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때문인지, 어디가 안 좋은건지, 잠을 쉬 못들이고 칭얼거리는 연우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TV를 켰습니다. 임성훈의 세븐 데이즈라는 방송을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가슴 아프게도, 오물 속에서 방치된 삼남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섯 살, 세 살(네 살이던가?), 한 살...어린 삼남매만 집에 있다가 주민들에게 발견되었는데....그 집이라는 것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쓰레기장이었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똥과 과자부스러기 위에 파리떼가 들끓고, 벽에는 똥을 바른 듯한 손자국과 엄청난 낙서들, 깨지고 망가진 액자가 굴러다니는... 화장실 구석에는 빨래감이 말 그대로 산더미이고, 세면대에는 담궈놓은지 오래되어 썩은 아이들의 옷 위로 역시 파리떼가 모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발견된 당시, 한 살배기 막내는 침대에 머리가 끼인채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치료를 받는데....귀가 주먹만하게 부어올라서, 조직 괴사를 막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하더군요. 그 장면을 보는데....품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든 연우를 내려다보며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면 한 번 보고, 연우 한 번 보며 오래도록 흐느꼈지요.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발견되기 바로 전 날까지, 그 집에서 엄마를 봤다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아빠는 스물 네 살, 엄마는 스물 두 살의 어린 부부. 아빠는 사건 발생 석 달 전에 아내와 싸우고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열 여덟에 첫 아이를 낳은 어린 엄마는 며칠 뒤 경찰에 자수해 오면서, 사건이 그렇게 된 것을 매우 <억울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요즘은 아이들을 너무 깨끗하게 키운다고 하지 않느냐... 좀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혼자 아이들을 돌보자니 아이들끼리 놔두고 외출할 일이 생겼다... 그 때마다 자기들끼리 잘 놀았는데, 어떻게 운 나쁘게 그 때 아이가 다치고 경찰까지 오게 된 것 뿐이다... 하아....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질 않았고, 조금 더 지켜본 후에도...화라기보다는, 복잡한 연민이 들끓고 올라왔습니다. 너무도 미숙한 그 엄마마저도, 성질나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우스개 반으로 사람들이 말합니다. <부모자격 검정시험>을 치러야 하지 않겠냐고. 글쎄요, 어떤 방식으로 시험이 실시되어야 하는지, 막막하지만...뭔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이 아니라도, 학생들에게 부모됨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이 실시되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어제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그 지저분한 방에서 어른 티셔츠인지 원피스인지를 입고 멍하니 서 있던 다섯 살배기와, 귀에 붕대를 감고도 심한 애정결핍 때문에 아무에게나 척척 안기던 천진한 한 살배기... 딱히 아무것도 손 뻗어 해 줄 수 없는 것이, 시간도 돈도 좀 더 많아져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 내 게으름이....화가 나서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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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구르르르~~ 2004-05-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 뉴스 보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ㅜ.ㅜ 짐승도 지새끼는 그렇게 안 놔두는데.. ㅡㅡ;;

비로그인 2004-05-1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어린이날 메시지님 서재에서 그 뉴스를 보았지요. 휴~ 뭐라~할 말이 없습니다.

*^^*에너 2004-05-1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를 보지는 못했는데 진/우맘님의 글을 보니 안스러운 생각만 드네요.

sooninara 2004-05-1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세븐데이즈 봤다네...정말 어린엄마가 철이 없더군요...아이들은 퍼질러 낳고 키우는것은 나몰라..아이 키우기 힘들면 그정도 지저분한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게으르고 더러운것 참기에 일등할 자신있는 나도 그엄마에게 두손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보호시설에서 제대로 보호 받기를 바랍니다...나중에 다시 돌려준다는데..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지않을까요?
(아..그런데 나도 방임형 엄마중에 하나라서 조금 찔리더이다^^)

프레이야 2004-05-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없애야 돼요. 이런 애들 생각하면 그런 날 챙기는 것 자체도 사치다싶네요.

마냐 2004-05-1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되는게...많은 자질을 요구하긴 하지만...뭐, 할 수 없다 칩시다. 하지만..아동학대에 대한 법률을 엄하게 강화해야 한다는데 한표. 무엇보다....시간도, 돈도 더 많아져야 남을 돕겠다는 제 게으름과 무책임함....진/우맘님의 분노와 눈물에 공감.

호랑녀 2004-05-1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집 사정을 아는 것은 아니니 함부로 말할 건 아니지만요,
저는 그 엄마가 참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0대에 준비없이 엄마가 되었는데, 그것두 셋이나 낳았는데, 아빠는 집을 나가고...
아이 셋을 돌보면서(게다가 그 아이들이라는 게 한참 손이 가야 할 1, 3, 5살이고), 먹고 사는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면, 그것은 그 엄마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엄마가 좀더 야무졌더라면, 자기의 삶에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가졌더라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엄마의 억울함이, 누군가를 탓하고 싶을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연우주 2004-05-1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연우주 2004-05-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마디밖에 쓰지 못한 건 늘 망설여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가 될 자신. 그리고 아이를 낳을 자신. 그런 게 아직 전 없어요...

마태우스 2004-05-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기를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로그인 2004-05-1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기사보고 얼마나 치를 떨었던지...으, 어쩜 애들을 그 지경이 되도록...아이를 낳은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이 아닌데,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부모들, 결국 상처받는 건 어린애들이죠...휴...

물만두 2004-05-1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타난 여자의 말이 더 황당했습니다. 재수가 없었다나요... 참나... 이럴때 친권 박탈 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22살에 애가 셋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거기다 외출할때 4살배기한테 2살배기를 맡기다니요... 참... 그 친척들 말도 기가 막히더군요... 결혼도 인성검사하고 아이 낳는 것도 인성검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시지 2004-05-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들의 자세에 대한 반성만큼이나 비참한 환경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할 방법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 앞에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자식을 잘 키우는 일만큼이나 다른 아이에대한 배려도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다연엉가 2004-05-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놀래서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아이는 내 부속품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라는 걸 전혀 깨닫고 있지 않은 부모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나중에 또 어떻게 될까요? 제 자신이 너무 너무 속상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