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 전10권 세트 김정산 삼한지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김정산의 '삼한지'를 덮으며 나는 아쉬웠다.  아, 이제 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여름과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난 이 책으로 나는 퇴근 후의 시간들이 참 달콤했었다. 중독성이 강한 카페인 음료를 마셔 대듯이 숨가쁘게 진행되는 장편 대서사시에 폭 빠져 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을 때처럼 이 책은 일상의 번잡한 일들을 잊게 하고 고구려, 신라, 백제가 힘의 균형을 이루던 시기부터 신라가 당의 힘을 업고 결국 삼한을 통일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 내었다.

1권에서는 김용춘과 김서현의 만남,그리고 김유신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주로 나와 있고, 2권과 3권에서는 광개토대왕의 기상과 얼을 이어 받으려는 고구려인들의 패기가 보였는데 을지문덕 장군의 영웅다운 면모와 통쾌한 살수대첩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2,4권에서는 마동왕자 서동대왕 이야기가 중심인데, 백제 왕이 되어 그가 펼치는 정치와 외교는 비열할 정도로 치밀하고 과감했다. 그의 시대가 백제 문화의 중흥기라고 하겠다. 그 후 해동증자라고까지 불리웠던 의자왕이 성충 같은 당대의 책사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아집과 오만에 빠져 나당연합군에게 사직을 내주고 마는 9권에서는 참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5권에서는 백반의 쿠데타를 제압하고 김용춘과 김서현이 덕만공주를 옹립하여 신라의 여왕시대가 열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백제삼보(百濟三寶)라 불리는 성충, 흥수, 사택지적이 도인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모습도 볼만하다. 이들 세 사람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었다면 백제의 찬란한 문화는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6권에서는 여왕이 즉위한 뒤 혼란에 빠진 신라사회와 정변을 일으킨 연개소문의 모습이 그려진다. 언니의 꿈을 사 김춘추의 아내가 되는 문희의 사연도 재밌는 장면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눌최와 벌구의 죽음앞에서 분열하는 화랑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그들의 장례식을 그들의 귀향을 축하하는 잔치로 만들자고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말하는 김유신의 장엄한 목소리였다.

"누가 눌최와 벌구를 땅에만 묻으려 하는가! 생전에 눌최는 꽃과 바람을 좋아하고, 사귀는 사람의 출신과 존비귀천에 초연했으며, 한번 맹세한 일은 비록 잘못된 것일지언정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봉잠성 성루에 높이 앉아 군사들을 부릴 때 적에게 목을 잃고도 손에서 절도봉을 놓지 않은 얘기를 들었는가! 그 절도봉을 눌최는 지금도 썩은 뼈로 단단히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벌구는 또한 어떠한가. 그는 태생조차 알 길 없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상전이 하는 일이면 지옥까지 따라갈 곧은 신념으로 일생을 충직하게 살았다. 그대들은 생선처럼 토막난 벌구의 참혹한 뼈를 보았는가? 그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저토록 처참한 몰골이 되었던가! 무엇을 지키려고 귀중한 목숨을 미련없이 적의 손에 내어주었단 말인가!"

아, 난 이 장면에서 정말 코끝이 아려왔다. 장편대하소설인데도 서정적으로 독자의 가슴에 다가오는 문장들은 소설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장대한 스케일의 소설에서 실감있게 그려 낸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7,8권은 김춘추의 외교와 당태종의 몰락을 자세히 보여준다. 만약 고구려가 통일을 이루었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아쉬워 하는 그 생각이 다시 들었다. 수의 양광이 기세등등하게 몰고 온 백만 대군도 요동을 공략하지 못했고, 중원을 평정한 당태종도 요동에 들어와 안시성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씁쓸히 물러갔다. 심지어 절대 요동을 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내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카리스마와 지략이 뛰어났던 연개소문이 철권통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죽음 이후에 고구려의 신하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더라면....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 역사도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김춘추의 아들 법민(문무왕)도 참으로 명민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선견지명과 왕의 위엄을 지켜내고 선왕의 유지를 받들려고 고육지책으로 진주장군 일족을 멸하는 장면 등 10권에서는 거의 법민을 중심으로 그의 빛나는 지도력이 빛을 발하였다.

검모잠의 눈부신 검술, 흑치상지의 우직한 충성심, 강수의 놀라운 지략, 김유신의 아들들인 원술과 시득의 젊은 패기 등등 다양한 인물들의 면면을 잘 엮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이제 우리 나라에 '삼한지'가 있다. 이토록 아름답고 실감나게 당대를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는 당시의 어수선한 시대를 반영하여 무수한 전란이 묘사된다. 그 속에 권모술수도 등장하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자들의 암투와 내분도 보여진다. 잔혹한 전투장면과 처참한 전쟁의 상처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영웅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멸망한 사직을 앞에 놓고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충성스런 신하들, 그리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희생정신을 보며 들불처럼 일어섰던 순수한 백성들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머릿 속에는 말을 탄 사람들이 뛰어 다녔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을지유자, 김춘추, 김유신, 강수, 안승, 알천, 천존, 은상, 두두리거사 등등. 그 중에서도 왕위에 오르지 않고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평생 대쪽같은 선비의 모습으로 살아 간 알천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을 보듯이 감탄이 나오고 그의 인품에 고개가 숙여졌다. 이제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그들의 말발굽 소리는 한동안 오래 내 귓가에 울릴 것 같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모든 분들이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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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3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3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04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대목을 보니 미처 모르고 있던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마구 생기는군요.^^

비자림 2006-10-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았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우리 문학의 힘도 느꼈구요. 강추입니다. ㅎㅎㅎ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나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사뭇 높아졌다. 게다가 두 아이가 다 약간의 아토피 증세가 있어 마음고생을 많이 한 나로서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가는 돌파구의 하나로 여러 건강 관련 서적을 좀 탐독한 경험이 있다.

그 속에서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와 '민족생활의학'을 만난 건 참으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논조나 의학상식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책들을 거론한 이유는 이 책도 내게 그 책들 만큼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 즉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 음지의 질환들, 바른 생활을 하자'로 나뉘어져 있다. 

'환자가 알면 좋은 것들'에서는 대학 병원의 허와 실이라든지 의료소송, 법의학, 응급구조 등 우리가 알아두면 편리한 의학 주변 상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의학 주변의 것들에 대한 작가의 건강한 관점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음지의 질환들'에서는 우울증, 수면장애, 틱, 탈모, 변비, 설사 등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크게 중요시 되지 않고 사회의 편견으로 인하여 쉬쉬하게 되어 해결책을 찾기 힘든 질환들에 대해 유쾌하고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울증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는 인도 여행을 권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통으로 서구의학을 전공한 이 답지 않은 파격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열린 의식이 드러난다.

또한, 교양서적의 틀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학서적인데도 독자로 하여금 계속하여 웃음 짓게 하는 마력이 이 작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과감하게 진실에 맞서 보려는 태도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더더욱 웃음의 파장을 폭넓게 만드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틱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도 틱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는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

고1이 되자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없앨 수 없는 거라면 즐기자고. 난 최대한 눈에 안 띄는 틱을 개발했다. 다름 아닌 발가락을 움직이는 틱. 그걸 하니 다른 틱을 안 하게 되고, 발가락은 눈에 잘 안 띄니 좋았다. 그 덕분에 나랑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틱을 갖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p.134)

아버지에 대한 공포, 공포에 대한 감수성이 많아 틱이 생겼다는 작가. 그 작가의 고심 끝의 해결책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분은 이 책에 무수히 많이 나온다. 어떤 화제이든 우리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가는 그의 유쾌한 필력이 참 신기했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세 번째 부분이었다. 아동학대, 암 예방 음식, 포경수술, 정력제, 콘돔, 제왕절개, 헬리코박터, 비타민 등에 대한 그의 의견은 한 마디로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암을 예방하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가장 좋은 대책이라는 것이다.

그 중 콘돔에 관한 그의 의견만 보아도 그의 생각은 참으로 진보적이고 개방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콘돔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익숙해지도록 교육해야 하고 콘돔 자판기를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견이 성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반대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나라의 성문화가 너무 폐쇄적이고 경직된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의 의견에 박수를 보냈다. 

암을 예방하는 음식에 대한 결론에서 그의 가치관, 인생관이 드러난다.

"모든 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 법, 마음을 편안히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 아닐까."(p.212)

그렇다. 의학 상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를 갖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닐까? 채식이니 육식이니 선 긋지 말고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식욕이 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며 살고, 사회의 편견에 물들지 말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 나는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게 이런 게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어려운 의학 상식에 대해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이야기하여 대중성을 확보해 놓은 그의 책. 건강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느긋한 마음으로 좀더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데 지침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간 사이사이마다 유모어가 번득이고, 그보다 더 고귀한, 사람에 대한 깊고 따스한 인간애가 보이는 그의 신간이 나오기를 벌써부터 기대해 보며 이 글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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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4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가를 보니 그분이네요. 반가워라~~ 발가락 틱, 정말 그다운 유쾌함이네요^^ 틱을 앓고 있는 학생이 있는데 웃으며 말해주어야겠어요.

비자림 2006-08-2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종 키득거리며 읽었어요.
대체의학에 대한 견해만 저랑 의견을 달리하고 나머지는 전부 공감되는 내용들이었지요.

씩씩하니 2006-08-2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 치료를 위해 식이요법의 의미조차 찾을 길 없다는 말 들었는대...그 말 맞아요??
혹 이 책에 정답 있어요???

비자림 2006-08-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 님의 질문이 잘 감이 안 오지만 대답해 볼게요. 암 치료를 위한 식이요법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안 나와있구요. 리뷰에 썼듯이 이 책은 음지의 질환들이라든지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질병이나 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유쾌하고 명쾌하게 작가의 의견을 밝힌 교양서적이에요.

암 치료에 대한 식이요법에 대한 책으로 제가 알고 있는 책은, 아래 책들이 있어요.

 

 

 

 

그리고 '겨레의 자연건강'이라는 사이트를 한 번 방문해 보셔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크라임 제로 - 전2권 세트 - 뫼비우스 서재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 두 권을 방금 다 보았다. 며칠 동안 이 소설에 빠져 나는 일상의 잡다한 일들을 대충대충 하며 살았다.

스릴러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소설. 무섭다기 보다는 치밀하게 짜여진 지적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톰 크루즈가 나왔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일면 유사하면서도 더 비정하고 극단적인 음모가 도사려 있는 소설.

이 책은 2008년을 배경으로 열세명의 소녀를 연쇄살인한 극악무도한 살인범 칼 액설맨의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이 내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을 거라는 기분 좋은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치밀한 캐릭터, 미궁으로 빠져드는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 속 미로를 즐겁게 찾아 헤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좋았다.

이 소설의 양대 축은 남성과 여성이다. 그런데 작가는 아주 극단적으로 남성을 규정해 놓는다. 모든 강력범죄의 구십 퍼센트가 남성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보고 남성의 그러한 선천적 폭력성을 제거해야 이 사회의 범죄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믿는 여성들.

반면 여성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고 남성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과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주로 나온다. 과학자 앨리스 프린스와  FBI국장 매들린 네일러는 자신들의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양심 프로젝트와 크라임 제로(범죄율 제로)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진행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실험을 사형수들에게 자행하여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양심프로젝트가 범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에 대해 변이시키는 것이라면 범죄율 제로는 적국의 군인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남성(잠재적으로 폭력을 내재하여 태어났다고 규정된)을 대상으로 그들의 씨를 말리는 끔찍한 프로젝트이다. 이 때 희생될 남성의 숫자는 삼년 이내 이십 오억 명이다.

일견 상당히 황당무계하고 공상적인 이야기를 작가는 풍부한 과학적 지식과 잘 혼합하여 놀랍도록 재미있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다.

가령, 슈퍼 컴퓨터 타이타니아나 바이로벡터 솔루션 사 자궁에 대한 묘사는 아주 세밀하여 마치 눈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범죄자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를 모티브로 하여 거대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나는 루크의 할아버지가 인간을 보는 견해에 더 공감이 갔다.

"인간은 그의 행동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 이외의 것으로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동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이며 따라서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p.185)

인류의 반을 겨냥하여 무서운 음모를 꾸미는 매들린과 앨리스에 대항하여 캐시 커와 루크 데커의 목숨을 건 모험담을 다 읽고 나니 어깨가 뻐근하면서도 색다른 소설을 읽은 즐거움에 만족감이 밀려왔다. 정말 방대한 스케일의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더운 여름 일상을 잊고 싶을 때, 혹은 짜릿한 서스펜스를 책에서 느끼고 싶을 때 마이클 코디의 '크라임 제로'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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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나의 교육철학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고병헌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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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정신적 스승은 영혼의 깨우침을 주는 사람일 것이다. 내게 있어 간디도 그러한 존재이다.

이 책은 인도교육에 대한 간디의 절절한 애정과 깊은 사색이 담겨 있다. 교육철학에 대한 이론이나 전문적인 식견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실천적인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고 쉬운 언어로 쓰여 있어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의 교육의 핵심은 '신체와 정신과 영혼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영혼을 각성시키는 교육이란 '심성교육(education of the heart)'을 뜻한다. 따라서 심성이 전면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신체적,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과 함께 심성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p.220)

"또한 영혼의 고양을 위한 심성 교육도 전혀 절제되지 못한, 거친 방식으로 성급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우리 사회가 도덕적, 영적 파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은 이러한 도덕적, 영적 파탄의 현실마저도 매우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p.222)


그리고 그가 추구한 교육은 노작교육의 모습을 띠고 있다.

"두 번째 단계(9~16세)에서, 모든 어린이는 학비를 스스로 벌 수 있어야 한다. 즉 공부하면서 생산 활동에도 참여하는 것이 좋으며, 그렇게 하면 일해서 번 돈으로 학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p.42)

"그래서 시골 마을에서 주로 필요로 하는 소면(梳綿)이나 직조(織造)와 같은 류의 실과 교육에 기초해서 초등 교육을 해야 한다는 나의 계획이야말로 조용한, 그러나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사회 혁명을 최선봉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p.67-68)


특히 그는 어린이교육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문자 교육은 나중에 하라는 것, 놀이처럼 교육하라는 것, 기하학적인 모형을 그리는 것을 배운 후 글자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 강제로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모든 교육은 모국어로 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간디는 인도 교육체제 중 인도 전역이 외국어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비극적으로 인식했다.

"외국어로 하는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긴장하게 한다. 또한 우리 아이들을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고 머릿속에 아무것이나 쑤셔 넣는 사람 혹은 흉내쟁이로 만들어버리고, 독창적인 사고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전혀 길러내지 못하며, 자신이 배운 것조차도 일반 대중이나 가족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만든다. 외국어로 하는 교육이 참으로 우리 아이들을 인도에 사는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현행 교육 체제가 낳은 가장 큰 비극이다. 또한 외국어로 하는 교육은 모국어의 발달을 가로막는다."(p.104-105)

그 외에도 체육교육, 음악교육, 종교교육, 성교육, 여성교육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인생을 음악적으로 만들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다가왔다. 이 뜻은 ‘신에게 몰입하고 신과하나가 된다는 것’인데 종교가 없는 나이지만 왠지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가난과 억압에 짓눌린 민중에 대한 사랑, 아직도 인도 전역에 뿌리깊이 남아 있는 카스트제도의 모순에 대한 깊은 성찰, 모국어를 통한 민족의 부흥을 꿈꾸는 그의 소망이 현재 어느 정도 인도에 반영되었는 지 알고 싶다.

인도 교육에 대한 그의 글을 주로 모아 놓은 책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 나라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부디 ‘교육’과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이 땅의 교육자들이 한 번쯤 일독하기를 바란다.

그의 말을 기억하며 이 글을 끝맺어야겠다.

“학생들의 내면에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진정한 교육은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학생들 머릿속에 억지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런 식의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의 독창성을 파괴하고 학생들을 단순한 기계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참으로 쓸모없는 짓이 될 뿐이다.”(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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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7-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 글귀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비자림 2006-07-20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말인데 어렵지요...

달팽이 2006-07-2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내면에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는 것..
인생에서 그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
시련을 거치면서도 더욱 성숙해지는 지속성있는 내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
"내면에서 이끌어낸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데 온평생이 필요하군요..."

비자림 2006-07-2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화두처럼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아야겠지요, 저 말은.
당장 안 되어도, 당장 표가 안 나도 조급해 하지 말고,
가끔은 속아도 주고 가끔은 못 본 척도 하면서
그네들 내면 깊숙한 곳의 진실과 닿고 싶어요.

씩씩하니 2006-07-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의 내면에서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 것...그런 교육을 위해 열심히 읽고 느끼는 비자림님이 늘 존경스럽답니다..

비자림 2006-08-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용서하옵소서, 씩씩하니님. ㅎㅎ
근데 님이 절 너무 좋게 봐 주셔서 민망하옵니다.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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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언어가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그의 언어가 화려한 은유의 옷을 입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언어의 옷자락 한 올 한 올이 전부 그의 마음과 일치하고 아름다울 때이다.

또한 한 사람의 존재가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왔다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밝고 영롱하게 빛을 내는 그런 시 같은 존재...

내가 법정 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덮으며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이 책이 이전의 책들과 좀 다른 점은 '잠언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글들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구절은 더 천천히 읽게 되었다.

법정 스님은 인간이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거느리고/휘적휘적 지평선 위를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p.37)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수록 내가 느끼는 것도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가족이 있고 직업이 있고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바람이 내 가슴 속을 한 차례 휘저을 때가 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한참동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용감하게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의지해야 한다./자기 자신에, 진리에 의지해야 한다."(p.90)

그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영혼을 맑히는 일에 애쓰고, 녹슨 삶을 두려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p.73)

법정스님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하였지만 '하늘 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사람을 그 무엇보다 존귀한 존재로 말씀하신다.  

" 그러므로 따뜻한 마음이 고였을 때,/ 그리움이 가득 넘치려고 할 때,/ 영혼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친구도 만나야 한다./ 습관적으로 만나면 우정도 행복도 쌓이지 않는다."(p.39) 

온 마음을 다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라는 의미이리라. 그리하여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p.140)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행복은 온다.

"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 신문도 보지 말고, / 단 10분이든 30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벽을 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라."(p.29)

또한 행복은 정진에서 온다. 녹슨 삶을 두려워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서 올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나를 비우고 남을 용서하고 나의 작은 영혼이 자유로울 때 올 것이다.

오래 전에 나는 '무소유'와 '산에는 꽃이 피네'를 읽고 정말 가슴에 연꽃 하나 피는 느낌을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 준 기억이 난다.  내게는 보석 같은 책이었고, 그 책을 읽은 느낌을 다른 사람도 느껴 보길 간절히 원해서였다. 이 책도 많은 사람이 읽어 보길 바란다. 꼭 사지 않더라도 서점 한 귀퉁이에서  몇 페이지를 읽으며 마음의 안식을 찾기를 바란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법정 스님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사람이다. 내 나약한 영혼이 흔들거릴 때, 먼지가 낄 때,  내 안의 고독에 휩싸여 위험해질 정도로 우울해질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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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7-1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책.
내 영혼의 깊은 곳을 건드려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책.
그런 책이라면 내가 책을 읽으며 살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비자림 2006-07-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맞아요.^^
반복되는 일상. 지리멸렬한 내 생각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
그러나, 그 허무함 속에서 기운내고 살아야겠지요.
이 아름답고 추한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