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창비시선 200
신경림 엮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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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듯 불이 완전히 소화된 것이 아니고 바닥 저변에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해 주는거 같다.그리고 뭔가 활활 타오르면서 분노와 억눌림이 한꺼번에 터져 버릴거 같은 느낌을 안겨 준다.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고 사회가 썩어 문드러지고 군에 의한 독재정치가 횡행한다면 일반인은 어쩔 수 없이 면종복배와 동상이몽의 길을 걸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해방이후 5년,한국전쟁,이승만정권하의 부정선거,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시대에 인권탄압과 민주화의 후퇴가 현대사의 상징이고 안타깝게도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주검으로 몰게 하고 희생시켰던 것이기에 현재를 살고 있는 대다수는 이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창비에서 발간된 이 시집은 농민의 아픔,정치적 주장,체제 변혁을 노래하는 등 사회성이 짙게 깔리고 당대의 사회 부조리와 부정부패,인권탄압에 대해 암묵적인 요구가 거세어지면서 시로 형상화하여 민중의 아픔과 고단함을 달래려 했던 것이 시공간적으로 가깝게 다가온다.그리고 그러한 모순되고 부패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시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얻으려 했다는 점이고,사회비판적인 시인들은 달콤한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었기에 사회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직간접적인 시의 언어로 억눌림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름만 대면 거의 알 수 있는 저명 시인들의 시들이 암울했던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은,신경림,황도유,마종기,김지하,정호승,황지우,곽재구,박노해,김용택,도조완,안도현 등이다.시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읽다 보면 행간과 행간의 의미가 저절로 느껴지고 억눌리고 짓밟히던 시대에서 푸른 창공으로 나래를 박차고 날아가고 싶은 진정한 자유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찟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 박노해 시다의 꿈에서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 신경림 파장(罷場)에서 -

 

사회는 빠르지는 않지만 거꾸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농경사회에서 산업화,탈산업화를 거쳐 신자본주의의 그늘에 살고 있는 요즘 실낱같은 지난 시절의 가난과 무지,억눌림,고초,몸부림이 새살이 돋아나 성숙되어 가고 당사자와 후손들에게 역사와 삶의 교훈이 될 것이다.인간은 실수와 오류를 범하면서 그 전철(輾轍)을 밟지 않으려는 지성과 지혜를 갖고 있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1987년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까지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온갖 회유와 탄압,고문에도 굴하지 않았기에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아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역사는 늘 굴곡으로 점철되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산재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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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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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든 '독불장군'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출세지향적인 생각이 어느때보다도 팽배한 요즘에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돌봄의 여유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부모형제끼리의 왕래나 인사도 많지 않고 기념일이나 상이 당해야 마지 못해 가봐야 하고,형제,친척끼리도 서먹서먹하고 형식적인 인사로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좋든 싫든 생계를 위해 뛰어야 하는게 세태가 아닐까 한다.물론 부모형제끼리 우애와 왕래가 빈번하고 혈육의 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돈과 물질,출세지향적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물질적,정신적 여유가 거의 없다는 사회 구성원간의 교류,왕래가 부족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율 1위,행복도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한국은 경제 위기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부조화와 불협화의 커다란 간극,아파트 및 고급빌라가 들어서고 담장이 쳐지며 이웃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가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나와 가족 위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서 진정한 공동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TV를 비롯한 매체에선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소리만 있을 뿐이고 동정과 위로,연민의 따뜻한 말과 손길은 없는 것도 눈에 띈다.'힘내!'라는 말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가 죽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더 이상 재기할 가망이 없는 이들에겐 '힘내!'라는 소리는 한같 공허하고 뜬구름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소외되고 재기가 어려운 이에게는 두 손을 마주잡으며 그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며 살아갈 방도를 함께 생각하고 사회에선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할것이다.그 어느때보다도 사회 구성원간의 위로와 연민의 정을 보여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게 돈과 물질,권력으로만 서열을 매기고 절대 다수인 서민층은 늘 허리띠 졸라매고 살려고 해도 상층부에선 '아서 먹고 살아라는 식'이니 삶의 질도 떨어지지만 팍팍함만 가중될 것이다.

 

개인 및 사회에는 위기라는 문제가 늘 상존한다고 생각한다.개인이 할 수 없는 능력밖의 일은 사회와 국가가 대신 채워주고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희망을 심어 주어야 제대로 된 타력본원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돈과 물질을 기초로한 신자본주의 그늘 하에서 서민들에겐 절대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모두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 치는 마당에 돈과 물질,힘이 넘치는 부류들이 이들을 감싸 동류의식을 한껏 발휘해야 하는 것도 타력의 본질일 것이다.

 

작가 이쯔키 히로유키는 태어난 환경,성장과정이 그리 유복하지는 않은거 같다.만주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일본의 종전을 맞이하면서 부모를 여의고 홀로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방랑객과 같은 삶을 살아오고 있는거 같다.대학시절엔 학비를 제때 못내어 제적을 당하면서 수많은 고뇌와 갈등,방랑을 거듭하면서 작가로 거듭나기까지 삶의 굴곡이 컸는데,그에게 힘이 되어준 15세기 일본의 3인의 종교가(불교)는 그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의 끈을 안겨준거 같다.즉,정토교의 호넨(法然),진종(眞宗)의 확립자인 신란(親鸞)과 렌뇨(蓮如)의 신앙에서 그는 삶의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들을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거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사의한 감각을 맛보며 자신을 초월한 우주의 파동 같은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앗'이라든가 '아아'하고 한숨을 내쉬며 돈오의 세계로 들어갈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순간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흥겨워지는 느낌이 들며 신진세포가 늘어나고 활기를 띠는 순간이 있다.그것은 기묘한 감각이고 우주 속의 티끌과 같은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시간이기도 한다.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안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 본문-

 

특히 저자는 렌뇨의 사상에 흠뻑 빠진거 같다.원리원칙적인 신란보다는 모순 투성이이지만 현실감각을 제대로 흡수하여 살아가려는 렌뇨의 융통성 있는 삶의 기질이다.현실과 어떻게 타협하고 타협하는 인간에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서 현실과 부딪히게 되고,자신이 소속된 조직을 살리면서 자신도 살리는 길을 필사적으로 찾아던 것이 저자의 삶의 이력이 아닐까 한다.노(老)작가답게 삶의 실타래와 사연,지혜가 100가지 단상 속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그 무엇이 최고이고 이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 줄줄 아는 관용과 위로의 정신이 진정한 타력본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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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단상 - 잉여라 쓰고 '나'라고 읽는 인생들에게
문단열 지음 / 살림Biz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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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단열하면 떠오르는 것이 문단열 챈트 영어교수법이었고 강사와 게스트가 하나가 되어 재미있고도 효과적으로 진행하던 기억이 있다.또한 약간은 비음(鼻音)에 가까운 소리에 이국적인 풍모가 흡인력이 있었던거 같다.한동안 저자가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의 삶에도 굴곡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 인생의 스텝이고 정해진 이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가 잉여(할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라 쓰고 '나'라고 읽는 인생들에게를 부제로 내놓으면서 읽어가는 속도는 있지만 내면에 숨겨진 그만의 내공은 가벼운 깃털로도 보이지만 켜켜이 내려앉은 삶의 무게로도 다가온다.독자에 따라서는 글의 내용을 전부 소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쓸모없는 이야기 역시 없다.쉽게 말하면 청산유수와 같이 졸졸 흐르는 물줄기와 같지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뚝배기 된장국과도 같은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것도 숨길 수가 없다.

 

저자도 나와 거의 비슷한 연배이다보니 시공간은 다르게 살아오고 있지만 한 풀 한 풀 벗겨보면 역시 동세대인으로 살아왔다는 느낌이 강렬하다.글의 소재 및 내용도 위트와 유머,풍자와 은유,반어법이 뒤섞이면서 싫증나지 않게 서술하고 있다.그만큼 글의 내용이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친다.그리고 시간과 세월 속에 쌓여진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때론 뭉클한 감동도 안겨 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낯 뜨겁게 눈 맞추고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평생 단 한번,죽음 앞에서일 것입니다.모든 아버지는 등으로 말합니다. - 아버지의 등 -

 

아버지의 등을 읽으면서 중국의 작가 주쯔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된다.고단한 일상이 가족들을 위한 것이고 말 수가 적으신 아버지이지만 사회제도와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며 아버지와 아들의 삶은 비록 다르지만 그 생각과 감정,지혜의 샘물이 오롯이 아들에게 전해져 가는 행로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나 또한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 사랑스러운 대화나 자상한 얘기를 듣지 못한 채 훌쩍 어른이 되어 버렸고,아버지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식에 대한 깊고도 사랑이 넘치는 한마디가 전부이셨다. "해준 것은 없지만 부디 너희 부부 행복하게 잘 살아라" 였다.그리고 아버지 임종도 못하고 염을 할 때 나뭇가지마냥 비쩍 마른 몸에 여기 저기 주사바늘자국으로 시퍼런 멍이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기와 같은 체형으로 변해 버렸다. 대화다운 대화가 부족했다면 내가 돈이라도 많이 벌어 병원비라도 잘 대주었던들 후회가 덜할텐데라는 자괴심만 부쩍 늘어만 간다.

 

인생은 악기와 같이 조율이 필요하고,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안주고,일상에서 얻은 깨달은 소소한 지혜,슬픔을 축복으로 바꾸는 자세 등이 문달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단상들이다.그 또한 사업실패와 암선고라는 고난과 시련이 있었기에 삶이란 평탄한 것이 아닌 오르락내리막 하는 비탈길과 사행(蛇行)길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겸허하게 느꼈으리라.

 

아픔과 고통,실패의 쓴맛을 맛보았기에 반복되는 소소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그는 마중물과도 같은 소중한 지혜를 건져 올렸다고 생각된다.그리고 인간의 삶은 누군가의 삶과 지혜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살아가기도 하고 그 지렛대가 방향타 및 나침반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삶의 실수와 실패,자신의 겪는 아픔과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반면교사의 작용을 해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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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눈물 -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이 춤추는 땅
장형원.한학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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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문명의 시원(始源)을 간직하고 있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거리로보나 감각적으로 보나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19세기 중반에는 유럽 열강들에 의해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경선이 제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획일적으로 그어지고 침략과 수탈,약탈,인권 침해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그러면서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서구 자본의 도입에 따라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아직도 아프리카 오지에는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한 채 부족 단위의 부족 공동체와 부족장에 의해 원시적,주술적,신화적 믿음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21세기 인간의 이기적 본능에 의해 산업화,개발이 아프리카에도 침투되면서 그들의 삶의 조건과 질은 더욱 양극화 되어 가고 한 줌의 물과 한 줌의 곡식을 얻기 위해 치열한 일상이 전개되고,아프리카 역시 기후온난화로 인해 킬리만자로의 정상이 서서히 해빙화 되고 사바나의 열대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민가를 습격하고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 심각한 우주의 대재앙의 조짐도 보여진다.순박한 모습의 아프리카인과 태초의 자연의 위대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 이젠 기본적 생존욕구를 채우기 위한 치열하고 각박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MBC 다큐멘터리 3번째 눈물 시리즈가 된 이 글은 2명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말리,케냐,에디오피아,모잠비크의 오지를 힘겹게 취재하면서 현지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특히 오지는 문명의 혜택이 닿지도 않을 뿐더러 생활 수준과 의준 수준도 현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원시생활 그대로 인데 부족장과 부족 공동체에 의해 삶을 이끌어 가고,그들만의 제도와 구조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그것은 그들만이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성인의식,할례,전통 축제에서 보여진다.

 

검은 입술 문신 시술을 하는 풀라니 족 소녀,수리 문화의 입술 원반을 하는 여인,동그란 원 모양을 한 쇠를 달궈 갓난 아기의 뺨에 갖다 대는 마사이족의 특정 가문,동가족의 대축제가 그들의 전통과 주술 의식의 표본이고,중요한 것은 몇달 째 가뭄이 들어 토지가 말라가고 물이 부족해 흙탕물을 받아 음용하기도 하고 밥을 짓기도 한다는 점이다.또한 초지를 벗삼아 살아가는 사바나의 동물들도 물을 못마시고 탈수 증상이 격화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부지기수이다.자연 생태계가 파괴되어 간다는 생각을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큐팀이 취재한 말라,케냐,에디오피아 등은 현대문명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지금 사는 모습이 그들의 숙명이기에 인습적으로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된 노동과 수렵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가고 중요한 일은 부족장과 부족 공동체에서 의논하고 결정하는 등 일상의 시스템이 먼 옛날로 다시 돌아간듯 하지만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인습,부족끼리 공고한 단결력,전통의식과 관념 등이 현대 속의 원시사회를 들여다 보는듯 했다.뜨겁게 달구는 축제 속에 모잠비크의 유부남이 남아공으로 원정 노동을 떠났다가 흑인 폭동에 휘말려 분신사하는 사건 등을 통해 치열한 생존법이 그들에게도 예외없이 침투되어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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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지음 / 공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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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생존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일과 관계로 인해 심신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거 같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개가 자신의 능력한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탐욕과 이기주의로 인해 오히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마저도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겪기도 한다.흔히들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문제는 쌍방의 이기심이 팽팽하게 대치한다든지,상.하관계가 상생관계가 아닌 상명하복이라는 (일본식)조직 문화가 사회 구석구석에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선 사람과의 관계로 상처와 응어리,감정의 골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해 본다.

 

또한 유교문화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사람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끌지 못하는 요인이고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 및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조급증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내 자신이 조금만 양보하고 마음의 배려를 상대에게 보여준다면 일도 잘 진행될테고 타인과의 관계도 밝고 원만한 관계가 지속되리라 생각된다.무엇이든 빨리 처리를 해야 속이 시원하고 성취감을 느낄테니 모두가 눈에 불을 쓰고 매사를 대하니 몸과 마음도 불이 난 상태라 될 일도 안될 때가 많고 실수 및 오류도 많을 것이다.

 

한 발 물러나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일의 인과관계를 마음 속으로 읽어 가다 보면 그간의 옹졸하고 편협했던 자신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지고 깨닫게 되며 자신보다는 타인과 사회의 소외계층 등을 생각하고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현실은 책임과 희생이라는 문제도 있기에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일도 잘되고 인생이라는 끈을 이어가는데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저자 정목스님은 처음이다.이 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로 인해 갈등과 반목이 생기고 마음의 상처가 오래도록 남은 이들에게 들려주는 산사의 명상곡과도 같다.부자든 빈자든 빈 손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간다는 겸허한 마음자세만 갖추고 살아간다면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이 어느 정도는 정화되리라 생각하지만 기성 사회 체제와 의식 구조가 '무한경쟁'을 종용하고 있으니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되 남을 속이고 짓밟고 소수의 이익만 챙기려는 일부 몰상식하고 부도덕한 사회지도층부터 비루한 속내를 벗어던질 과감한 (자기)혁신이 이루어져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체자보다는 종속자로 일을 해보니 이런 저런 상사 및 오너가 있다.다는 아니지만 윗선에 충복하는 충견이 되어 자신의 명예 및 사리를 채우려다 보니 아랫사람을 마치 자신의 종처럼 (거친 말과 행동)대하는 사람도 있다.부조리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이기에 속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가족을 위해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몇 번이고 새기고 새겼는지 모른다.훗날 이것이 인생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서 돈주고 배울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을 체득했다고 하니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주위에는 별의별 인간군상이 있다.무난한 사람보다는 거칠고 매사 디미니셔와 같은 자들이 있다.그러한 자들에게 정목스님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저항적인 상대방과 마주해야 한다면

"나 나무토막이다" 혹은 "난 죽은 사람이다"하며

감정을 다스려보세요. - 본문 -

 

경제적 활동을 하는 몇 십년간 가족의 생계,자식 교육,위기시 대처,노후설계 등으로 하루 하루를 안일하게 살 수가 없다.각자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고 본다. 모두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복적인 일상과 무미건조한 삶이 지속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꿈을 즐기고 살아가는 것이 먼훗날 '후회없이 잘 살았다'가 아닐까 싶다.행복하다,행복하지 않다는 결국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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