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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대왕 - 사계절 1318 문고 7 ㅣ 사계절 1318 교양문고 7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민주주의와 부적절한 권위에 대해 이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고 적절하게 묘사한 우화가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평범한 집의 부엌에 어느날 오이 같기도 하고 호박 같기도 한 불쾌하고 물컹한 것이 왕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망명을 청하노라!"
이 무슨 황당한......쪼고만 괴물이 등장하는 동화라니, 웬지 저학년용 동화일 것 같지만 이것은 굉장히 효과적인 사회 참고서이다. 재미있기까지 한....
이 가정은 이 세상 대부분의 가정의 모습과 비슷하다. 권위적인 아버지 휘하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은 대부분 무시된다. 정하는 건 부모, 따르는 건 아이들이다. 휴일에 소풍을 어디로 갈지, 딸의 귀가 시간은 언제까지여야 하는지, 딸이 아르바이트를 할지 안할지 그 돈으로 뭘할지 이런걸 결정하는 건 아버지다.(이 부분에서 나는 매우 찔렸다. 나도 권위적인 부모가 아니라고 절대 말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 밑엣것들에게 이렇게 권위적인 아버지, 왕관을 쓴 대왕에게는 너무나 쉽게 복종한다. 그 집의 다른 식구들이 오이대왕을 "쟤 뭐야?"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그를 자기 침대에서 재우고 먹을 걸 갖다 바친다. 알량한 권위를 가진 자는 원래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쉽게 복종하는 법, 우리가 살면서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비열한 오이대왕은 아버지를 꼬드겨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킨 후 복지사회를 건설하고 있는 지하세계의 구미-오리들을 몰살시키려 하는데.....아버지에게 달콤한 댓가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과연 누가 이 실패한 독재자 망명가를 집에서 쫓아내고 아버지를 제정신으로 되돌릴 것인가?
읽고 나면 부적절한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추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가정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그리고 한 가지 더. 쿠데타와 혁명의 차이에 대해 이 집 딸이 똑 부러지게 설명해 놓았다.
"군인들을 끌고 와 의사당을 점령하고, 평소에 싫어했던 사람들을 가두고, 신문이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쿠데타예요. 하지만 백성들이 왕을 밀어 내고, 의사당의 문을 열어 놓고, 투표를 하고, 신문이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있다면 그건 혁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