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소설이 너무 무겁다. 읽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소설의 시대적 상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자들의 슬픔, 그 속에서 이긴 자와 패배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모두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형상이 소설을 단조롭게 했다. 아무리 살아남으려고 해도 그 운명은 내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인물 모두가 외롭고 쓸쓸하다. 빛이라는 희망을 볼 수 없는 어둠의 터널 속에 있는 군상들을 만난 느낌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속에서 인간의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 인간의 고독, 작가는 피말리게 하는 고독을 끔찍하게도 잘 표현했다.
알라딘 리뷰를 아래에 그대로 옮긴다.
"그러나 내가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김인숙이 '소현'을 썼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이다. 소현세자가 아무리 조선을 사랑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중자애하고 머리를 굴려도, 그가 조선에 돌아온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욕망뿐이다." 이미 정해진 역사가 압도적 서사로 작용하는 이 소설은, 따라서 장면과 인물에 집중한다.
적의 땅에 끌려가 9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적의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한 세자. 그는 그저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고, 살아남기 위해 말을 고르고, 주변인에 대한 애정도 덮어둔 채 "다만 조선의 앞날을 생각한다." 세자뿐이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구왕 도르곤도, 조선의 노비였다 청의 역관이 된 만상 역시도 오직 살아남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긴 자도 진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결국 모두 죽는다. 살기 위해 생각하고, 살기 위해 남을 해하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든 사람들을 시간은 그저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세월이 흔히 강물이나 바람에 비유되는 것은 그것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 김인숙은 그 세월의 한 자락, 역사의 한 장면을 잡아내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 환멸과 두려움을 그려낸 것이다.
하여 작가가 빚어낸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모두 고독하다.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앞에 인간은 지워지고 역할과 목숨만 남아, 이야기는 그저 쓸쓸하다. 수년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돌아눕는 아비-아니 임금의 모습처럼, 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과 쓰지 못한 세상의 모든 말들이 소설 속에 가득하여 읽고 나면 다만 가슴이 먹먹하다.
정밀한 문장과 세심한 심리묘사, 말로 붙잡기 어려운 아득한 슬픔과 고독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낸 작가의 언어가 돋보인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위로할 수도 대신 변명할 수도 없으므로, 그의 삶과 죽음을 있는 힘을 다해 이해할 뿐"이었다 고백한 작가의 말처럼, 홀로 운명과 마주했던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에 접근함에 있어 작가의 정성과 노력에 부족함이 없다.
'소현'을 다룬 여러 역사소설 중, 근래 보기 드물게 잘 씌여진 수작. - 박하영(2010-04-20)