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2년 반동안 시댁에 함께 살다 분가하여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지도 어느새 십년이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서울의 바로 옆이고 지하철도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사는데 그리 불편함은 없다.
특히나 면허증은 있으나 장농면허 15년이 넘은 나같은 뚜벅이가 살기에는 정말 편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대형 마트가 세 개나 있고, 엄청 큰 H백화점과 G백화점도 걸어서 갈 수 있다. 그 뿐인가 쇼핑몰도 몇 개 있고, 뭐 이용할 일은 없지만 시외버스 터미널도 가깝다. 누가 알겠는가 내가 어느날 순오기님이나 프레이야님을 만나기 위해 남쪽 나라로 떠날 날이 올지...^^
음... 또 하나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와 프리머스도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니 문화와 쇼핑의 천국인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그렇듯(나만 그런걸까? ㅜㅜ)이 그런것을 누리고 살아오지 못했다.
분가하자마자 큰아이를 임신하여 몸조심 하느라 외출 금지였고, 어렵게 세상 구경한 큰 아이 살피느라 문화생활은 호사일 뿐이었다. 큰 아이가 조금 커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무렵 둘째를 임신하여 또 다시 10개월의 감금 생활에 들어간후, 지금까지 그렇게 아이들 열심히 키우고 옆지기 챙겨가면서 조용히 살아왔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침이면 큰 아이 학교보내고 둘째 챙겨서 유치원 보내느라 혼을 빼지만, 그 다음에 주어지는 3시간 30분 나만의 시간이 꿀맛일줄 알았다.^^ 그 시간이면 보고싶은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알라딘에도 열심히 들락거리려 했는데 그게 그렇지도 않다. 아이들 보내놓고 뒤돌아서 집안일 조금 하다보면 금새 큰 아이 학교 끝날 시간이고 조금 후면 둘째도 온다. ㅜㅜ 그 시간만큼은 집안일을 안 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지...
그래서 결국 건수를 하나 만들었다. 10년 동안 문화생활 제대로 해보지 못한 아줌마 네명이 모여서 영화를 보러간 것이다. 무스탕님의 페이퍼에서 눈에 띄었던 의형제... 강동원은 멍한 눈빛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좋아하지 않지만, 송강호의 연기는 정말 변화 무쌍하지 않던가? 그의 모습을 TV가 아닌 대형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아침부터 아줌마는 바빴다. 허나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지 내 마음은 너무 바쁜데 그 날따라 아이들은 더욱 늦장을 부린다. 결국 둘째는 아침도 먹다말고 유치원에 보내지고, 아줌마 네 명은 평소와 다른 차림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네 명중 두 명은 극장에서 영화본지 10년은 되었다 하고, 한 명은 아이가 하나인지라 아이와 함께 영화보러 여러번 갔지만 혼나 나서는건 처음이고, 나 또한 10년만에 극장에서 온가족과 아바타를 보았지만 혼자 나서는건 처음이었다. 영화는 조조인데다 나에게 예매권이 두 장 있었고, 알라딘 할인권과 카드회사 할인으로 네 명이 영화보는데 든 비용은 삼천원이다. 이 참에 인심쓰면서 내가 영화를 보여 주겠노라고 큰 소리를 쳐보았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잔인한 장면에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했지만, 리얼한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봐도 멋지다. 강동원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꽤나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아 훌륭하게 소화해낸 듯 싶다.

작전 실패로 명퇴를 하게된 전직 국정원 직원인 송강호와 배신의 누명을 쓰고 버림받은 남파 공작원인 강동원이 6년만에 만나 서로의 신분을 모르는척 위험한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는 송강호의 모습은 역시 대단한 배우라며 네 아줌마가 입모아 말했다. 화장실에서 비틀어진 닭 모가지에 엉덩이를 보이며 헐레벌떡 뛰어나오지만, 그 닭을 정말 맛나게 먹는 모습이라니...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모두가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영화가 해피엔딩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줌마들의 특별한 외출이 즐거웠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여기서 끝내기는 아쉬워 점심도 특별한 곳으로 갔다. 애슐리라는 부페식 레스토랑인데 한 끼 식사로는 조금 과한 금액일 수 있지만, 식사하고 비싼 커피 마시면 그정도의 가격이기에 이 참에 자기자신에게 인심 써보기로 했다. 점심도 맛나게 먹고 은은한 원두커피 마시면서 영화 얘기와 애들 얘기 하다보니 어느새 아이들 올 시간이 되었다. 다음달에 또 영화보러 가기로 약속하면서 그렇게 아줌마들의 특별한 외출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