면 마음 속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내 하루를 점령하는 걸 느끼곤 당황한다.

<채소밭>이란 소제목의 만화가 제일 먼저 나온다. 농부가 열심히 밭을 갈아 곡식을 일궈 놓으면 그때마다 코끼리가 밭을 짓밟고 다 먹어치우고는 사라진다. 농부의 우는 모습을 떠올린 코끼리가 미안한 마음에 밭을 갈아주러 가 보지만 낙심한 농부는 이미 목을 맨 후. 코끼리는 애도하며 양심의 가책에 눈물을 흘리나 그 눈물은 암컷을 유혹하는 데 이용되고 이제는 둘이 같이 밭을 짓밟으러 다닌다.

유쾌하게 낄낄거리다(코끼리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슬픈 이야기였던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남는 것 없는 힘든 사람이 인생을 포기한 얘기. 그리고 또 이것은 우리의 양심을 들쑤시는 얘기이기도 하다. 남의 불행에 눈물 흘려주는 척, 자책하는 척 하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미화시키지 않던가.(그리고 그것이 이성을 꼬시는데 사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깊은 슬픔>: 절구질하는 여인은 등 뒤에서 빽빽 울어대는 아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남편, 의심하는 행인, 지나가는 개까지 절구통에 넣고 찧어버린다. 개와 함께 살던 노인은 슬픔에 겨워 스스로 절구통 속에 들어간다.

레제르는 스스로 절구통 속에 들어가는 노인을 일컬어 '깊은 슬픔'이라 했을지 모르나 나는 절구질하는 여인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나도 인생이 괴로울 땐 애고 남편이고 주변사람들이고 모두 마음 속에서 절구질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마 레제르도 그래서 깊은 슬픔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레제르가 자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 비열하거나 어리석은 등장인물들을 무조건 미워하지만은 않아서 나는 그가 좋다. 그는 인간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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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4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0-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프한 리뷰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깍두기 2004-10-0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항상 감사^^ 님 덕에 제가 용기있게 리뷰를 쓰는 것 같습니다.

숨은아이 2004-10-1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저도 룰루랄라~!

픽팍 2004-10-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굉장히 잘 쓰시네요
문장을 읽고 있는데 마치 초밥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뒷끝이 없다고 할까?
암튼 대단해요 꼭 읽어 볼께요 ㅋ

깍두기 2004-10-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픽팍님. 이렇게 노골적인(?) 칭찬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저도 님의 서재에 놀러가 봐야겠습니다

픽팍 2004-10-2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서재 관리 안해요 ㅋㅋㅋ
그냥 둘러보는 것만 좋아해서리
저도 마이 리뷰 이제 서서히 써 보려구용 ㅋㅋㅋ
 

 

 

 

 

 

 

리뷰를 쓰려고 하다가 호어스트 아저씨의 귀차니즘에 감염되어 페이퍼로 돌린다.

이 책에 묘사된 호어스트는 이 세상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귀차니즘의 고수이나, 우리는 속으면 안된다. 이 사람은 작가에다, 자기가 쓴 작품을 공연씩이나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따라하다가는 망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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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0-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렇죠, 따라하다가 망하면 안되겠죠. ^^

하얀마녀 2004-10-0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절대 속으면 안되죠. 역시 날카로우신 깍두기님 ^^

코코죠 2004-10-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대로입니다. 호어스트를 조심하세요, 안 그러면 오즈마되요! 꺄아아악

깍두기 2004-10-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요들^^ 그런데 오즈마님, 님처럼 된다면 나는 따라하고 싶은 걸?^^

마냐 2004-10-0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히 예리한 리뷰임다. 흐흐.

깍두기 2004-10-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세줄짜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